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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사랑 ( 12장/ 사랑의 날들...) <13년 전, 실극화>

지금처럼만 |2006.05.15 13:35
조회 158 |추천 0

 휘이잉.. 쓰아아앙~


겨울 바람이 매섭게 불어대는 새벽이었다. 가로등이 희미하게 비춰드는 방안에

추림은 당혹함으로 얼굴을 잔뜩 일그러 뜨리고 있었다.


희미하지만 보일것은 다 보였다.

여자로서 적지 않은 키의 선주는 지금 알몸이었다. 어둠에 익숙해진 추림의 눈에

가득 선주의 전라가 눈부시도록 아름답게 보였다.


"추림아......"


선주의 나직한 목소리가 추림에게 속삭이듯이 흘러나오자 추림은 몸을 흠칫 떨었다.

지독한 꿈을 꾸고 일어나서 전혀 상상도 못해본 일을 당하는 추림의 입장은 난처하고

황당함 그 자체였다.


두근!


추림은 자신의 심장에서 의지와는 다르게 뛰노는 심맥의 고동소리를 생생히 느끼고

있었다. 선주가 조용하게 가슴과 밑을 가리고 다가오자 추림의 가슴은 더욱 두근

거렸고 입안이 타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추림아......"


다시 나직한 선주의 목소리가 울리며 이제 그녀는 추림의 바로 코 앞에 서 있었다.


"......!"


코속으로 선주가 즐겨 사용하는 옅은 향수 내음이 풍겨왔다.

자극적이었다. 평소와는 분명 다르게 자극적이고 음욕이 느껴지는 향기였다.


추림은 알만한거 다 알고 성을 경험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였다.

상체만 세운 채 앉아있는 추림의 곁으로 전라의 선주가 다가왔다.


정말 잘빠지고 풍만한 몸이었다. 한 손으로 감당이 안될것 같은 커다랗고 하얀

가슴은 도발적으로 앞을 향해 쏟아있었다. 마치 수밀도의 그것처럼 희고 매끄러운

피부가 추림의 눈에 투명하게 느껴졌다.

선주가 아무렇지도 않게 다가와 안고 안기고 할때는 그저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이렇게 가까이에서 보고나니 숨이 막혀와 절로 긴장감이 폭주했다.


"너... 지금 이게 무슨 뜻인줄 알아?"


겨우 정신을 다잡은 추림이 나직히 꾸짖듯 말하자 작은 방안의 공기가 일렁거렸다.

선주가 하얀 치아를 들어내며 소리없이 작은 웃음을 흘렸다.


'이게 내 마음이야. 넌 거부하지 못할거야!'


선주의 마음은 이미 추림에게 빠진 상태였다. 그 사랑하는 다짐과 욕심을 선주는

자신을 추림에게 처녀성을 줌으로서 확인하고 약속받고 싶어하고 있었다.

그가 자신을 품는다면 그는 아마 자신을 더이상 남처럼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게

그녀의 지배적인 생각이었다. 그의 책임감과 사내다움이 그렇게 만들 것이라 믿었다.

부끄럽지는 않았다. 각오하고 생각할것도 없는 일이라 여겼다.

그를 가질 수 있다면 이보다 더 큰 것도 기꺼이 줄 수 있는것이 그녀의 마음이었다.


"날... 안아줘! 날 네게 주고싶어."


선주의 나직한 음성에 추림은 정신이 아찔했다. 예전 생각이 순식간에 떠올랐다.

작년에도 몇 살 위였던 여자가 이와 비슷한 행동을 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당시 추림은 이보다 더 황당했지만 결국 추림을 어쩌지는 못했다.


"넌 참 바보같은 놈이다."


추림이 어색한 듯 웃음을 지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알아. 나 바보되고 싶은거... 네게 오로지 네게 바보가 되고싶어."


젖가슴을 가린 손을 풀자 그림에서나 보았던 커다란 그녀의 유방이 고스란히

드러나며 추림을 유혹했다. 정말 만져보고 싶은 가슴이라 느낀 추림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지만 자세히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무릎을 꿇고 추림의곁에 바짝 다가서자 그녀의 모든것이 일목요연하게 비춰들었다.

