앉아있던 비취의자에서 일어나 점점 다가오는 그로인해,, 목졸린 신음소리가 새어나온다.
어쩌자고 그는,, 지금 이시간… 여기에 있는 것일까..?
눈을 마주보며 걸어오지만… 자신의 옷차림이 신경쓰이는건 어쩔 수 없다.
무릎까지 내려오는 잠옷 치마가.. 물에 흠뻑 젖어 온몸에 붙어 있을테지…
쳐다보지 않아도 상상이 가기에 얼굴이 화끈거린다.
고개를 숙여 자신의 모습을 확인 하고 싶은데.. 왠지 그의 시선이 따라올까 겁이 나.. 아무 것도 할 수 없다.
그저.. 그의 시선을 잡고 있을뿐…
피곤하지만 잠이 오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같은 지붕아래 잠들어 있을 그녀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째깍이는 시계 초침 소리가 신경에 거슬려 베개로 머리를 감싸보지만, 얼마 안가 숨이 막히고 가슴이
답답하다.
제길!!
잠자기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섰다.
몸이 견딜 수 없으면… 지칠대로 지치면… 정신이 포기하겠지..
수영장으로 들어서 옷을 벤치에 벗어두고 속옷 바람으로 뛰어들었다.
한번.. 두번.. 세번… 끝에서 끝으로 전력질주를 하고나니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구토가 밀려온다.
제기랄!!! 열병에 걸린 십대 소년도 아니고.. 대체 뭐하는 짓이람…
비틀거리며 케비닛으로 다가가 가운을 꺼내 두르고.. 타월로 머리를 말리며 비취의자에 털썩 주저 앉았다.
여기서 이대로 잠들어 버릴까…?
숨을 몰아쉬며 몸을 뉘였다.
가쁜 숨은 아직도 폐를 아프게 하지만,,, 덕분에 몸은 나른해졌다.
팔을 머리에 괴고 하늘을 바라보는데…
찰칵 거리며 문이 열리고… 누군가 들어선다.
처음엔 하민이겠거니… 했다.
녀석과는 종종 운동을 즐겼으니까…
하지만... 긴 머리를 나풀거리며 가운을 벗어 던지고… 물속으로 뛰어드는건.. 분명 그녀다.
그녀가 뛰어듬과 동시에 상체가 튕기듯 올라오고… 침을 어렵게 삼키며 그 모습을 바라 볼 수 밖에 없었다.
낮은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리고,, 달빛을 받아 수영을 하는 그녀는 마치.. 인어 같았다.
유연하고 부드럽게 턴을 하는 그녀의 몸을 홀린 듯 바라보다… 다리에 감겨있던 치마가 물살에 못이겨
허리위로 살짝 올라갔을땐… 눈을 질끈 감아야만 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자신에게 다가오는 그녀가 보인다.
물에 젖은 옷은... 제 기능을 못하고 온 몸의 굴곡을 여실히 드러내놓는다.
다가오지 않기를 바랬다.
자신을 뒤 흔들지 않기를 바랬다.
자신이 여기에 있다는 걸 여지껏 몰랐던 것처럼… 끝내 모르고 나가길… 이렇듯 유혹하며 다가오지
않기를...간절히 바래보지만… 어쩔 수 없게도 눈이 마주쳐 버렸다.
정말… 자신조차 어쩔 수 없게도…
자꾸만 아래로 향하는 시선을 붙잡으며… 천천히 그녀에게로 다가섰다.
그녀의 눈빛이 살짝 흔들리고… 무언가 말을하려 달싹이는 입술이 꽤나 유혹적이다.
손에 들려 있던 타월을 그녀의 몸에 둘러주었다.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이오. 대체 여기서 뭐 하는거지..? 아직은 날이 찬데 그러다 감기라도 걸리면
어쩔려고 그러는거요?!"
나 답지 않게 떨려 나오는 목소리를 감추려.. 짐짓 화난 듯 말했다.
"자꾸만 가위에… 아니 지금 저한테 화내는 건가요? 그러는 당신도 수영한 것 같은데 뭘 그래요?
있으면 인기척이라도 내던가!! 얼마나 놀랬는 줄 알아요? 매번 사람을 놀래키는게 취미 인가요?
