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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이야기

이춘우 |2006.02.04 19:54
조회 389 |추천 0

언제 인가 나는 입양되어 온 것을 알게 되었다

계부와 계모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사이에서 나는 성장을 해왔었다

계부와 계모는 나를 엄청나게 학대를 하였었다

이유는 모른다 왜 그랬었는지

대구로 이사를 와서 공부를 못한다고 책가방을 불사르는 계부 그리고 멀뚱멀뚱 쳐다보는 계모와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들 ....

누구하나 나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 하나 없었다

일기를 안쓴다고 또는 계부가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나 계부와 계모가 운영하는 장사가 잘 안되는

날이면 그런 날이면 나는 늘 불안하였다

왜? 저녁식사를 할 때 밥상을 걷어차는 계부 그리고 나서는 어김없이 플라스틱을 겉표면에 입힌

가죽벨트로 나의 온몸을 때리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1시간인가 2시간인가 맞으면 온몸이 녹초가 되고 울다가 지치고 ....

그 다음날도 역시 마찬가지로 당하였었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때부터는 자폐증이 왔었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하루종일 창고같은 부엌에서 떠다니는 먼지만 쳐다보고 아무말도 안하고

그랬었다 사람을 쳐다볼 때는 정면으로 잘 못봤다 지금도 조금은 그렇지만서도....

왜 그런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계부가 나를 너무 학대해서 그런거 같다

약간이라도 두려움이 있거나 뭐랄까 편하지 못하면 나는 사람을 볼 때 정면으로 시선을 응시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해도 받은 기억도 있다

내가 어릴적 국민학교 3학년때인가? 그 때 계부는 나를 보고 미국에 갈래? 물어보았다

나는 간다고 하였다 그러나 계부는 너는 안된다고 하였다

계부가 나에게 물었다 너 TV에 나오는 탤런트 할래?

계부는 너는 안된다고 그랫었다 왜 계부가 그랬었는지는 나는 모른다

비산동으로 이사를 갔었다

거기에서는 이전보다 더 나를 학대하였었다

일기를 안쓴다고 그리고 계부가 술을 먹고 들어오는 날이거나 장사가 잘 안되는 날이면

나는 어김없이 매를 맞았다

한번 매를 맞기 시작하면 5일이나 길면 9일정도 갔었다

쉽사리 화를 안푸는 계부는 그의 가족들 특히 나를 학대하였었다

중학교 다닐적에는 기억상실증에 걸려 집을 못찾았었다

밤새도록 집을 찾아서 헤메었었다 누구하나 나를 찾아다니는 사람 없었다

새벽이 되어서야 나는 겨우 집을 찾아 들어왔다

나는 늘 공부를 못하였었고 그런 나를 계부는 지금에 와서 생각해봐도 엄청나게 학대를 한거 같다

한달에 한번이라도 단 한번이라도 마음놓고 집에서 쉬는 날

언제 들이 닥칠지 모르는 계부와 계모

그들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핑계를 만들어서라도 나를 학대하기 시작하였다

각목으로 손잡이가 쇠로된 빗자루로 가죽벨트로 때로는 맨손으로 나의 깃싸대기를 때리고는 하였다

나는 코피가 터지고 이리 맞아서 뒹굴고 그러면 계부는 일어서라고 하고 일어서면 또 맞고

그렇게 자랐었다

고등학교때는 계부가 쥐를 죽이는 약 봉지를 펼쳐놓고 나를 보고 먹어라 하였다

나는 안먹는다 하였다 그리고 나서 또 맞기 시작하였다

어떤날은 머리를 감고 있었는데 계부가 들어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머리 감고 있는데 헹구고 들어가면 안되냐고 하니까 머리 감고 있는 나를 바로 계부의 발로 밀어버리고 나를 때리기 시작하였다 양외할머니는 그런 계부를 말리었고 양 외할머니도 계부는 포기 했다고

말했다

양외할머니는 내가 대구에 이사를 왔을때부터 1년에 네번은 2달씩은 왔다가 갔었는데

지금에 와서 생각해보면 계부를 말리는 것 같으면서도 은근슬쩍 피하였던 같다

"이 서방 이러는 안되네!!" 이러면서 이게 전부 였다

정말 나를 위하는 마음이 있었다면 동네사람들이나 경찰서에다 신고라고 하였을 것을....

