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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전문] -3-

p군 |2006.05.31 07:39
조회 156 |추천 0
3. 성태.

하루,
24시간이라는 순간은 언제나 상대적이다.
기쁠 때는 순식간에 지나가다가도, 슬프거나 힘들 때가 되면 마치 멈춘 것 같이 흐르지 않는다.
그 하루 동안, 24시간 동안 얼마나 곱씹고 생각했을까?
시계추처럼 오락가락하는 생각에 헤집은 집을 몇 번이나 더 둘러보았다.
알고 있는 무언가가 떠오를 것 만 같아서 몇 번이나 집을 돌고 방을 뒤졌다.
하지만 그게 전부다.
돌고 뒤척이고 찾아봐야 생각은 나지 않는다.
혹시나 했던, 생각은 혹시나로 역시나 했던 생각은 역시나로 남는다.
평소 담배를 즐겨 태웠던가?
민철은 방구석 어딘가에서 찾은 마일드 세븐을 집어 물고 한 개피 꺼내 물었다.  
바로 어제와도 같은 일인데 그 뒤로 얼마나 시간이 흐른 것일까?  
5월 16일이라는 날짜를 보아도, 3시를 가리키는 시계를 보아도 아무런 느낌이 없다.
언제 죽었는지, 언제 머리에 총을 맞은 것인 지 알 수가 없다.
머릿속을 채우고 있는 절대 적인 한 가지는 머리속을 관통하는 총을 맞았다는 것뿐이다.
“후우-”
폐 저 깊숙한 곳까지 내려앉은 담배 연기가 입을 타고 흘렀다.
한숨과도 같이, 깊게 빨아 마신 담배 연기를 내뱉고는 아직 다 피지 않은 담배를 바닥 위로 비벼 껐다.
우우웅- 하고 울리는 진동과 함께 바지춤에 넣어 둔 핸드폰이 울었기 때문이다.
“여보세요.”
-어 나다 성태. 연락을 달라고 할 때는 안주더니 무슨 일이냐? 하하! 이렇게 갑자기 만나자니, 왜 갑자기 받아야 할 돈이라도 생각났냐?
유쾌한 목소리,
핸드폰으로 흘러나오는 사내의 목소리는 분명 어제 몇 번을 곱씹어 들었던 자동응답기에 남겨진 그 목소리가 분명했다.
“글세, 그랬으면 좋겠는데... 그렇지가 않아. 생각이 아무것도 나질 않아. 그래서 그래. 좀 만나자.”
-어? 그게... 무슨 말이야?
걱정스런 목소리가 귓가를 울린다.
친했던가?
민철은 잠시 숨을 한번 고르고는 조용해진 핸드폰 위로 말을 뱉었다.
“만나서, 만나서 이야기하자. 전화로 하기에는 말이 좀 길다.”
-아... 그래? 알았다. 만나서 이야기 하자. 어디서 볼까? 5시 퇴근이니, 항상 가던 그 곳에서 볼까?
“아니아니, 집에서 집에서 보자. 기다리고 있을게.”
-어, 그래 알았다. 그럼 퇴근 후에 보자. 너... 괜찮은 거지?
아무런 말없이 민철은 핸드폰을 내려 종료 버튼을 눌렸다.
귓가에서 내리는 순간 들려온 걱정스런 목소리가 가슴을 울린다.
왜?
이름도 기억나지 않는, 자주 만나던 약속 장소조차 기억 지 못하는 데 가슴이 울리는 것일까?
한참을 생각하다, 빠득 어금니를 깨물었다.
빌어먹을 몸뚱이...
자신을 죽였을 지도 모르는 얼굴을 마주보는 것이 점점 자연스러워 진다.
“야... 너 도대체 누구냐.”
찢어질 듯 부릅뜬 눈으로 거울 속 사내에게 물었다.
들려오지 않는 대답 따위는 이제 원치 않는다.
거울은 거울일 뿐이다. 백날 말을 물어봐야 질문에 대답지 못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말을 묻는 것은 니가 내가 아닌 것을 나는 알기 때문이야.”
민철은 혼잣말을 뱉으며 휙 몸을 돌렸다.
성태,
핸드폰에 이번으로 저장 되어있던 그가 오기까지 앞으로 두 시간이 남아있었다.

