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선은 여름임에도 불구하고 검은 양복을 입고 땀을 흘리는 덩치가 큰 남자앞에 앉아있었다.
" 자...여기에 도장찌고...그래...한달이야~ 한달이 길어? 금방가지...누가 한달에 5천을 감해주는데가 어디있어? 대신...화끈하게 빼지 말고...알았먹지? 그럼 믿겠어...다른 말 나오면 그땐 또 어떻게 변할지는 나도 몰라...그러니까 알아서 잘해야겠지?"
연신 음흉한 웃음을 보이면서 미선의 몸을 위아래로 훑어보는 남자에 눈빛이 미선은 역겹기까지 했다.
' 니까짓게 버텨봐야...결국 이 바닥이야...'
박호정은 자신의 뜻대로 되자 그동안 자신을 괴롭혔던 업자들로 부터 벗어나게 된다는 사실에 안도의 한숨을 지었다. 그리고 오늘밤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도박에 은근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물론 그 돈이야 미선을 미끼로 얼마만큼을 돌릴수 있다는것도...
" 이제 엄마랑 이혼해주세요...더 바랄것도 없어요...이혼만 해주세요"
" 이혼이야...뭐...어렵나...서류만 준비하면 되는것을...:
" 엄마 제가 데려갈게요..."
" 그래..그래...그러니까 진작에 이랬으면 더 빨리 만나고 좋았잖아...괜한 고집 부려서 니 엄마 정신병자나 만들게 하고...남들은 니가 효녀라고 할지 몰라도 내가 보기엔 아니야...하여튼 고맙다"
" 우리...인연도...참...비참하네요..."
" 비참할거 까지야...그까지 술 따르거 뭐...어렵나? 안그래? 그리고 니 그 눈빛 하나면 남자들이야 다 넘어오게 되있어...은근히 끌리는게 있어...니가...그런게 있어..."
미선은 모든걸 체념한듯 더이상 자신따위는 이세상에 없는 사람이라고 이미 죽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니 차라리 마음이 편했다.
그리고 문득문득 생각나는 강혁에 얼굴이 떠오를때마다 미어질듯한 심장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신경안정제를 먹어야만 했다...그래야 잠이 왔다...강혁과 마지막을 인사하고 미선은 낯선 여관방에서 삼일동안 멍하니 창밖만 바라보다 결국엔 자신도 모르게 팔목을 긋고 말았다.
하지만 삼일동안 한번도 인기척이 없는걸 이상하게 여긴 여관주인이 방문을 비상열쇠로 여는 바람에 다행히도 목숨을 구할수가 있었다. 다행이 상처가 깊지 않아 금방 지혈이 되었지만 그 사실을 알고 바로 찾아온 박호정은 괘씸한 생각에 바로 계약서를 쓰게끔 이곳으로 미선을 끌고 왔다.
'당신이 미치도록 보고 싶어서...생각나서...나...엄마를 잊고 있었어...단지 당신 생각을 멈추고 싶어서...그만 엄마를 잊고 말았어...미안해 엄마'
고위층 간부들과 부유한 전문직 사람들만이 드나들수 있는 고급 단란주점에 눈빛이 매혹적인 한 여자가 들어왔다.
눈빛이 얼어있는듯 차갑도록 냉정한 여자를 곁에 둔 남자들은 여자에게 아무런 강요도 쉽게 할수가 없었다...그 눈빛이 그렇게 하도록 만들었다.
점점...술이 늘어갔다...점점...술을 마시지 않고는 하루를 견디기가 힘들어졌다...점점...
술이...술을 마시고...그 마신 술이 자신을 삼켜버렸다.
보름이 지나자 여자는 이미 그 여자가 아니었다.
영혼을 잃어버린 눈빛...그 눈빛에 집착하는 남자들이 늘어났다.
강혁은 아무것도 할수가 없었다.
그 어디에도 미선은 보이지 않는데 그 어디에서도 미선을 보고 있었다.
그 병원도 아직까지 다니고 있고 그 작은 방을 얻어서 가끔 들러 잠을 자곤 한다.
왠지 그 깜박거리는 가로등 아래로 토박토박 일정한 소리를 내고 걸어오는 미선이 보일것만 같아서...밤이 늦게 까지 그 가로등 아래서 기다렸다.
담배가...늘어났다...담배 연기가 깊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끔 자신을 버리고 간 미선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 사랑한다니까...내가 너 사랑한다니까...'