검은 수풀이 우거진 어두운 계곡은 아마도 목마른 입안을 적셔줄 맑은 셈이 있을

것이다. 닿기만 해도 튕겨질 것 같은 살결을 만지면 무척 부드럽고 탄력이 넘칠

것이고 한없는 향연을 베풀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꿀꺽!

추림의 목젖이 울컥거렸다. 젊은 그가 감당하기엔 그녀의 몸은 아름답고 고혹적

이었으며 욕망 덩어리였고 벗어나기 힘든 덫이었다.

선주의 풍만한 몸이 추림에게 묻히듯 안겨왔다.


추림의 신체 한곳에서 지독한 열기가 느껴지고 몸이 뻣뻣해 지는 긴장감에 휩싸였다.

선주는 젊고 예쁜 여자였다. 또한 청순하고 이렇듯 잘 빠진 몸을 소유하고 있는

여자였다. 추림의 나이는 쇠도 씹어삼킬 왕성한 때였다. 아마 이런 경우를 추림과

같은 또래가 겪게 된다면 감내하기 힘들 것이다.


추림의 얼굴이 화끈거리며 심장은 빠르게 뜀박질을 시작했다.

힘이 들어가 단단해진 추림의 상징은 계속 무언가를 요구했다.


품에 안겨 귓볼에 미약한 숨소리를 뿜어내는 그녀의 입김은 참을수 없는 유혹이었다.

욕정이 머리끝까지 치솓는 느낌이었다. 가슴에 닿아 느껴지는 그녀의 커다란 유방을

굳게 움켜쥐고 싶었다. 깨물어주고 싶었고 혀로 핧아주고 싶었다. 솔직한 추림의

마음이 그랬다.


"추림... 안아줘."


선주가 일부러 그러는 것인지 빳빳해진 추림의 상징에 몸을 실어 올리며 그렇게

말해오자 추림은 정신이 아득해져 왔다. 이불때문에 둔감하지만 분명 그녀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추림은 욕정과 당황스러움의 순간속에서 어찌해야 좋을지 어지럽기만

했다.


선주가 두 팔을 뻗어 추림의 몸을 감싸안아오자 추림은 눈을 번쩍 빛냈다.

그녀가 추림의 얼굴에 자신의 볼을 대고 살며시 비빌때 추림의 팔도 위로 올려지면

선주를 힘껏 껴안았다.


"헉!"


숨이 막히도록 강한 힘에 의해 추림의 품에 안긴 선주의 입에서 억눌린 신음성이

흘렀다.


"아......!"


이어 황홀한듯... 아니면 고통스러운듯 모를 탄성이 선주의 입에서 다시 세어나왔다.

추림의 입이 선주의 오른쪽 귓볼에 슬며시 다가가며 닿을듯한 거리에 위치했다.

추림의 품에 안겨서 오만가지 상상을 다 하고 있던 선주의 몸이 부르르 떨리며

진저리를 쳤다.


"선주야......"


추림의 입에서 아주 나직한 소리가 선주의 귓속을 파고들자 선주가 다시 진저리를

쳤고 눈빛이 텅빈듯 변해갔다.


* * *


몸이 허공을 부유한다고 느껴진것은 순식간에 불과했다.

추림이 자신을 안아들자 유미는 그렇게 편한 기분은 난생 처음이라 여겼다.

진작 이렇게 해주지... 유미는 추림의 따듯한 품속에서 처음 느껴보는 기분을 잃고

싶지 않아서 행여 그가 자신을 버릴까 싶어 그의 목을 꼭 껴안았다.


추림이 자신을 넓은 침대위에 살포시 눕히고 이마에 부드러운 입맞춤을 해 주었다.

눈을 감아 그 느낌을 음미해 보았다.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손을 잡아주고 가슴을 부드럽게 쓸어주었다.

겨드랑이를 간지럽히듯 애무해주는 그의 손길은 서툴면서도 자극적인 면이 있었다.

