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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대생의 사랑 이야기 <3-8화> 신입부원

바다의기억 |2006.05.24 03:22
조회 12,057 |추천 0

요즘 참 바쁘면서도

 

행복감에 취한 하루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물론 주변에 힘든 일이 없는 건 아니지만

 

다 잘 될 거라는 믿음 속에 살고 싶은

 

그런 기분이네요.

 

---------------------- 무슨 바람이 분 게야 ---------------------------

 

3월의 끝자락...


여전히 바람은 쌀쌀하지만


태양의 고마움이 한결 더 진하게 느껴지는


한가로운 여유가 있는 달.



비교적 성공적이었던 새내기 미팅을 계기로


나의 학과생활은 정상적인 궤도에 접어들 수 있었고


친구3의 실종사건을 제외하면


주변 상황도 지극히 양호하다.


뭐.... 너무 기복없이 평화롭기만 해서


민아와 진전이 있을만한 사건이 없다는 게


흠이라면 흠일까.



이런 생각들을 하며 연극부실로 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


뒤에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 - 기, 기, 기, 기, 기.....



.... 정정한다.


오군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기억 - 왜.


오군 - 기, 기억선배! 엇....



....앞서 대답한 나의 실수였을까.


힘들게 기억선배를 외친 오군은


그 상태 그대로 굳어져 버렸고,,,


우린 서로 누가 먼저 다음 말을 할 것인지를 놓고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야만 했다.



기억 - 어디 가는 길이냐?


오군 - 여, 여, 여, 여, 연, 연....


기억 - ....연못?


오군 - 아, 아, 아, 아뇨. 여, 여, 연..연그....


기억 - ....연구실?


오군 - 아, 아, 아, 아뇨...여, 여, 여연, 연....



..... 유니 선배는 대체 이걸 어떻게 알아들었다는 거지?


1초 간격으로 튀는 CD를 들으면서


노래 전체를 추정하는 거나 마찬가지 아닌가?



오군 - 여...여..여...연...



오군의 말을 듣고 있는 게 답답하긴 했지만


헛다리를 짚을 때마다


이 과정을 처음부터 반복해야한다는 생각에


난 일단 결과를 기다려보기로 했다.



오군 - 여, 여, 연....연극부실이요.



과연...선택은 옳았다.


자칫하면 날 새도록 못 맞출 뻔 했다.



기억 - 연극부실엔 왜?


오군 - 유, 유, 유, 유니 누나가....


기억 - 유니 선배가 부르디?


오군 - 아, 아, 아, 아뇨, 유, 유니 누나가, 여, 여, 연.....


기억 - .....유니 선배가 연극부라고 해서 가보려고?


오군 - .....네.



유니 누나라고 부르는 걸 보니


자기가 선배인 건 이야기 했나 보다.


과연 실제 나이를 밝혔는가는 의문이지만...



기억 - 흠... 구경 가는 거야? 아니면 가입해 보려고?


오군 - 가, 가, 가입을...


기억 - .....



여기서 잠깐,


오군이 무대에 서있는 모습을 상상해 보자.


==========================================


줄리엣 - 오~ 오군, 그대의 이름은 어째서 오군인가요?


오군 

- 그, 그, 그, 그, 그, 그, 그그, 그게,


그, 그, 그극..그, 그러니까....


제, 제가 그런 게 아니라.... 그, 그...뭐냐면.....


==========================================


......위험하다.


엑스트라라도 맡겼다간 공연 시간이 2배로 늘어난다.



뭐, 그렇다고 해도


연극부에 일이 배우뿐인 것도 아닌데다


대뜸 =아서라 = 라고 참견하기엔


오군의 표정이 제법 진지해 보였기에


난 녀석과 함께 연극부실로 걸음을 옮겼다.




연출 - 음, 기억이 왔구나. 뒤엔 또 누구야?


기억 - 입부 희망자...랄까요.


회계 - 오, 그럼 자넨 이쪽으로 오게.



난 일단 회계에게 오군을 양도한 뒤


신입 부원들이 모여 앉아 있는


연극부실 구석으로 시선을 옮겼다.



신입생 환영 공연 이후


연극부엔 상당수의 신입부원이 모여들었고


유령 부원이 다소 생길 것을 감안해도


연극부의 맥을 이어가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신입부원들을 상대로


그간의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있는


박군 일당과 김군.



김군

- 너희들 액션의 시작이 뭐라고 생각해.


강렬한 임팩트? 화려한 모션?


아냐, 액션의 시작은 맞는 거야, 맞는 거.


아무리 치는 놈이 개폼을 잡으면서 쳐도


맞는 쪽에서 =훗, 겨우 그 정도냐?= 해버리면


아무 쓸모없어지는 거야.


반대로 치는 쪽에서 =톡= 쳤는데


맞는 쪽이 공중에서 세 바퀴 돌면서 널브러져 봐...


=엄청난 무공이다!= 라고 생각하겠지....



박군

- 너희는 연극을 너무 우습게 생각하는 것 같아.


내가 신입생 땐 악마역할을 소화하기 위해


지옥에 가서 특훈 받고 오고 그랬다고.


물론 이거야 비유적인 표현이지만...


예전에 사채업자 똘마니 역할 할 땐


각목 휘두르는 액션을 완벽히 하기 위해


현역 건달들한테 수업 듣고


매일 아침 도끼질을 천 번씩....



...... 대체 애들한테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냐.



