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변을 삼일후로 미루고, 그 자리를 벗어난 지 이틀 째다.
이제 내일이면 답을 해야 하는데,,
생각을 하다 하다… 이젠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한 순간 돈이 유혹을 할라치면,, 지금까지 힘들게 노력하며 일궈온 일이 걸리고,,,
다시 주변 사람들의 차가운 냉대에 힘이 빠지고…
결국에는 과민해 진 신경때문에 모든걸 포기해 버렸다.
쫒기는 것 같던 조급한 마음에서 벗어나자 오히려 냉정하게 생각을 할 수 있었다.
조용하고 평범하던 내 인생에 끼어든 건 그 두 작자가 아닌가..?
내가 제한받고 강요당하며 끌려다닐 이유는 전혀 없었다.
어느것 하나 바꿀 거 없이 그냥 난.. 내 인생을 살면 된다.
돈? 지위? 물론 끌리지 않는건 아니다.
하지만 그 둘중 하나를 택함으로써 내 자유는 묶여버린다.
이제 생각은 끝이다.
정예후란 사람에게 굳이 내 결백을 확인 시켜야 할 의무도 없다.
난 그냥.. 내 삶을 살면 되는거다.
홍보실로 향하던 중… 정말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났다.
저만치서 미소를 지으며 뛰어오는 김하민을 보자,,,
뒤돌아 뛰어갈까…? 라는 생각만이 머리속을 맴돌았다.
하지만 실천에 옮길 새도 없이 거리는 가까워졌고,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일은 전혀 아니었다.
"란아씨!! 좋은 오후죠?"
"네. 그러네요. 저기 제가.. 지금 급히 가야할데가 있는데.. 이만 실례할께요. 다음에 뵈요."
지난번 일도 있고 해서, 최대한 정중하게 그를 지나쳤다.
"어디 가시는데요?"
"홍보실에요. 회의가 있거든요."
"아하! 그럼 홍보실까지 같이 걸어요. 제가 아시다시피 부모덕에 남들보다 시간이 좀 많이 남거든요~"
씨익 웃어보이며 말하는 그를 보자, 지난번에 했던 말이 생각나 민망해진다.
더불어 좌절감까지 밀려오는건…… 홍보실이 한층아래… 그것도 복도끝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리라.
"란아씨. 오늘 저녁에 시간 어때요?"
"바쁜데요."
"에이~ 그러지말고 오늘 시간좀 내주세요. 너~무 가기 싫은데 꼭 가야만 하는곳이 있거든요? 거기에
란아씨가 같이 가준다면 그리 싫지만도 않을것 같은데…"
이남자… 안본 사이에 좀.. 뻔뻔해졌다.
"죄송하지만…"
그때 하민의 핸드폰이 요란스레 울렸고,,,
"에이.. 누구야? 나 지금 바ㅃ…… 예후…형…?.. !!!!... 어…그래 오랜만이지… 응…으응… 미안… 좀
바빴거든… 응? 어.. 그렇지.. 가야지 뭐.. 그래.. 이따봐…"
누구??? 예후…?? 분명 예후라 그랬어.. 이따 보자고…?
"저기..란아씨.."
"좋아요!! 같이 가죠. 어디서 만날까요?"
순간 당혹스러워 하며 머뭇거리던 하민은,, 어깨를 으쓱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한다.
"6시. 정문에 차 대기시켜 놓을께요."
"알겠어요."
"그럼.. 이따봐요."
오늘 저녁이면 둘이 무슨 관계인지 알 수 있을거야. 그 사람은 누군지… 왜 나에게 그런 제안을
했는지도…
웃으며 손을 흔드는 하민에게 가볍게 목례를 한 후 걸음을 재촉했다.
"저기.. 이봐요."
"김하민 입니다."
"네.. 좋아요. 하민씨. 지금 저더러 저기에 들어가 가만히 앉아서 화장받고 골라주는 옷 입고… 그래야
한다는 건가요? 왜요? 전 하민씨의 인형이 아니에요! 얼마나 대단한 곳인지는 몰라도 이대로 가겠어요."
