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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양 ''낙지터널''을 아시나요?

윤승원 |2006.04.22 12:20
조회 513 |추천 0

출향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청양 낙지(樂之)터널

- 고단한 삶 살다간 옛 '일꾼'들의 애환 서린 고갯길

 

글. 사진 / 윤승원

 

진달래, 개나리, 벚꽃이 만개한 고향 산천을 두루 여행했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이 즈음이 되면 고향 선산을 찾아 성묘하고, 앞 다투어 피는 봄꽃을 구경하는 것이 연례 행사처럼 되었지요.

4계절 중 초록의 싹이 움트고 꽃이 피는 아름다운 계절에 어르신들이 돌아가셔서 산소를 찾아 뵙게 되니 자손들로서는 '큰 복'이란 말도 하게 됩니다.

저의 고향은 구기자, 고추, 표고버섯, 메론 등의 생산지로 유명한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입니다. 청정 지역을 자랑하는 칠갑산(七甲山)과 천년 고찰 장곡사(長谷寺) 등이 인접해 있는 유서 깊은 곳이기도 하지요.

감탄을 자아낼 수밖에 없는 '포장도로'

저는 고향을 찾을 때마다 늘 신기해하면서 감탄하는 게 있습니다. 시원스레 뚫린 '포장 도로'입니다. 먼지 휘날리던 비포장 도로의 추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저로서는 승용차로 미끄러지듯 시원스럽게 달릴 수 있는 아스팔트 도로가 꿈 같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대통령이 바뀌고 국회의원이 수 없이 바뀌어도 발전이 요원하기만 한 가장 낙후된 지역이므로, 도로포장이 되려면 우리 생전에는 어렵다"고 동네 어르신들이 입버릇처럼 말씀하시며 아예 기대도 하지 않았던 곳입니다.

자갈 길 옆 논배미에서 먼지를 마시며 피사리도 해 보았고, 자전거를 타고 물웅덩이 파인 비포장 도로를 달려 원거리 통학도 해 본 경험이 있습니다. 어디 그뿐인가요.

도로정비 사업인 이른 바 '길닦이'에 동원되면 싸리 소쿠리와 괭이를 들고 집집마다 지정된 구간에 나가 자갈과 모래를 까는 일도 해보았습니다. 당시 동네 사람은 이를 일컬어 '비럭질'이라고 했습니다. 국가가 관리해야 할 일을 아무 대가 없이 주민들을 동원해서 시킨다고 해서 그런 말이 나온 것으로 짐작됩니다.

그런 고생스러웠던 추억도 이젠 점점 역사 속으로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추억은커녕, 가는 곳마다 도로 포장이 아주 잘 되어 있어 교통사고가 빈번하다는 뜻하지 않은 걱정거리가 생겼지요.

많은 이야기 간직한 '고개'가 사라져

아무튼 고향을 찾으면 또 하나 획기적인 일이 있습니다. '고개'가 사라졌다는 사실입니다. 호랑이도 출몰한다는 '낙지고개(일명 까치내[鵲川]고개)'가 사라진 것은 출향인으로서 놀라움을 넘어 감탄할 지경입니다.

저의 고향 장평면에서 군청 소재지인 청양읍내까지 가려면 이 '까치내 고개'를 넘어야 하는데, 산세가 아주 험하여 나이 20살이 넘도록 이 고개를 넘어가 본 적이 없습니다. 군에 입대할 때 집결지가 군청 마당이어서 딱 한 번 이 고개를 넘어가 본 기억밖엔 없을 정도지요.

입대 이야기가 나왔으니, 빼 놓을 수 없는 장면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각 동네마다 입대하는 장정이 한 두 명씩 있어 그들은 이 도로를 지나는 완행버스를 타기 마련이었습니다. 이 때 주민들이 신작로에 일렬로 도열하여 삶은 계란이며 여비를 주머니에 찔러 주던 풍경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낙지(樂之)터널' 그 명칭에 대한 유래

▲ 출향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낙지터널' - 터널이 뚫리기 전, 이곳 '까치내 고개'에 얽힌 숨은 사연을 기억하는 나그네는 승용차로 스치듯 빠른 속도로 지나치지 못합니다. ⓒ 윤승원추억의 '까치내[鵲川]고개'. 일명 '낙기티', 또는 '낙지(樂只)고개'라 불리던 이 고개는 낙지리(樂只里)와 지천리(之川里) 사이에 있는 고개로서 주민들은 '낙계(樂溪)재'라고도 부릅니다.

산천이 수려하고 계곡 물이 유난히 맑아 즐기기 좋은 곳이라서 사람들은 예로부터 '낙지(樂只)'라는 운치 있는 이름을 붙였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그런데 터널이름이 왠지 생소합니다. 법정리인 '낙지(樂只)'가 아니라 '樂之터널'로 새겨져 있습니다. 낙지리는 '樂只'로 써야 맞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글자 하나가 달리 표기되었나 궁금하여 군청에 알아보니, 낙지리(樂只里)와 지천리(之川里)를 잇는 터널이라고 해서 공평하게(?) '樂之터널'이라는 새로운 명칭을 입구 상단에 새겼다는 것입니다.