정말 간 떨어지는 줄 알았다구요!!"
"가위에 눌렸소?"
가슴을 들썩이며 화를 내는 그녀 때문에… 정말 미칠 지경이다.
"네?! ..네.."
"불안했나 보군."
"네. 잠자리도 바뀌고.. 요새 이것 저것.. 일이 많았잖아요."
어깨를 들썩이며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부드럽게 말하는 그녀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아니.. 아니.. 그녀가 지금 내 앞에 있다는 것 자체가 날 미치게 한다.
"좀.. 추워지네요. 이만 들어가 봐야 겠어요. 당신도 어서 주무세요."
돌아서는 그녀의 손목을 잡아 다시 돌려 세웠다.
그 반동으로 내 가슴에 안기는 꼴이 되어버렸고…
"아! 아프잖아요!! 손목이 아직…"
고개를 치켜 들며 화를 내는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달빛마저 날… 미치게 한다.
아.. 어떻해..
갑자기 키스를 해오는 그에게 화를 내야 하는데… 밀어내고 소리쳐야 하는데...
잡혀있는 손목을 조심스레 문지르는 손가락 때문에… 입술을 스치는 그의 혀가 너무도 부드러워…
눈을 감아버렸다.
입술 위를 맴돌던 그는 어느새 입 안으로 들어와..나를 놀리고,,끌어당기며,,아찔하게 한다.
자꾸만.. 나를 유혹한다.
어느 순간 정신이 몽롱해지고… 내 몸은 나도 모르게 그를 향해..어느덧 손가락으로 그의 머리를
헤집고 있다.
그의 신음 소리가 들리고… 막연한 두려움이 자리잡지만… 지금의 이 미칠 듯한 두근거림에 비할 바가
아니다.
촉촉히 젖어 있는 그의 머리카락이 좋았다.
부드럽고 단단하게 허리를 휘어감은 그의 손이 좋았다.
발가락이 간질거리고…가슴 싸해지게 하는 그의 키스가 좋았다.
"그만! 후우~ 이제 그만 방으로 돌아가요."
아직도 꿈 속을 헤메는 기분인데… 허공에 떠있는 기분인데…
그는 내 어깨를 잡아 밀며 말을 한다.
입술이 닿을 듯 말듯 한 거리에서..
따뜻한 숨결을 내뱉으며…
양손으로 어깨위의 손을 밀치며 그의 목에 팔을 둘렀다.
그리고 뒤꿈치를 들어 그의 입술에 입을 맞추었다.
천천히.. 그가 했던 대로.. 그에게 되돌려 주었다.
이남자... 이렇게 따뜻해 질 수 있구나.. 이렇게 달콤해 질 수 있구나..
점점 그에게 빨려 들어가는 자신이 두렵고,,, 다가서는 그가 두렵다.
그의 입술이 멀어지고.. 다시 한번, 두번.. 짧게 이어지는 입맞춤..
그 여운을 길게 느끼며 살며시 눈을 떠 그를 보았다.
한쪽 입꼬리에 미소를 걸친 채.. 깊어진 눈으로 바라보는 이 남자는… 내가 자신으로 인해 가슴 떨려
한다는걸... 알기나 할까..?
그에게 욕심이 생기려는 날… 알고나 있을까..?
"당신 때문에 너무 덥군. 날 달아오르게 하지 말았어야지… 아까 방으로 돌아가라고 했을때… 말을
들었어야지… 이건 다.. 당신이 자초한 일이오."
??!!
그가 무슨말을 하는지 미처 알아채기도 전에… 그의 팔이 감겨오고…
"꺄아악~~~~~!! "
첨~ 벙~!!!!!
!!!!!!
"어푸~ 어푸~! …… 이!! 이 나쁜사람!!!"
"푸웁~ 하하하하!"
똑똑.
"네."
"내려오셔서 식사하세요."
"아 네. 아주머니. 감사합니다."
졸린 눈을 비비며 벽시계를 올려다 보니… 2시다.
햇빛이 창을 통해 눈부시게 쏟아져 들어오는걸 보면.. 새벽 두시는 절대 아니지 싶다.
그래.. 그럼 낮 두시겠지…낮… 낮…?! 이런 세상에..!