"네네.. 알아요. 란아씨가 제 호의 받기 싫어한다는 거.. 하지만. 오늘 저와 동행하기로 한 건 순전히
란아씨 의지잖아요. 거긴 이… 차림으론.. 들어갈 수 없어요."
하민은 곤란하다는 듯 란아의 투피스를 흘끔거리며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물론 란아의 행색이 초라하다는 뜻은 아니다.
지금만으로도 하민에게는 눈부실만큼 아름답다.
다만 그들 사이에서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수근거림과 질타의 대상이 될 란아를 볼 자신이 없다.
최고여야 한다. 그 어느 누구도 아래로 내려 볼수 없게끔…
오늘 란아와 같이 나선다면 누구든 자신의 뜻을 확실히 알 수 있을것이다.
소중한 이들을 잃을지도 모르지만… 한동안 가슴시리겠지만…
이제는 분명히 할 때가 됐다.
머리가 안된다 하여 가슴을 누르고 눌러봤지만… 끝끝내 차고 나오는 마음은 자신조차 어쩔수 없다.
란아는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한동안 멍하니 바라보았다.
거울속에서 놀란듯 자신을 마주보는 여인은 내가 아니게만 느껴진다.
이렇게까지해서 간다는게 탐탁치 않아 돌아가려 했지만, 예후에 대한 궁금증이 발목을 잡았다.
그래서 응했던 일인데…… 예상외로 기분은 좋다.
왠지 공주님이 된것 같고, 붉은 양탄자 위를 걸어야 할 것만 같다.
이 세상에 예쁜걸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있겠는가…?
이리 저리 거울속 자신의 모습을 둘러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역시 돈의 힘이란 무서운거다.
"작은 사장님~ 여기좀 보세요~ 어머~ 너~무 이쁘죠?"
하민은 들려오는 소리에 읽고있던 신문을 내려놓고 고개를 들었다.
아까부터 자꾸만 칸막이 너머로 눈이가고 귀가 가는통에 억지로 신문을 집어들어 애써 의연한 척 했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보여지는 란아를 보자 벌떡 일어나 입까지 벌리는 자신을 느낀다.
까맣고 길던 생머리는 볼륨감 있게 옆으로 틀어올려 귀여워 보이지만 양귀와 목 뒤로 살짝 빠져나와 웨이브진 애교머리는 여성스러워 보이게도 했다.
가녀린 목과 우유빛 살결을 더 돋보이게 하는 연분홍의 실크 드레스는 투명한 어깨끈으로 인해 아슬아슬하게 걸쳐진 듯 했고 가슴에서부터 허리까지 타이트하게 조여지던 라인은 아래로 갈수록 하늘거리며 그녀의 몸을 부드럽게 감싸고 있었다.
그 아래로 샌들을 신은 예쁜 발까지 보인다.
"흠..흠… 다 보셨나요?"
그녀의 말에 화들짝 놀라 벌게진 얼굴로 시선을 들었다.
옆에 있던 마담과 디자이너들이 작게 웃었고 그녀도 예쁘게 웃어보인다.
아… 이대로 둘만이 있는 곳으로 갈수만 있다면… 세상 그 무어라도 그녀에게 줄 수 있을것 같았다.
"너무… 너무나 예쁜데요? 하늘에서 떨어진 선녀… 아니 여신 같아요."
"풋. 너무 띄워 주시니 어지럽군요."
자신이 내미는 손을 잡으며 살짝 농담하는 그녀는 아까완 달리 기분이 좋아보였다.
차에서 내려 올려다 본 집은… 저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만큼 으리으리 했다.
왠지 위축이 되는 자신을 느끼며 양팔을 감싸안았다.
"추워요?"
"아뇨. 이 볼레로를 입고 추울 사람이 있을까요?"
애써 웃어보이며 흰색으로 염색된 밍크 볼레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의상실을 나오기 전... 하민이 걸어준 목걸이와 귀걸이를 생각했다.
휴… 대체 얼마를 몸에 감고 다니는 거야..? 뭐 묻을까.. 흘릴까… 엄청 신경써야겠군..