엉덩이를 살며시 쓸어내리는 그의 손이 사라질까 두려워 유미는 그의 손을 꼭 잡고

놔주지 않았다. 이어서 그녀가 추림의 손을 가슴으로 이끌고 다시 배로 이끌며 곧

다리 사이로 유도했다.


백자처럼 새하얀 허벅지 안쪽까지 깊게 쓸어주고 만져주자 유미는 입을 벌려 긴

한숨을 토 해냈다. 좋았다. 미치도록 좋고 황홀했다.

그가 좋은것인지 이 느낌이 좋은 것인지 미칠것 같은 기분을 어찌할지 모를 정도로

강한 자극이 전해져왔다. 눈을 감고 다시는 느끼지 못할 기분에 사로잡혀 있다가 어느

순간 추림의 손길이 뚝하고 단절되었다. 숨을 할딱이며 몸을 틀어대던 유미가 살며시

감았던 눈을 떴다. 보였다.

천정에 커다란 원형 전등 불빛이 보였고 낯설지만 조금은 익숙한 공간이 보였다.


'꿈......'


꿈이었다. 추림의 꿈은 이로서 세번째였다. 하지만 이번의 꿈이 가장 강렬하고 느낌이

진했다. 정신을 차리던 유미의 눈이 흡떠지며 아래를 바라보았다.


"......?!"


자신을 침대에 눕혔을 석호가 왜 몸위에 있는 것인지... 불은 왜 꺼져 있는 것인지

순간적으로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더구나 옷이 벗겨져 있었다. 너무 놀라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이상하게 소리가 세어 나오지 않았다.

불이 꺼져 있지만 그리 어둡지 않는 방안은 석호의 행위에 열기가 가득했다.

유미를 반 전라로 만든 그가 옷은 윗도리만 벗은 채 유미의 몸을 어루만지고 혀로

핧고 있 었다. 얼마나 열중하는지 유미가 깨어난것을 모르고 있었다.


"......!"


유미는 자신의 몸이 마치 강한 중독성 약물에 취한것 같다고 느꼈다.

기운은 하나도 없고 몸이 건조한듯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머릿속이 윙하고 울렸고

시선은 어지러웠다. 천정이 빙글빙글 돌고 전등이 수천만 갈래로 흩어졌다가 하나로

뭉쳣다가를 반복했다.


'하지마... 하지말란 말이야! 개자식아!'


속에서 그런 외침을 토하며 유미는 정신을 차리려 애썼다. 약에 취한것은 아니다

몸이 경직되고 정신이 통제되지 않는 것이다. 급작스런 일을 당해 혼동을 겪고 있는

것이다.


'싫어! 하지마! 이러지마! 죽여버릴거야!'


마음속에서 끝임없이 터져 나오는 외침을 석호가 들어주길 바랬다.

아니 들어주지 않아도 그가 이쯤에서 그만두길 바랬다.


그를 그냥 내버려 두는건데, 집에 돌아갔어야 하는건데......

후회가 밀려들었지만 몸은 너무 무기력했다.


갑자기 추림이 떠올랐다.


'나쁜 자식!'


원망감이 들어 유미는 속으로 그를 향해 욕을 퍼부었다. 자신을 잡아주었더라면

이런일이 없을 것인데, 만나자고 말해 주었다면 다른 남자는 만나지도 않을 것인데,

자신을 내버려둔 그가 야속하고 미웠다. 그러면서 그가 그리워졌다.


몸이 묵직해지는 느낌이 들었다. 석호가 막 자신을 향해 올라타려 하고 있었다.

그는 완전히 옷을 벗고 있었는데 예상대로 몸이 비대하고 둥글었다.

너무 싫고 생각도 못한 일을 당하려니 두렵고 끔직한 생각이 들었다. 역시 남자들은

다 똑같았다. 여자를 배설의 도구로 이용하려고만 했지 절대 인격적으로 대하려 하지

않았다.

혀를 굴려 입안을 축인 유미는 몸이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뭔지 모를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어 턱을 움직였다.


"그만! 하지마! 저리가란 말이야!"


갑자기 유미의 입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갈라지고 허스키한 음성이었지만 뾰족한 송곳같은 독기가 서린 목소리였다.