벌떡 일어나 방안에 딸려있는 욕실로 향했다.
어제 그와 함께 물에 빠지고.. 한차례 더 수영을 했었다.
그리하여 방에 들어왔을 땐.. 말 그대로 물에 젖은 솜이 울고 갈 만큼 녹초가 되어… 옷만 갈아 입은 채
바로 쓰러져 잠들었는데… 시간이 이렇게나 흘러 버렸다니…
그는.. 출근 했을까…?
어떤 얼굴로 그를 봐야 할 지 걱정이 되는 반면.. 그가... 보고 싶기도 했다.
란아는 서둘러 준비를 마치고 1층으로 내려 갔다.
식당으로 들어 섰을 땐.. 웬 낯선 남자가 홀로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는.. 멀뚱히 바라만 보고 있는 나에게 미소를 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넨다.
"한란아씨..? 안녕하세요. 김성하입니다. 정예후 사장님의 개인 비서죠. 식사 안하셨으면 같이 하실래요?"
이곳에 매우 익숙한 듯 여기 저기서 수저며.. 밥그릇 이며.. 국그릇을 꺼내드는 그는… 묘한 분위기가
풍겼다.
왠지…
"아이구.. 벌써 내려 오셨어요? 전 또.. 오래 걸리실 줄 알고 화초에 물주고 왔죠..어머나!!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어서 앉아서 식사나 하세요. 절 부르시지 않구…아 어서 앉으세요.. 그리고 한공기 더 드세요. 이렇게 헬쓱해 져서는… 살좀 찌워야지 어디 쓰겠어요?"
내 생각은 막 식당으로 들어서던 아주머니에 의해 끊어져 버렸다.
아주머니는 김성하라는 남자의 행동에 기겁하며.. 그의 손에서 밥그릇을 빼앗고는.. 걱정을 담아 그를
탓한다.
의도한 바는 아니지만… 결과적으론 멀뚱히 서서 그가 퍼주는 밥을 받아 먹을뻔 했던 난… 민망함에
슬며시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이내 내 앞엔 밥과 국이 놓여지고… 말없는 식사시간이 이어졌다.
반찬을 집으며 살짝 살짝 들여다 본 그는… 구리 빛 얼굴에.. 연예인 뺨칠 정도로 잘 생긴 얼굴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리고 왠지.. 기품이 넘쳐 보인다.
고작 많아봐야 나보다 한 두살 위 쯤으로 보이는 그가… 자기는 정예후의 개인 비서라 소개했는데도
불구하고… 높은 곳에 앉아 자신을 내려다 보고 있는것 같았다.
정작 눈 앞의 그는 자신에게 시선조차 주지 않는데…
그러다 문득.. 그가 어떻게 자신의 이름을 아는지.. 궁금해졌다.
물어볼까…?
아니다.. 정예후의 개인 비서라 했으니.. 그쯤이야 얼마든지 알 수 있겠지..
그런데 왜일까…? 왜 그에게서 예후와 비슷한 분위기가 풍기는 걸까…?
신경쓰지 않으려 해도 자꾸만 시선이 그에게 간다.
그와 비슷한 무언가를 찾으려…
슬쩍 고개를 들어 그를 훔쳐보다… 그와 눈이 마주쳐 버렸다.
어색함에 미소를 짓는데…
"다 관찰 하셨나요?"
마주 미소 지으며 말을 하는 그 때문에… 얼굴이 달아오른다.
자꾸만 그녀의 입술이 생각나고.. 미소가 생각나고.. 부드러운 머리결이 생각나고…
젠장!! 도무지 일을 할 수가 없다.
어제 성하가 완벽하게 일 처리를 해 놓았기에 어느정도 일은 마쳤지만.. 더 이상 진도가 나가질 않는다.
눈 앞의 서류를 노려보다 결국… 걸려있는 양복 저고리를 집어 들고 사무실을 나섰다.
"하지영씨. 오후 스케쥴 다 비우고 결재 난 것들만 추려서 내려보내세요."
"네. 사장님."
이러는 자신이 우스워 피식 웃어 보지만…
자신의 집에 있을 그녀 생각에… 그의 입가엔 어느덧 부드러운 미소가 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