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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2-25화> 겨울 MT

바다의기억 |2006.02.18 23:07
조회 21,239 |추천 0

한 때 많은 분들을 혼란의 도가니로 빠트렸던 공대사 25편입니다.

 

모쪼록 재미있게 봐주세요.

 

============= 그 때 추천해주셨던 분들, 잊지 말고 다시 한 번 =============

 

 

2001년 1월.


연극부는 1박 2일 일정으로 겨울 MT에 나섰다.


목표는 강원도 후미진 산골에 있는 정체불명의 별장.


사전 정보고 답사고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은 정체불명의 장소였지만


회계가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에게서 빌린 것이라


숙박비가 안 든다는 것이 가장 큰 선정 이유였다.



출발에 앞서 기차역에 모인 연극부원들.


서로 오랜만에 만나는 자리인 만큼


주변은 안부를 묻는 화기애애한 담소로 가득했다.



회계 - 김양, 오랜만이네.


김양 - ..... 그러네.


회계 - 잘 지냈어?


김양 - 별로.


회계 - 왜?


김양 - ....... 담배나 한 대 줘.


회계 - .... 돛댄데.


김양 - 넌 허구한 날 돛대냐?


회계 - 진짠데.


김양 - ..... 빨랑 안 줘?



아버지에게도 안 준다는 돛대를 뺏으려는 김양과


최후의 보루를 사수하려는 회계의 눈물겨운 싸움.


그 처절함은 담배를 안 피우는 나로선


이해할 수 없는 경지다.



김군 - 야~! 어깨! 오랜만이다!


어깨 - 어이쿠, 형도 오셨어요?


김군 - 그래 짜식아. 그건 그렇고, 나한테 꿔간 이천오백 원.


어깨 - 예?


김군 - 방학하기 전에 식당에서 돈 없다고 식권 한 장 꿨었잖아.


어깨 - ...언제요?


김군 - 11월 21일, 점심시간에.



한편에선 어깨와 만난 김군이 수금에 들어가고 있었다.


...... 뭐, 안부를 묻는 방식이라는 건


사람마다 제각각인 거 아니겠는가?



그렇게 주변을 둘러보며


민아가 도착하기만 기다리고 있을 때


여자 부원들 사이에 끼어있는


안군과 눈이 마주쳤다.



안군 - ........


기억 - ........



‘얼굴 좀 폈네?’


‘남이사.’


‘민아는 어디 갔냐?’


‘주변에나 신경 쓰지?’



침묵과 조소 속에 오가는 정겨운 대화.


이 얼마나 개성 넘치고 따듯한 안부인사인가?



주변에서 낌새를 눈치 채기 전에


태연한 표정으로 본연의 임무에 충실 하는 안군을 보며


치미는 화를 삭이고 있을 때


박군 일당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박군 - 어? 저기 민아 온다.


어깨 - 진짜네? 그런데 옆엔 누구야?


덩치 - 누군지는 몰라도 스타일 죽인다....


박군 - 그냥 오는 방향만 같은 거 아냐?



민아라는 말에 귀는 솔깃했지만


그 뒤에 이어진 대화는 날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설마 설마 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본 순간


난 민아와 정답게 걸어오고 있는 한나의 모습이 보였다.


곧 내 모습을 발견하고 웃음 짓는 그녀.



한나 - .......



늘 묘한 속내가 숨어있는 것 같은 그녀의 웃음.


살짝 찡그리는 듯한 그 눈웃음은


고양이 송곳니의 반짝거림처럼


내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잠시 후, 민아가 대열에 합류하면서


한나는 단연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연출 - 여, 민아 왔구나. 그런데 옆에 분은?


민아

- 아.... 제 동생 한나인데요,


지금 집에 아무도 안 계서서


혼자 남겨두고 오기가 좀 그렇더라고요.



연출 - 그랬구나.... 반갑습니다.


한나 - 말씀 많이 들었어요. 연출 오빠시죠?


연출 - 어이구? 그걸 어떻게?



한나의 대답에 입이 귀에 걸린 연출.


하긴... 저런 미인이 자신을 알아주는 데


싫다고 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민아와 한나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동안


난 모쪼록 이번 여행에서 아무 일도 없기를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또 기도했다.



