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 대해 잘 모르시면서 환단고기를 접하신 분들은 아마 충격을 받을겁니다. 특히 어린 청소년들은 더욱 그럴거구요. 환단고기에는 기존에 우리가 배워왔던 역사와는 엄청나게 다른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우리민족은 과거에 엄청나게 찬란한 역사를 가진 위대한 민족이었지요.
사학계의 동향이나 자료검증능력이 안되시는 분들은 몇몇 재야사학자들의 말만 듣고서 강단사학자들이 아무 근거도 없이 식민사관에 빠지거나 자신의 밥그릇을 지키기위해 환단고기를 무조건 불신하는줄 압니다(뭐 저도 가끔씩 나오는 뉴스외에는 별로 사학계에 대해 아는게 없지만;;). 하지만 환단고기가 아무런 근거도 없이 불신당하는건 아니죠. 제가 글을 쓰는 이유는 환단고기에 들어있는 헛점들과 의심들을 정리하기 위해서입니다.
보통 어떤 사서의 신빙성을 알아볼때는 고고학, 인류학, 문헌학, 서지학 등 많은 검증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그런데 환단고기는 이러한 검증들에서 모두 막혀버렸죠. 검증들에서 막히니 당연히 위서라는 소리가 나옵니다. 그렇다면 검증에서의 문제가 무엇인가를 알아보겠습니다.
먼저 환단고기는 오래전부터 전해져내려오는 사서가 아니라 20세기, 그것도 26년전인 1979년에 말그대로 "느닷없이" 튀어나온 책이라는 사실을 인지해주셨으면 합니다. 게다가 책의 내용은 여태껏 전해져오던 역사와는 완전히 딴판이고 우리민족이 과거에 위대했다는 온갖 내용들이 들어있습니다. 여기서부터 문제가 생기죠. 환단고기에 담겨있는 내용이 여태껏 다른 사서에 전해내려오는 사서들과 딴판이라면 교차검증이 불가능합니다.아니 교차검증이라는것도 진서라고 밝혀진 다음에나 일마나 신빙성이 있나 살펴보는 것이므로 환단고기에는 해당되지 않죠.
환단고기가 위서로 의심되는 다른 부분을 살펴본다면 책의 편찬시기와 공개시기 사이의 갭인데 그 차이는 무려 68년이나 됩니다. 왜 편찬직후 세상에 나오지 못하고 68년이나 지나서 나왔을까요? 일단 한가지 추측이 가능한것은 환단고기가 나온때가 일제시대라 일본에 의해 책의 내용이 말살될까봐 숨겼다는 것이죠. 일단 이것으로 대충 설명은 됩니다만 그렇다면 해방이후, 혹은 전쟁이후에 공개해도 되지 않았을까요? 왜 굳이 1979년이라는 한참후를 공개시기로 잡았을까요? 공개자 이유립에 따르면 스승이자 편찬자인 계연수가 한갑자가 지난후 공개하라고 유언을 남겼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만 왜 계연수는 그런 말을 남겼을까요?
일단 이렇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환단고기의 편집자로 알려진 계연수는 그 행적을 찾을래야 도저히 찾지못하는 사람입니다. 족보상에도 안나와있고 다른 여러가지 정황으로도 계연수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뭐 인간의 행적이란게 반드시 확실해야만 존재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계연수라는 사람이 사실은 환단고기의 제작자들이 만든 가상의 인물일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단순한 추측만으로 실제로 있었을지도 모르는 계연수를 가상의 인물로 만들어내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되겠지요.
그렇다면 왜 68년이나 지나서 공개했다는 말인가? 제일 높은 가능성은 환단고기의 신빙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가필을 하기위해서입니다. 고고학적인 시각으로 환단고기를 보면 한가지 걸리는 점이 있습니다. 환단고기에는 1940년대까지의 고고학적인 성과가 그대로 들어있기 때문이죠. 즉 누군가 1940년대까지 이뤄낸 고고학적인 성과를 환단고기에 그대로 담아서 신빙성을 높이려했다는 의혹을 받기에 충분한겁니다. 그런데 우연찮게도 50년대 이후의 고고학적인 성과는 반영되어있지 않습니다(이 부분은 제가 고고학적인 성과를 아는게 별로 없어리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냥 주위의 말만 듣고;;;). 그래서 환단고기가 사실 40년대에 성립되었다는 주장이 나온거죠.
