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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빈치 작품으로 다빈치 코드 깨기

이훈종 |2006.06.20 17:35
조회 3,157 |추천 11
다빈치 작품으로 다빈치 코드 깨기

 

 

글 / 이영진

출처 / http://paper.cyworld.nate.com/needful/570976

 

 

- 중간생략

 

두 권씩이나 되는 책의 내용들을 일일이 이 지면에서 설명해 나갈 시간은 없고 앞서 말한 바 이 책의 주 그리드로 활용되고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 최후의 만찬」만을 이용해서 이 책이 가지는 코드의 허구를 알아볼까 한다. 

 

# 그림에 대한 기술적인 부분은 대부분 영문서 원문을 번역해서 인용했다. (편집자-영문생략)

 

 

(1) 초기 복원

 

많은 사람들이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을 액자로 봐서 그런지 이것을 하나의 캔바스 작품으로 알고 있는데 이것은 원래 벽화다.  이탈리아 밀라노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의 식당 벽에 1493년부터 1497년가지 약 4년에 걸쳐, 그러니깐 제1밀라노 시대에 그려진 벽화이다.  벽화이다보니 그 보존이 만만치가 않았다.   자연적인 풍화및 탈색 등으로 인해서 거듭 손상에 직면하다가 18세기 들어서 처음 복원 작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당시 복원작업은 후일에 계속해서 거듭되는 복원작업들의 잘못된 밑그림이 되고 말았다.  예컨대 1726년 Michelangelo Bellotti는 부식화 용제로 그 벽화를 닦아낸 후에 오일과 니스로 덮어버렸는가 하면 1770년대의 Giusseppe Mazza는 전임자들이 해놓은 것을 다 지우고는 다시 오일을 사용하여 원화보다 더 재채색을 하기도 했다.  이후의 복원가들은 레오나르도의 원화를 그대로 보존하기 보다는 재채색과 재창조하려 함으로써 이 작품에 오히려 위해를 가했다. 

 

초기 복원작업이 오일미디엄 방식이었던 것에 반해 기법상의 새로운 장은 Stefano Barezzi가 벽으로부터 그 그림을(페인트 부분) 떼어내는 첫 시도로써 1853년에 도래됐다.  그러나 그 작업이 실패한 이후에 그는 바닥에 페인트 조각을 접착시키는 병합법을 시도했는데, 벽화에 관한 과학적인 연구는 이때로부터 처음 시도 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서투른 방법의 복원 시대는 더 신뢰할만한 방식이 개발된 20세기로써 끝이 난다. 

 

1903년 Luigi Cavengahi은 최후의 만찬을 큰 사진으로 확대하여 참조함으로써 주의 깊은 연구를 시작했다.  그는 오일이 아닌 템페라로 처리하는 기술을 최초로 확립했다.  1906년과 1908년 사이 그는 그림 표면을 닦아내고 누락된 면들을 덧칠했다.  그는 이물질과 접착제를 제거함으로써 꽤 많은 양의 본래 형태를 남겼다.  1924년 복원가 Oreste Silvestr는 벽화로부터 이물질을 한층 더 제거했다. 

 

여기에다가 설상 가상으로, 1943년 8월 15일, 폭탄 한발이 그 수도원 근방에 떨어졌다.  그러나 북쪽 벽은 미리 준비된 보호용 모래주머니들에 의해 지탱 되어, 어쨌든 그 벽화는 살아남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 수도원이 즉시로 수리되지 않은 채 약 1년 동안의 좋지 않은 환경에 방치되는 바람에 원화의 손상은 극심해졌던 것이다.

 

1947~1949년, Mauro Pelliccioli은 그 벽화에 또 한번의 클리닝 처리를 했고 곰팡이 같은 악조건으로 인해 재복원이 불가피 했다. 그 복원가는 먼지수집과 용해접착제를 사용하기 보다는 쉘락(니스의 원료)을 픽사티브(고정제)로 사용하여 접착을 시켰다.  그런 다음 페인트를 깨끗이 하고 벽화의 색조를 밝게 했다.  그의 수고 없이는 최후의 만찬이 오늘날까지 남아있지 않았을 것이라고 한다.

