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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의 의무를 다시 생각해 본다 (2)

최영호 |2006.05.01 10:56
조회 669 |추천 2
 

납세의 의무를 다시 생각해본다(2)

(1편에서 계속......)


 세금은 세금을 낸 사람을 위하여, 납세자와 그가 부양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그가 함께 살며 정을 나누는 이웃과 사회를 위하여, 그가 살아가며 뼈를 묻을 국가를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나라살림도 우리네 가정이나 회사의 살림살이와 다름이 없다.

가족이 벌어 온 것은 기본적으로 가족들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한다.


이웃에 대한 도움은 우리 가족이 인간다운 생활을 할 기본을 갖추고, 상당한 이유가 있을 때에만 사용하여야 한다.

그것도 가족들의 동의가 있을 때에 한하여...


열심히 벌고 아껴쓰고, 저축하고, 그러나, 부동산을 구입하거나 땅을 사고, 여기저기 투자를 하는거 빚을 내는 등 가족들의 부담을 초래하거나 투자효과가 적은 곳이나 투기를 하고자 할 때에는 가족들이 모두 흔쾌히 승낙하여야 온 가족이 화목하고 가장의 리더쉽에 복종하고 진정한 가족애를 느끼지 않을까?


가족들이 벌어오는 월급을 가장이 모두 빼앗거나 생활비 명목으로 내놓으라고 하는 돈의 액수를 마음대로도 높여서도 안되고, 수입이 없는 가족에게 매월 일정하게 주는 용돈을 함부로 깎아 생활에 불편을 주어서도 안된다.


하물며 권리와 의무로 맺어지는 국가와 국민의 관계에 있어서는 국가가 국민들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징수한 세금은 가정에서의 경우보다 훨씬 더 강력한 통제를 받으며 사용되어야 한다.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강제로 징수한 세금은 헌법이 규정하는 국가의 의무 즉, 국민의 기본권보장과 국가의 안전보장과 공공질서의 유지, 공공복리의 유지와 증진을 위하여만 사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다만, 국가는 국민의 공동체로서 함께 번영하고 성장하여야 할 유기체적 존재이므로 모든 국민이 공동으로 부담하는 비용으로 자신의 고의나 과실, 게으름이 없이 최선을 다하여도 지위전환의 가능성이 전혀 없는 사람을 위하여 사용되는 것은 당연하다.


 또 자신의 잘못이 없이 어려운 환경이나 불행한 신체적 조건으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지위전환의 가능성이 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지위의 전환이 가능하고 자신의 세대에 그것이 어려우면 그들의 자손이라도 지위전환이 가능하도록 복돋우어 주는 것은 각 개인을 대신하여 국가가 공동체의 이름으로 행하는 성스러운 의무이다.


그러나, 그러한 예산의 집행은 평등하고, 공정하게 그리고, 가장 적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도록 효율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예산의 집행, 세금의 사용이 평등, 공정, 효율적으로 행하여지지 않는 까닭에 적십자회비, 무슨 무슨 성금 등 조세가 아닌 조세가 국민들에게 새로운 부담으로 등장하여 자리(?)를 잡고 있는 것 아닐까?


필자는 적십자회비도 소득과 재산상태에 따라 납부하라는 적십자사의 홍보문이 아파트 출입구에 게시된 것을 보고 의미심장한 생각이 들었다.


할 수 없이 보는 눈이 많아 내기는 내지만, 참 그거 왜 내야하지?

아예 세금으로 만들면 족한 것을 왜 적십자 “회비”라고 이름을 부쳐서 마치 자발적으로 내는 것처럼 행하고 있는지 나는 잘 모르겠다.


마당 쓸려고 빗자루 들고 있는데 “야, 마땅 쓸어라” 그러면 짜증나는 것이 솔직히 인간의 얄팍한 마음이 아닐까?


 TV 시청료도 그 범주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많다.


 광고도 하고, 시청료도 받고, 공중파로 보지 않고 케이블 티브이에 시청료내고 케이불로 보는데도 내야하고, 난시청지역도 내야하고, 아이들 공부하라고 아예 TV를 보지 않아도 내야하고........


 그러고 보니 그런 점도 있네....


양극화라는 말이 언제부터 우리사회에 횡행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사유재산제와 시장경제를 기본으로 하는 이상, 능력과 여건과 개인의 의지에 따라 빈부의 차이는 필연적이고, 그 정도가 심화되면 양극화는 생겨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없으면 개인간의 경쟁은 존재할 가치가 없으며, 발전의 의지와 욕구도 없어질 수밖에 없다.