위의 것은 일단 공개과정에서의 의혹이고 이번에는 내용상의 문제입니다. 내용상의 문제는 무엇인가? 환단고기를 보면 누군가 후대에 이미 만들어진 틀에 역사를 끼워넣은 흔적이 너무나도 역력합니다. 이제부터 차근차근 그것들을 밝혀나갈 생각인데 일단은 단군과 삼황오제에 대한 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삼황오제시대란 중국역사의 시작으로 지금 현재 신화의 시대로 분류되고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이들을 상징적인 중국의 시조로 인정하죠. 신화를 한꺼풀 벗겨보면 역사가 있습니다. 이말을 좀 변형해서 사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일단은 신화는 역사의 거울입니다. 신화를 통해 역사의 단면을 알 수 있지요. 그런데 주목해야할 점은 신화자체는 역사를 비추지 않습니다. 역사를 비추는 것은 신화의 "발달과정"이지요.
그리스신화에서 제우스니 헤라니 아레스니 하는 신들은 원래 상관이 없는 신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공동체가 출현하고 그리스각국이 정치, 외교, 종교, 경제적으로 엮이기 시작하면서 신화와 신들도 하나로 엮여 지금의 그리스신화가 탄생했지요. 삼황오제도 비슷합니다. 원래 삼황오제들은 제각기 다른 부족들과 민족들의 신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이들이 서로 정치적으로 서로 엮이게 되면서 신들역시 서로 엮여져 삼황오제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한 예를 들자면 오제 중 한명인 우는 노나라의 농업신인데 노나라출신의 공자가 이 신을 찬양했고 그것이 나중에 유교가 득세하면서 중국의 시조로 끌어올려진 것입니다.
삼화오제의 신화는 한나라때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환단고기를 사실이라 한다면 삼황오제의 신화도 신화가 아닌 역사적 사실이 됩니다. 그것도 후세에 완성된 신화가 순서 그대로 일어나야지 환단고기가 설명이 될 수 있지요.
단군은 어땠는가? 단군은 선인왕검이라 불리며 평양의 지방신이었는데 몽골이 고려를 침략하면서 백성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 위해 민족의 시조로 끌어올려진 경우입니다. 그전에는 민족의 시조로서 받들어진 증거가 없었는데(뭐 이건 나중에 고고학적인 증거가 발견되면 뒤바뀔지도 모르지만 일단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생각을 바꾸는건 나중에 증거가 발견되서 해도 늦지 않으니까;;) 환단고기에는 단군이 이름이 아닌 호칭으로 나오고 엄연한 정사로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외에 정통성의 개념 역시 환단고기에서 문제가 됩니다. 현대의 한국인이 갖고있는 고조선-삼국-고려-조선-현재로 이어지는 계승의식과 우리의 역사로 포함되는 국가들의 "제한"이 완성된 것은 불과 이백년입니다. 잠시 하나로 통일됐던 신라시대(668~698) 때는 고구려와 백제를 "정복된 나라"로 취급했지 그들의 역사를 자신의 역사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려시대가 되어서야 삼국의 역사가 고려의 역사로 모두 인정이 되었으며 고려후반에는 고조선이 정식으로 역사에 편입되었고 발해는 조선후기에야 비로소 우리역사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런데 환단고기에는 이러한 정통성계승의 과정이 모두 무시된체 조선말에야 완성된 역사개념을 그대로 따릅니다.
현대의 민족개념을 고대에 그대로 적용한 것도 있습니다. 환단고기를 보면 삼황오제와 하은주를 지금의 한족에, 동이족을 지금의 한국인으로 설정한 것이 보이는데 이것은 근현대에야 도입된 민족의 개념을 고대에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지요. 중국인=한족이란 개념이 시작된 때는 중국 한나라 시대이고 만약 민족의 완성을 서로의 이질감없이 같은 겨레의식을 갖는 때로 한다면 송나라때에 이르러서야 한족이란 개념이 완전히 정착한 셈입니다. 한국의 경우 한민족의 개념은 고려때 시작되었고 고려말기에 지금의 민족개념이 완성됐습니다.
민족의 개념이 시작되기 전에는 부족과 족속으로 분열되어 그저 정치적으로만 엮여있는 "집합"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은나라는 훗날 중국인들의 시조가 되는 여러 부족들과 족속들이 모여만든 부족연합체였죠. 이들은 각자의 계산에 따라 이합집산을 계속했는데 모두 각자의 관점에서 서로를 오랑캐니 야만인이니 하고 불렀습니다. 당연히 그중에 동쪽 오랑캐라는 뜻의 동이라고 불린 집단도 있었습니다. 주나라에 의한 은나라 정복은 연합체 내의 은의 세력이 약화되어 결국 그 주도권이 주에게 넘어가는 과정이지요. 주나라의 관점에서 보면 은은 주의 동쪽에 있었으므로 동쪽의 오랑캐, 즉 동이였습니다. 중화의 개념이 완성되지 않은 이때 각 집단들은 각자의 관점에서만 상대를 바라봤으니 자신들을 제외한 나머지는 오랑캐들이었고 따라서 연합체의 동부에 존재했던 집단들은 동이라 불린 것인데 후세에 민족주의가 출현하면서 동이족=한민족으로 동일시하는 학설이 생겨난것입니다. 환단고기는 이러한 관점을 너무나도 잘 담고있습니다.
