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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거운 커피

큰가방 |2006.02.05 07:40
조회 364 |추천 0

싱거운 커피


날씨가 많이 추워질 것이라는 기상청의 예보 때문인지 이른 새벽부터 겨울 철 특유의 차갑고 강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오늘 제가 우편물을 배달할 곳은 전남 보성 회천면 면소재지인 율포리(栗浦里)인데 율포리는 지역 특성상 아늑하면서도 다른 마을에 비하여 바람도 별로 불지 않아 늘 따스한 봄날 같은 느낌을 받는 곳입니다. 오늘도 저는 늘 저와 함께 하는 빨간 오토바이 적재함에 새 주인을 찾아갈 기쁨과 행복이 담겨 있는 우편물을 가득 싣고 우체국 문을 나서 바다를 끼고 돌아가는


해안 길을 따라 천천히 우편물 배달을 시작합니다. 오늘도 율포리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와 철 지난 해수욕장의 해변을 걷기도 하고 “아저씨! 여기 음식을 아주 맛있게 잘하는 식당은 어딘가요? 녹차 밭으로 가려는데 어느 쪽으로 가야하나요?”하고 저에게 묻기도 합니다. 율포리는 비록 시골의 조그만 면(面)소재지이지만 언제나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기 때문에 늘 활기로 넘쳐나는 곳이기도 합니다. 저는 율포리 상가(商街) 우편물 배달을 끝낸 뒤 평소에도 늘 저와 친하게 지내는 할머니께 등기우편물 한 통을 배달하기 위해


할머니께서 살고 계시는 2층집 계단을 천천히 올라가 “할머니! 저 왔어요!”하고 할머니를 부르며 방문을 가만히 열었더니 “아저씨! 어서와!”하시며 반가이 저를 맞아주십니다. “아니? 할머니! 지금 뭐하고 계세요?” “으~응! 지금 아침 겸 점심 먹고 있니라고!”하시며 빙긋이 웃는 할머니께서는 밥상도 펴지 않은 채 방바닥에 자장면 그릇을 놓고 서너 번 젓가락질하시다 제가 부르는 소리를 듣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셨는지 방바닥에는 그대로 자장면그릇이 놓여있습니다.


“할머니! 12시가 다 되어 가는데 이제 아침 식사를 하시는 거예요?” “어쩌다 본께 시간이 그라고 됐네! 오늘은 누가 등기 편지를 보냈어?” “둘째 아드님이 할머니 용돈 보내셨네요!” “그래~에! 또 싸인해 줘야 한가?” “물론 해 주셔야지요.” 하며 빙그레 웃자 “으따가(어디에) 싸인을 해야 돼?” “여기다 하시면 되요!” “그래~에! 그란디 무장 눈이 잘 안보여서 큰일이네! 이렁께(이러니까) 사람은 늙지 말고 살아야 쓰는 것 인디 안 그래? 아저씨!” “그래도 할머니는 연세에 비하면 다른 할머니들 보다


굉장히 건강하신 편이에요.” “그런가?”하시며 평소처럼 우편물 수령증에 이름을 쓰고 나서 저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시더니“아저씨! 바람이 불어 산께 날이 많이 춥제?” “아니요! 바람 만 조금 세게 불어 올 뿐이지 그렇게 추운 날씨는 아니네요!” “그래~ 잉! 그란디 점심때가 되었는데 시장하것는디!” “괜찮아요! 할머니! 자장면 다 불기 전에 어서 식사하세요.” “내 걱정은 말어! 그란디 아저씨 이것 좀 자셔 봐!”하며 저에게 내미신 것은 조그만 쟁반에 담겨있는 어린이들이 가지고 노는 구슬처럼 생긴 둥그런 사탕입니다.


“할머니 사탕은 어디서 나셨어요?” “사탕? 이것은 사탕이 아니여!” “사탕이 아니라고요? 그럼 무엇인데요?” “금방 옆집 노인이 놀러 와서 나 먹어보라고 내 놓고 갔는디 첨에는 나도 사탕인줄 알았는디 사탕이 아니고 무슨 과자 같드만!” “그래요? 이런 과자도 있었어요?”하고 과자를 몇 개 집어 제 입에 넣자 “옛날 우리나라가 일본 사람들한테 해방되면서 미국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들어 올 때 이런 사탕을 많이 가지고 와서 나눠주는데 그때는 참말로 맛이 있드만 인자는 입맛이 변해서 그런가 어쩐가 맛이 별로 없드랑께!”


