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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 연가 # 3

Cute_zLol |2006.02.14 13:38
조회 722 |추천 0

재하와 정민은 아른 아른 뜨거운 김을 내뿜고있는 녹차를 앞에 놓고 마주앉았다.

마주앉은 두사람은 각자 다른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정민은 따뜻해 보이는 녹차에,

재하는 귀중한 보석같은 정민이에게...

 

"놀라게해서 화난거 아니지?"

"응.."

"휴~ 십년감수했네. 그럼 이제 얼굴좀 펴. 니 표정 나 겁나."

"내 표정이 어떤데?"

"지금 니 표정 술먹고 외박한 남편 대하는 얼굴이야. 얼마나 무서운지 알아?"

"풉.."

 

정민은 재하의 비유에 웃어보였다. 남편이라는 말에 거부감없이 웃어주는 정민을 보는

재하는 가슴이 뛰고있음을 느꼈다,

 

"기획실에 있다고는 안했는데.. 어떻게 찾은거야?"

"인사과에 부탁했지. 서정민 공주님 어디로 납시었냐고."

"여러 사람 고생시켰네."

"찾았으니까 고생한 보람은 있는거잖아."

"나 찾는게 보람까지 있는 일이야? 나쁘진 않네."

"대답안해?"

"무슨 대답?"

"점심."

"아... 사람들 눈치 보이는데..."

"뭐 어떠냐? 친구끼리 밥먹겠다는데 누가 뭐래?"

"그래도..."

"그럼 회사에서 좀 떨어진데 가서 먹자. 그럼 되지?"

"뭘 그렇게까지 해..."

"야~ 서정민! 친구가 밥좀 같이 먹자는데 계속 팅길래?"

"그런게 아니잖아."

"몰라. 난 오늘 서정민하고 점심 먹으려고 중요한 약속 다 취소했어. 내 점심 책임져."

 

정민은 계속 같이 점심을 하자고 졸라대는 재하의 투정에 문득 아침부터 귀찮기만

했던 호박죽이 떠올랐다. 물론 태형의 몫으로 정민의 엄마가 곱게 담아준 호박죽이

었다. 하지만 어차피 주인에게 전달될수 없는 것이라면 차라리 재하와 함께 먹는것

도 괜찮을것 같았다. 밖에 나가서 재하와 둘이 식사를 하는것 보다 주위의 시선을

덜받을 방법이기도 했다. 

 

"재하 너 호박죽 좋아하니?"

"호박죽? 왜?"

"엄마가 어제 호박죽을 좀 많이 하셔서 먹으라고 싸주셨거든."

"정말? 그럼! 나 호박죽 매니아잖아!"

"다행이다^^ 그럼 점심시간에 들고 올께. 여기서 같이 먹자."

"정말? 여기서? 그래, 알았어. 대신 늦지말고 와! 나 배고픈거 못참아."

"알았어. 너무 오래 있었다. 내려갈께."

"응."

 

이사실을 나온 정민은 비서에게 목례를 하고 사무실로 향했다.

재하와의 점심이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지만 상사와 부하직원이라는 새로운 관계가

정민의 마음을 무겁게 짓눌렀다. 떠도는 소문에 능숙하게 대처할만큼 이 회사에 적응

이 되어있지도 않았을 뿐더러 눈총을 받으며 회사 생활을 하는 것을 원치않았기 때문

이다. 하지만 무거운 마음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호박죽을 가지고 오겠다는 정민의

말에 아이처럼 좋아하던 재하의 모습을 떠올리며 정민은 겉모습은 많이 변했을지 몰라

도 속은 아직 아이같기만한 재하때문에 웃음이 새어나왔다.

정민이 이사실에서 나간후 재하는 걱정부터 앞섰다. 호박죽은 재하가 못먹는 음식중에

하나였다. 어릴적 한입 먹어본 호박죽은 물컹물컹한 기분나쁜 느낌만을 재하에게남겼고,

그후로 입에도 대지 않았던 재하였다. 

