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토요일인데
어떤 이유에선가 머리가 아픕니다.
꿀물이나 한 잔 마시고 일찍 자야겠습니다.
============================== 감기가 오나 ============================
어두운 방 안.
한쪽에 놓인 침상엔
흰 천에 덮인 시신 한 구가 있고
중앙에 있는 수술침대엔 어깨가
앓는 듯한 신음을 흘리며 누워있다.
어깨 - 으..... 으으...
힘겹게 고개를 움직여 주변을 살피는 그.
이곳저곳에 걸려있는 주술적인 문양과
곳곳에 흩뿌려진 처참한 혈흔에
그는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키링..... 키링..... 키링......
그 때 들려오는 섬뜩한 금속음.
난 바퀴 중 하나가 고장 나 덜그럭거리며
위에 놓인 수술도구들을 울리는 드레싱카를 끌고
천천히 무대위로 등장했다.
어깨 - 으윽...! 으으으으....
일순 죽음을 직감한 어깨는
필사적으로 꿈틀거리며
이 소름끼치는 장소에서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그의 몸에 스며있는 마취제는
그에게 깨어있는 것 이상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았다.
박사 - .........
드레싱카를 침대 옆에 세워놓은 난
어깨가 입고 있는 와이셔츠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툭....툭.... 툭..... 하고
무미건조하기 이를 데 없는 동작으로.
어깨 - 음.... 으윽.....!
점점 짙게 느껴지는 죽음의 냄새.
어깨는 힘겹게 한쪽 손을 들어 내 손목을 잡았다.
멈춰...! 라고 목이 터져라 외치고 있는 그의 손.
박사 - .........
난 잠시 그 손을 내려다보다가
잡혔던 손목을 빼내 곱게 원래 위치로 내려놓은 뒤
드레싱카에서 조그만 주사기를 꺼내
손가락으로 두어 번 톡톡 때리고
그의 팔에 찔러 넣었다.
어깨 - 으으으으으으........
이로써 최소한의 방해요인조차 제거한 난
좀 전의 작업을 계속하기 시작했다.
어깨의 와이셔츠를 완전히 풀어헤치고
정체불명의 붉은 염료로
그의 가슴에 마방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모든 준비작업이 끝난 뒤.
난 드레싱카에서 기묘하게 생긴 검은색 단검을 꺼내
머리 위로 높게 치켜들었다.
어깨 - 으으으으으으으!!!
박사 - ..... 나를 원망해라.
어깨 - 으으으아아아!!!
단검이 그의 가슴을 향해 떨어지는 순간
어깨의 처절한 비명소리가 깨어지듯 사라지며
무대는 다시 어둠에 뒤덮였다.
잠시 후. 박사의 방.
난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책을 보고 있는 건지 아니면 다른 생각을 하는 건지
몽롱한 표정으로 팔락팔락 책장을 넘기는
지극히 평화로운 분위기에 무색하게
가운 아랫단에 흥건히 베어있는 붉은 피.
조금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무대 바깥쪽을 힐끔거리며 나타난 선희는
그런 내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선희 - 서... 선생님?
박사 - 아, 은하씨. 일찍 왔군요.
선희 - 괜찮으세요? 옷에 피가...
박사
- 아... 이것 말이군요. 쿡쿡.....
어제 밤에 응급환자가 오는 바람에 그런 것 뿐입니다.
복도에도 핏자국이 좀 있던데... 그건 정리했나요?
선희 - 아 네.... 저... 그럼 그 환자분은?
박사 - 죽었어요.
선희 - 네?
박사 - 죽었다고요.
충분히 충격적일 수 있는 내용을 말하면서
일말의 망설임도, 흔들림도 없는 말투.
그 섬뜩한 이질감에
선희는 어깨를 바르 떨며 두어 걸음을 물러섰다.
선희 - 저....저는 그럼... 이만.....
박사 - 그냥 여기 있어요.
선희 - 아, 아뇨, 밖에 청소를 하던 중이라...
박사 - 그럼 이 방을 먼저 치워줘요.
선희 - 제가 볼 땐..... 깨끗해 보이는데요.
박사 - ..... 치워줘요. 테이블도 좀 닦아주고.
선희 - ....... 아... 네.
선희는 내가 있는 흔들의자로부터
가능한 멀리 빙 돌아
뒤쪽에 있는 탁자로 걸어갔다.
그녀가 끊임없이 내 움직임을 살피며 탁자를 닦는 동안
난 피곤한 얼굴로 책을 덮어놓고
의자에 반듯하게 머리를 기댔다.
잠시 먼 곳을 바라보다 눈을 감는 순간
주위의 모든 공간이 나와 함께 잠에 빠져들 듯
조금씩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나를 비추는 희미한 조명만을 남기고
주변이 모두 캄캄해졌을 때
암울하고 무거운 음악이 흐르며
주위에서 수많은 원령들이 다가왔다.
덩치 - 아파.... 아파......
어깨 - 죽여버리겠어.... 반드시 죽여버리겠어......
김군 - 내 다리 내놔....!! 내 다리~!!