순진한 신입생들을 상대로


한편의 공갈대서사시를 늘어놓고 있는 그들을 보며


연극부의 미래를 걱정하고 있을 때...



?? - 와웅!



뒤에서 내 목을 확 끌어안는 누군가.


뭐....누군가라고 해봐야 민아 밖에 없겠지만....



= 푸욱~ 신~ =


기억 - .....?!



뭐, 뭐지?!


이 깊이를 추정하기 힘든 쿠션은....


민아가 아니야!!



기억 - 뜨엇?!



마치 에어백에 파묻히는 듯한 기묘한 촉감에 놀라


후다닥 자리를 떨치고 일어선 난


서둘러 뒤를 돌아보았다.



한나 - 까르륵. 어떻게 바로 눈치 채네요? 언니가 아니라는 걸.


기억 - 뭐, 뭐, 뭐 하는 거야?


한나  - 어머, 기껏 반갑게 인사하는 숙녀한테 그런 말은 실례잖아요?


기억 - 그, 그게 무슨 인사야?!



난 아직도 뒤통수에 남아있는 은근한 촉감에 얼굴을 붉히며


일단 자리를 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억 - 무슨 일로 왔는지는 모르지만.... 난....


한나 - 영어영문학부 01학번 유한나~ 연극부에 가입하러 왔습니다!



적당한 핑계를 대고 자리를 떠나려는 내 말을 끊어


다시 자신의 페이스로 상황을 돌려놓는 그녀.


아무리 생각해도 요주의 인물이다.....



기억 - 그런 건 저쪽에 있는 회계 선배한테....


한나 - 에... 하지만 저분은 지금 바빠 보이는 걸요?



그녀의 말에 문득 고개를 돌렸을 때....



회계 - 아아아아악!!


오군 -저, 그, 그, 저, 그.....



난 오군을 앞에 두고 몸서리 치고 있는


회계 선배의 처절한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기억 - ..... 일단 앉아 봐.


한나 - 네~.



일단 회계에게 오군을 맡긴 책임이 나에게 있는 만큼


난 가입신청서 한 장을 가져다


회계 근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기억 

- 여기 이름 적고, 학과, 학번, 생년월일....


가입 동기는 간단하게 적으면 되고


밑에 핸드폰 번호 빼놓지 말고....



한나 - 음~ Ok. I got it.



생각보다 순순히 가입원서를 작성하는 그녀.


잠시 동안 멍하니 그 앞에 앉아있으니


조군의 한 맺힌 외침이 다시금 귓가에 메아리쳤다.



기억 - 그런데 한나야.


한나 - 네~ 오라버니~.


기억 - ...... 미팅 날 조군한테 왜 그런 거야?


한나 - 조군이요?


기억 

- 그 있잖아, 왜... 너한테 전화번호 달라고


아이스크림 사다 주고 했던.....



어차피 이미 끝난 일이긴 했지만


적당한 이유나 사연이 있어서 그런 거라면


조군의 상처도 조금은 줄어들 거라는 게


당시 나의 생각이었다.



한나

- 아~~ 그.... 끔찍한 녀석.... 말도 말아요,


저도 어지간하면 오빠 얼굴을 봐서


적당히 적당히 기분 좋게 제거하려고 했는데....


가게 밖으로 나가자마자


반짝이가 주렁주렁 달린 밤무대 복장으로 갈아입질 않나,


5초에 한 번씩 아래위로 계~속 훑어보는데


완전 스캐너 속에 들어간 기분이었다니까요...


게다가 최악의 개그 센스!


편의점에서 물건 계산하는데 대뜸 저한테


=코끼리 냉장고에 어떻게 넣는 줄 알아요?=


그러더니


=문 열고, 코끼리 넣고, 문 닫으면 되요=


그러는 거예요~.


본인은 스스로 굉장히 재밌다고 생각하나 본데...


그때 점원 얼굴을 오빠가 봤어야 했다니까요.


아우!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 거려.


게다가 또 어떤 일이 있었냐면....



기억 - 아.... 아냐, 뭐 그 정도면 충분해.



그 이야기 나도 기회 봐서 민아한테 해주려고 했는데....



조군만큼이나 맺힌 게 많은 듯한 한나의 푸념을 듣고


앞으로의 행동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한 나였다.



한나

- 입이 있으면 뭐하냐고요~


순~ 무슨 저글링 컨트롤이 어쩌고 헤드샷이 어쩌고....


차라리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가 더 재밌겠네.


아예 붕어빵처럼 말을 못하던가.


가만있으면 중간은 간다는 게 딱 그 경우라니까요?



기억 - 아, 그래. 일단 원서부터 마저 쓰고....


한나

- 아이 참, 쫌 있어 봐요. 오빠도 들어야 돼.


예를 들어서, 멋진 시를 하나 쓴다고 쳐요.


노트가 백지면 거기에 새로 쓰면 되는데


노트에 볼펜으로 빼곡하게 낙서가 되어 있으면


거기 어디다 뭘 쓰냐고요....


처음부터 쓰여 있진 못할망정


완전 제멋에 사는 자뻑에


어디 이~상한 개그만 잔뜩 주워 들어가지고....


아후, 진짜 핸드폰 번호까지 줬으면 지금도 전화해서


=혹시 기린 넣는 방법 알아요?=


이럴 거 아녜요.


아후, 생각만 해도 끔찍해.



분명 한나는 조군에 대한 불평을 하고 있는데....


왜 내 마음이 아픈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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