그런 재하와의 점심 역속을 정민은 이사실에서 호박죽을 먹자는 조건을 내걸고 반승낙을

한것이었다.

쇼파에서 일어서는 재하의 표정은 한숨과 미소가 섞여있었다

 

'정민이랑 같이 있을수 있는건데 뭔들 못먹겠어. 훗..'

 

 

 

 

 

 

 

 

김치찌개를 먹으러 가자는 김선배에게 선약이 있다고 말하고 쇼핑백을 들고 사무실에서

나와 이사실로 향하는 정민의 마음은 아까보다 더 무거워진 상태였다.

태형이 수호그룹에서 과장자리까지 오른것도 비교적 빠른 승진이었다. 아직 규모면에서는

수호그룹에 비할수 없지만 자동차쪽에서는 단연 알아주는 회사인 JY자동차.

그런 JY의 이사인 재하. 물론 든든한 빽이 있을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자세한 사정은 몰랐

던 정민이었다.

 

"민이사? 민회장님 둘째 아들이잖아. 몰랐어?"

 

JY 회장의 둘째 아들 민재하. 물론 재하와 동창관계일 뿐이지만 정민의 마음은 편하지가

않았다.

나이가 꽉찬 두 남녀가 자주 만나는 모습은 소문이라는 것으로 번질 것이고, 그 소문이라

는 것은 꼬리에 꼬리를 물어 친구라는 당연한 두사람의 관계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

이다.

태형이 어머니에게 받았던 수모. 정민과 정민의 어머니를 앞에 두고 두사람의 가슴을 몇번

이고 죽이셨던 태형이 어머니의 말들... 또 다시 되풀이하고싶지 않은 일이었다.

이미 약속을 한 상태이므로 깰수도 없는 노릇이었기에 정민은 재하와 식사후에 회사에서

는 따로 만나거나 연락하지 말자고 말해둘 참이었다.

벌써 식사를 하러 나갔는지 이사실 앞 비서의 자리는 비어있었다. 정민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정민은 재하와 정민을 가로막고 서있는 이사실의 거대해보이는 문을 작은 손으

로 두드렸다. 정민이 노크를 함과 동시에 재하가 문을 열고 나와 정민을 맞았다.

 

"왔어?"

"빨리도 열어주네."

"요즘 스피드 시대인거 몰라?"

"풉.. 비서는?"

"너 불편할까봐 심부름 보냈어. 잘했지?"

"그래.."

"앉아. 스픈이랑 접시는 여기있어."

"이사실엔 별게 다있네."

"앉아."

"알겠습니다. 민이사님."

 

정민이 생각없이 말한 민이사님이라는 호칭에 재하는 가슴이 덜컹거렸다. 혹시라도 정민

이 자신을 부담스러워 하지는 않을까, 일부러 자신과 거리를 두려고 하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재하는 초조해졌다.

환하게 웃으며 정민을 반겨주던 재하가 갑작스레 얼굴을 굳히며 말없이 정민이 건내주는

호박죽을 퍼먹기만 하는 모습에 정민은 준비해둔 말을 하지못한채 틈만 보고 있었다.

재하는 호박죽의 맛도, 느낌도.. 아무것도 느낄수 없었다. 자꾸만 재하의 눈치를 보는 정민

의 행동이 거슬렸기 때문이다.

 

'내가 이사라는게 문제가 되는걸까. 불편.. 한걸까... 내가 불편해진 걸까..'

 

 

 

 

 

 

 

태형은 윤미와 박회장과 함께 고급스러운 일식집의 VIP룸에 앉아서 회한점을 입에 넣고

있었다. 연신 웃으며 박회장에게 애교를 떨고있는 윤미의 모습에 화가 치밀었으나 그런

내색을 하는 것은 태형에게 허락되지 않았다. 그저 함께 웃을 뿐이었다.

