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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그들만의 슬픔1

박범성 |2002.11.06 16:21
조회 383 |추천 0

  하얀 담배연기가 아직 꽃샘추위를 몰고 다니는 바람에 휘감겨 날아갔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만남, 떨어져 있던 시간만큼 어색했던 시간, 그 빈 공백을 채 메우지도 못하고 정을 나누기도 전에 헤어져야 했던 원망스럽기만한 시간. 분명 모든 것을 느끼고 만지고 서로 살갗까지 비벼 되었는데도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았다.

정말 만났던 것인지, 꿈속에서조차도 사라버렸던 그들을 정말 만났던 것인지…….

  "자네 아직도 그러고 있나?"

  "……."

  "허긴 그럴 만도 허지. 어디 그게 보통 일이었나! 자넨 운이 좋은 거야. 평생가도 못 만나고 저승 가는 사람이 태반인데……."

  옆집에 사는 김씨였다. 물론 그도 나와 같은 처지였지만 그는 이번에도 만나지 못했다. 언제 만나게 될지도 모르는 만남을 기다리는 사람들. 그들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다. 그냥 단 한순간만, 단 일초라도 그들의 모습을 보는 것. 이것이 그들이 바라는 단 한가지였다. 하지만 세상은 그것조차도 그들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그것은 그들만의 슬픔이라며…….

 

  내가 그 일을 겪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서서히 희어 가는 머리카락을 보며 세월의 덧없음을 한탄하거나, 소일거리로 하는 구멍가게일, 그리고 손자들의 재롱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전부였던 내게 어느 날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편지 겉봉에는 대한 적십자사라는 글자가 써 있는 봉투 안에 든 것은 이산가족 생사확인서였다. 북측에서 나를 찾는다는 내용이었다. 누가 나를 찾는 걸까, 가만히 내용을 읽던 나는 놀라서 그만 편지를 떨어뜨리고 말았다.

  어머니.

  언제부터인가 내 기억 속에서 사라진 그 단어가 그곳에 써 있어서였다. 얼굴조차도 기억나지 않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가 나를 찾는다는 말이었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전화기를 들고 전화번호를 눌렀다.

 

  "네 이놈 민석아! 냉큼 일어나지 못해! 일찍 나무 한 짐을 해놔야 아랫마을 김 씨네 논에 나갈 거 아니냐!"

  아직 이슬이 채 마르기도 전에 민석이보다 먼저 일어나신 할아버지의 호통이 시작되었다. 언제나 아침마다 듣는 소리지만 들을 때마다 민석의 입에서는 불평이 튀어나오곤 했다. 그런 민석의 불평에도 할아버지는 아랑곳하지 않은 채 마당 한쪽에서 나무하는 데 쓸 도끼를 숫돌에 갈며 다시 한번 호통을 쳤다. 그런 민석과 할아버지의 밀고 당기는 싸움 아닌 싸움은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소리였다.

  민석이 살고 있는 곳은 휴전선 부근의 한 조용한 산간마을에서도 좀 떨어진 곳이었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왕래가 적어서 아침이면 부지런한 새소리가 들렸고 밤에는 부엉이의 울음소리를 자장가 삼아 잘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민석은 할아버지와 단 둘이서 살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이 한 명 있다는 것을 할아버지에게 들었지만 민석에게는 희미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었다. 아마 할아버지가 말을 안 했다면 민석이는 알지도 못했을 것이었다.

  할아버지를 제외한 가족들은 6·25때 헤어져서 아직 생사조차도 알지 못했다. 뭐 그렇게 헤어진 다른 사람들도 다 마찬가지지만…….  6·25가 터졌을 당시 민석은 3살인가 밖에 되지 않아서 부모님이나 형의 얼굴이나 모습은 기억하지 못했다. 가끔 할아버지가 얘기해 주기는 하지만 얘기만으로는 어떤 모습인지 상상이 되질 않았다.

  "이놈아! 빨리 나가지 못하냐! 원- 젊은 놈이 뭐가 그리 굼뜬지… 쯧…쯧……."