계부쪽 집안 사람들은 한결같이 계부와 성격이 닮아 있었다

고등학교 다닐적 도시락에 계모는 도시락에 농약을 묻혀서 그것을 나의 손에 쥐어주고 나를 학교에

보냈다 나는 학교에 가서 도시락을 먹을 때 그것을 먹을려고 입안에 넣었는데 냄새가 나서

그것을 버렸다 농약냄새가 나서

집에와서 계모에게 농약냄새 나는 반찬을 왜 ......

계모는 나에게 미안하다고 말을 하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대구 어린이 대공원에 놀러갔었다 그 때가 9월달정도 되었었다

날씨는 맑고 습도도 좋고 바람은 선선히 불어오고 조금 이른 아침이라서 그런지 날씨는 조금

선선하였었다 그 때 나는 벤치에 나는 누워서 이대로 죽었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하였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를 가르켜 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냥 무작정 남들 하니까

출새하기 위해서 남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서 하라고 계부와 계모는 그렇게 나에게 말하였었고

다른 사람들도 나에게 그렇게 말 하였다

그래서 나는 대학교 진학을 못하였다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래서 나는 전산원이라는 데를 들어가서 컴퓨터 프로그래밍에 관하여 2년동안 공부를 하였다

그리고 난 뒤 나는 군대를 갔었다 나는 방위판정이 싫었다 그래서 공군에 지원하려니 시험을 봐야

한다고 해서 나는 공군지원을 포기했었다

방위를 마치고 난 뒤 나는 마땅히 갈 때가 없었다 주변 사람 그 누구도 나에게 마땅한 취업자리 말해

주는 사람없었다

양외가집 식구들에게 부탁하러 가면 그들은 네가 할줄 아는게 뭐가 있냐면서 그러면서

약간의 핀잔을 주면서 .... 그래도 나는 한달에 한번은 갔었다 일자리가 있는가 싶어서

양외가집 식구들에게 그런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목에 보면 복개천 폐수가 흐르는 강물같은

것이 있엇다

나는 그 다리 밑에서 사는 것이 집에서 사는 것 보다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었다

그리고 난 뒤 나는 취업정보 일간지에다 등록을 해서 취업을 하였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나는 오래 근무를 하지 못하였다

양부모와 그의 자식들은 그런 나를 핀잔을 주면서 그런식으로 일을 할려면 관두라고 하면서

그러던중에 내 나이 25살때 나는 정보처리 기사 2급 시험에 합격을 하였고

그 다음에 건축기사 2급 시험에 합격을 하였다

그리고 난 뒤 2달 보름가량 공부하여 대학교 건축과에 입학을 하게 되었다

대학교 합격을 통지 받고 나는 울었다

왜? 양부모가 등록금을 내 주지 않을까봐 ....

불법이지만  자격증을 500만원을 받았다 그런데 어느날인가 갑자기 그 돈을 입금한 통장에

잔액이 몇십만원만 남아있었다 나는 엄청나게 놀랬다

누가 나의 통장의 돈을 빼내갔을까? 나는 천천히 통장 입출금을 확인해보았고

마지막으로 출금한 곳의 ATM기에 찍힌 양여동생의 얼굴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양여동생은 계모가 울면서 시켜서 그랬다고 말했으며 나는 잔소리 말고 돈이나 내 놓으라고

하니 양여동생은 그런적 없다고 하면서 시치미를 뚝 떼었다

그래서 나는 경찰에다 신고하기 일보직전이니 어서 돈을 내놓으라고 하니

그 다음날 나의 통장으로 돈을 입금시켰었다

1997년도 12월달에 외환위기가 왔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건축과 졸업하면 취직은 별 문제가 안되

었는데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취직이 어려워지기 시작하였다

나는 건축전공으로는 취직이 힘들꺼라 생각이 들어서

예전에 공부하였던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다시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집에는 컴퓨터가 없었다 그래서 PC방에서 혼자서 공부하다가 계모에게 부탁해서 리눅스과정만