 

"그래, 정군. 우리 강아지가 잘해주나?"

"네."

"아이~ 아빠는? 젊은 청춘남녀의 불타는 사랑에 관심끊으시라니까?"

"예끼. 이녀석."

"아빠. 걱정마요. 내가 손자걱정은 안하게 해줄께. 그치? 자기?"

"그래.."

"요녀석. 아빠앞에서 못하는 소리가 없어. 허허..정군. 자네한테 기대가 아주 크네."

"감사합니다."

 

그때 문이 열리며 박회장의 비서가 고개를 숙이며 박회장을 은밀히 불렀다. 박회장은 비

서에게 손짓을 한후 윤미와 태형에게 먼저 일어선다는 말을 남기며 밖으로 나갔다.

 

"인상좀 펴."

"내 표정까지 관리할 필요없잖아."

"하긴. 둘이 있는데 무슨 상관이야. 마저 먹어."

 

윤미와 마주보고 있는 자리는 태형에게 가시방석이었지만 아침을 거르고 나온탓에 마저

식사를 할생각이었다. 박회장이 없는 태형과 윤미의 사이는 더이상의 거짓이 필요치 않

았기에 두사람은 서로를 외면한채 각자의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그때 태형의 핸드폰이 울리기 시작했고 발신자를 확인한 태형은 적지않은 당황을 해야했

다. 태형은 윤미의 눈치를보며 전화를 받았다.

 

"네."

"정서방?"

"네. 어머님."

"요즘 왜 통 안보이는거야. 정민이하고 무슨일 있는건 아니지?"

"네.. 저기.."

"내가 요즘 정서방 얼굴을 못봐서 힘이 하나도 없네 그려."

"죄송합니다."

"바쁜가? 목소리가 왜그래. 어디 아픈건 아니고?"

"네. 어머님. 제가 나중에 다시 전화드릴께요."

"그려. 알았어. 정민이한테 호박죽 보냈으니까 그거 먹고."

"아.. 네.."

"그려. 일해 그럼."

 

태형은 전화를 끊고 아무렇지 않은듯이 다시 회를 집어 소스를 찍은후 입에 넣었다.

 

"누구야?"

"너랑 내가 서로 전화상대까지 밝혀야할 사이인가?"

"어머니? 누구 어머니?"

"누구 어머니냐니."

"너희 어머니는 아닌것 같고... 누군데?"

"알거 없잖아."

"정태형. 경고했을텐데?"

"피곤하게 하지마."

"훗, 피곤? 나 우리 아빠 딸이야. 우리 아빠 잔인한거 알지? 어떻할래?"

 

왜 하필 정민의 어머니는 윤미와 같이 있는 지금 전화를 건것인지.. 태형은 지독하게

재수없는 타이밍을 원망하며 인상을 구겼다.

 

 

 

 

 

 

 

식사를 끝낸 정민은 이사실의 창가 옆에 서서 밖을 내려다 보고 있었다. 재하는 정민

에게 커피를 건내며 정민옆에 서서 정민의 옆모습을 보고있었다.

 

"여기선 잘안보이네."

"뭐가?"

"저기.. 저 나무."

 

정민의 하얗고 긴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으로 재하의 시선이 움직였다. 정민의 손끝이

가리키는 곳에는 앙상하게 뼈만남은 나무 한그루가 서있었다.

 

"저 나무?"

"응."

"왜. 저나무 좋아해?"

"여기서 일한지 한달이 조금 넘었는데, 처음엔 저렇지 않았거든. 너무 외로워보여."

"외로워보여?"

"나무도 무언가를 느낄수있는 감정이 있을까?"

"있을지도 모르지."

"없었으면 좋겠어."

 

재하는 여전히 앙상한 나무에게 시선을 주고있는 정민에게로 눈길을 돌리며 정민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더 기억에 새겼다.

