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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24화> 고양이와 비둘기와 쥐

바다의기억 |2006.02.16 02:33
조회 9,059 |추천 0

아.... 점점 생활 사이클이 뒤틀려가고 있습니다.

 

건강에 이상신호가 바로 바로 느껴지기 시작했다는....

 

모쪼록 규칙적인 생활습관을 들여야겠습니다.

 

======================== 아 유 폐인? ===================================

 

 

탁자 짧은 면에 내가 앉고


긴 면에 민아가 한나가 나란히 앉은 구도.


이젠 민아가 사이에 앉은 탓에


옆으로 눈을 피하고 있을 수도 없다.



난 묵묵히 앞에 놓인 음료수 잔만


염력으로 움직이려는 듯 쏘아보며


부디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했다.



민아

- 시장에 반찬 사러 갔더니


오늘 마트가 세일이라고 해서


거기 들렀다 오느라고 좀 늦었어.


일찍 올 것 같으면 전화를 하지...



기억 - 아.... 응.


민아 - 둘이 있는 동안 무슨 일 없었어?


기억

- 으응.... 뭐... 아무 일도.


그건 그렇고, 떡국은 먹었어?



불안 불안한 마음을 감추며


적당한 곳으로 화두를 돌리려는 찰나


민아 옆에 앉아있던 한나가


의미심장한 콧소리를 내며 한 마디를 보탰다.



한나 - 흐음... 아무 일도 없었던 거구나.


민아 - 응?


한나 - 아냐, 아무것도.



....... 오... 주여.



그녀는 날 보며 장난을 치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녀는 이미 민아로부터


나에 관해 제법 많은 정보를 전해 들었고


내가 여성에 대한 면역이 약하다는 걸


방금 전 실험을 통해 확신......



기억 - 푸헙! 쿨럭!! 켁....켁...


민아 - 꺄악? 괜찮아?


한나 - 킥....



힐끔 한나를 쳐다봤을 때


그녀는 문제의 브래지어를 손가락에 걸고


빙빙 돌리고 있었다.


다행히 나와 한나 사이에 앉은 민아는


나를 향해 돌아앉아있어 보지 못했지만


혹시라도 갑자기 돌아보면


어떻게 하려고 저런 짓을....



난 민아가 건네준 티슈로


옷에 튄 음료수를 슥슥 닦아냈다.


워낙 단단히 얹힌 탓에


연신 켈룩켈룩 기침을 해대며


주변을 수습하고 있을 때


한나가 티슈 몇 장을 빼들고 불쑥 내게 다가왔다.



한나 - 아유, 줘 봐요. 닦아줄게요.


기억 - 노노노노!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아주 괜찮아요. 쿨룩.


민아 - 왜 그래? 어디 아파?


기억 - 아니, 그냥, 사레가 좀....



지금의 내 처지는 뭐랄까....


고양이를 친구라고 데리고 온 비둘기 앞의 생쥐 꼴이랄까.


비둘기는 방긋방긋 웃으며 고양이를 소개해 주지만


애처롭게 떨고 있는 내 눈엔


고양이의 하얗게 빛나는 송곳니밖에 보이지 않았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된 뒤


난 역시나 바짝 긴장한 자세로 고개를 숙이고 앉았다.


쳐다보면 꼭 뭔가 일이 터진다.


물론 지금도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민아 - 기억아, 아까부터 계속 왜 바닥만 보고 있어?


기억

- 응? 아..... 그..... 이.... 아무래도


동생.... 이..... 패션이.... 좀 부담스러워서.....



민아의 말에 이때가 기회다 싶었던 난


그녀의 힘을 빌려 고양이 목에 방울을 채우려 했고


한나의 복장상태를 쭉 훑어본 민아는


점잖게 한나를 타일렀다.



민아

- 음.... 내가 봐도 좀 그렇긴 하다.


한나야, 아무리 집안이라도 손님도 있는데


적당한 옷으로 갈아입고 와.



한나 - 싫어. 더워.


민아 - 이잇, 얼른!


한나 - ...... 피.



