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니홈피의 텍스트. 신화, 그리고 이데올로기 -
1.
일반 모니터를 꽉 채우는 홈페이지가 아닌 1/3가량 되는 조그만 홈페이지가 인기를 몰고 있다. 광고 팝업 창도 뜨지 않고 용량에도 제한이 없다는 광고로 주목을 끌었던 싸이월드의 미니홈피(http://www.cyworld.com)가 그것이다. ‘홈페이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작다고 하여 ‘미니홈피’라 명명된 이 곳에는 모든 것이 작고 앙증맞기만 하다. 그러면서도 다른 홈페이지에서는 볼 수 없는 여러 가지가 등장한다.
미니홈피의 모습
작은 홈페이지, 이른바 미니홈피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무척 많아서, 신조어로 ‘싸이질’이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이다. 이 가상의 공간에서 열광하는 사람들의 이면에는 그러한 열광을 부추기는 여러 기호학적 장치들이 숨어 있다.
2. 미니홈피의 텍스트
에서 보이듯이, 이 미니홈피는 다른 사이트에 비해 작은 크기를 갖고 있다. 마치 다이어리를 펼친 듯한 모양이지만 각 면의 크기는 다르다. 먼저 좌측면에는 (1) 자신을 상징하는 사진을 두는 칸이 있고, 그 밑에는 (2) 인사말이 놓인다. 다시 그 밑에는 (3) ‘홈주인’, ‘나’라는 구분의 탭이 있으며, 각각을 펼치면 자신이 맺은 ‘1촌’을 볼 수 있다.
‘1촌’은 미니홈피의 친교적 기능(phatic fuction)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개념이다. 친족 개념에서의 1촌은 물론 아니다. 싸이월드 가입자에 한정돼 있긴 하지만, 자신의 사이버 영역 속에서 좀더 각별한 인간 관계를 의미하는 용어이다. 상호 합의가 전제되면 자신이 아는 사람뿐만 아니라 생면부지의 모르는 사람과도 1촌을 맺을 수 있다. 탭을 누르면 언제든지 1촌의 홈피로 갈 수 있으므로, 상호 교류의 촉매라고 할 만하다.
다시 우측면으로 가면, 맨 위에는 (4) 자신의 홈피 타이틀을 정해 올릴 수 있는 칸이 있고, 그 밑에는 (5) 최근 업데이트된 4가지 컨텐츠 제목을 보여주는 공간이 있다. (6)의 표에서는 업데이트된 것이 어디어디에 어떻게 있는 지 간략하게 보여준다.
다른 홈페이지에서는 없는 것으로 (7) ‘미니룸’이 있다. 자신만의 고유한 영역을 꾸미는 공간으로서, 자신의 아바타를 포함한 배경을 꾸밀 수 있게 돼 있다. 미니룸을 꾸미기 위해서는 싸이월드에서만 통용되는 화폐로서 ‘도토리’가 있는데, 도토리 1개는 100원에 해당한다. 괜찮게 꾸미려면 400픽셀도 안되는 조그만 미니룸에 만 원 정도의 비용이 소요된다고 한다. 다시 그 아래에는 (8) 1촌들의 메시지를 보여주는 공간이 있다. 여기에 적혀 있는 1촌평이 많을수록 그 홈피는 인기가 많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9)에는 홈피를 구성하는 탭이 있다. 이 항목 역시 운영자가 직접 수정할 수 있다.
(10)은 ‘에로틱, 페이머스, 프렌들리, 카인드, 카르마’라는 5개의 막대 그래프이다. 어떤 사이트에서도 유래가 없는 이 항목은 사실상 그 홈피의 운영자의 인기나 호감 등을 반영한다. 그 수치가 높을수록 막대 그래프가 길어지고, 인기가 높은 홈피는 숫자가 만 단위를 상회한다.
여러 항목들이 나열돼 있지만, 이상의 10가지 항목들은 미니홈피가 갖는 일반적인 텍스트 구조이다. 이 중 몇몇은 사용자의 의지대로 변경할 수는 있지만, 어느 것도 삭제할 수는 없다.
이 미니홈피의 구조는 자신의 컨텐츠를 전달할 수 있는 공간과 타자(alterity)의 컨텐츠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과, 타자와 나와의 관계를 가름하고 규정지을 수 있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이 세 가지의 코드를 이해하는 것이 미니홈피에 대한 기호학적 분석의 출발점이다.
3. 미니룸, 무언의 호명

최초 주어지는 미니룸은 폐쇄공간이다.