강혁은 자신이 두려웠다.
한번 바닥으로 떨어지면 그 끝까지 자신을 타락시키고마는 자신을 알기 때문에...점점 나락으로 떨어지는 자신의 끝이 두렵기까지 했다.
자욱한 담배 연기가 폐 깊숙이 들어와 강혁을 위로하고 있을때쯤 문이 열리더니 몇몇에 친구들이
들어와 소파와 깊숙이 몸을 뉘였다.
" 민강혁 오랫만이다...이렇게 우리들까지 부르고 영광이야...우리 얼마만이냐?"
" 그래 오랫만이다...오늘 같이 마시고 미쳐보자고...내가 쏠게..."
" 좋지...듣던중 반가운 소리...끝까지...미쳐보는거야...야...여기 술값 장난아닌건 알지? "
" 자식...언제 그런거 신경쓰고 살았냐?"
" 그러게...부모 잘만난것도 복이다...평생 이렇게 살다 죽고 싶네...여기 괜찮은 애 있는데..."
" 술집에서 괜찮다는 표현이 웃긴거 아냐? "
" 그런가? ...하여튼 민강혁...너...미친 기념으로 마시고 죽자! 아...유린이도 오고 있다.
그 기지배 제법이던데...너 싫으면 나 줘.."
" 죽을래? 걔가 물건이냐? "
" 어쭈...뭐야...하여튼 니 속을 모르겠다..."
" 술이나 마셔..."
강혁은 점점 이성을 잃어가는듯 자신을 말없이 떠난 미선에게 미칠듯한 분노가 일었다.
그렇게 쉽게 자신을 떠난 미선이...그리고 자신에게 준 그날밤이...생각하면 할수록 미치도록 화가 났다.
룸가득이 퍼지는 담배연기처럼 점점 자신에 영혼을 망가뜨리고 있었다...어차피 그 여자가 없다면 자신이야 어떻게 되든 상관없을것만 같았다.
유린은 그날...자존심에 상처를 입었다.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는 않았다. 아니...다시 한번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아마도 여자를 만났었던 모양이다...그것도 꽤나 사랑한듯...왠지 강혁에게 사랑이란 단어는 존재하지 않다고 생각했엇는데....그런 강혁이 사랑을 하다니...그 몇달사이에...그리고 망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강혁의 모습이 유린에겐 내심 웃음을 짓게 했다.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사랑했다는 사실이 괘씸하지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정말 다시는 강혁을 자신의 남자로 만들수 없을것만 같았다.
담배 연기가 룸안가득 자욱하게 퍼지고 있었다. 거의 정신을 잃을만큼 술에 취해있으면서도 무의식중으로 술잔에 술을 따르는 강혁에게 유린은 대신 술을 따랐다.
" 오빠...뭐가 그렇게 힘든 일이야? 응?"
" 누구야?? 오....유린이...유린이구나...? 잘왔어...잘왔어...잘왔어..."
" 오빠...처음봐...이런 모습..."
" 그래? "
알수없는 웃음을 짓는 강혁이 미선은 이상하게 더 끌렸다. 너무나 완벽한 모습과는 다른 흐트러진 모습...그것도 상처받은 나약한 그냥 한남자로 괴로워하는 모습에 유린은 그런 강혁을 자신의 품에서 위로해주고 싶었다.
' 차라리 가질수 없는 사람이라면 내 품안에서 놀게 할거야...눈치채지 못하게..내 품안에 가둬두고 놀게 할거야...'
" 성유린...내가...너한테 미안한거냐?"
" 응? 무슨...말이야?"
" 내가...미안한거냐고? 너한테...그런거냐? "
" 왜...갑자기...그런말을..."
" 가슴이...아프다...나도 너한테 그랬나...그랬어? 그랬다면 미안...몰랐는데...많이 아프다...
그래서 미안하다...몰랐거든"
" 아니야...오빠...난 괜찮아..그냥 편한 동생 하기로 했잖아...그럴꺼야...앞으로도 그럴꺼야...그러니까...나한테 기대"
" 고맙다...보고 싶다...미치도록...보고싶다...보고 싶어서...나....미칠것 같아..."
유린은 자신 앞에서 다른 여자가 보고 싶다고 중얼거리는 강혁을 자신의 품속으로 들어오도록 살며시 강혁옆으로 다가갔다.
이미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강혁에 친구들을 옆으로 밀어둔채 유린은 조심스럽게 강혁에 머리가 자신의 가슴에 닿도록 했다.
