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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밤 꿈에 나온 아기...(사랑하는 사람에게 정말 잘합시다. )

못난 아빠~ |2006.04.03 21:33
조회 1,209 |추천 0

오늘밤 꿈에 나온 아이가 있습니다.

꿈을 꾼줄을 아는데 꿈의 내용은 전혀 기억이 나질 않네요.

세상 빛 한번 보지도 못한 그아기...

 

저는 27살 남자 입니다.

군대를 마치고 알바를 하다가 복학을 위해 알바를 마치고 쉬고있었는데 무더웠던 여름

한친구의 전화에 친구가 아는 여자들과 조인으로 여름 바닷가에 놀러갔다가 만난 그녀...

그녀는 직장 생활 중인 나보다 두살 많은 여자.

그리고 전 2학년 2학기 복학예정인 학생의 사랑은 여기서 시작 되었습니다.

안산에서 익산까지는 버스타고 2시간 40분, 기차타고 좌석 버스타면 3시간 1분 가량 걸리는 거릴

정말 사귀는 근 2년 동안 한번 제대로 거르지 않고 매주 서로 올라가고 내려가고 사랑을 키웠습니다.

남자인 날 지켜주겠다면서 학생이어서 익산에서 자취를 하는 우리집에 내려오면 베게 두개를 둘사이에 끼워넣고서 한다는말 ""내가 너 졸업 하기 전까진 지켜준다"" ㅋㅋ~*

도데체 누가 참고 있는줄도 모르고...

터프한 그녀는 한번 맘먹으면 무슨일이라도 해버리는 무서운 여자였다.

하루는 학교에서 술을 먹고 술김에 전화해서 자는 그녈깨웠다. 보고싶다고...

갑자기 울음을 터트리는 그녀. 한시간 반후 택시타고 그녀가 왔다 새벽 3시에...

정말 무서운 그녀 ㅋ

그렇게 큰 사랑을 서로에게 확인시켜 주며 사귀고있던중 대학3학년을 마칠 기말고사때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들었다.

못난 절 만나 그녀가 원치 않던 임신을 해버린것...

무서웠을건데 무지 침착한 목소리로 나에게 전화해서 어떻게 할거냐고 묻는다.

정말 미안하지만 10분만 시간을 달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그녀에 대한 나의사랑과 바로앞 2년 후정도의 날 생각했다.

그리고 전화를 다시 했다. 실제론 4분쯤 걸린것 같다.

낳자고 했다. 나 이제 대학 4학년 올라가 일년만 참아줘~ 아이는 잘모르겠지만 그녀에 대한 내 사랑

만은 확실했기에 내린결론... 그녀도 많이 걱정은 했지만 내뜻에 따르길 하고 조금씩 계획을 세웠다.

200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 난 집에 올라갔다.

다들 즐거운 크리스 마스 이브날 우리집은 초상집 같은 분위기 였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우리 아버지와 아들없인 못살것 같은 어머니 아버지에겐 맞아 죽을것 같았고

어머닌 그대로 쓰러지실줄 알았는데 어머니와 아버지를 거실에 불러놓고 커피한잔을 타드리고 20분가량 고민끝에 말했다. 의외로 침착해지시는 부모님 어떻할거냐고 낳는건 둘째치고 우리둘이 사랑을 확인하시는 부모님이셨다.

그리고 그다음날 여자친구가 우리집에 와서 인사를 드렸다.

그렇게 여자친구 집인 전남 광주에 가서도 말씀을 드리고 바로 상견내 날짜를 잡고 결혼 날짜까지 잡았다. 2005년 3월 12일... 우린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도 어쩔수없이 우린 주말 부부로 지낼수밖에 없었다.  장인어른이 안계시고 장모님께서

아프셔서 장모님께 돈을 붙여 드려야 했기에 생활력 강한 이제 와이프인 그녀는 일할수있을때 까지

직장을 다닌다고 매일 말하곤 했었다.

연예하듯 결혼 생활을 하고있었다.

8월 14일로 통보를 받는 아기의 예정일 하지만 난 그아일 5월 말에 볼수밖에 없었다.

도서관에서 친구들과 자격증 공부를 하던중 저녁을 먹을려 친구들과 나와서 저녁을 먹고있는데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다.  펑펑 울다가 잠긴 그목소리로...

