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거운 주말입니다.
다가오는 월요일이 두렵긴 하지만
지금 이순간은 달려야겠죠.
=============== 낮잠 한 숨 푹 자면 이미 월요일 ================
다음날. 일요일.
오늘이 그녀의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비록 정신적으로 몇 번이나 초토화 되는 경험을 하긴 했지만
그 또한 잊지 못할 추억이 될 것이다.
이른 오후 무렵
한나가 비디오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동안
나와 민아는 거실에 있는 소파에 앉아
게임 화면을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민아 - 어제 정말 놀랬어...
기억 - 흠... 나도 내가 그렇게 인기가 좋을 줄은...
민아 - 피... 그게 무슨 인기야.
기억 - 어어? 12년만 지나면 성희도 스무 살이라잖아.
민아
- 그때까지 기억이는 안 늙어?
냉동캡슐에라도 들어가 있으려고?
기억 - 띠동갑 정도야 외국 나가면 뉴스거리도 안돼.
민아 - .... 얘가 점점? 야!
기억 - 어?! 야? 어이구... 우리 공주님 많이 컸네...
민아
- 12년은 무슨 내일 모레면 12년이야?
3년만 지나봐라, 성희도 현실을 깨닫지.
12년 뒤면 중년이야, 아저씨!
기억
- 원래 멋진 남자는 늙지 않는다고 했어.
나이스 가이에서 나이스 미들이 될 뿐.
진지하게 이야기할 만한 꺼리도 안 되는 일로
정색을 하고 덤비는 민아의 반응에
장난기가 발동한 난
계속 그녀의 말에 토를 달며 약을 올렸다.
민아 - 퍽이나.
기억 - 응?!
민아 - 퍽이나~! 나이스 미들은 무슨... 늙은이 같아.
기억 - 에헤.... 공주님 삐졌구나.
민아 - 흥!
기억 - 에에~ 뭘 그걸로 삐지고 그러냐...
민아 - 흥흥흥!
결국 토라져버린 그녀를 달래기 위해
난 어깨로 그녀를 떠밀며 애교를 부려봤지만
아무래도 농담이 지나쳤던 것 같다.
기억 - 에이~. 공주님~. 농담이지~.
한나 - 두 사람.... 내 존재를 너무 잊고 있는 거 아니에요?
한창 애교란 애교는 다 떨고 있는데
앞에서 들려오는 한나의 목소리.
여전히 그녀는 TV 속 게임화면을 주시하고 있었지만
=탁탁= 하고 오른팔을 털어내는 왼손은
-어휴, 닭살- 이라고 간접적으로 핀잔을 주고 있었다.
기억 - 크흠..... 큼......
머쓱해진 난 헛기침을 하며 민아로부터 조금 떨어져 앉았고
민아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반대편으로 돌린 채
콧잔등을 긁적거렸다.
한나 - 에이, 어렵다.
그렇게 우릴 떼어놓은 한나는
시큰둥하니 들고 있던 패드를 바닥에 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아 - ..... 그만 하게?
한나 - 아니, 딴 거 하려고.
잠시 후, 방에 들어갔던 그녀는
큼직한 박스 하나를 들고 돌아왔다.
뭐지? 또 다른 게임긴가?
게임 무지하게 좋아하나보네...
하지만 그녀가 박스에서 꺼낸 건
게임기가 아닌 조그만 장판 비슷한 물건이었다.
민아 - 뭐야 그건?
한나 - 어머, Pump 처음 봐? 요즘 한창 유행이잖아.
민아 - ...... 으응.
한나 - 오빠는 알죠?
기억 - 아... 오락실에서....
지금은 비록 잊혀져가는 구시대의 산물이지만
2001년 당시만 해도 pump는 전용 오락실이 있을 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이었다.
처음엔 너나없이 재미삼아 즐기던 것을
오락실이 고수, 초고수, 괴수, 폐인들로 넘쳐나면서
쉽사리 발판 위에 올라서지 못하는 분위기가 조장된 탓에
갑작스러운 몰락의 길을 걷게 되었지만
그 인터페이스와 시스템만큼은 획기적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지금에 와서 펌프에 돈을 넣으면
으레 고수려니 생각하고 뒤에 사람이 모이는 탓에
여전히 그 회생 가능성은 보이질 않고 있다.
한나 - 같이 할래요? 2인용인데.
