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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초의 미소라도 좋아, 당신도 웃고 있나요?

이주연 |2006.06.15 12:02
조회 46 |추천 0


 

기억, 특히 추억이라 불릴만한 것들은 언제나 지극히 주관적이다.
시간의 순서대로, 차곡차곡 기억되고 또 회상될 수 있다면.... 글쎄 편리하긴 하겠지만 재미는 없겠지. 그리고 어쩌면 성가실거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힘이 들고, 좋지 않은 옛감정에 코끝이 찡해지는 기억 따윈 묻어버리자, 태워버리자.
그렇게 소진하기엔 작은 뇌가 지켜야할 사소한, 그래서 더욱 소중한 5학년의 내 , 가 있으니.


#. 마법같은 소환술 - 아무것도 아닌 것이 특별한 추억으로.

시작은 항상 아주 작은 한마디에서 출발한다. "그 때 그랬잖아" "너 아직 그러니?" 혹은 "오른손에 점, 김이 뭍은 것 같다며 놀리곤 했잖아" 같은 사소한 한마디. 아니면 이삿짐에서 우연히 찾은 그 시절 일기장도 좋다.
그것이 마법의 주문이 되어, 잠들어있던 뇌세포를 깨우고, 기억의 물꼬는 터져버린다.

야구부 에이스였던 히로타를 떠올리자, 체육시간 생각이 나고, 체육시간을 떠올리자, 따로 모여 받았던 성교육시간, 생리 소동과 아이스케키까지.... 꼬리를 물고 우르르 ㅡ ..

당시엔 아무것도 아니었던 일들이 되돌아보니 따뜻한 웃음 머금을 수 있는 추억이 되어 방울방울 떠오른다.

산수를 잘 못한 막내동생, IQ검사를 해봐야 하지 않냐며 호들갑인 언니의 말은, 그 때는 하룻밤 자고 나면 모두가 까맣게 잊었을 테지만, 기억 속 한 구석에 꼭꼭 들어앉아있다가 지금은 한참이고 키득거릴 수 있는 얘깃거리가 된다.

신기하기도 하지. 산수, 파인애플, 체조, 피구 같은 것들이 어째서 이토록 소중하고 반짝거리게 되는 걸까.
뺨을 대고 부비고 싶을 만큼 폭신폭신한 담요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걸까.

그건 아마, 가족과 친구들 속에 있기 때문일거다.

그 시절의 가족들은 어째서 그렇게 냉정한지,
아버진 항상 식탁에서 신문만 읽고,
할머니는 막내손자는 아랑곳 않고 안마만 받으시고(게다가 우리집 아이들은 모두 버릇이 없다는 말씀까지!!)
아역기회를 놓쳐 속상한 딸에게 다른 아이를 먼저 생각하라며 무표정한 얼굴로 또박또박 앞서가는 엄마,
얄밉기만 한 작은 언니와, 집에 늦게 들어와 얼굴보기 힘들었던 대학생 큰언니까지.
 
따지고 보면, 어린 꼬맹이 막내에게 누구하나 인자한 웃음 한 번 지어주지 않는 야박한 가족이지만,
그래서 타에코가 불행했다거나, 불쌍하다거나 하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과장없는 일상의 회고가 좋았다고 할까.
 
가족들은 모두 각자의 방식대로 타에코를 염려하고, 사랑했다. - 이는 28점 사건으로 엄마와 작은 언니가 나누는 대화를 타에코가 듣자, 엄마가 얼른 [불어그리기] 때문에 머리가 아팠던 거라고, 타에코가 변명한 얼토당토 않은 이야길 하는 장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
그리고 그 가족들도 타에코처럼 모두 주체가 되어 각자의 삶을 열심히 살았을 것이다.
그랬기에 타에코는 그 나이 또래들처럼 만화주인공과 함께 노래하고 수줍은 남자친구의 고백에 하늘로 둥실 떠오를 수 있었을 거다!
(아! 사뿐사뿐 하늘로 올라가 행복하게 유영하는 장면은 정말로 압권!!!)
 
 
#. 단 5초간의 미소라도 좋아. - 왜 추억하느냐 물으신다면
 
사실 현재의 타에코도 '현실'에 있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빌딩숲, 전화기, 복사기 같은 '기계'적인 현실에서 벗어나 꿈같은, 추억같은, 고향같은 시골에 내려와 있다. 하여 5학년으로의 회상이 더욱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비겁한 뜻의 도피가 아닌, Metalic한 현실에서 시골로의 "전향" , 특별할 것 없는 일상에서 특별해지는 기억과 소소한 가치에로의 "전향" 이 동시에 이루어지니 말이다.
 
아무튼 현재의 타에코와 5학년의 타에코가 번갈아 등장하는 영화는 결국, 5학년의 나와 현재의 내가 함께 움직여 꿈같고, 추억같고, 고향같은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데에서 끝난다.
그런데 나는 중간중간 등장하는 꼬맹이 때의 이야기가 너무나 사랑스럽고 흐뭇해, 이대로 몇시간이고 영화가 계속되면 좋으련만, 하고 바라고 있었다.
동창회를 하면 옛이야기로 밤새는 줄 모르듯, 또 또 자꾸 들려줘, 언제까지고 유쾌하게 들을께, 하는 기분으로 말이다.
 
그래서 뭐가 어떻다고?
그깟 옛날 이야기가 지금 네게 무슨 소용이야? 라고 묻는다면,
글쎄, 할 말은 없겠지.
 