"어? 일어났어? 아직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천연덕 스럽게 말하는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듯 일축하고 하던일을 계속하려는 몸짓을

보였다.


"김석호! 하지 말란 말이야! 개자식아!"


지금가지 당한일도 치욕스럽고 더러운데 아무렇지도 않은듯 행동하는 그를 보자

화가 치민 유미는 정말 죽일듯이 석호를 노려 보았다.


"......?"


이해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은 석호가 유미를 바라보며 멋쩍게 웃었다.

유미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다 옷을 추리며 일어나 앉았다.


"너... 이게 뭐하는 짓이야? 내가 니 여자야? 정말 기분 더러워."


역시 그냥 갈 걸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얼어죽던 말던 상관하지 말아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석호를 바라보자 그는 아직 옷도 입지 않은 채 침대 끝부분에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담배 를 입에 물었다.


"니가 좋아하는거 같아서... 첨엔 하도 잘 자길래 윗도리만 벗겨주려고 했다구."

"그래서? 날 먹기라도 할려고했니? 넌 아무 여자나 음식처럼 쉽게 먹는 그런 저급한

사내 놈이니?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여? 나쁜놈! 개새끼! 널 만난 내가 잘못이다."

 

"화내도 할 말 없다. 미안하다. 그럼 자다가 왜 웃었어? 난 니가 정말 좋아서......"

"닥쳐! 자면서 웃는 여자는 다 그렇게 대하는 놈인걸 알았으니 더이상 말하지 말자."


기분이 정말 더러웠다. 꿈속에서 추림을 본것이 겉으로 드러난 것이라 생각하니 더욱

화가 나고 속상해졌다. 결국 자신은 그를 좋아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자신은

마음에도 없는 남자들만 만나고 다니고 있다 생각하니 그렇게 기분이 나쁠수가 없었다.

좋아하는 남자는 자신을 좋아하지도 생각하지도 않는데 혼자 청승 떨고 있는 기분이었다.


"개새끼들! 다 똑같아! 그정도 밖에 안돼니? 좀 더 당당하고 떳떳하면 안돼니?

마음을 먼저 주고 사랑한 뒤에 이래도 되지 않니? 개자식들아?!"


유미가 화가나서 마구 소리치자 당황한 석호가 주섬주섬 옷을 입으며 허둥거렸다.


"내가 잘못했다. 미안하다. 어떡하면 될까? 정말 미안해? 욕해라. 할 말 없다."


풀이 죽은 석호가 힘없이 말하고 물을 컵에 따라 유미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듣기에도 유미의 음성은 매우 건조하고 갈라져 있었다.


"......!"


물을 벌컥거리며 비운 유미가 한숨을 토해냈다. 욕을하고 나니 마음이 조금

풀어졌지만 조금전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 않을 것 같았다. 아마 석호는 다른

친구에게 오늘의 일을 떠벌리고 다닐지도 몰랐다. 그럼 자신은 도마위의 생선처럼

이리저리 토막나고 절단되어 입맛에 맞는 음식이 될지도 몰랐다.


가슴이 아파왔다.

추림... 그가 보고싶었다. 그는 이러지 않을텐데라는 생각은 진즉에 했었다.

이상하게 그라면 믿음이 가고 신뢰할 수 있었다. 나쁜놈... 여자에게 그렇게 무심하게

대하다니. 적어도 관심있는 척이라도 해주는게 매너이고 남자인데......


"추림생각하니?"

"......?"


느닷없이 석호가 그렇게 물어오자 유미의 얼굴이 조금 당황으로 일그러졌다.


"너 자면서 추림을 몇번이나 부르던데... 도대체 그놈하구 무슨일이 있는거냐?"


이 친구는 성격이 무척 둔감한 듯 했다. 방금전의 일이 여자에게 어떤 일인지 전혀

생각하지도 않는 모습이었다. 이상한건 그가 별로 크게 밉거나 싫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었다. 아마 넉살좋은 그의 성격이나 무신경한 성정 때문일지도 몰랐다.

 

황당했다. 단지 꿈을 꾼것인데 자면서까지 추림을 불렀다니 말도 안되는 거짓말을

하는 것 처럼 들렸다.