무슨일이냐고 계속 다그치면 물어보는데 그녀가 그랬다. " "우리 애기가 심장이 안뛴대""

너 병원 갔다왔어?? 물어보니 나도서관에서 공부해서 그냥 말없이 퇴근후에 갔다왔단다.

가는 날이 아닌데 3일전부터 뱃속에서 놀던아기가 안놀아서 가본것이였다.

준비 되지도 못한 철없는 부모를 만나서 세상 빛 한번 보지도 못한 아기가 만7개월 만에 죽은 것이다.

밥먹다말고 친구들에게 가방을 부탁 하고는 막차를 타고 안산으로 바로 올라갔다

올라가는 차에서 아버지께 전화를해 말씀을 드리는데 나도 모르는 눈물에 울먹이는 말로 말을 했다.

아버지가 떨리는 내목소리 때문에 무슨 말인지 잘못들으셨는지 계속 해서 되묻는다.

온몸이 몸살 걸린듯 떨리고 이가 서로 부딧히기만 할뿐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아버지께 말씀을 드렸고 내가 와이프 집에 도착했고 그녀는 내품에 그동안 참았던 울음을 하염없이 토해내고 있었다. 그후 좀있다 부모님께서 오셨고 어머니는 와이프를 걱정하며 토닥이며  또울었다.

아버지는 날데리고 나와 근처 큰병원이 어디냐 물으시고 나와같이 병원에 가서 예약을 했다.

우리들 걱정에 부모님은 집에 내려가시지도 않고 근처 숙박 시설에서 주무시고 다음날 오셨다.

다같이 병원에 가서 이것저것 검사를 받고 입원을 했다. 

유도분만이란것으로 아기를 낳는것과 똑같이 해야한단다. 아기의 죽음은 아기를 낳고난후 해부를 해봐야 한다고 해서 아직 알수가 없는 상황에 큰 대학병원 입원실엔 우리와 같은 환자들이 정말 많았다.

힘들게 아기를 낳아도 안아볼수도 없고 울음소리도 들을수없고 그대로 화장의 해야하는 아기...

그곳에선 힘들에 아기를 낳은 산모들이 웃는곳이 아니라 우는 곳이였다.

계속 시간때마다 진통을 확인하고 주사를 놓고 산모를 테스트 한다.

오래걸리면 3~4일이 걸리기도 한다는말에 한없이 이고생 시킨 죽은 그아이가 밉기만 했다.

그날 밤엔 진통때문에 잠도 못자는 와이프 손을 잡고 뜬눈으로 밤을 샛다.

다음날 아침 까지도 점점 진통시간은 짧아지는데 의사들은 아직 멀었다고만 한다.

도무지 입맛이 없어 아무것도 못먹고있는데 같이 계신 어머니 걱정에 근처 설렁탕집에 가서 포장을

해가지고 왔다.

어머니는 아픈사람도 힘들지만 같이 있는사람도 힘들다며 자꾸 먹으라 하신다.

와이프 옆에서 설렁탕을 뜯어 한번먹고 와이프를 쳐다보는데 진통으로 땀을 흘리면서 인상을

쓰는 와이프를 보는데 입속에 있는 밥알들이 갑자기 큰 바위가 된것 처럼 목구멍에 걸려 넘어가질

않는다.  손에 들고있는 설렁탕에 나의 눈물의 한방울씩 떨어지는데 와이프는 아픈 진통에서

힘들게 웃으면서 나 괜찮으니 한번 더 먹으라고 한다.

도저히 와이프를 쳐다보면서는 목에 넘길 자신이 없기에 뒤로 획돌아서 국물과 함께 벌컥 벌컥

마셔버렸다.

소금 간도 하지 않은 설렁탕은 나의 눈물로 더욱 싱거워 졌는지 아무맛도 나질 않았다.

그리고 15분이 지났을까?? 와이프가 신음 소리 한번 내지않고 참고있던 진통을 한계에 다달았는지

다문입사이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30분에 한번씩 오던것이 20분 10분 5분 점점 가까워지고 계속 해서 오는 점점 강한 진통에 와이프는

힘들어 아며 이를 더욱 악물었다.

갑자기 옆에있는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난 그손을 잡았다.

한번 진통이 올때마다 더욱 꽉 내손을 잡고 온몸을 오르리고 펴질 못한다.

이젠 띄엄띄엄 오던 진통도 안오는건지 찌그러진 와이프 얼굴은 펴지질 않고 계속해서 다문 입사이로

신음소리만 새어나올 뿐이었다.

