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책갈피

악동들은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

김철희 |2006.05.20 01:20
조회 33 |추천 0

악동들은 어떠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그해 이맘때였습니다. 당시에는 먹고사는 문제가 우리들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던 그런 시절이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겠지만 그해에도 교정과 주변일대를 휘어잡았던 일부의 악동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신분보호 차원에서 성은 생략한 채 이니셜로만 공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가장 주먹이 강하고 용감하였던 JC, 한 덩치로 무리를 든든하게 받쳐주었던 KS와 BM와 SY, JS, HC, DS, CH까지 하여 총 8명은 한동네에 같이 산 죄(?)로 인해 등하교 길에는 늘 함께 하였습니다. 당시 우리들은 학교를 파하면 각자 생활전선으로 뛰어들어야 하기에 학교가 파하기가 무섭게 모두들 부모님이 하시는 일을 늦은 저녁시간까지 도와드리고는 밤이 깊어서야 동네 근처의 뒷동산에 모여 축구를 하기도 하고, 싫증이 나면 야구도 하고, 또 그것도 싫으면 럭비도 하며 체력과 함께 우정을 돈독히 다지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또한 주일이면 동네에 있던 교회인 “HY교회” 에 모여 일주일간의 학교와 동네에서 못된 악동생활에 대한 마음을 회계하는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해에는 점심시간이 되면 생활형편이 나은 친구들은 강냉이 빵과 우유를 좀더 생활형편이 나은 친구들은 도시락을 싸오던 시절, 우리들은 점심시간이면 늘 교문 밖을 나와 각자 집으로 달려가서 아침에 남겨둔 음식을 섭취하거나, 정부로부터 지원받은 콩가루와 강냉이로 만든 죽을 섭취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모두가 먹고 입고 사는 문제로 허덕이던 시절이었지만, 마음만은 어려운 이웃을 보면 모두가 자신의 일인 것처럼 나서서 무슨일이든 도와주려던 훈훈한 인정이 철철 넘치던 시절이었습니다. 동네와 학교를 오고가는데 함께한 8명의 친구가 있었다면 학교 안에서는 앉은자리를 중심으로 주변에 위치한 친구들과 함께 우정을 쌓았습니다.

 

당시 주변에는 YB, KB, SO, CHA, 오 등의 남자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한반에 90명이 와글와글 모여서 공부를 하였기에 모두가 가까운 친구가 될수 없어 마음에 맞고 주변에 위치한 친구들과 늘 가깝게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럼으로 인해 선생님도 자신이 맡고 있는 학생의 이름을 특출한 이들을 제외하곤 모두를 기억하지 못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중에서 한반의 단짝인 관계로 늘 같이 붙어 다니던 YB와 나는 사소한 일로 티격태격 하였습니다. 당시에는 한반에 TV를 소유하고 있는 집이 별로 없었기에 TV에서 방영되던 “타이거마스크, 요괴인간, 황금박쥐, 밀림의 왕자 레오, 아톰” 등은 다음날 학교에 등교하면 얘깃거리로 쉬는 시간 내내 얘기를 해주는 친구와 다음 편을 궁금해 하며 줄거리를 진전시키는 친구와 실제적으로 보는 친구 간에 틀리다 맞다 등을 놓고 언쟁을 벌이면 이들을 중심으로 편이 갈라져서 괜한 다툼을 하곤 했습니다.

 

그런 때에 YB는 자신의 집 인근에 극장이 있었기에 늘 극장 앞에 붙어있는 포스터를 보거나 또는 라디오에서 김부자란 가수의 노래 “무정한 철새”가 막 들려 나오던 시절이라 해당가수에 대한 정보를 어떻게 알았는지 그 귀한 정보를 우리들에게 일일이 설명을 해주면서 해당가수의 노래를 직접 들려주기도 하여 비록 반에서의 공부는 밑바닥을 기며 담임선생님의 속을 태우는 학생이었지만 반 아이들에게는 영화배우, 가수등 연예인들의 정보를 제공하여 그야말로 인기가 최고였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YB는 아버지의 하는 일로 인해 많은 곳을 돌아다니며 학교를 전전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럼으로 한곳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 꽤 오랜기간 동안 전국을 떠도는 방랑 생활로 인해 정서적으로 불안정하여 공부에 매진하지 못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런 반면에 연예계 소식들을 가지고 친구들을 사로잡는 면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또한 그해가 YB가 학교를 마지막으로 다니는 학년이었기에 YB의 유랑생활도 우리들과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었던 것 같습니다. 간혹 YB는 자신의 두툼한 도시락에다 당시에는 매우 귀한 쌀밥을 싸와 나를 학교 철망 밖으로 불러내어 반찬은 김치가 전부이긴 하지만, 그 귀한 쌀밥 도시락을 함께 나누어 먹 게 한 우정 어린 친구였습니다. 그렇게 YB와 나는 때로는 주먹다툼도 하고 때로는 아름다운 얘기들을 나누면서 깊은 우정을 쌓았습니다. 당시 YB는 성질이 매우 불같아서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는 성격으로 인해 곧잘 주변의 친구들과 주먹다툼을 자주하여 늘 얼굴에 훈장을 한두개씩 달고 다니는 아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YB의 안면은 우락부락하여 인상파란 별명을 반 아이들에게 듣기도 하여 주변에 여자 친구들이 기피하는 제1순위에 드는 아이였습니다.

