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 당신을 믿을 수 없어!"
이 말은 우리가 누군가와 헤어질 것인가 말것인가를 고민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그대로 드러낸 말이다. 함께 하는 사람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이보다 더 불행하고 불안한 일이 어디 있을까? IMF세대라면 신용의 위기가 얼마나 큰 비극인지를 잘 알 것이다. 의처증, 의부증이 얼마나 피곤한 정신질환인지를 아는가.
관계는 서로에 대한 신뢰가 존재할 때 견고해진다. 그러므로 믿음이란 관계를 유지시키는 힘이다. 신뢰하지 않는 만남은 껍데기만남일 뿐이다. 신용을 잃어버리면 그 거래는 더 이상 유지될 수 없다. 반대로 신뢰할 수록 그 관계는 든든하며 어떤 분열의 위협도 이겨낼 수 있다. 서로 믿으면 아무리 오래 보지 못해도, 멀리 떨어져 있어도 일치감과 평안함을 누릴 수 있다.
믿음은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 어떻게 해서 생겨나며 존재하는 것일까? 적어도 믿음을 쌓아가기 위해서는 두가지가 필요하다. 약속을 지키는 것과 투명한 삶이다. 믿음은 약속의 성취라는 경험을 통해서 쌓여진다. 상대방이 약속을 지켰던 경험, 그 진실함의 결과를 한번 두번 경험하다보면 상대의 인격과 능력에 대한 믿음이 생긴다. 작은일에 충성하는 모습을 보이면 그로 인해 얻은 신용으로 큰 일도 맡을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로부터 믿음을 얻고자 한다면 약속을 지키는 신실함을 보여주어야 한다.
투명성은 능력의 부족을 메워주는 보완제이다. 대개의 사람들은 내가 보인 무능함보다 무능함을 숨기려는 진실하지 못한 태도에 더 분노하곤 한다. 투명성을 높이는데에는 솔직한 대화가 효과적이다. 상대로 하여금 궁금하게 하고 추측하게 하는 일이 많을 수록 믿음은 사라진다.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 중요성 여부를 자의로 판단하지 않고 할 수 있는대로 많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게 될때 둘은 서로의 속성과 의도에 대해 알게 되고 이는 믿음의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반대로 모호함은 마음주기를 가로막는 치명적 장애물일 뿐이다.
나는 다른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는 사람인가? 믿을 수 없는 목회자, 믿을 수 없는 배우자, 믿을 수 없는 애인들이 많아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신용을 잃었다면 나는 아마도 말과 행동이 달랐던 경우가 너무 많았고 숨기는 것들이 너무 많았을 것이다. 잃어버린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믿음을 잃어버린 사람이 버림받아 고독의 섬에서 느끼는 아픔을 조금이라도 기억한다면 그는 다시 시작하리라. 인간이 필연적으로 관계속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존재임을 안다면 이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