 

 

(2) 최근 복원

 

레오나르도가 그린 최후의 만찬의 가장 최근 복원은 1999년 5월에 완료된 바있다.   가장 최근에 있었던 이 복원에서는 떨어진 조각 부분을 고치는 작업을 1979년에 시작하였고, 그리고는 ‘초기 복원 시대‘ 이래로부터 덮혀 온 페인팅 조각들을 벗기는 작업으로 빠르게 진행되었다.   Pinin Brambilla Barcilon은 ‘예술,역사 유산 승계 프로젝트‘ 를 위한 밀라노 감독의 주도 아래 이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 최종 복원 작업을 진행했다.  그녀는 레오나르도의 이 걸작을 소생시킬 여러 가지 새로운 기술을 사용한 명성있는 복원 예술가로 손꼽힌다.

 

Brambilla의 기술은 더 이상의 원화 탈색을 중단 시킬 수 있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화학 분석가들은 남아있는 덧칠은 레오나르도의 원화를 먹어들어간 것까지였고 그리고 파편으로 떨어져 나간 부분들이 레오나르도가 작업한 부분에 속한다는 분석을 제공했다.  그래서 그녀는 레오나르도가 작업을 끝마친 1498년 이후로 추가된 모든 것들을 제거하는 모스트 프레싱프로젝트를 결정했다.

 

그 복원은 아주 미세한 단위의 정밀도와 극히 작은 상세한 것들에 대한 주의가 요구 되었다.  현미경으로 확대된 상들은 그림 대부분의 부위를 확대되는 데 이용되었다.  적외선 반사 장치로 복원가들이 칠 밑 겹의 원화를 볼 수 있게 되었을 때 벽화위에 붙은 주형, 접착제, 재칠 그리고 기체 부분까지 모두 드러났다. 작은 지름의 구경을 파내는 작업(coring)이 수행되었다.  그곳에서 채취된 샘플은 다빈치 재료 색채 정보 실험소에서 분석되었다.  시추공 안에 넣은 소형 TV카메라는 균열과 구경에 대한 정보를 주었다.  음파 탐지와 레이더 조사는 석조의 탄력 및 구조적 특성과 페인트가 붙은 바닥에 관한 정보도 주었다.

 

분석에 있어서는 가장 진보적인 기술을 사용하였고 여러 겹을 지우는데 솔벤트 사용 기법이 활용되었는데...Pinin Brambilla 는 아주 조심스럽게 그리고 지극꼼하게 작업에 임했다.  하루 작업이라고 해봐야 우표 크기만한 정도만 작업했을 정도로 세밀하게 복원에 임했다고 한다.  그 20년간의 프로젝트는 어쨌든 아주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아픈 환자처럼,.. Brambilla 와 그녀의 팀들이 벽화의 체적 내용, 곧 '우리가 영원히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원화의 표현과 색채 강도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고 단언했다.  Brambilla 는 오리지날 컬러를 볼 수 있는 뷰어 장치로써 공백 부분에 기본 컬러를 메우는 방법을 통해 오리지날 컬러를 복원하기로 결정한다.  어떤 부분에서는 공백 부분이 남겨졌는가 하면 그 이외 부분도 칠해졌다.  여기서 대단히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녀가 그 모든 것을 오리지날 페인팅이 복구되는 발광 부위로 믿었다는 것이다.

 

레오나르도의 최후의 만찬은 1999년 5월에 일반인들에게 다시 공개됐다.  그 벽화는 현재 정교한 공기 청정기 및 습기 감지 장치 그리고 방 내부의 먼지-필터링 시스템에 의해 보존되어 지켜지고 있다.  방문객들은 최대 25명이 한 그룹을 지어 단 15분씩만을 관람하게 되어 있다.