영활 보기 전 읽은 책에 이런 구절이 있었다.
 
[에리히 프롬은 <소유나, 존재냐>에서 두 종류의 인간을 구분한다.  하나는 존재지향의 인간이고, 다른 하나는 소유지향의 인간이다. 존재지향의 사람들은 단지 '어떤 것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놀라움, 기쁨, 행복을 느낀다. 그들은 길가에 피어난 한 송이 꽃을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을 느낀다. ..(중략)..
그러나 소유지향적인 사람들은 단순히 '어떤 것이 있다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그것이 내 것이라야 한다.]

<철학, 영화를 캐스팅하다> 이왕주


 
굉장히 멋진 풍경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뭉클해지고 감동을 받을 때가 있다.  그 때만큼은 존재지향적인 인간이 되는 것이다. 영화를 보며 추억을 되살리는 일 에 대해서도 같은 입장이었다고 하면 설명이 될까.
그 바쁜 현대 생활의 금같은 시간을 쪼개어 내어, 지금의 내게 어떠한 득도 실도 주지않는 그 일을 하는 이유는,
단 5초간의 미소 때문이라고, 그것이 내게는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라고.
 
 
#. 5학년의 나
 
일제시대를 거쳐서 그런 거겠지. 영화 속의 국민학교는 나의 15년 전 국민학교와 매우 닮아 있었다.
나무마루바닥, 복도에서 뛰지 않기, 꼭 잘난 척하는 똑똑한 여자아이와 너도나도 웅성거려 엉망이되곤 했던 어린이회의. 특히 반가웠던 건 쓰레기 소각장이었다! 영화에서와 꼭 같은 모양의 소각장이 우리 학교 뒷편에도 있었다.
타에코와 친구가 그랬던 것처럼 둘이서 쓰레기통을 들고 가서 까만색 철문 손잡이를 아래로 끌어당겨 열어 비우곤 했었지.
그래, 그랬지.
 
4학년 때 선생님께서 반남자아이가 일기를 참 잘 쓴다며 칭찬했던 적이 있다. 질 수 없다, 화르르 했던가. 잠시 일기쓰기에 열을 올리다가 결국 또 밀려버려 대충 몇 줄 적어놓고 시입네, 하고 때웠드랬다.
- 그 친구는 고등학교 때 같은 아파트 같은 라인에 살아 등교길 엘리베이터에서 매일 만났지만 사춘기 때라 인사 한 번 안했었다.. 어느 날 불쑥, 모의고사 문제집을 줬던 기억도 난다. 지금은 뭐하고 있을까 -
 
앞에서 셋째줄에 앉았던 6학년, 학교에는 공기놀이 열풍이 불었는데, 같은 줄에 앉았던 남자친구 둘, 여자친구 둘과 함께 쉬는 시간마다 교실 뒷바닥에 엉덩이 대고 앉아 공기놀이를 했었다.
-더 어렸을 때는 집에서 언니들과 했었다. 5개짜리로 하는 보통 공기놀이, 3개로 했던 <산골짝의 다람쥐>, 100개도 넘는 공기를 모아 편을 갈라 따먹기 까지 -
 
6학년, 정말 친했던 짝궁의 글씨가 너무 예뻐 선생님이 모두에게 돌려보라고 했었다. 아, 나는 어렸을 때 질투쟁이였구나. 악필이었던 내가 짝궁 글씨체를 따라하려고 얼마나 애를 썼던지.-그 친구는 얼마전에 결혼을 했다고 한다.
 
6학년 내내, 정말 친하게 지냈던 남자짝궁을 협박해 생일 선물을 받아내었던 일.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유리로 만든 케이스 안에 든 기도하는 석고상. 육면체 유리 한 면 한 면에 엉성하게 붙어있던 흰색 테이프, 삐져나와있던 노란색 본드. 그 때 카드에는 "조금 더 기다리는 아이가 되어라'라고 적혀 있었지.
 
비밀편지를 주고 받던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키도 크고 운동을 굉장히 잘했었다. 그 친구에게 밉보이기 싫어 숨이 턱에 차도록 오래 달리기를 했던 일 - 결국 중도에 포기하곤 창피하다면 장문의 편지를 썼었지.
 
학년말, 괜한 변덕으로 그 많은 편지를 돌려주고, 내것도 돌려달라 생떼 썼던 일. 한 장 한 장 노트에 정성스레 붙여서 돌려주었던 그 친구. 지금 생각하면 참 미안하고, 아깝다.
 
툭하면 체했던 내 손을 바늘로 따 주시던 엄마. 피가 빼꼼히 배어나오던 손가락 끝에 모여 앉아있던 큰 언니와 작은 언니. "내손은 약손, 막내 배는 똥배" 놀려대면서도 배를 슥슥 문질러주었던 그 밤.



 
 
이것봐, 이것봐. 시작하면 끝도 없는 걸..
사소하고 소소한 일들 끝에서 피어오르는 미소 ㅡ ..
 
지금, 당신도 웃고 있나요?
조금 더 따뜻해져도 좋아요 ,
좋게 윤색하고 덧칠한 이기적인 기억이라도 어때요..
지금의 내게 한숨쉬고, 책망하고, 실망하고 있었잖아요?
추억 속의 나는, 추억 속의 우리는 철없고, 코흘리고, 떼를 부려도 기분좋고, 사랑스럽잖아요..
 
그 힘으로 오늘을 살기로 해요.
오늘도 언젠가는 그런 추억으로 우리를 미소짓게 할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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