민아와 한나가 도착한 뒤


이제 올 사람은 거의 다 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때

뒤통수가 따끔거리는 듯한


이유모를 위기감이 몸을 엄습했다.



...... 이 느낌은?



김씨 - 여!


허씨 - 올만!!



어떻게 알고 왔는지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김씨와 허씨.



어깨 뒤로 걸쳐 맨 더블백과 권투 글러브,


이마며 턱 같은 곳에 덕지덕지 붙어있는 반창고는


누가 봐도 전형적인 운동선수들의 모습이었다.


허씨야 원래 복싱을 했으니 그렇다 치고


김씨는 어째서?



기억 - 여긴 또 어쩐 일로 왔냐?


허씨 - 어라, 만나자마자 그렇게 말하면 조금 섭섭하지?


김씨

- 방학동안 운동이나 빡세게 하면서 보내려고 했는데


연출 선배가 연락을 하더라고,


MT가니까 같이 갈 거면 가자고.



허씨

- 방학 내내 체육관에만 짱박혀 있었으니까


이때다 싶어서 나왔지.


어때, 무지하게 반갑지 않냐?



기억

- 그래. 뭐, 반갑긴 하다.


그건 그렇고, 김씨도 같이 복싱 하는 거야?



김씨 - 허씨 이놈이 만날 다구빨이라고 걸고 넘어져서...


허씨 - 솔직히 너 꿀리면 아무거나 휘두르고 보잖아.


김씨 - 꼬우면 너도 잡으라니까?



아무튼 두 녀석....


안 맞는 것 같으면서 묘하게 잘 맞는다.



한나 - 어쩜 그렇게 모른 척 하고 있기에요?


민아 - 어, 김씨랑 허씨도 왔네?



두 녀석이 옥신각신 하는 사이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온 민아와 한나.



김씨 - 기억아, 이분은 누구시냐?


허씨 - 그러게 말이다, 이 어떻게 소개라도...



어딜 가도 눈에 띌 법한 한나의 등장에


김씨와 허씨는 너나 할 것 없이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기억 - 공주 동생 한나.


한나 - 어머나? 웬 공주? 언니가 공주에요?


민아 - 아....아니.... 그게.... 아이씨...



공주라는 말에 내 어깨를 툭 치며


원망스러운 표정을 짓는 민아.


난 아직도 종종 그녀를 공주라고 부르고 있지만


한나에게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것 같다.



그녀의 소개를 들은 김씨와 허씨는


놀란 얼굴로 한나와 민아를 번갈아 보며


부산스러운 인사를 건넸다.



김씨 - 동생?


허씨 - ....... 친동생이에요?


한나 - 왜요? 안 닮았어요?



이렇게 말하는 동안에도


한나는 다이내믹한 몸매를 과시하듯


손을 허리에 짚고 가슴을 활짝 펴고 있었다.


민아와 한나를 처음 대했을 때


그 차이를 가장 극명하게 느낄 수 있는 부분은


가슴사이즈와 신장이 아닐까 싶다.



민아 - .......



둘을 놓고 비교와 대조를 반복하는


김씨 허씨의 눈빛이 부담스러웠는지


내 왼팔에 팔짱을 끼며 살짝 비켜서는 민아.



너무 빤히 보지 마 이놈들아....



김씨 - 에.... 이번에 한나씨도 같이 가는 건가요?


한나

- 예, 집에 혼자 있기가 심심해서요.


역시 부원도 아닌 사람이 가니까 좀 그렇죠?



허씨

- 무슨 천만의 말씀을...


저희도 엄연히 말하면 정식 부원은 아닌 걸요.



한나 - 그럼요?


김씨 - 외부에서 초빙된 액션 감독들입니다.


한나 - ....... 풋, 그런 것도 있어요?


허씨

- 그럼요, 액션이라는 게 얼마나 심오한데요.


아, 이거 또 말하자면 긴데....



김씨나 허씨나 워낙 활발하고 털털한 성격이다 보니


서로 간에 코드가 잘 맞아떨어진 듯


세 사람은 금방 웃고 떠들며 친근한 모습을 보였다.