이래도 되는건지… 불안하고… 걱정이 되지만… 뭐 오늘 하루만 호사스러워 보자고 애써 자신을 달랬다.
자신의 손을 잡고 걸어가는 하민을 뿌리쳐야 하는데, 이상하게도 오늘은 마법에 걸린듯 하다.
정원을 지나 집안으로 들어간 란아는 순간 영화속에 떨어진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보통의 집이라면 거실이라 불리는 곳은 거의 홀 수준이었고 늘어선 테이블마다 고급스런 음식이 가득했다.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모여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내노라 하는 디자이너 들의 옷을 걸치고 있었다.
자신의 옷 중에서 꽤 비싼축에 속하는 그 정장을 입고왔더라면 정말 큰 낭패였을 것이다.
음식을 나르는 사람들의 의상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란아는 안심하는 자신을 보며 처음으로 속물 근성을 확인했다.
"그런데 여기가 어디에요? 지금.. 무슨 파티중인가요?"
작게 속삭이며 하민에게 물었다.
"우리 할아버지 생신이세요."
"네???"
맙소사.. 그런줄 알았으면 절대 안왔을 것이다.
집안 사람들도 많을텐데… 이런…일이 더 커지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잠깐만 여기서 기다려요. 할아버지께 먼저 인사드리고 데리러 올께요."
한쪽 테이블에 나를 세워두고 멀어지는 하민을 보며… 그런 그에게 인사를 건네고 내 쪽을 흘끔거리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도망치자…]
막 문쪽으로 돌아 실행에 옮기려는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섰다.
순간… 숨이 멎는 줄 알았다.
정… 예…후…그다.
어차피 오늘 만날 각오로 왔기에 이렇게 놀랄 일도 아닌데…
이상하다… 이상하게 숨을 쉬기가 힘들다.
누군가 심장을 꼭 쥐고 있는 것처럼 숨 쉬기가 너무 힘들다.
마치 정예후가 안아올린 저 여자에게 질투라도 하듯이…
두 팔로 안고 들어온 그 여자와 이마를 대고 웃느라 아직 이쪽은 보지 못했다.
피해야 한다…
하민의 할아버지 생신엔 무슨 생각으로 왔냐며 다그칠 게 뻔하다. 내가 몰랐더라도 저남잔… 그런거
눈하나 깜짝 안할 것이다. 몰아부치며 다그치겠지… 또 돈벌레보듯 대하겠지… 그런거… 당할수 없다.
절대.. 그럴 수 없어.. 저 여자 앞에서…절대..
방향을 바꿔 제일 가까운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서재로 보이는 그곳은 다행이 아무도 없었다.
우선… 생각을 해야해. 어떻게 이곳을 빠져나갈지….
창문…? 아니야.. 이 옷을 입고 저길 통과했다간 온전하게 돌려주지 못할거야.
그런데… 덥다.
너무 놀라 체온상승이 됐는지 얼굴도 화끈거리고 식은땀마저 난다.
거추장스러운 겉옷을 벗어 버리고 후들거리는 다리를 위해 쇼파로 다가갔다.
그러다 못 볼 꼴을 보고 말았다.
분명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쇼파 뒤 바닥에 엉켜 한참 키스중이던 두 남녀… 게다가 남자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오… 정말… 오늘 일진이 왜 이러는지…
"아. 죄송해요. 하던거 계속 하세요."
저 사람들이…!!! 그런거는 집에가서 해야지… 남의 생일잔치에 와서 대체 뭐하는 짓이야!!
살 떨려 죽겠는데… 대체 어디로 피하라고…
살짝 문을 열어 밖을 내다보니… 없다.
예의상... 방금 나온 방의 문은 닫아주고…
재빨리 현관 문을 향해 뛰는데 2층에서 하민과 얘기하며 걸어내려오는 예후의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야~!!
할 수 없이 베란다 문을 열고 뛰어나갔다.
난간 때문에 더 이상 갈 데도 없지만…
1층이라고는 해도 현관으로 들어설때 계단이 있어 그런지 바닥과는 꽤 거리가 있어 보였다.