"내가? 장난치니? 내가 추림씨를 왜 찾아?"

"거짓말 아니다. 두번이나 그랬다. 처음엔 잘 몰랐는데 두번째에 확실히 알았다.

너 그놈 부르면서 웃었다. 황당하구 기분 나쁘던데 알아?"


어느새 난 그를 그만큼 좋아하고 있는 것일까?

그는 자신을 전혀 다르게 생각하고 있을텐데...


"헛소리 말구. 나 갈테니까 넌 자고가던지 알아서 해. 다시는 연락하지 말자!

널 만난게 후회 되는 중이니까! 오늘일은 내가 깨끗히 잊어줄께!"


쌀쌀맞게 말한 유미가 옷을 추스리며 침대에서 내려왔다.


"아! 신발... 아니... 미안하다니까! 다시는 안그럴께... 그냥 널 좋아만 하면 안될까?"


유미가 석호를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런일을 당하고도 멀쩡한 여자는 세상 어디에도

없다. 그런데 저 친구는 전혀 그런것과는 상관이 없는 행동을 하고 있는것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 그런놈 아니라구. 정말이야! 추림한테 가서 물어봐. 내가 어떤 놈인! 신발 그새끼

얘기하니까 기분 이상해지네. 내가 사과할께."

"추림씨 이야기 하는데 왜 니가 기분이 더러워?"


"내가 더럽다고 했어? 그냥 그렇다는 거지. 예전에 추림이... 아니 내가 이런걸

그새끼가 알면 날 죽이려고 들거다. 절대 만나도 말하지 마라."


멍청한! 세상에 이런일을 다른 남자에게 이야기 할 미친년이 있을까?

이 친구는 의외로 순진하고 아이같은 구석이 있는 친구였다. 자기도 꼴에 남자라구

여관방에 같이 든 여자를 어떻게 하려 했겠지만 그건 그의 잘못만은 아니다.

어떤 여자가 강요도 안했는데 여관방엘 남자와 들까... 자신의 잘못도 있는 것이다.

조신하지 못하고 너무 안일했던 것이다. 석호는 정말 다시는 그러지 않을 친구같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두번다시 연락하거나 만나고 싶지 않았다.


시간을 보니 아침 다섯시가 넘어 있었다.

세네시간쯤 잔것 같았다. 지하철이 운행 할 것이다.


"저기. 유미씨! 그냥 내가 한동안 있다가 연락할께. 그냥 만나서 밥먹구 이야기나

하고 그러자 응?"


여관에 들어오기 전엔 서로 존댓말을 했는데 지금은 자연스럽게 말을 놓고 있었다.

석호가 유미에게 애원조로 말하자 유미가 잠시 노려보다가 입을 열어 말했다.


"됐거든. 연락하지마!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는 하지마."

"좋아. 그러지. 하지만 꼭 연락해라. 기달리께."


금새 표정이 밝아진 그를 보던 유미가 돌아섰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나가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서 더러워진 육체를 깨끗하게 씻어내고 싶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뭐하나 뜻대로 되는것이 없었다. 친구의 친구로부터 이런 일이나

당하려고 여기까지 왔다고 생각하니 자신이 한없이 한심하고 초라하게 느껴졌다.


뒤에서 뭐라고 궁시렁 되며 인사도 건네는 석호를 무시하고 밖으로 나오니 차고 시린

공기가 폐부 깊숙히 스며들어 나른해진 몸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일요일... 유미는 지하철 역을 향해 걸으며 오늘 추림에게 전화하리라 다짐했다.

자존심은 조금 상하지만 그가 보고싶어 견딜수가 없었다.

지난번엔 그의 생일이었다니 적당한 핑계도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자 마음이 조금

가벼워진 유미는 석호와의 일을 아주 약간은 지워낼 수 있었다. 그와의 일은 길을

걷다 똥을 밟았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냄새와 흔적이 오래 남을 것이지만 언젠가는

잊혀질 일이었다. 어둠은 아직 흩어지지 않고 하늘가득 별들이 찬란하게 수놓아진

겨울의 이른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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