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 어느 봄날의 결혼식 > -1
나른하게만 늘어져도 마냥, 따뜻함이 기분좋은 늦은 봄. 국내 최고급 호텔로비는 온갖 고급차들이 즐비했고, 그에 못지않은 비싼 명품들로 온몸을 휘어감은 사람들이 가식이 적당히 섞여있는 미소를 주고받으며 분주한 발걸음을 옮겼다.
호화롭게 치장된 식장의 입구에는 국내 굴지의 기업들로부터 배달된 화환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그 화환들을 보낸 이름을 보지 않아도, 제법 돈 튀는 집안의 결혼식이란 걸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식장입구에는 양가의 부모와 신랑이 나와 하객을 맞으며 인사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보통 신랑이라면 입이 귀에 걸려있어야 정상인데, 어쩐 일인지 신랑의 표정이 영 떪떠름했다.
신랑은 거의 형식적으로 고개만 까딱거리고 있는 신랑을 중간 중간에 엄한 눈빛으로 쏘아보는 신랑의 아버지 또한, 내심 불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식장안이 하객들로 가득 찰 무렵 신랑 앞에 세련되고 늘씬한 미인이‘또각’ 거리는 구두소리를 내며 멈춰섰다. 그녀를 본 신랑의 얼굴은 조금 전보다 더 경직된 얼굴로 말없이 그 여자를 바라보았다.
신랑의 눈빛이 심하게 흔들렸다. 그런 남자의 눈빛은 아랑곳 하지 않으며, 그 미녀는 촉촉하게 젖은 눈꼬리에 미소를 머금고, 밝은 하지만,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신랑에게 축하 인사를 건네었다.
“축하해, 민석씨... 행복하길 바랄게.”
“......”
신랑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고, 시선을 발끝으로 떨어트렸다.
그런 신랑의 모습과 앞에선 미녀를 그 부모들은 불편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주시하고 있었다.
주위에 사람들이 없으면, 당장에 그 미녀를 내칠 사람들 처럼..
여자는 그렇게 자신을 쳐다보는 노부부의 시선에 도도한 몸짓으로 가벼운 목례를 하고, 당당히 식장안으로 들어가 하객사이에 아름다운 자태로 앉았다.
민석은 그런 여자의 뒷모습을 보며, 시선을 자신의 발끝으로 떨구었다.
그 시각, 신부대기실에서는 화려한 웨딩드레스와 함께 짙고 화사한 신부화장을 한 신부가 떨리는 듯. 앉아있었고, 그 주위로는 친구 몇몇이 사진을 찍어주고 있었다.
“야~ 정말 축하한다. 칫. 연애도 제대로 못한다고 투덜거리던 애가, 어디서 저런 킹카를 물었냐?”
“물긴... 내가 개냐? 물게... 집안에서 선보인 사람이니까... ”
“어머머.. 넌 아무 감정도 없는데 집안에서 선보인 사람이니까. 결혼한다는 얘기니?”
그 친구의 말에 신부는 살짝 볼이 붉어지면서, 작게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런건 아니지만...”
친구들은 그런 신부의 모습을 보며, 기분좋게 웃어주었다.
“어머머.. 얘가 은근히 앙탈도 부릴 줄 아네? 너 그것도 책에서 읽은거지? 치..어쨌든 잘 살아.. 그래도 졸업하고 니가 제일 빨리가는거 알지?”
“그렇게 되나?...”
“야.. 근데 넌 어떻게 그렇게 두껍게 화장을 했는데도, 별로 예쁘지가 앉냐? 집에 돈도 많겠다. 성형좀 하지..”
“왜? 얘기가 또, 글루 튀니? ”
살짝 삐치는 것 같은 신부의 표정에 친구들은 웃음으로 그녀를 달랬다.
“농담이야~ 내가 너 알고있는 몇 년안에, 오늘이 제일 이쁘다.. 이뻐~~”
유쾌한 대기실 안으로 도우미가 얼굴을 내밀었다.
“신부님. 입장하실 준비하세요~”
식장 안은 새롭게 출발하는 한쌍의 부부를 위해 은은하고 분위기 적당한 조명이 깔렸고, 사람들은 오늘의 예식에 각자의 맡은 임무에 어울리는 자리로 자리를 잡아앉자. 사회자의 경쾌한 목소리가 울려왔다.
“자! 지금부터, 신랑 ‘현민석’군과 신부 ‘전미우’양의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신랑 입장이 있겠습니다. 신랑 입장.”
사회자의 말과 함께 힘찬 행진곡이 흘렀고, 그 음악에 맞춰 힘찬 그러나 경쾌하지 않은 발걸음으로 입장을 하는, 민석의 표정엔 갈등하는 표정이 역력히 드러났다. 아무리봐도, 오늘 결혼하는 새신랑의 얼굴은 아닌듯했다. 신랑은 입장을 하면서, 좀전에 만났던 여자를 보며, 단상을 향해 걸었다.