미니홈피에 처음으로 가입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미니룸의 모습은 한 마디로 공허한 공간 그 자체이다. 자신에게 무료로 주어진 이 미니홈피를 꾸미든 꾸미지 않든 그것은 순전히 자신의 의지이지만, 미니홈피는 독특한 방법으로 사람들을 초청 또는 호명(interpellation)한다.
는 최초로 주어지는 미니룸의 모습이다. 사이버 공간에서 자신의 아바타는 3면이 밀폐된 공간에 위치해 있다.
이 공간의 3차원을 구성하는 세 접점은 미니룸의 정중앙에서 만나고 있다(그림 2의 a지점). 원근법에서는 정중앙이 소실점이 되는 경우를 가장 안정적인 구도로 선호하는 편이지만, 실내를 이렇게 나타내면 ‘가장 좁아보인다’고 하여 건축물의 브로슈어나 홍보물에서는 쓰이지 않는다. 그만큼 답답함과 폐쇄성이 강조되고 있는 것이다.
자신의 아바타는 최초 정면의 모습으로 사용자를 쳐다보고 있다. 분신에 비견되는 아바타가 폐쇄 공간에 위치하여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묘하게 미니룸에 투자하게끔 무언으로 호명(interpellation)한다.

잘 꾸며진 미니룸. 대개의 사용자들은 창문이나 계단 등으로 외부와의 통로를 만들고, 가구 등으로 중앙의 소실점을 가리는 경우가 많다.
이 호명의 방식은 독특하다. 미니홈피의 전체적 체계에서 볼 때에 미니룸은 1/3도 안되는 공간인데다가, 굳이 미니룸을 꾸며야 한다는 강제성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충실하게 홈피의 컨텐츠를 채우기만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러나, 숨쉴 틈조차 없을 것 같은 밀폐 공간에 자신의 아바타가 있다는 것을 보는 순간 - 사실은 분명 천장의 공간은 뚫려있다. 그러나 이 역시 갇힌 모습으로, 어렸을 적 초등학교 앞에서 팔던 병아리의 꼴과 다름이 없다. - 아바타에게 일종의 투사된 연민(projected sympathy)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미니룸을 꾸미기 시작하면서 사용자 자신이 곧 싸이월드라는 가상의 공동체로 묶이게 된다는 것을 아는 것은 조금 시간이 필요하다. 후술할 1촌이나 개인 평가 지수를 이해하기 시작할 때와 맥을 같이하면서 느끼는 경우가 많다.
미니룸을 꾸미는 데에는 은유적으로 형성된 이데올로기가 숨겨져 있다. 즉 사회적 동물이랄 수 있는 인간이 ‘세상에 대해 벽을 쌓는 것은 인간답지 않다’라는 것이다. 결국 미니룸에 창문을 달고 가구를 들여놓는 등 좀더 넓게 보이게 하기 위해 도토리를 투자하는 것은 가상의 공간을 선호한 결과로서의 투자가 아니다. 도토리를 투자하여 미니룸을 꾸미는 것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 돼야 한다’는 기본적인 이데올로기가 사용자들에게 역할(role)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사용자들을 싸이에 열광하게 만드는 개인 평가지수. 그러나 어디에도 이 공간의 정식명칭은 나와 있지 않다.
4. 개인 평가 지수
미니룸의 독특한 방식의 초청과 아바타의 호명으로 인해 ‘세상과의 연결’을 선택한 순간, 사용자는 싸이월드에서 부여하는 역할(role)과 법규(rule)를 암묵적으로 따르게 된다. 이러한 의식을 늘 상기하게 해 주는 것은 바로 에 보이는 ‘개인의 평가지수 그래프’이다.
흥미롭게도 이 공간에 대한 정식 명칭은 없다. 그러나, 싸이에 몰두하는 사람들은 이 그래프를 주목한다. 자신이 홈피를 꾸밀수록, 그리고 사람들의 방문이 잦아질수록 서서히 이 그래프가 상승하기 때문이다.

싸이월드의 가게. 경제적 자본이 상징적 자본으로 변환되는 곳이자, 개인의 인기와 평가지수를 높이기 위해 빈번하게 이용되는 곳이다.