이런 내력을 잘 모르는 출향인들은 '樂只'라는 법정 지명 표기가 터널 시공자의 손에 의해 임의로 잘못 새겨진 게 아니냐는 지적을 곧잘 한다고 합니다.

군청에서는 이런 '생소한 터널 이름'에 의문을 갖는 출향인들을 위해서 홈페이지 등에 그 유래를 상세히 밝혔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봅니다.

▲ 생소한 이름의 터널- '낙지(樂只)터널'이어야지, 왜 '낙지(樂之)터널이라 하는가. 장평면 낙지리는 분명히 낙지리(樂只里)로 쓰는 것이 맞습니다. 그러나 '낙지(樂之)터널'은 '낙지리와 지천(之川)리'를 사이에 둔 터널이라는 뜻에서 이런 합성 명칭을 돌에 새겼다는 것을 뒤늦게 알았습니다. ⓒ 윤승원▲ 터널 준공 기념석(記念石)- 고향에 대한 애틋한 사연을 간직한 '출향인'은 이런 기념석을 예사로 지나치지 못합니다. 예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런 '굴'을 몇 년에 걸쳐 뚫었으며, 길이가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지 않고는 그냥 지나치기 어렵습니다.(길이 505 미터, 공사기간 1995. 2. 28 -1997. 6. 24) ⓒ 윤승원문득 '일꾼, 김씨 아저씨' 생각이 나는 까닭

아무튼 터널을 통과하면서 그 옛날 집안 농사일을 도맡아 하던 '일꾼 김씨 아저씨' 생각이 문득 났습니다. 새경 받고 일하던 사람이지요. 지금도 저는 이 분을 '머슴'이라 칭하면 하대하는 것 같아 죄송스러워 당시 부르던 대로 '일꾼 아저씨'라 칭합니다.

사시사철 힘든 농사일을 하면서 '김씨 아저씨'가 가장 신명나게 좋아하는 날이 까치내(鵲川) 골짜기로 '먼 산 나무하러 가는 날'이었습니다.

이른 새벽에 어머니가 지게에 도시락을 매달아 주면 소풍가는 아이처럼 기분이 좋아 콧노래를 흥얼거리던 김씨 아저씨의 모습이 아련히 떠오릅니다.

온 동네 '일꾼'들이 이곳에 약속이나 한 듯 모이면 지게를 받쳐 놓고 온갖 재주도 뽐내고, 우스개 소리도 하는 등 고된 머슴살이의 시름을 잊기 위한 한 바탕 '놀이마당'이 펼쳐졌다고 합니다.

이런 삶의 애환이 서린 고개가 흐르는 세월과 함께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이제는 터널이 뻥 뚫려 자동차로 단숨에 통과합니다. 이런 놀라운 사실을 지하에 계신 그 분들에게 전하면 무어라 할까요?

"참으로 좋은 세상이 되었구먼!"이라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일꾼 아저씨'가 여기서 해 온 나무를 한 짐 마당에 '쿵'하고 부리면 동네 아이들이 달려 들었습니다. 나뭇단 속에 숨겨진 개암이며 으름 열매를 뒤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 먼 곳에서 힘들게 해 온 나뭇단을 철없이 뒤지던 어린 소년이 이제 어느 듯 흰머리가 더 많은 지천명의 나이가 되어 터널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입구 갓길에 승용차를 세워놓습니다.

남모르는 사연을 떠올리며 예전엔 상상도 하지 못했던 터널의 모습을 신기한 듯 카메라에 담는 이 출향인의 심정을 그 누가 알는지요.
<'고개'가 사라졌다>는 50대 중반의 '촌 태생'이 이런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의 시골 이야기를 하면 이 시대에 공감을 해 주실 분들이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서 글을 썼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지게 지고 고개 넘어 산에 가서 나무를 해 본 분들은 지금 제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는지, 그 뜻을 조금은 헤아려 주시리라는 막연한 생각으로 이런 글을 올립니다.

- 글쓴이는 수필 문학인입니다. 틈틈이 글을 써 오면서 1990년 등단이후 <삶을 가슴으로 느끼며> <덕담만 하고 살 수 있다면> <우리동네 교장선생님> <부자유친> <아들아, 대한민국 아들아> 등 문집을 펴낸 바 있습니다. 평범하지만 따뜻한 가슴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적인 이야기에 관심이 많습니다. 필자의 글마당 '청촌수필'(나의 사랑하는 생활) http://cafe.daum.net/ysw2350 에 올리기 위해 쓴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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