  어찌나 기운이 좋은 지 그 나이에도 할아버지의 호통소리 하나는 웬만큼 젊은 사람들보다도 더 컸다. 그런 할아버지의 호통소리를 들으며 민석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촉촉한 새벽이슬을 머금고 있는 풀 사이를 헤치며 잔가지를 쳐 낼 때마다 불평불만을 늘어놓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나무 한 짐을 지어서 집으로 내려가면 할아버지는 옥수수에 콩과 보리가 눈곱만큼 들어간 밥을 짓고는 민석을 기다리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지어 놓은 밥으로 아침상을 차려 먹고 나면 빨리 동네로 내려가서 품을 팔아야 했다. 그것이 할아버지와 민석의 생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일거리였기 때문이었다. 언제나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은 맘이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벗어나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자신이 뭔가를 기억하고 있는 시점부터 지금까지 이곳에서 벗어나 본적이 없어서였다. 그렇게 따분하던 일상을 반복하던 민석에게 어느 날 그 일이 다가왔다.

  "지난번에 청석골에서 사람이 여섯이나 죽었다며…."

  "그 뭐이냐? 그 무장공인가 공비인가 하는 것들이 한 짓이라던데……"

  "그것이 사람이 할 짓이여! 그것들은 사람이 아니라니까!"

  김 씨네 논에서 일을 하던 민석은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에 귀가 솔깃해졌다.

  '여섯이나 죽였다니…….'

  청석골이라면 자신이 살고 있는 마을에서도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대체 그 무장공비인가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이기에 그렇게 사람을 죽이는 지 궁금했다. 묻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평소의 내성적인 성격 때문에 민석은 묻지 않고 사람들의 말속에서 무장공비에 대한 말이 나오길 바라며 귀를 기울였지만 사람들은 더 이상 그것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민석은 일을 끝내고 집으로 올라가는 내내 무장공비가 어떤 사람들인지에 대해 생각해 봤지만 결론이 나질 않았다. 결국은 할아버지에게 물어봐야지 하고는 집을 향해 내달리다가 보니 저 앞에서 마을 이장 어르신이 종종걸음으로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 민석은 달리다말고 이장 어르신께 인사를 드렸지만 뭐가 그리 급한지 자신의 인사는 대강 받고는 내려가 버리는 것이었다.

  이장 어르신의 뒷모습을 보던 민석은 어느 새 무장공비인가 하는 사람들의 생각은 잊어버리고 이장 어르신이 뭣 때문에 오셨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집에 도착한 민석은 할아버지가 말씀해 주시겠지하는 생각을 하면서 할아버지를 봤지만 할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일에만 열중하고 계셨다. 잠이 들기 전까지도 무슨 일일까 하며 궁금했지만 물어보지 못한 체 그냥 잠이 들었고 다음 날 아침이 되어서도 무슨 일인지를 듣지 못해 궁금증만 더욱 커진 채 동네에 일을 하러 내려갔다가 이장 어르신을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민석은 이장 어르신이 할아버지를 만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얘, 민석아! 할아버지께서는 언제 내려오신 다더냐?"

  "……."

  갑작스런 이장 어르신의 물음에 민석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자신은 할아버지에게 들은 말이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할아버지께서 아무 말도 없으셨냐? 하긴 내려오란다고 내려오실 분도 아니지만……. 원, 어쩌시려고 그러는지……."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는 데요?"

  민석은 어제부터 일어온 궁금증에 대한 답을 이장 어르신에게 들을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에 찬 목소리로 물어보았다.

  "요즘 무장공비인가 하는 것들이 자주 외딴 집으로 내려와서 사람을 막 죽이고 그런 다더구나. 너하고 할아버지는 마을하고 좀 떨어져 있어서 위험하니 그놈들 잡힐 때까지 만이라도 마을로 내려와 있으시라고 했는데, 영 말을 안 들으시는 구나."

  "그 무장공비가 뭔데요?"

  "뭔지는 나도 잘 모르지만, 저 북한에서 보내는 사람들이라고 하던데……."

  "왜 사람들을 죽인대요?"

  "나도 모르겠다. 그냥 죽인다더라. 그러니까 짐승만도 못하는 놈들이라고 하는 거지."

  이장 어르신의 말을 들은 민석은 곧장 집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도착하자마자 할아버지 방으로 들어가서 이장 어르신에게 들은 말을 하고는 당장 내려가자고 했지만 할아버지는 막무가내이셨다. 절대로 안 내려가신다는 것이었다. 무서우면 혼자 내려가라면서……. 하지만 민석이는 혼자 내려올 수 없었다. 그런 말을 들은 후 집에 있기가 겁이 났지만 그래도 할아버지를 혼자 두고 자신만 내려올 수는 없어서였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지닌 체 며칠이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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