 

"5층 복사실에서는 저 나무가 잘 보여. 처음엔 나뭇잎도 꽤 달려있었는데 하루 하루

 지나면서 다 떨어지고 지금은 저렇게 가지만 남았어. 한달이 조금 지난 시간동안 저

 나무는 몇번의 이별을 한걸까.. 잎이 하나둘씩 제몸에서 떨어질때마다 얼마나 마음

 이 아플까.. 넌...사람이 살면서... 몇번의 이별을 한다고 생각해?"

"글쎄.."

"난.. 지금까지 두번의 이별을 했어. 죽어서도 잊지못할 지독한 이별.. 그리고 아직까지

 도 이게 이별인건지.. 받아들여지지 않는 이별... 아직 받아들여지지 않았으니까 이별

 이  아닌건가.. 난 겨우 두번의 이별로도 힘든데... 이렇게 힘든데.. 저 나무는 얼마나 힘

 들고 아플까? 하나둘씩 늘어가는 잎들로 행복했을텐데...그 잎들과 헤어지는 일이 쉽지

 않았을텐데..."

 

정민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태형을 두고 두번의 이별이라는 표현을 했다. 정민의 얘기를

듣고있는 재하에게는 아직까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는 이별이라는 말이 칼날처럼 박

혔다. 누구와 이별을 했길래 정민은 저리도 상처받은 눈으로 말하고 있는것인지.. 아직도

그사람을 사랑하는 것인지... 정민의 마음속에 재하가 들어갈 자리가 없는것인지..

 

"사랑... 하는 사람 있어?"

"사랑? 글쎄.. 당연히 사랑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어.

 나 사실 너랑 만났던날... 이별하고 오는 길이었어. 오래 함께 했던 사람이었는데...

 그날 그사람이 갑자기 이별을 말했어. 그래서 아직까지 내가 이별을 한건지..

 잘.. 모르겠다."

"그사람.. 아직 사랑해?"

 

재하는 정민의 지난 사랑얘기에 가슴에서 무언가가 치밀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무슨 감정인지 알수는없었지만 화가났다. 재하와 있는 이순간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정

민에게, 그리고 정민의 기억속에 있는 사람에게...

 

"하루하루가 너무 힘들어서 내스스로 쉴틈도 주지않을때가 있었어. 잠시 쉬고나면 계속

 쉬고싶어질것 같아서 무작정 달리기만 했던때가 있었어. 그때 그사람이 내앞에 나타났

 어. 일년내내 선물이 받고 싶어서 크리스마스만 기다리던 아이가 지치고 지쳐서 오늘이

 크리스마스라는 것도 느끼지 못하고 있었을때 짠! 하고 산타가 나타나서 주는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그래.. 선물처럼 내앞에 나타났어.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사람이, 나를 지

 켜주겠다고 말하는 그사람이 좋았어. 편했어. 이사람 옆이라면 나도 쉴수있겠다 싶었어.

 지금 생각해보면 나에게 나무같은 사람이었나봐. 저렇게 앙상한 나무가 아닌 아주 크고

 잎도 무성한 나무.. 뜨거운 햇볕에도 항상 그늘을 만들어 내가 쉴수있는 자리를 만들어주

 는... 그런 나무같은 사람... 그 나무가 만들어주는 그늘이 너무 시원해서 계속 쉬고싶었

 어. 나무니까... 나무같은 사람이니까 항상 그자리에서 나를 쉬게 해줄지 알았거든.

 사랑이었는지 아니면 나를 쉬게 해주는 편안함이었는지... 허전해.. 그늘없는 내 하루가..

 조금 허전해.."

"큰일이네. 이제 서정민 햇볕에 새까맣게 타겠네."

"훗.. 그러게.."

 

정민은 웃으며 재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재하는 투명한 눈빛으로 정민을 보고있었다.