' 뭐야...오빠...우는거야...그 눈물에 고인거 눈물인거야? 기분이...나빠...겨우 얼굴도 본적 없는 그 여자가 누구이길래...'
" 성유린...취했어도...넌...나한테 동생이야...자존심 그만 다쳤음 한다...나한텐...보여...바보야!"
강혁은 아무리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을 유혹하려고 해도 알수가 있었다.
어릴적부터 승부욕이 강한 유린은 언제나 아닌척 또다른 계획으로 다시 그물을 던지는 아이였음을 잊지 않고 있었다...그리고 그 모든게 강혁에 눈에는 보였다.
아무리 자신이 술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 해도 자신의 본능은 무섭게도 그 느낌을 알아차릴수가 있었다.
미선은 자신의 허벅지에 은근슬쩍 손을 올려놓는 남회장에 손길에 속이 울렁거렸다.
점차 대담해져가는 손길은 허벅지에서 점차 위로 올라가려고 꿈틀대는듯 미선은 도저히 참을 수 없다는듯 한손으로 남회장에 손등을 잡았다.
" 회장님...!"
" 오늘...나랑 나가자"
" 회장님!"
" 무조건 나가...너무 그렇게 튕기는것도 매력없어..."
" 아시잖아요...저..."
" 그런애 아니란거 알아...하지만 이 바닥에 그런게라는게 있나? "
" 전 아니에요."
" 내가 누군지 몰라?"
" 알아도 죄송합니다."
자리를 일어서려는 미선을 남회장에 굵은 손목이 미선에 가는 손목을 낡아채서 다시 않게끔 했다.
" 소란피우면 곤란해지는건 너야..."
" 상관없어요!"
" 고집은 여전하군...하지만 오늘은 안통해 니가 싫다고 해도 다 될수밖에 없는게 현실이야 니가 원하면 내가 너하나쯤 못 키워주겠냐..."
" 회장님 정말 죄송한데요...한말씀 드리고 저 물러날게요
좀 ... 깨끗하게 사세요...이래서 당신들한테 더럽다고 하는거야..."
" 뭐? 이년이..."
순간 남회장에 얼굴이 한순간에 변하면서 미선의 뺨을 내리치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 니가 완전 죽고 싶어서 환장을 했구나...이게 이쁘다이쁘다 하니까 어딜 기어올라..."
남회장에 손에서 미선에 하늘하늘한 원피스가 순식간에 찢겨져 나가면서 남회장에 탐욕스런 눈빛이 서서히 무섭게 변해가고 있었다.
더러운 혓바닥으로 미선에 가슴을 유린하며 자신의 욕정을 채워가던 남회장에 눈빛은 사람이라기 보단 한마리의 짐승같아 보았다. 미선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은채 죽어있는 시체처럼 멍하니 있을뿐이었다....그런 미선에 눈빛이 무섭게 느껴진 남회장은 알수없는 욕을 하고서는 지갑에 수표 몇장을 테이블에 놓고서 몇마디 욕을 하고는 문을 닫고 가버렸다.
미선은 울지 않기로 했다...절대...울지 않기로 다짐했다...마지막 눈물을 강혁에게 쏟았으니...자신은 더이상 흘릴 눈물도 이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떨리는 손으로 옷을 추스리고 나오는 미선은...그 자리에서 그만 두 눈을 감아버렸다...차마..눈을 뜰수가 없었다...자신을 보며 부들부들 두손을 떨고 있는 한남자를 차마 볼수가 없었다.
" 내 눈앞에 있는...여자...내가 아는 여자 아니야...그런거야...아니야...아닐꺼야...내가 찾는 여자 아닐꺼야...젠장...누구 허락없이 그렇게 닮은거야..."
강혁의 중얼거리는 목소리를 뒤로한채 미선은 그만 그 자리에서 중심을 잃고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부들거리는 주먹에 힘이 잔뜩 들어간채 겨우 입술을 깨물고 있는 강혁이 뒤돌아서서 넋이 나간 사람처럼 발걸음을 떼고 있었다.
" 찾았다...김미선...찾았어..."
강혁이 흘리고간 이 말을 아마도 듣지는 못했지만 강혁은 걸어가는 내내 혼자서 웃고 있었다.
그리고 어김없이 심하게 박동치고 있는 심장에 손바닥을 짓누르며 웃고 있었다.
' 오늘은...너 찾은걸로 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