그래프는 에로틱, 페이머스, 프렌들리, 카르마, 카인드 등의 5개 항목으로 구성돼 있다.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여기서는 오로지 이 다섯 항목만으로 평가된다. 닫혀진 미니룸을 열면서 사이버 공간에서의 의사소통을 도모하는 행위는 싸이월드가 부여하는 역할(role)을 사용자가 받아들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설정된 다섯 가지 항목은 ‘인간 모두가 선호하는 가치’인 것인 양하는 헤게모니(hegemony)를 보여준다. 실제의 사용자의 인간성이 어떠하든 간에, 또한 사용자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적어도 싸이월드에서는 다섯 항목이 모두에게 보편적인 가치이고 동일하게 공유되고 있는 것처럼 말한다. 이 개인의 평가지수 그래프는 바로 이러한 헤게모니를 전달하는 방식인 셈이다. 이 그래프와 미니룸이 조그만 미니홈피에 함께 있는 만큼, 미니룸을 꾸민 사용자가 닫힌 벽을 열려고 하는 것은 곧 이 헤게모니를 따르겠다는 무언의 약속이나 다름없게 된다.
흥미롭게도 이 다섯 항목들을 끌어올리는 방법은 ‘도토리 건내주기’와 ‘다른 이로 하여금 열심히 자신의 홈피에 방문하게 유도’하는 것뿐이다. 실제의 재화를 털어 의 선물가게에 방문한 후, 싸이월드에서만 통용되는 ‘도토리’ 화폐로 환산한 다음, 미니룸을 꾸밀 수 있는 가구나 홈피를 꾸밀 수 있는 스킨 따위를 1촌이나 기타 타인에게 선물함으로써 그 점수를 올릴 수 있는 것이다.
선물을 받은 상대가 ‘기분이 좋아진 경우’ 선물을 준 상대에게 ‘계량화된 점수’를 부여해 준다. 선물 받은 상대가 이성이면 에로틱 점수가, 동성이면 프렌들리 점수가 올라간다. 되도록 많은 이들이 방문하면 페이머스 점수가 올라간다.
이를 바르뜨(Barthes)의 ‘신화’(myth)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보자. 단순한 막대 그래프에 불과한 이 기표는 그 자체로서 어떤 평가된 결과를 나타내는 기의를 갖고 있지만, 그 둘이 미니홈피라는 공간 안에서는 새로운 기호가 되어 결국 그 사용자의 됨됨이를 나타내는 척도라는 기의를 산출한다! 이러한 신화의 생산자 측면에서는 상업적 발상이 농후하지만, 이 신화의 소비자, 즉 사용자들은 무의식 중에 이 다섯 가지 척도가 사람의 됨됨이를 평가하는 항목임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그에 맞춰 행동하려 노력하는 꼴이 돼 버린다. 이렇듯 철저한 자본화·계량화된 개인의 평가지수는 곧 ‘인간성의 척도가 자본에1) 의해 계량화될 수 있다’는 또 다른 신화로 나타난다고 할 만하다.
실제로 이러한 양상은 ‘슈크’라는 이름의 가공의 사용자 - 아마도 싸이월드가 주체이겠지만 그 신상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다. - 의 미니홈피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 앞서 보았던 이 슈크의 미니홈피이다. 슈크의 홈페이지의 각종 평가항목은 가히 최고 수준에 이른다. 많은 이들이 이 홈피에 방문하는 까닭은 그가 ‘선물’을 주기 때문이다. 가공의 ‘슈크’에게 ‘선물을 받고 싶다’는 게시성 글을 올리고, 뻔히 싸이월드 관계자일 것임을 알면서도 자신의 물질을 들여 일부러 선물을 공여함으로써 자신의 개인 평가 지수를 올리려는 ‘실제’의 사용자도 허다하다. 그러니, 여기서 ‘자본의 크기 = 인격’이라는 신화를 찾아내기란 어렵지 않은 일이다.
이쯤이면 미니홈피에는 정작 컨텐츠의 질이나 양으로 평가받는 일반 홈페이지와는 확연히 다른 성격이 감지된다. 컨텐츠의 질이나 양은 크게 중요치 않은 것이다! 그저 얼마나 선물과 도토리를 뿌리는지에 따라 그 홈피의 힘이 생기고, 그로 인해 사용자의 인격이 고양되는 불합리가 전개되는 것이다. 그 불합리는 앞서 언급한 ‘개인의 인격적 판단에 대한 다섯 가지 척도’가 정당하다는 헤게모니에 의해 사용자들에게 꾸준히 생산과 소비를 고무하고 있는 것이다.
5. 1촌과 상상의 공동체

미니홈피의 1촌 관리항목. 실제의 인간관계가 상상의 공동체로 나아가는 매개체이다.