그런 재하의 눈빛에 어색해진 정민은 재하의 시선을 피했고 정민의 시선이 향한 곳은 이

사실 벽에 있는 시계였다. 언제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점심 시간을 10분 남겨놓은 시간

이었다. 안그래도 이사님의 호출을 받았다는 이유로 간간히 부담스러운 시선을 받았기에

점심 시간마저도 늦어버린다면 그것은 불씨에 바람을 불어넣는 일이었다.

 

"나 그만.."

"내가.."

 

동시에 입을연 재하와 정민은 피식 웃으며 부딪치는 시선사이에서 얼굴을 붉혔다.

 

"니가 먼저 말해."

"레이디 퍼스트잖아. 노처녀라도 레이디니까 니가 먼저 해야지."

"자꾸 놀리기야?"

"훗.. 미안. 미안. 무슨 말 하려고 했어?"

"나 그만 내려가본다고. 점심 시간 10분남았다."

"벌써?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응. 민이사님! 땡땡이 치지말고 일 열심히 하세요."

 

정민의 민이사님이라는 말에 재하는 또다시 표정이 굳어졌다.

정민에게 이사님이라는 소리는 듣고싶지 않았다. 재하가 다가서지 못하게 정민이 선

을 그어놓는 것같은 느낌때문이었다.

 

"서정민."

"응?"

"이사님이라고... 부르지마."

"왜?"

"그냥 싫어. 너랑 내가 그런 호칭까지 붙여야되는 사이야?"

"화난 표정 하지마. 넌 화난 표정지어도 안무서우니까. 알았어. 불편하면 안할께."

"불편한게 아니라.. 싫은거야."

"알았다구. 너도 내일 모래면 서른이다. 나 노처녀라고 놀릴 생각만 하지말고 너 장가

 갈 생각이나 해. 나이 서른에 아직도 떼쓰기나하고.."

"여자나이 서른이랑 남자나이 서른이랑 같냐?"

"똑같네요! 나 내려갈께."

"그래.."

 

정민은 빈 보온병을 쇼핑백에 담고 재하에게 인사를 하며 여전히 거대해보이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재하는 8살.. 그때처럼 웃으며 재하에게 안녕이라고 인사하며 돌

아서는 정민을 보며 안타까움을 감출수가 없었다.

매정하게도 문을 닫고 나간 정민때문에 재하는 더이상 정민의 모습을 볼수없었지만

재하의 앞에 여전히 정민이 있는것마냥 재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서정민 니 나무가 되어주면 안되니? 언제까지고 서정민옆에서 그늘을 만들어

 줄수있는데.. 서정민 옆에 뿌리내리고 서정민 너만을 위한 나무가 될수 있는데...

 안되니..?"

 

 

 

 

 

 

정민은 사무실로 들어서서 김선배와 부장님, 그리고 다른 사무실 가족들이 커피를 마

시고 있는것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

 

"제껀 없어요?"

"정민씨 왔어? 혼자 얼마나 맛있는걸 먹고 왔길래 제일 먼저 나가서 제일 늦게 와?"

"선배님은 식사 잘하셨어요?"

"그럼! 오늘 반찬 예술이었잖아. 계란말이 나왔는데 환상이었어."

"정말요? 저 갈때는 계란말이 한번도 안해줬었는데."

"이제부터 정민씨 쏙 빼놓고 가야겠다. 정민씨 안올때만 주나봐."

"너무해요~"

"농담이야. 아참. 전화온거 메모해서 붙여놨어."

"네."

 

김선배의 농담에 정민은 웃으며 자리에 앉아 쇼핑백을 내려놓았다. 정민에게 전할 메세

지는 항상 컴퓨터 모니터에 붙여놓는 김선배의 버릇을 떠올리며 자연히 정민의 시선은

모니터를 향했다. 모니터를 확인하는 순간 누군가가 정민에게 정지버튼을 누른것처럼 정

민은 어떤 생각도 어떤 행동도 할수없었다.