바닥을 보며 한숨을 쉬는데...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지… 무슨 첩보 영화 찍는것도 아니고….
왜 이런일에 연관되어 힘들어 지는건지… 알 수가 없다.
에휴…됐다.. 경치 구경이나 하자.. 내가 언제 또 이런곳에 와보겠어. 안그래?
슬퍼지지 말자. 내가 낙천적인거 빼면 뭐 있겠어..
드르륵.
갑자기 열린 문 때문에 화들짝 놀라 돌아보았다.
그 곳엔 단아하게 생긴 중년의 여인이 서있었고... 주위를 둘러보다 문을 닫는다.
"한란아씨..?"
"네.. 제가 한란아인데요… 누구시죠?"
"음.. 난 하민이 엄마에요."
머리에서부터 발 끝가지 쳐다본 후 말을 잇는다.
"소문으로는 많이 들었어요. 하민이가 많이 좋아 한다죠? 우리 하민이 약혼자 있는건 알죠?"
약혼자..? 아니.. 그게 문제가 아니고.. 뭔가 단단히 오해 하고 계신가보다.
"저기.. 말씀중에 죄송하지만… 하민씨와는…"
"우선 내 말부터 들어요. 시간이 없거든요. 서로 좋아한다면 말리진 않겠어요. 단, 하민이와 결혼은
할 수 없어요. 집안끼리 정해놓은 약혼자니까.. 결혼은 생각하지 말아요. 결혼 후에도 문제 되지
않게…. 그러니까 걸리지만 않는다면 만나는 거 막을 생각 없어요. 우리 하민이가 란아씨 많이
좋아하는거 알아요. 란아씨 얘기할 때 눈이 웃거든요. 부모 입장에서 자식의 행복을 막을순 없죠.
내말 무슨말인지 알겠죠? 결혼에 지장 없게만 한다면 대가로 후하게 줄 수도 있어요. 잘 생각하고
판단하길 바래요. 이런.. 들어가 봐야겠네. 다음에 봐요."
자기 할 말만 하고 들어가 버린다.
"참… 나… 정말… 화나네… 사람을 어떻게 보고… 뭐??? 걸리지만 않으면 만나도 된다고…? 하!!
정말… 사람 비참하게… 돈 많은 사람들은 돈이면 다 되는 줄 아나…? "
"비참한 사람… 여기 한명더 있네요.."
!!!!!!!!!!
혼자가 아니었다.
어쩜… 나 그렇게 둔하지 않은데…. 같은 공간에 누가 있는지도 모르다니…
것도 두 번씩이나…
"누… 구…?"
"일어나서 인사하고 싶지만 보다시피 몸이 이래서…"
말소리가 들리는 구석으로 다가가니… 아까 정예후의 팔에 안겨 등장하던 여인이 의자에 앉아 있었다.
"누구시죠..? 여기서 뭘 하는 거에요?"
"난… 정예은이라고 해요. 아까 아주머니가 말한 그… 약혼자죠. 난… 난… 다리가 불편해서 사람이
많은 곳은 싫어해요. 그래서 혼자 바람을 쐬고 싶었어요… 오빠가 여기 데려다 줬는데… 그런데…
당신이 들어오고… 아주머니가… 아주머니가…. 흑흑…"
방금전까지 당당해 보이던 여자는 말끝을 흐리더니 급기야는 울음을 터트렸다.
세상에… 약혼자라고…? 그럼… 그럼… 그 지독한 얘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다 들었단 말야…?
제길… 정말 욕 나온다.
정예후의 팔에 안겨 들어오던 모습이 자꾸 생각나 왠지 싫은 여자인데… 그렇다고 우는 모습을 보고도
못본척 그냥 나갈 수는 없다.
다가가서 살며시 등을 토닥여 주는데 내 가슴팍에 얼굴을 묻으며 이젠 아주 통곡을 한다.
안돼!!! 이렇게 크게 울면 누가 들어온단 말야!!!
"쉬~~~ 쉬~~~ 됐어요… 그만 울어요."
