줏어온 글...
토고와의 경기를 보고 누군가는 기뻐하고 누군가는 실망한다. 누군가는 이긴 것만으로 만족하고 누군가는 더 잘했어야 한다, 혹은 더 잘 할 수 있었다고 아쉬워한다.
관점의 차이다. 옳고 그르고의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국가주의의 계절에는 그렇지가 않다. 알 만한 인간도 다음과 같은 헛소리를 외친다. "국가대표를 비판하는 인간은 XX다! 너희들은 국가도 없는 떠돌이들이다! 너희들은 열등감에 절어있는 인간들이다!"
그리고 자신들의 감정을 배출하기 위해 궤변을 들이대며 외친다. "공 돌리지 않다가 역습당해 무승부되었으면 어쩔 뻔했나? 사우디 꼴 나면 좋겠냐? 너희 비판자들은 사우디로 이민가라!"
축구경기를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고, 사람마다 다르다
뻔한 이야기지만 월드컵은 축구경기다. 축구경기를 보고 즐기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즐기는 방법은 다양하다.
누군가에게는 승리가 모든 것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과정이 더 중요할 수 있다. 누군가는 국가대표 냄비로서 축구를 보며,누군가는 자신이 좋아하는 선수들을 보며 혹은 자신이 좋아하는 축구전략·스타일에 감탄하며 즐길 수 있다는 말이다.
더운 날씨에 국가대표들은 열심히 뛰었다. 누가 뭐라고 하나. 축구선수들에게는 그게 일이고 그것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그보다 더 뛰더라도 심장이 터지더라도 국가대표로 뽑히고 싶은 선수들은 많다. 그리고 그렇게 뛴 선수들에게는 충분한 보상이 주어진다. 어쩌면 넘치는 보상일지도 모른다.
선수들이 아무리 열심히 뛰었다고 하더라도 관중은 관중의 입장에서 자신의 의사를 피력할 수 있다. 프랑스 국가대표나 스위스 국가대표도 죽을 만큼 열심히 뛰었다. 그러나 프랑스 일부 서포터들은 방송 카메라 앞에서 "그건 축구도 아니다"고 비난한다. 프랑스 서포터들은 매국노인가.
대통령도 비판하는 이 나라에서 갑자기 국가대표 비판, 아니 더 정확하게는 경기내용 비판이 매국노의 행위로 전락한다.
왜냐하면 월드컵 시즌, 국가주의의 계절에는 국가대표는 그냥 축구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라의 흥망과 백성의 목숨을 걸고 전쟁에 돌입한 '태극전사'들이기 때문이다. 국가주의의 계절에는 축구가 없고 전쟁만 있을 뿐이다. 뇌 안에 망상 속에서 펼쳐지는 국가간의 전쟁.
누가 뭐래도 토고전은 마음에 안 든다
누가 뭐라고 해도 토고전은 내 맘에 안 든다. 당신 맘에는 드는가? 그렇다면 다행이다. 마음껏 축하하고 즐기기 바란다.
그러나 나는 비판하면서 즐기련다. 이 나라는 민주주의 국가고 월드컵에 들어간 비용 중에는 내가 낸 세금도 있을테니 그만한 권리는 있다고 믿는다.
축구전문가가 아니지만 단순한 계산으로 봐도 이길 수 있는 경기에서는 최대한 이기는 것이 골득실의 계산, 선수단의 사기진작에도 유리하다고 생각한다. 몰아칠 수 있을 때 몰아치는 것이 승리의 방법 아닐까?
물론 승점을 지키기 위해서는 잠그는 것이 좀 더 적절하고 안정적인 방법이었을지도 모른다.
현장에 있지 않았기 때문에 알 수 없는 일이지만 혹자의 말대로 체감온도가 40도를 넘어가는 날씨에 우리 선수들의 체력이 완전 고갈된 상황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내 눈에는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선수들은 경기가 끝난 뒤에도 그렇게 지쳐 보이지 않았고 이탈리아전에서처럼 쓰러지는 선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장이 맞을지도 모른다. 일단 난 현장에 없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누구나 자신이 처한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를 토대로 자신의 의견을 주장한다는 말이다. 나 역시 마찬가지다.
10명이 뛴 토고는 지쳐도 우리보다 더 지쳤을 것이고 전력 역시 우리보다 높다고 생각되지 않았다. 게다가 우리 팀의 공돌리기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실제로 공을 빼앗기기까지 하지 않았나.