위에 제가 제시한 예들을 보면 알 수 있겠지만 누군가 당대도 아닌 후대에 이미 만들어진 이러한 틀들을 전제, 의식하여 환단고기를 썼다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환단고기가 20세기에 만들어진 위서가 아니라해도 이미 저러한 틀을 전제하고 의식하여 역사를 엮었다는 사실에서 이미 환단고기는 신빙성을 크게 상실합니다. 규원사화 역시 진본이 발견되었음에도 이러한 이유로 신빙성을 의심받지요.
그외에 환단고기가 의심받는 부분은 어색하기 짝이 없는 신화와 역사의 퓨전입니다. 환단고기의 지은이는 아무래도 보편적인 세계역사상 신화의 시대에 정사형태의 역사를 쓰는 것에 부담을 느낀듯합니다. 그래서 정사의 형태에 신화적인 요소, 즉 성경 등에서 보이는 인물들의 긴 수명을 사서내의 인물들에게 적용하려한듯 하지만 결과는 상당히 어색하기 짝이 없는 정사와 신화의 퓨전이 되었습니다. 이건 정사라고 하기도 그렇고 신화라고 하기도 뭣합니다. 그리고 아무리 신화의 역사화나 역사의 신화화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났다고 하지만 이런 형태의 반신화반정사는 나올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요?
환단고기의 원전들은 모두 실제했고 계연수가 그것들을 가필했다는 말도 있지만 문제는 위에 언급한대로 환단고기는 1979년에 느닷없이 튀어나온 책입니다. 그전에는 원전들의 이름 몇개가 실록에 한줄 등장할뿐 그 이후로는 어디에서도 인용구 하나 찾아볼 수 없고 원전들의 제목조차 언급되지 않습니다. 즉 가필이 되었다해도 도대체 어디까지 가필이 되었는지 도통 알수가 없다는 말이지요.
즉 결론은 환단고기가 진서라거나 위서라는 직접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그래서 간접적인 증거에 의존해야하는데 여기서 이렇듯 문제가 생기니 위서라는 의심을 받지요. 아니 사실 이정도의 증거만으로도 위서라고 불리기에 충분하지만 제 경험상 직접적으로 위서라고 했다가 매국노라느니 식민사관에 빠졌다느니 하는 다구리를 당한 경험이 몇번 있어서 표면적으로는 중립적인 입장을 선포합니다;;;
일본과 중국이 역사를 왜곡해서 증거를 남기지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이런 논지의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역사왜곡이 아주 쉽다는 것을 전제로 자신의 주장을 펴는데 저는 이런 사람들을 보면 이런 말이 떠오릅니다.
"나는 믿고싶다"
ps 일부 재야사학자들에 의해 수밀이를 수메르, 사백력을 시베리아, 환단고기를 한단고기 등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런것들은 사서에 나와있는 것들을 음운학, 인류학, 고고학 등을 싸그리 무시하고 제멋대로 해석한 것이므로 굳이 언급은 안했습니다.
another ps 환단고기를 후대에 가필되었을 지언정 진서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드리는 충고 한마디는 어차피 찾아봐야 안나올 유물들을 찾느라 개고생하지말고 환단고기가 1911년에 "진짜로" 나왔다는 증거만 찾으시면 환단고기도 어느정도는 신빙성은 인정받을거라는겁니다. 1911년에 나온 원본은 분실하고 "기억"으로 복원했다는 말도 있는데 환단고기의 신빙성을 크게 의심받을 수 있는 그런 사실을 뭐가 자랑스럽다고 떠벌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는지 미스테리입니다.
the other ps 제가 여태까지 환단고기가 진서인 증거 열가지 스무가지 서른가지를 보아왔지만 증거로서의 효력이 없는 것들이더군요. 그것들은 나중에 환단고기가 진서로 밝혀져서 얼마나 신빙성을 가질까 확인해볼때 사용할 수는 있어도 환단고기가 진서라고 증명해주지는 못합니다. 환단고기를 진서로 증명해줄 증거의 조건은 환단고기에만 나와있어야하며 79년 이후의 것이라야만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환단고기가 진서라는 증거는 아직 하나도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