누구든지 열심히 일하면 그만큼 보수를 받고,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하면 더 좋은 대우를 받기를 원할 것이며, 능력있는 사람과 무능하고 게으른 사람을 동등하게 대접한다면 아무도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우리 인류가 공산주의,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시장경제를 차단하며 개인의 능력과 의지를 인정하지 않는 공산주의를 배격하였던 이유가 아니었던가?

빈부의 격차, 금권만능주의, 유전무죄 무전유죄, 요즈음 아무나 사용하는 양극화...


이 모든 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 하에서 전 세계적으로 모든 나라가 겪고 있는 사회문제다.


인적 자원 이외에 아무 것도 없는 열악한 우리 한국이 혼자서 독자적으로 다른 나라보다 훨신 우수하고 합리적인 제도를 만들어서 자본주의의 폐단을 해결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우리는 적극적인 부가가치의 창조보다 일제시대가 어떻고, 동학혁명이 어떻고, 독도가 어떻고 하는 방식으로 스스로의 힘을 분산시키는 일보다는 일 잘하는 사람에게, 능력이 있는 기업에게 보다 더 일을 잘하고, 보다 더 많은 부가가치를 창출하여 국가공동의 부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할 수 있도록 국가의 힘과 세금을 사용하여야 하지 않을까?


아이 셋을 낳거나, 부부가 맞벌이하는데 돈을 10만원씩 주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그들이 보다 더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만들고, 그 사람이 속한 회사가 수출을 더 잘 할 수 있도록 뒷받침을 하는 한편, 탁아제도를 늘리고, 사회복지사를 크게 증원하는 등 거시적인 투자를 하는 것이 올바른 방법이 아닐까?


세계적으로 공통인 자본주의의 병폐는 다른 나라와 협조를 통하여 세계 각국이 행하는 제도와 방법의 합리성이 담보된 다음에 천천히 도입하여 제도의 폐단과 비능률성이 없음을 확인한 뒤에 다른 나라와 함께 보조를 맞추어 시행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실패율이 높고 고도의 비용과 인력을 요하며, 국민들 간의 위화감 조성이나 체제에 대한 위기감을 고조시키는 등 회복이 어려운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주5일 근무제, 의료보험, 국민연금 등 우리가 형편에 맞지 않게 억제로 시행하였다가 얼마나 많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많은 사람들이 다 알고 있으면서도 이제는 그것을 돌이킬 수도 없게 되지 않았는가?


 어느 나라이건 누진세율에 따라 고소득자는 더 높은 비율의 세금을 납부하고 있지만, 세금을 많이 낸 사람이 절대로 존경받고 있지 못한 것이 현실이고, 납세자의 신고에 의하여 부과되는 세금제도는 필연적으로 모든 국민을 잠재적 조세포탈자로 여겨질 수 있는 폐단도 내재하고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세금징수제도의 진보와 소득추산의 정확성 또는, 세무조사 등 국가의 강제력이 무서워서 정직하게 세금을 내가면서 국가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예산을 집행하고 남은 세금을 돌려주지는 않더라도 기왕에 가져가신 돈, 그냥 온 나라사람들이 혜택을 받는 좋은데 쓰시라고 이미 납부한 세금에 대하여는 별다른 미련을 가지지 않는다.


그러나, 양극화를 없앤다는 대단한 목표 아래 실효성이 없는 제도를 새로이 만들어 비현실적인 방법으로 세금을 사용하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발상일 수도 있다.


 아무리 양극화가 심화되어 있더라도 국가예산에 의한 무조건적인 지원의 보장은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들고, 건전한 근로의식을 감소시킬 것이 분명하다.


 가만히 있어도 국가가 기초적인 생활은 보장해 준다면서?


또 국가의 무조건적인 지원은 국민들로 하여금 우리는 세금 다 냈으니 국가가 모든 어려운 사람들을 구제하시오, 그것이 국가의 임무 아닌가요? 그런 식으로 국민들의 도덕심과 윤리설정기준을 그르치게 되지 않을까?


세계가 함께 겪고 있는 문제는 세계와 함께 고민하고,

너무 앞서 가지 말고, 조금 걷어서 현명하게 사용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토요휴무이니 이런 글도 쓸 수 있고 좋기는 좋다.

조세행정을 잘 모른는 사람이 이런 걸 쓰려하니 어렵기도 어렵고,

 

참, 토요일 오전 완전히 박살났다(‘06. 2. 17. 최영호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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