 

그렇게 학년의 마지막을 보내던 그해 겨울 시간은 흘러 정든 학교를 떠나야 하는 시간은 다가왔습니다. 그 시절에는 학교생활이 하도 엄격하여 졸업식날 교장선생님 앞에서 실수라도 할까봐 담임 선생님들이 졸업식노래와 함께 축사와 송사를 연습을 시키는 졸업식 연습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모두들 한입으로 졸업식노래를 부르던 순간, 내 옆에 있던 YB가 갑작스레 큰소리로 울음을 터트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은 “YB 쟤 오늘 왜그래” 하는 식으로 모두들 의아해 하고, 또한 담임선생님은 YB에게 다가오더니, 감정을 좀 자제하라는 말로 조용히 타일렀습니다. YB가 이런 감정을 보인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라 모두가 적잖이 당황했고 모두들 말이 없었습니다. 평소에는 그렇게도 강인한 모습의 소유자였던 YB의 울음은 다른 급우들에게 공감을 못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다른 한편에서는 키득키득 하며 웃는 모습들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졸업식 전야제는 YB의 울음소리 해프닝으로 인해 더 이상 진척되지 못하고, 조기에 종료되었습니다. 다음날은 졸업식이 열렸는데, 당시 밖의 날씨가 매우 추웠고 또한 눈이 내렸던 상황으로 인해 밖에서 식을 진행하지 못하고, 교실에서 스피커를 통해 졸업식을 진행하였습니다. 순서에 따라 교장선생님의 축사가 있었고, 후배의 송사를 한 후에 졸업생대표가 교장선생님과 후배들에게 답사가 끝난 후에 졸업식 노래가 나오고, 모두들 어제 졸업식 전야제에서 연습한대로 졸업식 노래를 한목소리로 불렀습니다. 졸업식 노래가 시작되자 YB가 먼저 울음을 터트리자, 어제와는 다르게 숙연해지면서 눈물과 함께 울음소리들을 내기 시작했습니다.

 

당시 단짝인 YB의 울음 감정을 그대로 이어받아 나 자신도 모르게 가슴 밑바탕에 가라앉아 있던 마음이 두둥실 떠오르면서, 다시는 학교 교실에 들어서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과 함께 이제는 모두들 뿔뿔이 훝어져야 한다는 생각과 선생님과도 이별을 해야 한다는 복합적인 뭉클한 마음이 뒤엉키며, 졸업식 노래가 끝났음에도 모두들 울음을 그치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졸업식 노래와 함께 학교를 떠나간, 이들 에 대한 후일담은 일부의 친구들은 병역검사 장소에서 심사관의 호명으로 인해 YB와 KB를 만나긴 했지만 너무 오래 떨어져 생활한 탓인지 서로 외면하는 사이로 변질이 되었습니다. 당시 주먹을 가장 잘 사용했던

 

JC는

홍수환선수의 전문 스파링파트너로 복싱계에 입문한 후 한국복싱 참피온 자리를 넘봤던 선수가 되었다가. 체중조절에 실패하여 제대로 주먹한번 사용하지도 못하고, 외국선수에게 패한 후 링을 떠나 유흥업소에 진출했다고 들었습니다. 개인적으로 JC와의 비화 한토막입니다. 그의 트레이너를 하면서 말다툼을 벌이다. 그의 오른쪽 카운터펀치 한방을 맞고 잠시 다운(?)된 경험도 있습니다. 평소 카메라에 관심이 많던

 

HC는

후에 영화를 한다며 충무로를 드나들며, 하루 아침이나 오후시간에 다방에 앉아서 커피와 달걀을 먹은 다음에는 하루 종일 죽돌이 지루할만도 할텐데 그런 생활도 자랑스러워 한 충무로키드였던 그는 스승인 장◆◆기사가 돌연사 하는 바람에 정상적인 촬영감독(잇뽕)은 못되고 비디오촬영감독 생활을 한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다음으로는 공부를 좀 한다고 했던 JS는 한국전력에 취직을 한 이후에는 평소의 성격대로 친구들과 멀리하더니만 자연적으로 소식이 끊겨 감감무소식입니다.

 

평소 기계다루는 일을 좋아하던

 

KS는

중장비기사로 잘나가다 중장비를 직접 운영하는 사장님이 되었다는 소식과 함께 그를 추종하는 후배들을 몇 명을 중장비기사로 키워주어 먹고 살만하게 해주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SY는

그자신이 오랫동안 꿈꾸어오던 자동차 정비기사 생활을 하더니 서울 어느 유명대학 근처에 정비업소를 직접차려 독립을 하였다는 소식을 들었고,

 

BM은

폐지를 모으는 고물장수를 하다가 고물상을 차려 운영한다는 얘기와 함께 DS는 그의 형과 누나의 주선대로 연예계로 진출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한동안은 연예인 로드매니저 생활을 하다가 잘 안되었던지, 어느 때엔가는 소식도 없이 어떻게 알았는지 갑작스레 나의 일터로 찾아와 돈좀 빌려 달라고 해서 얼마를 빌려가더니, 그후론 친구들과도 연락이 끊어져 행방불명이란 우울한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해 이때쯤에 정든 학교를 떠난 이들은 지금은 나이가 들어 이사회에 중심적인 역할을 해주어야 될 텐데, 어떻게들 삶을 영위하고 있는지 소식들은 전혀 알 길이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입니다.

 

그들 모두가 무척이나 보고픈 이른 새벽 시간입니다. 어떠한 상황으로도 살아 있다면 소식이라도 닿아 한번 그때의 순수한 마음으로 돌아가 만났으면 합니다. 어디서 어떻게 있든지 간에 모두들 건강하고, 행복했으면 하는 바람을 졸업시즌이 지난 오늘 신에게 간절히 기도합니다.

추천수0
반대수0

공감많은 뉴스 시사

더보기

뉴스 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