듣고 나머지는 혼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난 뒤 나는 졸업하기 전에 웹호스팅및 웹에이젼시 업체에 프로그래머로 취직을 하게 되었다

허구한날 밤 새우는 거는 예사고 월급도 처음에는 150만원이라고 하였는데

월급을 받아보니 100만원을 받았었다 그것도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짤리고 말았다

처음 나선 객지 생활 양이모와 같이 살았지만 그들은 내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있었고

나의 양여동생과 결혼한 그 사람도 내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고 있었다

나 혼자서 헤쳐나가야 할 것이었다 나는 계속 이력서를 내기 시작하였고 월급 80만원 받고 일을

시작하였다 그곳에서 수퍼컴퓨터 CPU설계하였다라는 사람을 만나게 되었다

그 사람 밑에서 6개월만 일하면 될 것 같았는데 그 사람과 같이 그 회사는 헤채되고 말았다

그 사람은 나중에 알고보니 MIT 컴퓨터공학과 조교수로 지금 근무중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전에 만들던 쇼핑몰을 일본에 팔기 위해 알게된 사람 그 사람과 나는 조금은 통하였었다

같이 외롭다는라는 것 옆에 있어줄 사람이 필요하였다라는 것 그것이 그 사람과 나와 공통점이었다

그 사람은 일본 동경에 있었으며 나는 서울에 있었다

같은 남자이지만 그 사람은 일주일에 두세번은 나에게 국제전화로 한번에 2시간 가량 통화를 하였다

그렇게 할 말이 없었음에도....

그리고 나서 2002년 6월에 서울에서의 생활을 실패? 하고 대구로 내려갔었다

나는 그 때 양부모라는 것을 깨달았었다

나의 머리카락 하나를 때어서 현관 문에다 붙여 놓고 유전자 DNA검사를 하자고 양부모에게 보내는

메모를 남겨두고 집을 나갔다오니

양부모는 없고 건장한 남자들이 나의 방에 들어오면서 이춘우씨 맞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갑시다"하였다 그들이 나를 데려간 곳은 정신병원이었다

처음가본 정신병원 너무나도 낮설기만 하였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난 뒤 나의 온 몸은 굳기 시작하였다

어느정도 였나 하면 걸음을 걸을 때 보폭이 10cm도 안되었었다 정신병원에 있는 사람들은

의사보고 몸 풀어달라고 하면 알거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의사에게 몇번 말하고 나니 링겔을 나에게 주사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난 뒤 나는 예전 처럼 걸음을 걷을 수 있게 되었다

정신병원을 퇴원하고 난 뒤 나는 또 취직을 걱정하게 되었다 갈 곳이 없었다

마땅히 갈 곳이 ....

나는 시행사라는 곳에 우연치 않게 취직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현장기사 인줄로만 알고 갔는데

가보니 그게 아니었고 사무직이었다 사업기획일을 하는 곳이었다

처음 그런 곳에서 일을 할 때는 일을 많이 배우지는 못했다

다른 곳에서 근무를 할 때 일을 많이 배웠었다 그 때 나에게 두가지 갈림길이 있었다

하나는 완전히 신입직원으로 근무를 하는 곳이었고 다른 한 군데는 어느정도의 경력직으로 근무를

하게 되는 곳이었다 급여는 같았다

나는 경력직으로 일하게 되는 그 곳으로 근무를 선택하였다

물론 그 곳에서는 일을 못하면 퇴사를 당하게 되는 것은 알고 있었다

한달 보름정도 기간을 거쳐 경력3년차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 능력을 가지고 나니 그곳의 월급이 너무 작아보였다

