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찾아봐, 없어 ?“
“조금전 까지만해도 분명 있었는데 ..“
여전히 모든 주머니들을 뒤적뒤적 거리는 규민.
“급하게 뛰어오느라 어디 흘린거 아냐?“
“아아 젠장 - 그냥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려주면 감사할텐데“
“나보고 맨날 칠칠 맞다고 구박하더니, 벌받은거다 이규민 - “
“어이-. 다시 하나 뽑아줘, 저장되있을꺼 아냐 -“
“그러지 ,친구 -“
“상현이는 여기 왠일이야 ?“
급하게 나가는 규민이 아무리 생각해도 조금은 섭섭했던듯
턱을 괴고선 감정없는 말투도 상현에게 묻는다.
“하하 - 너 너무 티내는거 아냐?“
“내가 무얼 -“
“아무튼 단순하다니까 ,하하“
“잔소리 하는거면 그만들을래- 난 세진이로 족해!“
“또 내이름이 들린다?“
부엌에서 뭔가를 지시하던 세진이 빼꼼 고개를 내밀며 아연을 바라보자 ,
“이럴땐 너 귀밝은게 싫어, 정말 -“
“이아연씨, 심술을 동반한 땡깡을 부릴생각이라면 상대 잘골라서 부려 ,응?“
입술이 뾰루퉁히 나와 삐죽거리자 상현이 등을 토닥거리고 아연은 상현을 향해
소심히 버럭거린다.
“세진이 언제 데려갈꺼야! 그냥 보쌈이라도 해버리라니까!“
“이아연!“
평소 목소리보다 한옥타브 높게 들린 세진의 목소리에 아연은 상현에게 얼른 인사하고
딸랑거리는 문소리와 함께 사라진다.
“내가 봐온 아연이 행동중에 제일 빠른 행동이였어 ,하하“
“니가 자꾸 오냐오냐 해주니까 아연이가 저러는거 아냐“
이젠 아예 바로 나와버리는 세진에게 상현은 여전히 능청스런 웃음으로 ,
“바텐더한테 맞기고 나와, 와인한잔 하자 -“
“규민아 - 여기“
종이를 팔랑이며 규민에게 뛰어오는 호현.
그런 호현에게 종이를 받아들어 리스트를 확인하던 규민은,
“너 얼굴에 나 안좋은일 있음. 써있다 - 무슨일있어?“
“그런거 물어볼땐 사람얼굴을 좀 쳐다보면서 물어.“
종이에서 시선을 고정시킨채 묻는 규민이 미운듯 호현은 투덜거린다.
“짜식 - 이럴땐 꼭 기지배같다니까, 무슨일이야ㅡ 꽃집여인한테 퇴짜라도 당했어?“
능글거리는 미소를 띄우며 팔짱을낀채 호현을 향하는 규민의 시선.
“응. 보기좋게 말도 꺼내기전에 퇴짜받았어-“
“말도 꺼내기 전에?“
“응응! 나한테 이제 선인장 안팔꺼라고 그러더라! 그리고선 선인장을 하나 쥐어주면서
선인장 많이 사준 고객한테의 마지막 예의라고 그러면서 딥따 차갑게! 그래도 오늘은
살짝 웃어주긴 했어!“
꽤나 흥분한듯 횡설수설 늘어놓는 호현에게 규민은,
“그래서 포기야?“
“물론 아니지! 또 올꺼라고 했어 선인장사러!“
“그러면 된거네, 내일 또 가면 되지 왜 울상이냐 임마-“
“그냥 그래! 지 애인있다고 여유부리기는 -“
획 돌아서서 걸어가는 호현을 보고는 숨죽여 웃는 규민이다.