모쪼록 MT기간 동안만이라도


김씨와 허씨가 한나를 잘 붙잡아주길 기도하며


난 팔짱을 끼고 있는 민아의 손등을 오른손으로 덮었다.




잠시 후,


우린 기차를 타고 목적지로 출발했다.


기차역에서 다시 버스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 도로를 올라간 뒤


거기서 또 등산로를 따라 꼬부랑 꼬부랑...



하얀 설산의 경치에 취해 감탄을 연발하던 부원들은


어느새 하얗고 뜨거운 입김을 뿜어대며


히말라야 원정대 같은 초췌한 행색이 되어 있었다.



김양 - 야. 멀었어?


회계 - 거... 거의 다 왔어.


김양 - 진짜?


회계 - .....아마도.


김양 - 뒤질래?



약도를 들고 산장을 찾고 있는 회계의 뒤에 바짝 붙어


계속해서 압박을 가하고 있는 김양.


그녀는 어느덧 길에서 뽑아든 나뭇가지로


회계의 등허리를 푹푹 찌르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었지만


별장이 이렇게 오지에 있을 거라곤 예상 못했던 회계는


마냥 죄스러운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릴 뿐이었다.



박군 - 아직도 멀었나봐.


어깨 - 길 잃어버린 거 아냐?


덩치 - 씩....씩... 나... 나 토할 것 같아....



이곳저곳에서 튀어나오는 불평과 불만.


특히나 체력이 부족한 여성부원들이나


유독 강한 만유인력을 받고 있는 덩치에게 있어


이 행진은 강도 높은 극기훈련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 무리 중엔 민아도 포함되어 있었다.



민아 - 하악...... 하악......


기억 - ..... 괜찮아?


민아 - ...... 으응.


기억 - 가방 나한테 줘.


민아 - 아, 아냐... 프라이팬도 기억이가 들었잖아.


기억

- 괜찮으니까 줘. 왜 그런 이야기도 있잖아


눈보라 속에서 짐을 들어준 사람은


힘이 드니까 몸이 훈훈해져서 살았고


짐을 안 들어준 사람은 얼어 죽었다는...



민아 - ...... 그럼 짐을 넘겨준 사람은?


기억 - ...... 아무튼.



이미 내 어깨엔 내 짐을 비롯해


숙식에 쓸 버너나 프라이팬 같은 것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지만


기본 체력이 어느 정도 되는 만큼


산을 오르는데 큰 무리는 없었다.



한나 - 아이고 다리야.


김씨 - 응? 힘들어? 업어줄까?


허씨 - 어휴, 짐 이리 줘. 다 줘, 다.


한나 - 에? 아하하, 아직은 괜찮아요.


김씨 - 아냐, 아냐. 업혀 업혀.


허씨 - 김씨보단 내 등이 좀 더 넓을 거야. 업혀 업혀.



물론 어깨에 소주 한 박스씩을 지고도


아무렇지도 않게 한나에게 등을 내미는


김씨나 허씨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로부터 또다시 한참 후.



김양

- MT 가 언제부터 Membership Training이 아니라


Mountain Training이 됐냐?


아주 처음부터 등산을 가자고 하지? 응?


좀 있으면 에베레스트에 깃발 꼽겠다?



평소 ‘죽는다.’ ‘죽을래?’ ‘죽어.’


처럼 동사 하나로 의사소통을 마무리하던 김양이지만


지금 만큼은 구구절절 불만이 장난이 아니다.



회계 - 이.... 이제 진짜 거의 다....


김양

- 어이구 그러세요? 아까까진 가짜로 거의 다고?


이제 줄 타고 빙벽만 올라가면 보이는 거야?



회계 - 아... 진짜 이제 여기 어디 쯤...


김양 - 어디어디, 눈에 묻혀서 안 보이냐? 여기 한 번 파볼까? 어?


회계 - 아, 나 진짜.....!!


김양 - 어쭈?


회계 - ..... 여기 어디쯤이라니까.



해발고도 제곱에 비례해서 늘어나는 김양의 갈굼에


회계의 인내심도 한계에 다다랐을 즈음,



회계 - 저기 있다.



드디어 산장이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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