기억 - 아.... 나는.... 저기..... 그냥 구경이나 할게.
한나
- 훗, 그래요. 오빠가 아무리 게임을 잘해도
이건 저한테 안 될 걸요?
제 몸매관리 비결 3호라고요.
기억 - 그럼 1, 2호는 뭔데?
한나 - 첫 번째는 타고난 유전자, 두 번째는 체질!
..... 결국 본인 노력에 달린 건 3호 뿐인가.
괜히 4, 5, 6호까지 궁금해지는 나였다.
한나 - 몸풀이는 Final Audition!
MT 때 보여줬던 춤 실력을
다시금 입증하는 듯한 한나의 펌프 실력.
발판을 밟는 정확도 뿐 아니라
자연스레 배어나오는 그루브한 잔동작들이
그녀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했다.
기억 - ..... 무지 잘하네?
잠시 분위기를 보고
한 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난
조용히 마음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민아 - 아.... 저게 위에 올라오면 밟는 거구나.
기억 - 응.
민아 - 흐음... 난 못 하겠다.
앞에서 한나가 혼자 신나게 뛰고 있는 탓에
뒤에서 이야기를 나누기엔 좀 어색해진 분위기.
우린 무슨 심사위원이라도 된 것처럼
=흐음...=을 연발하며 그녀의 모습을 지켜보고 앉아있었다.
=디잉- 디잉- 출-렁 출-렁.=
그런데 이거 어째 보고 있으니.....
민아와 함께 보기엔 선정성이 좀 강한 것 같다.
옷차림을 떠나서 신체 각 부분의 존재감이 너무...
민아 - 난 저녁 준비나 해야겠다.
기억 - 아.... 나도 도와줄게.
아무래도 자리를 지키고 있기가 민망했던 난
곧장 그녀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오늘 아침 내 손을 거친 재료가
어떤 형태로 형질변화를 일으키는지 확인했던 그녀는
내 도움을 정중히 거절했다.
민아
- 아냐, 나중에 설거지나 부탁할게.
난 만드는 건 하나도 안 귀찮은데
설거지 하는 건 정말 싫더라....
=난 만들고, 넌 설거지 한다=
그렇게 선언한 민아는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고
난 지금 할 만한 다른 일을 찾아 주변을 살폈다.
그 때 눈에 띈 신문 뭉치.
평소 신문을 즐겨보는 편은 아니지만
카툰이나 해외토픽은 재미있지 않은가?
난 소파 뒤쪽 바닥에 자리를 잡고 앉아
신문을 펼쳐들었다.
=이에는 이, 사람이 개 물어=
=내 귀에 도청기 아직 눈 속에 카메라 남아있다 파문=
=공대 여학생 합격자 작년대비 200%증가. 한 명에서 세 명으로=
어쩐지 암담해지는 기사들뿐인 신문.
그래도 마지막 기사를 보면
5년 후엔 243명이나 되는 여학생들이
공대를 가득 채워줄 그날이 올 것도 같다.
.......역시 그건 무린가.
한나 - 후아..... 힘들다. 땀 나, 땀...
내가 보던 신문을 덮어갈 무렵
신나게 펌프를 즐기던 한나가 발판에서 내려왔다.
한나 - 다 좋은 데 땀나는 건 싫어...
옷 앞자락을 낯 뜨겁게 펄럭이며
화장실로 향하는 그녀.
아무래도 샤워를 하러 가려는 길인 듯 하다.
게임기는 여전히 연결되어있는 상태.
.... 이틈에 살짝 한 판?
원래 이런 게 있으면 한 번 쯤 해주는 게 예의.
난 조심스레 한나의 행보를 살피며
신문을 내려놓고 발판이 있는 쪽으로 향했다.
기억 - 응?
민아 - 어?
그리고 주방에서 나오는 민아와 마주쳤다.
기억 - 아... 저녁 다 된 거야?
민아 - 아, 아니. 아직... 기억이는 신문 다 봤어?
기억 - 뭐... 거의.
잠시 동안 우리 사이엔 어색한 웃음이 흘렀다.
서로의 속내는 훤히 보이지만
대놓고 말하기는 부끄러운 상황.
이럴 땐 그냥 자연스럽게 넘어가는 게 제일이다.
기억 - 쉬운 것부터.... 해볼까?
잠시 후.