얕은 한숨과 함께, 신랑이 입구 쪽으로 돌아서자, 다시, 사회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오늘 예식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4월의 신부님이죠~신부 입장.”
사회자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잔잔하고 차분한 행진곡이 흘렀고, 신부는 수줍은 듯 살짝 고개를 숙이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하객들 사이에서는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울려퍼졌고, 살짝 홍조를 띤 신부는 떨리는 걸음을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내딛었다.
대부분의 예식장에서 보는 풍경이지만, 꼭, 물건을 넘기는 것처럼, 미우의 손은 아버지의 손을 떠나, 민석의 손위로 옮겨갔고, 둘은 천천히 단상 위를 올랐다.
“이제부터 행복할 일만 남은 한쌍이죠? 이 둘이 행복하기 전에, 주례선생님의 혹독한 훈계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주례에는, 국회의원이신 ‘김봉팔’의원님께서 하시겠습니다.”
보기에도 느끼해 보이는 인상의 국회의원이라는 사람은, 이대팔 가르마를 쭉 가른채, 금테안경은 코중간에 걸쳐쓰고는 신랑과 신부를 내려다보며, 검은머리 파뿌리 어쩌구 저쩌구, 비가오고 눈이와도 어쩌구 저쩌구....주저리주저리 주례사를 읊어댔다. 보좌관이 써줬는지, 직접 썻는지는 몰라도, 아주 지겨운 주례사였다. 그 긴 주례사가 이어지면서, 신랑의 표정은 조금씩조금씩, 변해갔다.
뭔가를 결심한 듯한 얼굴로...
“.....그렇게.. 두분은 새로운 출발앞에 서로가 사랑의 서약을 하고, 행복한 출발을 맞으시길 바랍니다. 신랑 ‘현민석’군은 신부 ‘전미우’양을 평생, 아끼고 사랑하겠습니까.?”
드디어, 긴 주례사가 끝이나고, 혼인서약만 남았는지, 주례사는 신랑에게 물었다.
통상적인 혼인서약이라면, 주례사의 물음이 끝남과 동시에 신랑의 힘찬 목소리로,“네!”란 대답이 나와야 한다... 하지만,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례사는 헛기침과 함께. 다시 물었다.
“흠...신랑 현민석군은 신부 전미우양을 평생 아끼고 사랑하겠습니까?”
하지만, 여전히 민석의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미우는 불안하게 곁눈질로 민석을 보았다.. 민석의 무슨생각을 하는지, 약간은 화난 듯한, 하지만, 뭔가 결연한 표정이였다. 대답하라고, 옆구리라고 찔러보고 싶었지만, 미우는 잠자코 민석이 입을 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민석은 대답대신 조용히 자신에게 팔짱을 끼고 있는 미우의 팔을 슬며시 빼내었다. 그리고, 조금 미안한 얼굴로 미우를 한번 쳐다보고는 뚜벅거리며, 사회자가 서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갑작스런 민석의 행동에 식장안의 분위기는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민석은, 마이크를 잡고 결연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바쁘신 와중에 여기까지 발걸음 해 주신 여러 하객 여러분께 우선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민석 부모의 얼굴은 민석을 마치 시한폭탄 보듯 안절부절이었다.
그런 부모의 얼굴을 보고도 민석은 아무 망설임 없이 말을 이어갔다.
“사랑하는 여자가 있습니다. 부모님이 반대하셨기에. 여기까지 왔지만... 더 이상은 가면 안 될 것 같아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이렇게 사죄를 드립니다. 미우씨, 미안합니다.“
말을 마친 민석은 하객들 가운데 있는 여자의 손을 잡고, 식장 밖으로 사라졌다.
빠른걸음으로 빠져나갔지만 그들이 식장 안을 다 빠져 나가기 전에, 어디선가 누군가의 외침이 들려왔다.
“영화배우 강유미잖아?”
식장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됬다.
웨딩 촬영을 위해 와있던 사진,촬영기사들은 돈 될만한 사진이라는 직감에 플래쉬를 터트리며, 그들을 쫒아갔고, 양가의 어머니들은 머리를 짚고, 의자에 털석 주저앉았다.
부인을 부축하는 전사장과 현회장의 표정도 당혹스러움에 상기된 표정들이였다.
미우는 갑자기 당한 황당한 상황에 말도하지 못하고 벙찐 얼굴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는 방금 민석과 유미가 사라진 입구 쪽을 멍하니 보고있었다.
욕도 나오지 않았고,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다만, 지금 이 상황이, 꿈이길 바랬다.
미우의 친구 하다가 다가와 미우를 다독이는 것도 미우는 느낄 수 없었다...
제발... 이 순간이 그저 꿈이길 간절히 바라는 것 말고는 미우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