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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이 얼마나 잘 사는지 보고 싶습니다.

.... |2006.06.01 11:18
조회 511 |추천 0

오늘은 우리 언니가 하늘로 간지 딱 일년이 되는 날이고

 

 언니가 남긴 아기(조카라고 불러보지도 못한...)가 태어난지도

 

일년이 되는 날입니다.

 

언니는 부모님과 다투고 난 뒤에 서울로 상경을 해서

 

부모님과는 연락을 하고 지내진 못했지만

 

우리들하고는 매일이 멀다하고

 

소식을 전하고 있었는데,어느날

 

언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그 낯선 곳에 언니 혼자 있는것도 걱정이 되고

 

아는 일 하나 없는 곳에 말동무라고 하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긴 했지만

 

나이가 나이니만큼 (보수적이었던 언니여서 걱정은 좀 덜해도...)

 

이런 저런 걱정이 안 될수는 없었어요..

 

그렇게 일년 남짓 시간이 지나고

 

간간이 언니가 벌어서 주는 생활비 명목조의

 

얼마간의 용돈도

 

발등에 졸업이란 단어가 떨어진 저에게는

 

언니가 얼마나 힘들게 번 돈이란 걸 생각치 못하게 했습니다.

 

솔직히 제 앞가림이 더 절실했습니다.

 

4학년 2학기를 집안사정 때문에 취업으로 보내면서

 

끝내지 못한 학구열과 공부에 대한 미련으로

 

날마다 괴롭고 저만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들더라구요..

 

언니의 한숨이 어떤 한숨인지도 모르고 말이죠.......

 

언니는  일년에 두어번 제가 있는 곳으로 내려왔어요.

 

휴가도 제대로 없는 곳에서 일하던 언니는

 

힘이 들어서 저렇게 얼굴이 안 되어 보였나 했지만

 

워낙 잘 웃고 밝은 사람이었기에 그늘진 구석이 잘 안 보였어요,..

 

그렇게 며칠을 지내다가 언니는 도로 서울로 올라갔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전화가 왔습니다.

 

  "○○야..○○오빠한테 문자하나면 보내줘~"

 

언닌  그 흔하디 흔한 핸드폰 하나 없던 사람이었거든요.

 

엄마 명의로 되어 있던 핸드폰이었는데

 

거의 쫒겨나다시피 해서 나간 뒤 끊어지고 사용을 하지 않았어요.

 

마침 사귀던 오빠네 집이 남원에서 핸드폰 매장을 한다고

 

남는 핸폰 하나 구해준다고 했다기에

 

커플폰이라도 하나보다라고 생각했었죠.

 

그리고 간간이 문자보낼 일이 있음 제게 전활 했었는데

 

언젠가부터 뜸해지더라구요.

 

제가 무심했었어요..

 

언니가 지방으로 내려 오다가

 

시내에서 교통사고가 났다는 전활 받고

 

혼비백산해서 병원으로 달려 가던 날이

 

바로 일년전 오늘이네요....

 

피투성이가 되어 있는 언니보다

 

의사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더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산모가 위험하니 빨리 보호자한테 연락을 하세요"

 

산모라니요.. 보호자라면 우리엄마 아빠 말하는 건가요...

 

시골에 계셨던 분들이 올라오시려면 두어시간은 더 걸리는데...

 

왜 우리 언니가 산모예요..우리언니가 산모라니....

 

수술 동의서에 제 이름을 적고

 

떨리는 손으로 집에 연락을 했어요,,,어떻게 말했는지는

 

제대로 기억은 안 나지만  울먹이는 소리로

 

언니가 죽어간다는 말을 했나봐요..정신이 없었죠...

 

언니의 남자친구한테 전활 했습니다...

 

신호음만 가고 안 받더군요..수차례 연락을 해도 역시나 묵묵부답....

 

수술실의 불이 꺼질무렵 도착한 우리 부모님은

 

일년 남짓만에 주검으로 돌아온 딸자식을 안아야만 했습니다..

 

오열을 하시면서 쓰러지시는 우리 부모님을 진정시키시며

 

의사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에 저희는 그 자리에서

 

주저 앉아야만 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울음 한번 울지 못하고 언니따라

 

저 하늘나라로 간 내 첫번째 조카....

 

얼굴 한번 보지 못한 내 조카는 그렇게 언니 따라

 

저 하늘로 갔습니다..

 

언니의 물건을 정리하고 서울로 올라갔습니다.

 

옷가지들은 몇 되지 않겠지만

 

언니의 체취와 흔적들을 다른이가 함부로 만진다는 게

 

저로선 언니가 없다는 사실만큼 힘든 일이었거든요...

 

언닌 같이 일하던 언니네에서 기거를 했었는데

 

막상 찾아가보니 눈물이 절로 났습니다.

 

40평이 넘는 아파트에 어른 세명 살면서

 

언니방이라고는 따로 하나없고 베란다에 붙은 쪽방...

 

옷방도 아닌 창고처럼 쓰는 방에 언니의 물건이

 

농 두칸에 누워서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죠..

 

연신 고마웠다며 고개를 숙이시는 엄마옆에서

 

종이박스에 언니 물건을 차곡차곡 담으며 흐르는 눈물은 주체할 길

 

없더군요. 빨간색 다이어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서울 가기전에 제가 준 것이었죠..

 

짐을 챙겨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흔들거리는 버스안에서 언니의 다이어리를 펼치는 순간

 

전 그만 오열을 하고 말았습니다..

 

우리 가족의 사진뒤로 모르는 얼굴의 남자가 웃고 있었습니다.

 

이 사람이 언니의 남친이구나 ..

 

그래요.. 예상했던 대로 언니가 임신했다는 걸 알고

 

차고 간 아주 나쁜 놈이었죠..

 

언니의 다이어리에는 그 상황이 구구절절이 적혀 있었어요..

 

2004년 11월 19일..

 

11일에 마지막 모습을 보고 19일날 전화통화를 마지막으로

 

연락이 끊겼다는 글에는  헤어지자는 말 한마디 없이

 

연락이 닿질 않는다고 ..애기를 싫어하는 사람이라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그간의 고민과 상황들이 줄줄이 묘사되어

 

보고싶다라고...한참 써 내려간 이름은 얼룩져 있었죠..

 

언니는 버려졌어요..임신을 한 것을 알릴려고

 

전활 했다가 상대방쪽에서 바로 끊어버려

 

알리지도 못했나봐요.,..그렇게 바보같이 혼자 애를 키울려고 한건지...

 

한동안 전 복수심에 눈에 보이는 것도 없었죠..

 

꿈에 언니가 나타나 울고 가기도 하고

 

슬픈 눈으로 절 바라보는 꿈을 꾼 날이면  어김없이 떠 오르던 이름..

 

이..x형..

 

죽이고싶을 정도로 미운 사람.

 

 그래픽 공부를 하고 싶어하던 언닌 그 놈이 그런쪽에서 일한다고

 

얼마나 자랑스러워했었는데...바보같이......

 

그렇게 언닐 버리고 잘 지내는지 전 궁금하네요.

 

남의 눈에 피눈물 흐르게 하고 지내면 얼마나 행복해지는 건가요?

 

부디 부디 오래 살길 바랍니다.

 

내가 찾아 낼때까지 말이에요..

 

언니가 그러면 편안하게 눈을 감을 수 있을까요?

 

언니대신 뺨이라도 실컷 때려주면 우리 언니의 한이 조금이라도

 

풀릴까요...

 

언니가 그렇게 해서라도 돌아올 수 있다면...

 

한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러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언니한테 미안했다고 말해 볼래요...

 

유난히 언니가 많이 보고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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