나이스 민아!


민아의 언니파워가 발동하는 순간


한나는 김샜다는 듯 토라진 소리를 내며


두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툭.’



그 순간, 그녀의 뒷주머니에서 떨어지는 브래지어.



민아 - 응?


기억 - 으아앗?!


‘훽!’



민아가 뭔가 떨어지는 것을 발견하고 눈길을 돌린 순간


난 초인과 같은 순발력을 발휘해


그녀의 어깨를 잡아 내 쪽으로 돌렸다.



민아 - 어어?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놀란 눈으로 날 바라보는 민아.


머릿속이 하얗게 지워지는 짧은 침묵이 흐르고


난 더듬더듬 그녀에게 말했다.



기억 - 새....... 새해 복 많이 받아.


민아 - 난 또 뭐라고.... 놀랐잖아...


기억 - 아.... 그게.. 나중에 깜빡할까봐.


민아 - 그래, 새해 복 많이 받아.



그 사이 한나는


소파 위에 떨어진 속옷을 주워 손으로 툭툭 턴 뒤


셔츠 속에 감추고 방으로 들어갔다.



휴.........


적어도 한 고비는 넘긴 건가.



한나가 방으로 들어간 후


민아는 내 얼굴을 슬쩍 살핀 뒤


웃는 얼굴로 물었다.



민아 - 한나 예쁘지?


기억 - 아....뭐.... 응.


민아

- 왠지 불안한데.... 괜히 소개시켜 줬나?


남자들은 한나 같은 스타일을 더 좋아하는 것 같더라.



기억 - 아아냐, 난.....


민아 - 그래? 왜? 좋잖아, 키도 크고.....


기억 - 난..... 그냥 네가 제일 좋아.


민아 - 피-.



조금은 뻔한 내 대답에


그녀는 싫지 않은 소리를 내며 내 어깨를 툭 쳤다.



잠시 후


한나는 면티에 청바지를 입고


거실로 돌아왔다.


둘 다 몸에 좀 붙는 스타일이긴 했지만


방금 전에 비하면 예복이다.



민아 - 그봐, 훨씬 보기 좋잖아.


한나 - 거긴 아직 겨울이란 말이야.


민아 - 로마에선 로마법을 따라야지.


한나 - 여긴 나시티를 입지 말라고 법으로 되어있어?


민아 - 그런 건 아니지만... 관습헌법이야.


한나 - 얼씨구?



자신의 무기 하나를 봉인당한 게 못내 불만인 듯


한나는 민아에게 볼멘소리를 해댔다.



민아 - 이제 여기서 지낼 거니까 빨리 적응 해야지.


기억 - 풉! 쿨룩... 쿨룩...



민아의 말에


난 또다시 음료수가 목에 걸려 기침을 해댔다.


이건 또 웬 계란으로 개 잡는 소린가....



한나

- 어머? 왜 갑자기 그래요?


내가 여기 있을 거라고 하니까 그래요?


내가 무슨 뭘 어쨌다고?



기억 - 아, 아뇨, 그게 아니라.... 켈록.....


한나

- 아아~ 둘만의 시간을 방해할까봐 그러는 구나.


걱정하지 마요, 때 되면 적당히 비켜줄 테니까.


제가 또 분위기 하나는 잘 파악하거든요.



민아 - 한나야~.



한나의 이야기가 점점 직설적으로 변해가자


민아는 대체 왜 그러냐는 듯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



장난을 치는 것 같기도 하고,


심통을 부리는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민아의 제지에 잠시 말을 멈췄던 그녀는


곧 민아와 어깨를 맞붙이고 앉아 나를 보고 물었다.



한나 - 우리 둘이 보니까 어때요? 닮았어요?


기억 - 에? 음..... 조금요.


한나 - 그래요? 쿡....



솔직히 말하자면


한나와 민아는 자매 사이로는 보이지 않았다.


눈매나 표정이 조금 닮은 감은 있지만


이미지 자체가 너무도 극명한 대조였다.