 

-어머니에게 전화(급히 연락 요망)

-정태형씨에게 전화(특별한 메세지는 없음)

 

정민의 앞에 있는 정태형이라는 글자. 그때 누군가가 다시 플레이 버튼을 눌렀는지 정민의

심장은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전화에 대한 반가움인지, 기대감인지.. 혹은 불안

감인지 정민은 알수없었다.

심호흡을 한번 한뒤 정민은 수화기를 들고 전화를 걸었다. 두어번의 신호음이 울리고 나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여보세요."

"나 정민이. 전화했었어?"

"그래. 밥먹고 왔니?"

"응. 무슨일 있어?"

"무슨일은.. 저녁에 꼭 정서방 만나서 호박죽 주라고 전화했지."

 

정민은 엄마에 말에 괜한 죄책감이 밀려왔다. 이미 호박죽은 재하와 정민이 말끔히 비워

버린 후였다. 태형이에게 전해줄 호박죽은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정민은 거짓말을 해

야했다.

 

"알았어."

"정서방 목소리가 많이 힘이 없더라. 오늘 만나서 니가 좀 애교도 부리고 기운좀 살려줘."

"목소리... 라니? 무슨 말이야?"

"정서방 보고싶어서 내가 전화했지."

"뭐? 태형이한테 전화했다고? 엄마가? 왜? 왜했어? 태형이한테 뭐라고 했어?"

"아니. 얘가 왜이래? 뭘 뭐라고해. 호박죽 보냈으니 먹으라고 했지."

"알았어. 끊어."

 

정민은 짜증을 내며 얼른 재발신 버튼을 눌러버리고 엄마와의 통화를 끊어버렸다.

엄마가 태형이에게 전화를 걸수도 있다는것은 정민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가끔 정민의 엄마가 태형이에게 전화를 건적도 있긴했지만 가끔일 뿐이었다.

그날이후로 태형이와 단한마디도 나눠보지 못한 정민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무작정

태형이에게 전화를 걸었던 엄마에게 화가났다.

정민은 태형이가 전화한 까닭이 그것때문일까.. 하는 생각에 태형이에게 전화를 해야하는

것인지 고민이 되었다. 하지만 정민의 손가락은 정민이 태형의 번호를 누르라고 하기도 전

에 이미 기억을 하고있다는 듯이 전화기의 숫자위를 헤엄치듯 떠다니고 있었다.

정민이 전화가 연결됐다는 것을 알아챈것은 수화기를 통해 들려오는 신호음때문이었다.

아직 준비가 안된 정민은 신호음소리에 놀라 전화를 끊으려고 귀에서 떨어뜨리려 했지만 한

번의 신호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들려오는 태형의 목소리에 정민은 할수없이 수화기를 다시

귀로 가져갔다.

 

"정...민이니?"

"응.. 전화.. 했었다며."

"그래.... 너희 어머니가 전화하셨더라."

"방금 들었어. 미안해.."

"우리 끝난 사이라는거 알지? 너희 어머니 전화 부담스럽다. 앞으로는 이런일 없었으면 좋

 겠다."

 

태형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날카롭고 차가웠다.

 

"뭐?...하... 그래. 그 얘기 하려고 전화한거였니?"

"그래."

"미안해. 아직 엄마한테 말못했어. 걱정마. 앞으로는 이런일 없을거니까. 할말 끝났거지?"

"그래."

"그럼 끊을께."

 

전화를 끊은 정민은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화가 났다. 어떻게 이렇게까지 지독할수가 있

을까.. 아직 우리 둘사이 모르는 엄마의 전화인것을 뻔히 알면서 어떻게... 정민에게, 그리고

정민의 엄마에게...이렇게까지 지독해져 버릴수 있는지..

태형이 너무 미웠고 잠시 정태형이라는 이름에 기대를 걸었던 자신의 모습이애처롭고 우습

기까지 했다.

정민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며칠전까지만 해도 보고싶다고... 사랑한다고 말했었던

태형이었다. 정민을 만나지 못하면 정민의 사진만 하루종일 보고있다고 말하던 태형이었다. 