피투성이 누더기를 걸친 그들은
늘어진 몸을 끌고 나의 주위로 몰려들더니
사방에서 내 옷자락이며 팔다리를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박사 - ......쿡쿡쿡...... 또 왔는가.
김군 -내 다리! 내 팔! 네가 가져갔어!
박사 - 킥... 나중에 지옥에 가면... 그 때 돌려줄게.
회계 - 괴로워, 너도 이리 와, 우리랑 같이 가...!
박사 - 못 가. 지금은 안 돼.
회계 - 어서.... 어서 이리 와! 너도...너도 죽어야 돼!
박사 - 못 가! 못 간다고! 모두 다 꺼져버려!!
나의 고함소리와 함께
어둑어둑하던 무대는 일순간에 밝아졌다.
빛을 피해 달아나듯 빠르게 퇴장하는 원령들.
박사 - 후욱....후욱.... 후욱....
남은 것은 거친 숨을 몰아쉬는 나와
그런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선희 뿐이었다.
선희 - ....악몽이라도 꾸셨어요?
박사 - 후욱....후욱.... 난 못 죽어... 아직은... 절대 못 죽어.
선희의 물음에 아랑곳없이
난 서둘러 의자에서 일어나 무대 밖을 향했다.
잠시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보는 선희.
그리고 무대의 불은 모두 꺼졌다.
2막이 시작되었던 숨겨진 방.
난 휘청거리는 걸음으로
흰 천에 덮여있는 시신을 향했다.
박사
- 여보... 무서워. 무섭다고.....
하지만... 당신만 있으면 괜찮아.
내가 꼭.... 무슨 일이 있어도 살려낼 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거의 다 됐어.
당신만 있으면 괜찮아, 당신만 있으면... 당신만 있으면...
난 흰색 천을 조금 걷어
시신의 하얀 손을 들어 뺨에 갖다대고
자기 암시를 걸 듯 끊임없이 중얼거렸다.
그때, 또다시 내 양쪽으로 천사와 악마가 다가왔다.
악마
- 그래~그래! 거의 다 됐어!
어젯밤엔 한 번에 둘이나 해치웠잖아!
박사
- 쿡쿡쿡..... 그래, 이제 정말 얼마 안 남았지.
금방이야. 조금만 더 하면
예전처럼 행복해질 수 있어.
천사
- 아니에요! 정말로 그게 행복이라 생각해요?
이렇게 죄 없는 사람들을 희생시켜 가면서?
박사
- 나... 나도 어쩔 수 없었어.
그건... 그건 내가 아니었던 거야.
나도..나도 무서워! 정말...정말로 무섭다고!!
악마
- 그래서 그만 두려고?
그거야 말로 바보 같은 짓이야.
그럼 지금까지 한 일들은 뭐가 되는 거지?
박사
- 아... 그래. 어차피 돌아갈 순 없어.
이제 너무 멀리 와버렸다고.
지금 돌이키기엔.... 흘린 피가 너무 많아.
천사
- 그런 말도 안 되는.....!
사람들은 점점 당신을 의심할 거야!
박사
- 맞아, 나... 나 이제 어떡하지?
어제도 누군가 내 모습을 본 것 같아!
오는 길에 핏자국이 남았을 지도 몰라!
뭐라고 둘러대지? 뭐라고 해야 하지?
악마
- 이봐, 그 녀석들은 동네 깡패일 뿐이었어.
그런 녀석들 좀 사라졌다 해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고.
박사
- 쿡쿡쿡.... 그래..... 녀석들은 쓰레기였지.
난 좋은 일을 한 거야.
말하자면... 정의의 사도! 그래! 정의의 사도 같은 거지!
천사 - 아니야.... 그건 아니야....
박사
- .....그래서! 어떻게 하라고! 그냥 다 관두라고?
그럼 난! 난 이제부터 어떻게 하는데!
난 떨치듯 자리에서 일어나
대립하는 두 자아 속에 절규했다.
그 사이 아내의 시신에 접근한 악마가
장난치듯 그녀의 손을 슬쩍 들었다 놓았다.
그 순간, 난 무한히 반복되는 부분적분의 수렁에서
치환적분의 가능성을 발견한 것 같은 눈으로
시신을 향해 다가섰다.
박사 - 봤지? 지금.... 움직였어. 살아서 움직였다고.
천사 - 아니야, 이 녀석이 건드린 것뿐이야!
악마
- 뭐? 내가 뭘 건드렸단 거야!
천사가 생악마 잡네!
이거 법치국가에서 이래도 되는 거야 이거?
박사
- ...... 숨을 쉬는 것 같아.
아까보다...아까보다 더 따듯해진 것 같아.
금방이라도 살아나... 내게 입맞춰줄 것 같아!!
천사 - 아니야....아니야.... 그건 당신의 착각일 뿐이야...
박사
- 돌이킬 수 없어.... 마지막까지 가는 거야.
이젠.... 아무도 멈출 수 없어....
이젠 완전히 눈이 풀려버린 나를 보며
천사는 절망적인 얼굴로 무릎을 꿇었다.
악마
- 그래, 멈추지 마. 계속 달려.
집착과 애욕의 광자야.
모든 상황이 기대했던 데로 굴러간다는 듯
메피스토는 싸늘한 웃음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