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공격수 루니 비롯해 베컴·오언 등 역대 최고의 드림팀 구성BBC뉴스의 메인 화면에 웨인 루니(맨체스터 유나이티드)가 등장했다. ‘웨인의 세상(Wayne’s world)’이란 커다란 제목과 함께였다. 사실 메인뉴스 시간에 축구가 다뤄지는 건 별로 새로운 일도 아니지만 특별한 경기가 있는 날도, 어떤 시상식이 있는 것도 아닌데 웬일일까 했다. 알고 보니 FIFA컵 진품이 영국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18K 금으로 만들어진 FIFA컵은 이번 독일 월드컵을 맞아 세계를 돌며 그 유려한 자태를 드러내고 있는데 지난 2월 우리나라에도 공개된 적이 있다.
진품 FIFA컵은 지난해 이탈리아 조각가 실바오 가자니에 의해 새롭게 만들어진 신형 제품으로 2002 한·일 월드컵에서 브라질 선수들이 우승 직후 세리머니를 하는 과정에서 트로피에 흠집을 내 새로 만들어졌다. 어차피 세계 여러 나라를 순회할 FIFA컵이지만 여느 행사보다 더 호들갑스럽게 치러진 건, 그만큼 잉글랜드에서 월드컵 우승에 대한 관심이 높다는 걸 반영한 것이다. 정말 솔직히 유럽의 축구 현장에선 독일을 제외하곤 월드컵의 열기를 그렇게 쉽게 느낄 수 없는 것 같다.
각국의 자체 리그가 중반 이후로 넘어가면서 1위의 윤곽이 드러나고, 각국 컵대회도 아직 주인공이 가려지지 않았으며 챔피언스 리그도 한창 진행 중이어서 쏟아낼 뉴스가 넘쳐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웨인 루니 얘기만 나오면 월드컵이 곧잘 연상된다. 이날 행사 역시 주인공은 FIFA컵이었지만 진짜 주인공은 웨인 루니였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안 그래도 이번 잉글랜드 대표팀은 역대 최고의 드림팀으로 일컬어진다. 최고 유망주 웨인 루니를 비롯해 주장 데이비드 베컴, 첼시의 든든한 미드필더 프랭크 램파드, 리버풀을 챔피언스리그 우승으로 이끈 스티븐 제라드 외에도 마이클 오언, 존 테리, 조 콜, 리오 퍼디낸드 등 각 포지션에서 세계적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만한 선수들이 모여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첼시의 주장이기도 한 존 테리는 얼마 전 유명 축구잡지 ‘포포투(4·4·2, Four Four Two)’에서
잉글랜드가 이번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는 5가지 이유를 꼽았다.1. ‘우리에겐 웨인 루니가 있다’ : 그에 따르면 웨인 루니는 상대에게 악몽 그 자체라는 것(물론 모든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빠르고 다재다능하며 제공권도 좋은 편이고, 마무리 또한 탁월하며 패싱 능력과 움직임은 예술이라고 평가했다. 게다가 체력적으로 거의 짐승(beast)에 가까울 정도로 강하다고 표현했다. 연습경기에서 존 테리는 루니에게 거의 항상 당하는 역할이라고. 한번은 다섯 명의 수비수가 루니의 질주를 막지 못하고 그대로 나자빠진 적도 있다고 했다. 그것도 잉글랜드 대표 선수들이 말이다!
2. 첼시 현상 : 클럽에서의 성공은 바로 큰 무대에서의 성공을 이끈다는 뜻. 첼시의 승승장구는 그만큼 승리에 대한 자긍심과 전투심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하다는 것이다. 뭐든지 한번이라도 맛 본 자가 그 쾌감을 아는 법. 첼시의 주전인 자신과, 램파드, 조 콜 등은 항상 그런 투쟁심을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지난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하며 진정한 우승이란 무엇인지 그 짜릿함을 맛본 리버풀의 스티븐 제라드와 제이미 캐러거 역시 월드컵 우승을 향해 눈을 번뜩이고 있다고. 물론 항상 역대 최고 팀으로 꼽히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다. 잉글랜드 대표 선수들이 많은 팀의 성적이 좋은 것. 그것이 바로 우승 가능성의 비결이라고 그는 말했다.
3. 수비의 탄탄함 : 그를 비롯해 리버풀의 제이미 캐러거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리오 퍼디낸드, 아스날의 솔 캠벨이나 토튼햄의 레들리 킹 등 수비 자원까지 어느 하나 모자람이 없다. 게다가 수비 자원 대부분 미드필더 혹은 좌우 윙백을 번갈아 볼 수 있는 재능도 갖췄다.
4. 때가 왔다 : 선수들을 보면 정말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다는 뜻. 주장 베컴을 비롯, 마이클 오언, 개리 네빌 등은 국가대표팀 경기를 70~80번 소화한 노련미가 넘치는 선수들. 그럼에도 전혀 노쇠하지 않았다는 장점을 지닌다.(특히 오언의 경우는 이제 한창인 20대 중반이다. 최근의 부상도 상당 호전됐다는
소식 역시 잉글랜드 팬들에겐 반갑기만 하다). 게다가 신참 웨인 루니마저도 이제 어느 정도 경력을 갖추게 됐다. 선수들은 모두 리그가 끝나면 바로 월드컵 체제로 본격 전환할 정신적 중무장을 하고 있다.5. 스벤을 위한 고별무대 : 잉글랜드 대표팀을 이끄는 스벤 예란 에릭손 감독은 올 초 타블로이드지의 몰래 카메라 작전에 걸려 결국 이번 여름을 끝으로 대표팀 감독직을 그만두기로 약속했다. 선수들은 그의 발언에 상처를 받기도 했지만 그다지 흔들리진 않았다고 한다. 아직도 그는 잉글랜드의 감독이며 존경을 받는다고 한다. 그가 이번을 마지막으로 팀을 떠나기 때문에 그를 위해서 마지막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만은 아니라고. 그를 위해, 우리를 위해, 팬을 위해, 그리고 나라를 위해 한번 제대로 뭉쳐보자고 선수들끼리 다짐했다고 한다.
무엇보다 재미있는 일은 1966년 월드컵 우승한 이후 가장 좋은 성적을 거뒀던 때가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과 유로 96에서의 4강. 그런데 그때마다 감독은 항상 대회를 마치고 그만두는 묘한 인연이었다. 이번엔 아예 ‘예정 고별’이니 어쩌면 그때보다도 더 좋은 성적을 가져올 좋은 징조일지도 모른다나. 이렇게 ‘징조설’까지 찾아내는 걸 보면 잉글랜드의 바람이 어느 정도인지 알 것 같다. 잉글랜드는 이탈리아나 스페인 등 이웃 유럽국가 어떤 곳보다도 축구 애국심이 큰 걸로 알려져 있다. 조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도 내놓겠다는 전쟁 영웅들의 혼이 그대로 담긴 건지도 모르겠다.
지난해 10월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서 열린 ‘트라팔가 해전 200주년 기념식’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프랑스와 스페인 연합함대를 격파한 뒤 전사한 넬슨 제독을 추모하기 위한 행사였는데, 트라팔가 광장을 수놓던 영국국기의 향연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전국에서 런던으로 올라와 영국 국가와 각종 노래를 부르며 ‘대영 제국이여 영원하라’를 외치고 있었다. 솔직히 소름이 끼쳤다. 그들의 자부심과 자긍심에. 이번 월드컵에선 이들의 자존심이 어느 정도 높아질지 점점 더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