그런 태형이 정민에게 아렇게까지 지독해진 이유... 정민은 아무리 생각해도 알수가 없었다.

하지만 더이상 알필요도 알아야할 이유도 없었다. 끝난 것이다. 정민이 자신도 모르게 잡고

있었던 태형과의 끈은 끊긴 것이다. 7년이라는 시간동안 정민과 태형이 함께 했던 시간, 사랑,

추억... 모두가 끝난 것이다.

그 기억들이 정민에게 적지 않을 상처를 낼것이라는 것을 정민도 알고 있지만 이미 끊어진 끈

에 매달릴만큼 정민은 스스로를 구기고 싶지 않았다.

 

 

 

 

 

 

 

 

 

"만족해?"

"아주 만족해. 잘했어."

"만족했다니 다행이네. 볼일 끝났으면 나가."

"그 여자 기억에서 지워. 아니, 마음에서 지워. 니가 지우지 않으면 다치는건 그 여자야.

 알지?"

"나가!"

"같이 있는 다정한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줄 필요도 있잖아?"

"꺼져. 내 방에서 당장 꺼지라고!"

"훗. 내 방? 당당하게 말하네? 그래. 당장 니 방에서 꺼져줄께. 굿바이." 

 

회사로 돌아오자마자 윤미는 태형의 방으로 쳐들어와 당장 정민이에게 전화를 걸어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하라는 협박아닌 협박을 했다. 나중에 한다는 어줍잖은 거짓말은 윤미에

게 통하지 않을것임을 아는 태형은 할수없이 핸드폰을 열어 정민에게 전화를 걸었던 것이다.

하지만 아직 사무실로 오지 않았다는 다른 사람의 말에 잠시 안도의 숨을 내쉬었으나 윤미

는 그쯤에서 포기하지 않았다. 윤이는 정민과 통화가 될때까지 기다릴듯은 태도였고 바보같

은 정민은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태형에게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윤미는 한쪽 입꼬리를 올리고 기분좋게 웃어 보이며 태형의 새로운 자리. 부장실에서 나갔다.

윤미가 나가자마자 태형은 핸드폰을 집어던졌다. 바닥에 떨어진 핸드폰은 보기좋게 박살이

났고, 태형은 그것만으로는 속이 다 풀리지 않는다는 듯이 서류와 책들을 마구 던져대며 대

상없는 욕설을 내뱉었다.

그리고는 바닥에 털석 주저 앉으며 양복소매로 빨갛게 충열된 눈으로 흐르는 눈물을 훔쳐

냈다.

 

"서정민. 기억나? 넌 사랑한다는 말보다 지켜준다는 말을 더 좋아했던거... 기억나?

 서정민... 정민아.. 너 지켜야 하는데 너 지키는거... 나 너무 힘들다. 나 혼자서 널 지우기가...

 나 너무 힘들어..

 니가 와서 니가 새긴 기억... 가져가면 안되? 나 좀.. 도와주면 안되니? 서정민.. 너 지켜야하

 는데 너 지키는일이... 나 너무 아프다.. 서정민... 정민아....."

 

유정그룹 부장실. 태형의 방에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태형의 소리없는 울음소리만이 맴돌았다. 

 

 

 

 

 

안녕하세요^^ 어제 늦게 잠이 들어서 늦잠을 잤네요. 나가봐야 할 일이 있어서 오늘은 3편만 올

릴께요^^ 내일은 4편 과 5편을 들고 오겠습니다^^

부족한 글인데 전에 항상 힘이 되어주셨던 분들의 닉네임들을 보니 기분이 좋아요^^

앞으로는 더 열심히 하는 모습 보여드릴거구요^^

늦장부리지 않고 부족하지만 열심히~ 써서 올릴께요^^

늘 감사하구요 내일 뵐께요^^ 다들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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