“원이한테 말했다고?“
“응, 일부러 원이한테 연락 했었어“
“그래? 그랬더니 뭐래?“
“원이가 언제 자기 감정 표현한적 있었어? 그냥 알겠다고만 하지 뭐-“
“흐음, 원이가 알았다면 그냥 잠자코 있진 않을텐데 -“
“응, 그렇지 .. 아연이 저렇게 좋아하는거 보면 괜히 연락했나 싶기도 하고..“
붉은색 와인이 담긴 잔을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세진을 보던 상현이 싱긋 - 웃어버린다.
“하루가 멀다하고 티격거리더니, 걱정은 제일 많이 하네 -“
“응, 그러네 - 어쩌겠어, 그래도 - .. “
씁쓸한 웃음을 짓는 세진이 상현은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책상앞에 앉아 멍하게 창밖을 바라보던 아연이 주머니에서 울리는 진동에 놀라
전화번호를 확인하고는 가만히 웃는다.
“저, 아연씨 - 저예요“
“알아요 ,번호 뜨잖아요“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어린아이처럼 아연은 손을 움켜쥐었다 폈다를 반복한다.
“지금 어디예요?“
“당연히 집이죠!“
“하하 당연히 집이면 어떻게해요, 세진씨 혼자 일하잖아요“
“아마 나 없으면 일 더 잘된다고 할껄요?“
전화기 너머로 역시 아연씨답다라는 표정으로
웃고있을 규민을 생각하며 조심스레 웃음짓는 아연이다.
“하하 ,설마요“
“정말이예요! 거기다 시끄럽다고 얼마나 구박을 하는지!“
“세진씨는 시끄러운거 안좋아하나봐요?“
“없으면 섭섭해 할꺼예요! 일방적인 내생각이지만“
아연의 장난끼어린 얼굴이 생각나는지 규민역시 의자에 몸을 깊숙이 맡긴채 웃어버린다.
“하하 ,아연씬 늘 긍정적이라니까-“
“세진이랑 같이 지내려면 필수적인걸요!“
“나 참 못됐죠?“
“음- 규민씨가 왜요?“
뜬금없는 규민의 말에 손을 가만히 무릎위에 올려놓으며 -
“아연씨에게 만나보자고 먼저 얘기꺼낸건 난데, 항상 아연씨 혼자두는거 같아서요-“
“별수 없잖아요, 규민씨는 바쁜사람이니까, 그리고 -
그걸 알면서도 그 제안에 응한건 저니까요“
“아연씨, 나 지금 아연씨 보고싶은데 - .. 잠깐 얼굴 보여줄래요?“
사뭇 진지해진 규민의 목소리에 심장에서 무언가가 문을 열어달라며 두드리는듯
아연은 아랫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놓는다.
“지금.. 꽤 늦은 시간이라는거 아세요?“
“잠깐 얼굴만 보고 갈께요- 보고.. 싶어서 그래요“
“.. 시청에서 우회전하면 우체국이 보일꺼예요. 거기서 신호등 두개를 지나오면
아이보리빛 원룸이 보여요“
무언가에 홀린듯, 오늘저녁 자신의 일을 잊은채 답하는 아연.
“빨리갈께요, 아연씨 -“
“시간 꽤 된거 같은데 바 마감 안해?“
“아, 오늘 아연이 일나가는 날이라서 기다려야해.“
“일마치고 온 녀석 마감까지 시키게?“
“나참- 누가 들으면 악덕사장인줄 알겠다“
“하하 ,농담이지 -“
“그녀석 일마치면 항상 여기로 오거든. 눈에 눈물을 방울방울 매달고선 아무생각없는
눈동자로 그렇게 날 쳐다봐. 그리고선 몇년간 단한마디도 틀리지 않고 세진이 여기있네 - 라고 말해.
날 봐야 안심이 된대.혹시나 날 또 잃어버릴까봐 겁나나봐“
아무렇지 않은듯 말을 하는 세진에게서 ,찾아보기 힘든 안타까움이 묻어나왔다.