"엉엉… 이럴 수는 없어요.. 아무리 내가 못 걷는다지만… 그래도…. 그래도… 아주머니가 저한테
이럴 줄은 몰랐어요.. 엉엉… 엉… 어렸을때 얼마나 예뻐해 주셨는데…. 난… 정말…. 정말… 엉엉엉…"
"쉬… 뚝…. 그만 울어요. 김하민씨 좋아해요?"
"… 네…난… 오빠밖에 없어요. 오빠 말고는 생각 할 수도 없어요. 당신도 오빨 좋아하죠? 훌쩍.."
"저기.. 뭔가 오해가 있는거 같아요. 난 김하민씨와 아무런 관계도 아니에요. 그저.."
"정말요???? 정말 인가요?? 믿어도 되요??"
거짓말 같이 표정이 변하며 환하게 웃는다.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니 여인이 아니라 소녀같아 보였다.
"네. 그런데…. 저기… 정예후씨랑은 어떤 사이에요…?"
아까부터 궁금했던 속의 말을 겉으로 뱉어냈다.
"정예후씨요…? 오빠에요."
"친… 오빠..?"
"네."
그 말에 왜 안심이 되는지… 정예후… 정예은… 이름도 비슷하건만… 왜 알아채지 못했는지….
자신이 우습기만 하다.
"저기… 다리… 다친건가요?"
"… 네… "
"불편하겠어요. 빨리 나아지길 바래요."
"… 이 다리… 평생 나아질 수 없어요. 이제 다시는 못 걷겠죠… 아마.. 그래서 아주머니도 제가 탐탁치
않아졌나 봐요."
!!!!!! 이런… 그랬구나…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제야 모든게 이해가 간다.
정예후가 필사적으로 날 떼어내려 했던거…
자기 동생과 김하민을 가로막는건 어떻게든 떼어놔야 했겠지…
집안에선 확정지어진 결혼이라 하더라도 김하민 본인이 싫어지면 언제든 틀어질 수 있으니까…
남의 연애사에 끼어들어 왈가왈부 한다는건 웃기는 짓이지만… 그 이유일 거라고는 생각도 안했지만….
다리가 불편한 동생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다.
게다가 평생 걸을 수 없는 동생이라면…
이렇게 좋아하는게 느껴지는데…
갑자기 눈 앞의 정예은이 가엽게만 느껴진다.
"걱정하지 말아요. 꼭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꺼에요."
살며시 안아주며 다독여 주었다.
"고마워요. 그리고 다행이에요. 난 사람 미워하는거 싫거든요. 하마터면 당신이 미워질 뻔했어요."
배시시 웃으며 마주 안아주는 예은 때문에 란아는 묘한 기분을 느꼈다.
♬♪♩♩♬♪♩♬♪♬♪
갑자기 벨소리가 울리고…
"여보세요…어.. 오빠. 응.. 괜찮아. 조금 더 있다 들어갈래.. 아니.. 시원하고 좋아. 응."
통화 내용을 들어보니 정예후다.
맞다.. 언제든 동생을 데리러 올 수 있다는 걸 생각 못했다.
빨리 이곳을 벗어나야 하는데…. 문으로 나가면 왠지 마주칠 것만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
미치겠네…
다시 한번 난간 밑을 힐끔거렸다.
뛰어내릴까…? 아… 바지만 입었어도…
에라… 모르겠다.
금방이라도 문을 열고 나올것만 같아 마음이 급해졌다.
"저기.. 예은씨…? 나 이만 가봐야 해요. 음… 잘 지내요."
그리고는 훌쩍 뛰어내렸다.
"아!!! 이봐요!!! 문은 이쪽인데….괜찮아요?"
나도 안다고…
"네… 괜찮아요. 안녕~"
그래… 괜찮다.. 발목이 조금 시큰거리는거 하고… 옷이 좀… 더러워진거 빼고는….
한시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기 위해 정원을 내달렸다.
입구에 다 다랐을 무렵....
나무뒤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이 팔뚝을 잡아채고는 끌어당겼다.
너무 놀라 소리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남자의 얼굴을 보고는 굳어버렸다.
눈을 가늘게 뜬 채 위아래로 훑는 정예후의 시선에 온몸이 떨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