난 잠시 손을 놓고 의사를 불렀고 의사는 좀 더기다려야한다고 했다. 좀있으면 낳을것이라고...

그리고 돌아서서 나가버렸고 난 다시 와이프 손을 잡았는데 진통이 왔는지 내손을 꽉잡는다.

그리고 갑자기 다문 입을 벌렸다. 한번도 큰소리로 아픔을 호소 하지 않았었는데 도저히 못참았는지

비명소리와 함께 내손을 더욱 쎄게 잡는다. 

난 와이프의 손을 잡고 눈을 마주보고 연신 미안하다 좀만 참아란 말만 되풀이 하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와이프의 비명 그 짧았던 마지막 비명소릴를 내고는 와이프의 얼굴이

갑자기 펴졌고  그리고는 나에게 자기야 나 뭐나왔어. 똥쌌나봐!!!

이러는 것이다.  걱정하지마 내가 치워줄께!! 이말과 함께 덥고있던 이불을 재쳤다.

와이프의 다리사이엔 죽은 핏빛의 빨간 덩어리가 있었다.

너무 놀라 지나가던 간호사를 불렀고 갑자기 5명쯤 되는 의료진들이 달려왔고 와이프를 데리고

어디로 가는 것이다.

제일 뒤로 가는 어느 간호사인지를 붙잡고 물었다.  저사람 괜찮은 거죠??

살짝 미소를 띄우며 수고하셨어요 하며 뒤돌아서 가버린다.

짧았으나 정말 길게 느껴졌던 2틀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지나가고 갑자기 속이 이상해져 화장실에가서

아침에 먹은 설렁탕을 다 쏟아버렸다.

그리고 서있을 힘도없었는지 화장실 그안에 주저 않아서 마지막 울음을 터트렸다.

 몇십분이 지났을까?? 어머니께서 날 부르셨다.

입원실을 옮겨야 하니 짐옮겨야 한다고 ... 그리고 우린 와이프와 안정실로 옮겼다.

힘들었던 2틀 와이프는 내얼굴을 보며 웃음으로 답했고 힘들었지?? 고맙다는 것이다.

당신이 옆에있어서 고맙단다.

바보 자기가 더 힘들었으면서 자기가 더 울고싶으면서 자기가 더 아팠으면서...

난 속으로 생각하며 미소로 대답을 해주었다. 꽉잡은 손을 바라보며 절대 이손을 놓지 않을거라

다짐 또다짐했다.

그리고 2틀을 더입원하고 우린 퇴원을 하게되었다.

회사엔 병가휴가를 내고 3개월정도 우리집에서 몸조리를 하면서 쉬고있는데 매일 악몽을 꾼다며

무섭다고 내가있는 익산으로 내려와 조그만 자취방에서 같이 지냈다. 함께 학교 캠퍼스를 돌면서

우리 아기 태어나면 유모차에 태우고 캠퍼스를 돌아다니는 나의 작은 꿈은 사라졌지만 지금 잡은

와이프의 손을 절대 놓지 않으리란 다짐을 가지게 해주고 우릴 묶어준 아이를 이젠 감사하며

효자였을 거라 생각하게 되었다.

그렇게 빛한번 못보고 간 아기가 한없이 미웠을때도 있지만 재롱부리다가 떠나보낸 일보다 훨씬

다행스런 일이라는 어머니의 말씀에 이젠 그아이에게 감사하고 있다.

오늘 그아이가 꿈에 나왔어요 어떤꿈이었었는지 그아기가 어떻게 생겼었는지 아무 기억은 안나지만

그래도 잊지 않고 내꿈에 나와주니 고맙네요 그아기 몫까지 다시 태어날 아기에게 더욱 잘 할겁니다.

지금 와이프는 다시 임신하여 5개월째 접어들었다.  난 대학을 졸업하고 신혼방을 구해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그때 해주지 못한것까지 열심히 잘해줄려 하는데 잘 안되네요.

정말 고맙고 사랑 하는 만큼 누구보다 행복 하게 해줄려 다짐 합니다.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곁에 계시다면 저처럼 힘들고 깨닫기 전에 다시한번 그사람이 나에게 어떤 존재인지

확인하고 그사람에게 나의 모든사랑을 보여주는 사람 되세요~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니까요

더큰사랑을 받길 원하면 더큰사랑을 주세요 나에게 더큰사랑으로 되돌아 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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