축구 전문가가 아닌 내 관점에서 한국팀은 수비보다는 공격진과 미드필더가 더 안정적으로 보였다. 박지성·안정환이 토고진영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공돌리는 것보다 더 마음놓고 볼 수 있었을 것 같았다. 또 한국팀의 능력으로 봤을 때 프리킥을 차고 역습을 허용할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했다.
내 글 대부분을 관통하는 논리는 "사실을 왜곡하지 말자"는 것이다. 내 주장은 틀린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적어도 정보를 합리적으로 연결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하는 결론을 위해 억지로 혹은 일어나기 희박한 일을 가정하고 결론을 내리지는 않았다고 믿는다. 그러나 다음의 말들은 어떤가?
1. 체력안배 때문에 공을 돌려야 했다?
10분 더 열심히 뛴다고, 혹은 프리킥 한 번 더 찼다고 얼마나 체력이 소진된다는 말인가. 게다가 토너먼트전이 아니므로 다음 경기까지 6일이 남았다. 10분을 더 뛰면 6일이 지나도 체력이 회복 안 된다? 심지어 2002년도에 이탈리아·스페인전에 체력을 소진해서 독일전에 졌다는 이야기도 논거로 들고 나온다. 당시에도 6일을 쉬었나? 공돌리기 작전 혹은 백프리킥이 적절한 전략일지는 어떨지 몰라도, 이런 주장으로 그런 결론을 이끌어내겠다는 것은 적절하다고 보이지 않는다.
2. 역습이 두렵기 때문이라고?
이것은 전적으로 관점의 차이다. 혹은 국가대표에 대한 기대심리의 차이일 수도 있다.
우리 동네 조기축구회 대표님은 "한국 국가대표는 10명이 뛰는 토고팀에 역습을 허용할 만큼 허약하지 않다"는 고견(?)을 펴셨다. "2002년도 4강이 장난인줄 아느냐? 운빨인 줄 아느냐? 도대체 얼마나 국가대표를 우습게 보기에 그런 말을 하느냐"는 주장이다.
어떤 이는 말한다. "우리가 네덜란드나 브라질인 줄 아느냐?" 어떻게 이렇게 극단적인가. 월드컵 처녀 출전하고 한명 퇴장당한 토고팀을 몰아치면 다 브라질이고 네덜란드인가?
물론 국가대표를 과대포장하자는 것은 아니다. 16강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10명 뛰는 토고에 역습당할 것이 두려워 공 돌리고 백프리킥하는 것이 마땅한 팀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관점의 차이, 기대심리의 차이를 이해한다면 그 정도로 서로 비난을 퍼부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당신 나름의 국가대표에 대한 기대심리가 있을 것이고 나는 내 나름의 기대심리가 있다.
3. 잠그기는 승리를 위한 최선의 전략?
어떤 이는 잠그기를 하다가 패한 몇몇 케이스를 들며 잠그기가 오히려 좋지 않다고 말한다. 나는 그 주장에는 반대한다.
전체적으로 따지자면 잠그기를 통해 승리를 챙긴 경기가 훨씬 많았을 것이다. 다만 잠그기를 하다가 역전패당한 게임이 워낙 드라마틱해서 뇌리에 오래 남는 경향은 있을 것이다. 또 잠그기하다가 역전패했다면 쏟아지는 비난이 훨씬 더 거셀 것이 틀림없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 잠그기가 최선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한국 토고전이 바로 그런 경우다. 공격해서 잃을 가능성보다 얻을 가능성이 훨씬 큰 상황, 더구나 공돌리기 자체가 그리 안정적이지 않아 보이는 상황. 그런 상황이라면 골을 얻어 득실차를 벌이고 사기를 올리려고 하는 것이 옳은 전략 아닐까?
득실차가 중요할 수도 있는 상황이라면 더욱 그렇다. 물론 현재 전략대로 프랑스를 잡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나 역시 그럴 수 있기를 기대하지만 세상 일은 모르는 법 아닌가. 할 수 있을 때 하는 것이 좋았다고 믿는다.
단기전은 확실히 분위기가 많은 것을 좌우한다. 몰아쳐서 사기가 올라간 팀은 그렇지 못한 팀보다 더 커다란 잠재력을 발휘하는 경우가 많다. 히딩크가 대단한 것은 그런 심리적인 요소를 극대화한다는 것 아닐까?
내 관점에서 토고전은 절대로 만족할 만한 경기가 아니었다. 그리고 한국 국가대표는 그보다 더 잘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여전히 한국 토고전을 비판하련다. 아직 어느 누구의 글을 봐도 당시의 전략이 더 좋았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내 생각이 틀렸다면 바르게 지적해 주기 바란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나름대로 월드컵을 즐기고 싶다. 당신은 당신의 월드컵을 즐기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