“그랬어요? 그런데 할머니 이제 자장면이 불어 터져 두 그릇 되게 생겼네요! 어서 식사하세요!” “아~아! 금메 내 걱정은 말어! 자장면 두 그릇되면 어째? 늙은이 이(齒)도 안 좋은께 짜장면도 조금 불어야 맛있어!” “할머니 자장면은 쫄깃쫄깃 할 때가 맛이 있지 불어터지면 맛이 없잖아요!” “나는 이(齒)가 안 좋아! 그러니까 짜장면이 질기면 맛이 없어! 알았어?” “그래도 자장면이 너무 퉁퉁 불면 맛이 없잖아요! 할머니 저 그만 가 볼게요!” “아저씨! 이층까지 올라 다니려면 다리 아프제?”


“괜찮아요! 할머니! 여기는 시골이라서 2층 건물 까지만 올라 다니는데 보성읍 만 하더라도 5층 아파트가 있잖아요. 그곳에 배달하는 집배원들에 비하면 저는 아주 편한 거예요!” “으째 아저씨는 생전 힘들다는 소리를 안 해? 다른 사람들은 힘들어 죽것다고 야단이던데!” “시골에서 편지 배달하는데 힘이 들면 얼마나 들겠어요? 그리고 도시의 집배원들에 비하면 저는 아주 편한 거예요!” “그래~잉! 대차 아저씨 말을 들어본께 그라기는 그라네! 그란디 아저씨! 날도 춥고 그란께 커피 한 잔 자시고 가!”


“할머니~이! 지금 커피가 문제가 아니고요! 저기 할머니 자장면이 문제란 말이에요! 지금 퉁퉁 불어서 세 그릇되려고 하잖아요~오!” “와따~아! 내 꺽정(걱정)은 말어! 금메 내가 다 알아서 할 것 인께! 어서 그리 앉아!” 하시더니 가스렌지에 불을 붙이신 후 조그만 주전자에 물을 올려놓으십니다. “할머니~이! 어서 식사하시라니까요~오! 지금 자장면 다 불어서 네 그릇 되려고 하잖아요~오!” “짜장면이 많아지면 더 좋제~에! 그라고 내가 이(齒)가 안 좋은데 짜장면이 퉁퉁 불면 잘 씹어지고 얼마나 좋아?”하시더니


커다란 유리컵에 절반 정도 뜨거운 물을 부은 후 일회용 커피 한 봉을 터 넣고 휘휘 젓더니 “으째 물이 좀 많은 것 같다!”하시며 커피 맛을 보시더니 “아저씨! 내가 컵에 물을 너무 많이 부섰구만! 커피가 쪼금 싱거운께 이것 좀 더 넣어야 쓰것네!”하시며 다시 일회용 커피 한 봉을 터서 절반 정도 유리컵에 쏟아 넣으신 후 다시 휘휘 저어 맛을 보십니다. 그러더니 “엉? 인자는 커피가 쓰다~아! 내가 커피를 너무 많이 넣었나?”하시더니 다시 유리컵에 뜨거운 물을 붓습니다. “아니? 할머니~이! 지금 뭐하고 계시는 거예요~오?


지금 자장면이 다 불어 터져서 다섯 그릇이 되려고 하잖아요~오!” “와따~아! 별 꺽정(걱정)을 다 해 쌌네! 그나저나 으째 커피가 이라고 싱거우까? 이것 남은 것 다 넣어야 될란갑네!”하시더니 봉지에 남아있는 일회용 커피를 몽땅 유리컵에 쏟아 붓고 나서 숟가락으로 휘휘 저은 후 맛을 보고는 고개를 끄덕끄덕하시더니“인자 커피 간이 맞네! 인자 커피 간이 맞어! 아저씨! 어서 자셔 봐!”하시며 저에게 내미신 커다란 유리컵에는 커피가 한잔 가득 채워져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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