그리고 난 뒤 채팅으로 사람을 알게 되었다 그런데 단 한번의 만남이었을 뿐이다

그리고 나서 전화통화만 하였었다 그 사람은 무척이나 단호해 보였다

나는 그렇지 않은데 나는 너무 우유부단한 사람인가? 모르겠다

그리고 나서 나는 대구로 내려와서 경제학을 나름대로 공부를 하기 시작하였고

신문을 보면서 뉴스를 보면서 그렇게 나 나름데로 그 공부를 시작하였었다

세계경제흐름에 관하여 나름대로 노트에다 기록을 해 나가기 시작하였는데

계부는 나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을 시켰었다 이유는 왜 그런지 모른다

정신병원에서 퇴원을 하고 나서

내가 쓴 세계경제흐름을 나의 이력서에다 써 놓고 난 뒤 그것을  맥킨지에다 보냈다

그리고 삼성그룹, 현대그룹, LG그룹에도 똑같은 이력서를 보냈었다 한국의 기업들은 나에게

아무런 연락이 오지 않았었다

그러나 맥킨지에서는 전화 인텨뷰를 하자고 하였다

계부와 나는 엄청나게 싸웠다 그런 다음 나의 느낌에 계부가 또 나를 정신병원에 넣을 꺼라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집을 나왔다

집을 나온 다음 계부는 나를 찾아 다닌걸로 안다 정신병원에 사람을 강제로 집어 넣어주고 돈을

받는 사람들과 같이 .....

그리고 나서 나는 어느정도 안정을 찾은 뒤 존슨&존슨, S&P, 무디스, 보잉사, 모건스탠리,

엑슨모빌, AT&T, 뉴욕타임즈, 푸르덴셜 에다 이력서를 넣었었다

 

연락이 온것은 존슨&존슨 에서는 내가 보낸 신규 사업아이템을 시험해보라고 지역을 선택하라는

것이었고, 푸르덴셜에서는 나를 만나러 사람이 온다고 나의 메일로 메세지를 보냈었는데

그 사람들은 오지 않았다, 그리고 AT&T에서는 나를 만나러 사람이 온다고 하였는데

나는 그 사람을 만난 적이 없는데도 AT&T에서 나에게 보내온 메세지를 보니

그 사람과 만나지 말고 메일이나 전화도 중지 하라는 내용의 메일이 나에게 왔었다

그래서 나는 AT&T에 입사를 포기하였었다 그리고 난 뒤 나는 뉴욕타임즈에 이력서를 냈었고

뉴욕타임즈에서는 나에게 보낸 많은 메일이 있었으나 전부 국장에게 메일을 보내라는 내용이었다

그래서 나는 국장에게 메일을 보내면 또 업무파트를 정하라는 내용으로 파트 담당자들의

메일 주소만 가즉하였었고 그래서 나는 또 그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내면 나의 메세지가 그들에게

어떤 의미가 전달되면 나를 만나러 올 것이라고 하였다

그래서 나는 또 메일을 보냈는데 그 다음에는 메일이 오지 않았으며

그래서 나는 뉴욕타임즈 입사를 포기한다는 메일을 국장에게 보내니 또 파트를 선정하라는 의미인지?

모르지만 파트 담당자들의 메일주소와 이름들로 가득한 메일 한통이 나에게 왔었다

나는 이제 조금 쉴려고 한다

그리고 한국의 기업들에게 내가 신규 사업아이템을 제안하였다

그들은 내가 장난 치는줄 알지만 사실 그런것은 아니다

그들이 나의 제안을 거절할 경우 나는 어쩔수 없다

이제 영어공부 조금 더 하고 난 뒤 미국으로 갈려고 한다

돈을 마련하여서 노가다를 뛸까? 아니면 생산직 근로자로 취업을 할까 고민중이다

지금 현재 있는 곳 참 처음에는 무척이나 고마웠었고

내가 정말 큰 것을 하나 해주고 싶었지만 지금에 와서 그 사람이 나에게 하는 행동들을 보니

참 답답하다 어쨋던 신세를 진것은 진것이니 그에 상응하는 것은 추후 보답을 할려고 한다

참으로 많은 시련 겪어 온것이 나의 인생에 있어 잘된 일인지 그렇지 않은 일인지 모른다

정말 슬프고 힘이 많이 든다

몇명에게 도움을 요청을 하였지만 그들이 나에게 정말 실질적인 도움을 줄런지 나는 의문이 든다

나에게 도움을 준 사람에게 나는 그에 상응하는 보답을 할 것이고 그렇지 않은 이에게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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