“아연이 - .. 일 그만 시켜야 하는거 아냐?“
“일전에 한번 꺼낸적있어. 한날은 정말 아연이 눈빛인가 싶을정도로 생기없는 눈빛으로
날 보길래 ,이제 넌 그만하라고 내가 알아서 하겠다 라고 했었어.“
“그랬더니?“
안타까워하는 세진을 안타까워 하는 상현.
“그뒤로 그얘기에 관해선 입도 못열게 해“
“펄쩍뛰는 아연이 모습에 눈에 선하군. 그래 -“
“그래서 그냥 모르는척 하기로 했어. 이건.. 처음부터 우리 둘이서 시작한일이니까.“
“이밤중에 어디 행차하시려고?“
“아연씨만나러-“
“히익- 이시간에?“
“응-“
거울을 바라보며 머리를 매만지는 규민에게 내심 부러운 표정을 한채 쿠션을 끌어안는 호현.
“늦어?“
“얼굴만 보여준대서 ,그래야 할꺼같애- 많이 늦진 않겠지 아마?“
“조심해서 다녀와-“
“응, 대기하고 있다가 일생기면 바로 연락해.“
“옛설 -!“
“왜 먼저 나와있어요- 아직 밤공기가 차가운데 .“
가로등밑에 서있던 아연은 규민의 목소리에 잔뜩 눈웃음을 머금는다.
“자려던참인데 내가 방해한거 아니죠?“
“아직 자려면 멀었어요, 정리해야할 자료도 있고“
“춥겠다“
자신의 자켓을 벗어 아연의 어깨에 걸쳐주는 규민.
그리고선 크게 숨을 들이마시는 아연.
“규민씨 냄새난다. 향수냄새는 아닌거 같은데, 비누냄샌가?“
“하하하 ,그 호기심 어린 표정은 도대체 어떻게 짓는거예요?“
“어머, 그게 티나요?“
“하하 물론이죠, 얼굴에 써놓은거 같아요. 나 호기심으로 가득찼음!“
“에이 - 거짓말“
“진짜예요-“
규민이 웃는다. 마치 봄바람이 살랑이듯.
“아연씨, 전에 만났던 남자얘기해줘요.“
“그런건 얘기하는거 아니라고 했어요!“
“하하 ,난 괜찮아요-“
규민의말에 한참을 고민하던 아연은 고개를 끄덕인다.
“자신의 감정에 무딘사람이였어요. 아니다 - 자신의 감정을 표현 못하는 사람이였죠.
안하는게 아니라 못하는사람. 못하다 보니까 안하게 되는 그런사람.
나와 자신의 목숨까지 바꿀수 있는 사람이였어요. 비가오던 한날은 내가 참 많이 아팠어요.
쉬지않고 일해서 인지 ,연달아서 꾸는 악몽덕에 몸이 많이 약해져 있었나봐요.
그런데 그사람 ,새벽에 다리를 절뚝거리면서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헤치면서 왔더라구요
품안에 약을 꽉 안고서 젖지않게 - . 횡단보도가 앞에 있는대도 불구하고 그냥 도로를 뛰었대요.
쏟아지는 비때문에 차는 그사람을 보지 못했고.“
아연과 나란히 걷던 규민은 그자리에 멈춰 서버렸다.
“아 ,거봐요 - 안할꺼라고 했잖아요“
규민의 눈치를 살피곤 고개를 젖은 아연.
와락 -
“정말 아연씨 말대로 안들을껄 그랬네요“
“.....“
규민의 품에 안긴 아연은 고개를 숙여 규민의 품안에 기댄다.
“나도, 할수 있어요 그런일-, 아연씨를 위하는 그런일.“
두근두근-
“규민씨, 나 말예요.. “
“응, 얘기해요 -“
“ ... 아니예요“
‘ 결국은 .. 그사람에게 돌아가게 될지도 몰라요 .. 그렇게.. 될지도 모르니까.. 자꾸 이렇게 흔들지마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