싸이월드에서 자신의 미니룸을 꾸며 개방하는 것은 곧 인간 관계의 확장의 발로인 만큼, 이러한 의지는 1촌 맺기라는 타자와의 관계 형성 방법으로 연결된다.
실제 세계에서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 일단 싸이월드에서 다시 1촌으로 연결되는 경향이 높다. 1촌 맺기를 통해 점차 싸이월드 내에서 자신의 사회적 영역을 확장하려는 경향은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y)로 나아가는 것에 다름 아니다.
실제 세계에서의 친밀도나 이성간의 차이에 따른 우정, 사랑, 연민 등의 대인 감정들은 모두 ‘1촌’이라는 개념에 중화돼 버리고 만다. 그야말로 ‘연인’으로부터 ‘그저 알고 지내는 사이’까지 흡수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이러한 싸이월드의 1촌 맺기라는 제도(institution)에 의한 것이다.
1촌 맺기를 통해 상상의 공동체에 이르고 있음은 ‘스크랩’이라는 인용(citation)의 한 형태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미니홈피의 거의 대부분의 내용은 다른 1촌에 의해 인용될 수 있다. 심지어는 타인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자신의 게시판에 올리기도 하여, 지극히 개인적인 향유물이라 할 수 있는 편지마저 1촌 관계에 있는 제3자가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경우도 있다.
디지털 카메라의 보급으로 인해 자신의 추억과 경험을 담은 사진을 올리는 일이 미니홈피에서 있는 가장 흔한 일인데,2) 1촌끼리 자신의 추억을 ‘스크랩’이라는 간단한 클릭으로 교환하고 자신의 홈피에 저장하는 행위가 그것이다. 이러한 인용의 형태는 의미의 교환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에도 유의미한 일이다. 인용을 하여 자신의 미니홈피로 가져온 컨텐츠는 자동적으로 출처가 태깅되는데, 인용하기에 앞서 자신의 의도에 따라 수정·변환도 가능하다.
자신과는 무관한 타인의 기억이 자신의 것으로 되는 일도 흔한 일이다. 이것은 인용이라기보다는 ‘공유’에 가까운데, 그 공유는 다시 ‘스크랩 점수’가 되어 별도로 측정됨으로써, 사용자의 우호적이고 긍정적인 평가를 돕는다.
이 상상의 공동체는 ‘랜덤 미니홈피 가기’라는 클릭 단추를 통해 전혀 모르는 생면부지의 사람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다. 1촌에서 벗어나 다른 인간관계를 찾아보려 하는 이들에게 이 랜덤 홈피 가기는 일종의 ‘몰래 엿보기’의 쾌감을 선사한다. 이 매력은 ‘관음증’이라는 우리 사회의 이데올로기적 코드와도 맞닿아 있다.
실제로 자신의 사진을 그럴듯하게 찍어 올리는 이들은 랜덤 방문자로부터 좋은 평을 받는다. 디지털 카메라의 급속한 보급으로 자신의 일상을 사진에 담는게 일반화되면서, 다른 사람이 자신을 훔쳐보는 것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홈피에 방문하였는지는 정작 사용자 자신은 모르지만, 다른 이는 얼마든지 싸이월드의 제도가 허용하는 합법적인 방법에 의해서 몰래 보기가 가능하다. 실로 자신의 모습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 훔쳐볼 수 있다는 것은 불쾌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싸이월드 내의 각 미니홈피가 일반 검색 사이트로는 접근할 수 없는 폐쇄공간이며, 폐쇄된 공간 안에 있는 사용자들은 서로 다섯 가지의 인격 척도에 의해 평가되는 것이 정당하다는 헤게모니를 경험하고 있는 한, 누군가의 방문은 곧 인기를 얻는 길이므로 특별히 딴지를 걸거나 하는 법은 없다. 철저하게 제도에 적응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타인이 자신의 컨텐츠를 보지 못하게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은 자신을 드러내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이는 신체의 타자성(alterity)이라는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자기의 신체는 타인의 신체에 의해서만 정체성이 확인되며,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을 때 자신도 타인에게 보일 수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많은 사용자들이 자신의 분신이자 공간인 미니홈피에 들러 몰래 엿보기를 바라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일상적인 대화가 비대칭적인 만큼, 미니홈피를 통해 서로가 서로를 만나는 것 역시 비대칭적이다. ‘용량 무제한’이 던져주는 매력과 물질에 의해 인격이 고양될 수 있는 재미에 빠져, 자신의 일상을 수없이 디지털 사진에 담아 올리고, 그러한 사진은 타자가 봄으로써 서로 대화하는 양상이 빚어진다. 만나는 시간도 약속도 필요 없이 그저 언제 어디서나 네트워크 돼 있는 컴퓨터에서 클릭만 하면 만날 수 있는 편리함마저 갖고 있다. 많은 이들이 ‘싸이질’에 빠져드는 몇 가지 이유 중의 하나이다.
