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딩크 감독을 처음 만난 것은 지난해 6월 컨페더레이션스컵 때였다. 첫인상은 '외국인 감독이구나' 정도였다. 2000년 말 어깨수술을 받은 뒤 컨디션이 좋지 않았고, 감독에게 뭔가를 보여줘 월드컵에 나가야 한다는 절박감이 앞섰다. 감독은 내가 컨페드컵에서 2경기 연속 골을 넣는 것을 보고 믿음을 줬다.
하지만 지난 1월 북중미골드컵 때는 히딩크 감독에게 적잖이 실망했다. 개인적으로 사생활 문제(감독의 여자친구가 선수단 숙소에 묵음)가 컸다.
팀 성적이 나쁜데 그런 모습을 보니 좀 그랬다. '월드컵 성적이 좋지 않으면 나 몰라라 하고 돌아갈 수도 있는 사람이구나'라고 생각했다. "선수들 능력이 안된다. 미안했다"라는 말을 남긴 채…. 기혼인 선수도 많은데,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
실전을 앞두고 체력훈련인 파워프로그램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우리보다 약한 팀과 경기하는 것이 아니었기에 자신감이 떨어질 수 있었다. 월드컵이 5∼6개월밖에 남지 않아 선수들도 불안해했다.
감독에 대한 반신반의는 점차 '옳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팀 컨디션은 스코틀랜드전(5월16일)까지 좋지 않다가 잉글랜드(5월21일) 프랑스전(5월26일)을 치르며 살아났다.
모든 게 감독의 계산된 스케줄이었다면 아마 신이 짜려고 했어도 그렇게 타이밍을 맞추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골드컵 후유증이 잉글랜드전까지 이어졌다면 월드컵은 장담할 수 없었다.
히딩크 감독과 운동하면서 긴장감에서 해방된 적이 없다. 젊은 후배들과 포지션 경쟁을 하는 게 낯설었다. 감독은 누구든지 중간에 실수하면 그냥 빼버린다. 지난 5월 서귀포에서 가진 왕복달리기 테스트에서 138회를 기록했는데, 그것은 내 체력이 아니다. 정신력이었다. 감독의 방침에 불만은 없었다.
사람들은 우리의 '체력이 좋아졌다'고 하는데, 그보다는 '포지션의 전문성을 지킨 덕에 90분 내내 뛸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예전에는 게임이 풀리지 않으면 (홍)명보가 치고 올라가거나 (김)남일이가 오버래핑했는데 히딩크 감독은 그것을 못하게 했다. '왜 백패스를 주문할까. 한국 축구는 이게 아닌데…' 하고 의아해했지만 묵묵히 따랐고, 스코틀랜드전부터 팀이 확 달라져 깜짝 놀랐다.
마지막 경기인 터키와의 3-4위전 전날인 지난달 28일 밤, 히딩크 감독은 부상 중인 나를 불러 "원하면 10분이라도 뛰게 해주겠다"고 말했다. 의료진은 "(선수는) 진통제 주사를 놔달라고 하는데 세번째 맞는 주사여서 선수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걱정했다. 뛰고 싶었다. 그러나 나 때문에 리저브멤버 한명을 희생하는 게 싫어 결국 "뛰지 않겠다"고 말했다. 감독은 "고맙다"고 했다. 터키전이 끝난 뒤 내 팔을 붙잡고 팬들에게 인사시키던 장면이 눈에 밟힌다.
감독은 자신을 다 보여주지 않는 사람이다. 숨은 보따리를 갖고 있는 듯한 신비감이 느껴진다. 감독은 한국축구를 분명 한계단 이상 끌어올려 놓았다. 대표팀의 전술과 지원 시스템, 선수들의 대우. '대표팀답다'라는 자부심을 느끼며 훈련하고 경기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나도 열심히 공부해서 기회가 되면 대표팀을 맡고 싶다.
정리〓김미연 기자 ibiza@ho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