똑똑똑-
현관문을 두드리는 노크 소리가 텅빈 집안을 울렸다.
크게, 파동을 그리듯 퍼져나가는 노크 소리에 민철은 아무렇게나 기대어 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바삭- 발 아래로 밟혀 짓이겨지는 종이소리가 이제는 익숙해졌다.
어지러운, 지저분하고 헝클어진 방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그 소리를 들었던 탓이다.
“안에... 있냐?”
힘차게 두드린 노크 소리에도 대답 없는 집을 쳐다보며, 성태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약속을 펑크 낼 놈이 아닌데...”
작게 말을 중얼거리며 다시금 현관문을 두드렸다.
쿵, 쿵, 쿵!
처음보다는 조금 거세진 손길에 현관문이 흔들리며 커다란 소리를 냈다.
그 소리는 민철의 집뿐만이 아닌 윗집, 옆집, 아랫집 할 것 없이 모든 층에 울려 퍼질 만큼 큰 소리였다.  
“안에 있어. 그만 문 두드려도 돼 시끄럽다. 기다려 봐 곧 문 열 테니까.”
“아, 있었구나. 그럼 좀 기척이라도 내지! 너 없는 줄 알고 깜짝 놀랐잖아!”
“미안, 내가 좀 정신이 없어서...”
민철은 나지막이 목소리를 깔아 말했다.
문을 열면 그는 분명 놀랄 것이다.
지저분한 방에 헝클어진 옷매무새 그리고 면도조차 하지 않은 초췌한 얼굴로 현관문을 열고 있으니까 말이다.
끼익-
쇠가 갈리는 소리와 함께 굳게 닫혔던 현관문이 열렸다.
그러자 화악- 열린 문 사이로 세차게 바람이 흘러들어와 퀴퀴하게 쌓인 집안의 공기를 밖으로 뿜어냈다.
“왁! 이게 무슨 홀아비 냄새야!”
지금 것 한 번도 맡아 본 적 없는 민철의 집에서 풍겨져 나오는 퀴퀴한 냄새...
그 덕에 성태는 활짝 열린 집안의 전경은 보지도 못한 채 말을 뱉어 낼 수 있었다.  
“어서와. 많이 기다렸어.”
낮은... 그래서 무언가 걱정이 되는 목소리,
“아...!”
성태는 그제야 퀴퀴한 냄새에 감은 눈을 떠 민철을 볼 수가 있었다.
자잘하지만 수북하게 돋아난 수염과 며칠은 굶은 것 같은 깡마른 얼굴,
생전 처음 보는 초췌한 민철의 모습에 벌린 입이 다물어 지지가 않았다.
“너... 너... 이게 무슨 꼴이야. 집은 또 왜 그래? 뭐야? 너... 너 어떻게 된 거야? 무슨 일이야. 야 이게 무슨 일이야?”
성태는 당황한 마음에 말을 들을 겨를도 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그의 모습이, 그의 뒤로 보이는 집안의 전경이 놀란 입을 다물 수가 없게 만들었다.
“한 가지씩 천천히 물어. 그렇게 물으면 대답해 줄 수가 없잖아.”
“아... 그래... 그렇긴 하지만 이건 좀... 너무 놀랍고 생소해서...”
민철은 더듬 거리며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성태의 팔을 끌어 당겨 현관문을 닫았다.
쿠웅-
은행의 금고 마냥 육중한 소리가 울리며 집 안에 들어선 둘의 눈이 맞았다.
당황하고 놀란 성태의 눈과 날카롭게 벼려진 민철의 눈.
기묘하게 얽힌 둘의 눈빛은 그렇게 한참을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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