토끼랑 여우랑 가져다 놓고


닮은 구석을 찾는 기분이랄까?



한나 - 진짜로 닮은 것 같아요?


기억 - 웃는 얼굴이... 조금....


한나

- 흠... 뭐, 그렇다니 그런 거겠죠.


그건 그렇고, 오빠 누구랑 되게 닮은 거 알아요?



기억 - ..... 누구랑요?


한나 - 쿡... 있어요, 그런 사람이.



영문을 알 수 없는 그녀의 말에


민아의 어깨가 작게 흠칫했다.


그녀의 말엔 나 또는 민아를 당황하게 하는


어떤 키워드 같은 것이 숨어있는 것 같다.



한나

- 남자라고는 관심도 없는 것 같더니


뜬금없이 남자친구가 생겼대서 어떤 사람인가 했는데...


이제 보니까 이유를 딱 알겠네.



민아 - 한나야 그만해.


한나 - 왜? 틀려?


민아 - ........



묘한 웃음을 지으며 민아를 바라보는 한나와


어금니 뒤쪽에 작은 경련이 이는 민아 사이엔


싸늘한 긴장감이 흘렀다.



한나가 말한 ‘누구’ 라는 건 누굴까.


적어도 민아의 옛사랑 같은 건 아닐 것이다.


갑자기 남자친구가 생긴 이유를 알겠다는 걸로 미루어보면


민아가 좋아하는 연예인과 닮은 건 아닐까?


그다지 좋은 분위기는 아닌 걸로 보아


그 연예인이 무명에, 추남에, 마약중독이었다던가....



..... 그럼 좋아할 이유가 없잖아?



점점 위험해져가는 분위기에


난 다른 곳으로 화제를 돌리려 한나에게 물었다.



기억 - 저... 그런데 지금 나이가?


한나 - 열아홉이요.


기억 - ...... 정말요?


한나 - ... 미국나이로.



그래도 스무 살인가....


하긴.. 민아가 스물 하나니 이상할 건 아무것도 없다.



한나 - 그리고 이제 그냥 말 놔요. 명색이 형부인데.


기억 - 어? 혀, 형부는 무슨....!!


한나 - 싫어요?


기억

- 아니, 그게 싫다고 하기 보다는


아직 상호간의 협의와 의견 수렴이 필요한 그런...



한나

- 언니, 상호간의 협의가 필요하다는데?


어떻게 할까? 그냥 형부라고 불러?



민아 - 으으응?!



불똥은 어느새 민아에게로 튀어갔다.


그러라고 하기도, 하지 말라고 하기도 애매한 난제.


한나에겐 그런 질문을 던지는


재주 아닌 재주가 있는 듯 했다.


민아가 잠시 말을 망설이는 사이


한나의 타겟은 다시 나로 돌아왔다.



한나 - 둘이 어디까지 갔어요?


기억 - 엑?


한나

- 키스는 예전에 했다고 했으니까....


으음..... 그 다음이 애매하네?



기억 - 그...그런....


민아 - 얘, 얘, 얘, 얘가....!!


한나

- 어머나? 둘 다 왜 이렇게 정색을 해?


혹시 끝까지 간 거야?



이후에도 우리는 한참동안


한나의 어디로 튈지 모르는 폭탄발언에


혼비백산해서 끌려 다녀야 했다.


긴장과 경악 속에 초토화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대문 앞으로 마중을 나온 그녀가


나에게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민아 - 미안, 원래 장난이 좀 심한 편이라...


기억 - 아냐, 뭐..... 허허, 나름대로 즐거웠는걸.


민아 - 다음부터는 그러지 못하게 따끔하게 혼낼 게.


기억 - 어이구~ 잡아먹히지나 마라.


민아 - 쿡..... 그래도 내가 언니인걸.


기억 - 이제 한나랑 같이 사는 거야?


민아 - 응, 대학은 여기서 다닐 것 같아.


기억 - 그렇구나...



.... 설마.


순간 불안한 직감이 뇌리를 스쳤지만


싫은 내색은 할 수가 없었다.



아니겠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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