민아 - 하나, 둘, 하나, 둘!
박자에 맞춰 구호를 붙이며
발판 위를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민아.
가슴 앞에 꼭 쥔 두 주먹과 크게 뜬 두 눈엔
반드시 잘 해야겠다는 굳은 의지 같은 게 담겨있는 듯 했다.
민아 - 하나, 둘, 으차차.
거의 두 박자에 화살표 하나씩이 올라오는
쉬운 난이도 곡을 하면서도
정말 열심히 게임에 임하고 있는 민아.
이럴 땐 정말 어린아이 같기만 한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입꼬리가 올라갔다.
민아 - 짠, 짠, 짠, 꺄앗?!
힐끗.
화살표 세 개가 줄지어 올라오는 부분에서
스텝이 엉킨 민아가 휘청하는 순간
헐렁한 셔츠 틈으로 그녀의 뽀얀 속살이 보였다.
.... 방금..... 노노노노노노노@#$?!
우연찮게 발견한 엄청난 빈틈.
그 때부턴 게임이 문제가 아니었다.
민아 - 어? 기억아~ 너 자꾸 틀리잖아~! 어? 야~!
기억 - 미, 미안. 잠깐 위치를 잘못 잡아서.
사실 티 안 나게 발판을 밟는 시늉은 하고 있었지만
게임 화면 같은 건 내 안중에 없었다.
오직 목을 길게 뺀 채
그녀와의 신장차를 최대한 활용해
펄럭이는 셔츠틈새를 눈이 빠져라 보고 있을 뿐.
민아 - 야아~! 죽기 직전이잖아~!!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살짝만 어떻게~!!!
아아아악! 안타깝다! 정말 안타깝다!!
슬슬 어두워져가는 시야에
더더욱 애타는 갈증을 느끼며
그녀 쪽으로 조금 더 몸을 밀착시키는 순간
주방 쪽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치이이익.... 치익....=
민아 - 아 맞다, 찌개!
찌개가 끓어 넘치는 소리에
황급히 주방 쪽으로 몸을 돌린 민아는
옆에서 이상한 자세로 붙어서있던 나와 부딪히면서
발을 헛딛고 넘어졌다.
민아 - 꺄앗?!
그 순간 난 반사적으로 그녀의 몸을 받쳤지만
워낙 자세가 불안정했던 탓에
나도 그녀를 따라 엉거주춤 넘어져 버렸고
결과적으로 그녀의 위에 엎드린 자세가 되어버렸다.
=두근! 툭.... 툭.... 툭......=
지금 내 앞엔 그녀가 누워있다.
흐트러진 셔츠 사이로 하얀 어깨를 반쯤 드러낸 채
조금 놀란 눈으로 날 올려다보는 그녀.
주방에선 간간히 국이 끓어 넘치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이미 그런 건 안중에 없을 만큼
상황은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기억 - ............ 고.. 공주...!
뻗을 땐 뻗더라도, 지금 이 순간엔 달려야 한다!!!
=찰카닥=
그 순간, 복도 저편에서 문 여닫치는 소리가 들렸다.
필시 한나가 샤워를 마치고 나온 것이리라.
기억 - 헉.
민아 - @#~!!!!
그 소리에 놀라 재빨리 일어나려 무릎을 당겨 세운 민아.
=뻑=
빛의 속도로 솟아오른 그 무릎은
그녀 위에 엎드려 있던 나의 Weak point를 정확하게 가격했다.
기억 - .....@$%^#% !!!!!
다음 순간 난 끊어질 듯한 신음을 흘리며
옆으로 구르듯 쓰러졌고
한나가 거실로 나왔을 때의 나의 모습은
이미 인간이라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민아 - 괘, 괜찮아?! 어디 봐!
기억 - 흐으어으아음어어어억.....
그... 뭐랄까... 보여줄 수 있는 부분이 아니야....
한나 - 어? 왜 그래요? 중요한 데 맞았어요?
기억 - 으으어으아아아음오아오어어...
민아 - 어, 어쩌다가 보니까 무릎에....
한나 - 언니는! 이럴 때 빨리 엉덩이를 두드려 줘야지!
하.... 한나야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 거야?!?
그 순간은 정말 얼마나 아팠는지
민망하거나 쪽팔린 걸 떠나
엉덩이를 두드려주는 한나가 고맙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