6. 싸이월드의 상징적 자본 - ‘도토리’
방명록의 일부. 랜덤 방문자의 아바타와 방문자의 홈피로 바로갈 수 있는 링크(그림에서 집모양의 H)가 마련돼 있다.
또다른 측면에서 1촌 제도는 끊임없는 가상의 자본을 생산하고 소비하게 하는 주축적인 역할을 담당한다고 할 만하다. 1촌에게 보이는 가상의 재화, 즉 도토리는 자신의 인격성 판단은 물론이며 상대방의 인기 점수를 올려주는 윈-윈 전략처럼 작용한다.
미니홈피라는 텍스트에서 도토리의 교환은 1촌 관계에서 빈번하게 일어난다. 빈번한 선물 교환이 일어날수록 랜덤 방문자의 수치도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에서 보는 것처럼 모든 방문자의 답글이나 흔적에는 그 방문자의 홈피로 연결할 수 있는 링크가 마련돼 있다. 방명록은 바로 그런 역할을 충실하게 담당한다. 방명록을 통해 1촌은 더욱 확장할 수 있고, 확장된 가상의 인간 관계만큼 도토리의 순환 역시 바빠진다.
애석하게도 이러한 도토리의 교환은 오로지 경제적 자본의 교환일 뿐이다. 이것은 화려한 시각적 아이템과 개인 평가지수가 갖는 헤게모니에 의해 꾸준히 생산·소비되고 순환되고 조정된다.
경제적 자본(돈)을 기호적 자본(도토리)으로 교환하는 것 사이에는 일종의 환율(exchange rate)이 존재한다. 그만큼 실제로 가진 돈이 있어야 싸이월드에서도 힘을 가질 수 있다. 다양한 형태의 경제적 가치로 환산하여 다시 도토리로 변환하는 두 가지의 절차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이것은 도토리 환전이라는 실제 세계에서의 소비 촉진을 요구하기도 하지만, 고급 사용자가 되려면 여기에 OK cashbag, 그리고 Nate.com에 친숙해져야 한다. SK 관련 사용자일수록 특별한 대접을 받는 고급 사용자에 끼일 수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만들어 낸 논리는 교묘하게 포장된 1촌 제도와 개인 평가 지수를 통해서 ‘합법화’된다.
7.
보드리야르(Baudrilliard)는 「상징적 교환과 죽음」(L' Exchange symbolique et la mort, 1976)에서 시뮬라시옹(simulation)을 표상(representation)에 대립하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표상이 기호와 실재 사이의 등가법칙에서 출발한다면, 시뮬라시옹은 실재와 교환될 수 없는 기호를 전제한다고 논하고, 시뮬라시옹의 모델들이 세계를 구성하며 궁극에는 표상마저 삼켜버릴 것이라고 표현하였던 것이다. 결국 네트워크를 통해 의사소통이 되는 싸이월드의 실체는 실로 시뮬라시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미니홈피라는 텍스트에는 폐쇄된 공간에 놓여진 자신의 분신의 호명이 있고, 그 호명에 능동적으로 응한 사용자의 1촌 관계가 존재한다. 사용자가 역할을 받아들이는 순간 싸이월드의 제도와 법규에 따라 인격이 평가되기 시작한다. 그 위에는 다시 다섯 가지로만 인격이 평가되는 신화가 존재하고, 그 모든 것이 도토리로 환산될 수 있는 자본에 의해 고양되는 이데올로기가 꿈틀댄다.
폐쇄된 공간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한 ‘싸이질’은 결국 싸이월드의 헤게모니에 종속되어 항상 주체적인 행동을 하면서도 결국에는 거대한 자본과 이데올로기에 종속되는 경험을 늘상 되풀이하고 있다.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그러한 원동력은 ‘싸이월드가 원하는 사회적 동물화’를 꾀하는 사용자와 그 행동을 뒷받침해 주는 경제적인 자본이다. 물질의 교환을 통해 자신을 고양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 싸이월드에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