 

 

(3) 논란

 

다섯 번 이상 있었던 최근의 복원은 미술계에서 레오나르도의 그 작품 자체 만큼이나 많은 찬사와 비난을 받고 있다.   미국과 영국에서 저명한 비평가들은 Brambilla 의 초기 복원의 제거 작업은 오리지날에 해당할지도 모르는 프러그까지 지워버린 무익하고 파괴적인 것이다라고 평한다.  제임스 벡이라는 뉴욕 컬럼비아대 미술사 교수는 복원 비평의 탁월한 사람이다.  그는 네오나르도 부분은 18~20%뿐이고 나머지 80%는 복원가들 것이라고 말한다.

 

Beck은 Brambilla 의 watercolor 에 의해 그려진 그 부분들은 본질적으로 그 마스터피스에 재칠해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그 페인팅은 다빈치의 원작을 남기는 보존 작업으로써 묘사한 게 아니라, 원화 자체와는 관계없는 리페인팅으로써의 묘사일 뿐이라고 단언했다.  옥스퍼드대 교수이자 세계적인 레오나르도 전문가 Martin Kemp조차 Brambilla의 결정은 워터컬러 톤에 근사한 페인팅으로 몇몇 갭들을 채운 것에 의문을 가졌다.

 

많은 평론가들에 의하여 Brambilla 작업이 칭송되고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걸작으로 손색없는 그림인지 아닌지에 관한 논제로서 확실시 되지 않은 체 10여년에 걸쳐 논쟁이 되고 있다.

 

 

최후의 만찬이란 없다.

 

이상 벽화의 기술 자료 원문에서 살핀 바와 같이 고작해야 원작자의 10여 퍼센트만 남은 그림을 가지고서 '코드' 를 운운한다는 것은 실로 웃음꺼리요, 사기극이 아닐 수 없다. 「다빈치 코드」가 주장하는 '익명의 손' 이나 '여성으로서의 요한' 도 아래 이미지 비교에서 계속 밝히겠지만, 우선 우리가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은 '리페인팅(repainting)' 이냐 '리스토어링(restoring)' 이냐의 차이다.  후자는 원래 있던 자리에 새것을 채우는 것에 불과하지만, 전자의 리페인팅은 완전히 아예 싹 다시 그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제아무리 좋은 기술 제아무리 섬세한 기술과 과학을 동원했다 하더라도 현재의 최후의 만찬이 레오나르도의 원화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탈리아 국가적으로 보나 미술 학계 자체로 보나 그 그림을 매개로 하는 상술에 불과할 따름이다.

 

 

이미지 대조

 

가장 심하게 변형된 부위는 예수님 부위이다.  아래 그림에서 보다시피 예수님의 풍체뿐만 아니라 입술, 식탁 위의 메뉴까지 바뀐 것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요한의 성(性)의 바뀜이라든가 전체적인 색감의 변조는 「최후의 만찬」를 다빈치의 마스터피스 자리에서 끌어내린 결과를 초래했다고 본다.

 

「다빈치 코드」는 이 복원으로써 본래의 레오나르도의 원화를 찾았다고 주장 하지만 어떠한 신빙성도 없다.  이미 위의 기술적인 원문에서 공정하게 언급되었다시피 작금 현세에 와서 레오나르도의 진짜 본래 원화는 사실상 찾을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설령, 첨단 기구를 이용해서 평면적인 라인은 투사했다고 가정하자.  그렇다고 그 투사 장치가 요한의 가슴 볼륨까지 투사했겠느냐는 얘기다. 가슴의 볼륨은 평면 투사로 찾아낼 수 있는 그런 성질의 표현 부위가 결코 아니다. 

 

여러분이 당대의 복원가라고 가정해보자 원화의 라인을 추적해가다보면 명백한 원화 라인을 발견할 수도 있겠지, 그러나 그것이 100이면 100다 찾아지겠냐는 것이다.  가령 한 두 부분에서 이 라인이 다빈치의 것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부위를 맞닥뜨리면 어쩔텐가.  무엇이든 한 라인은 택일을 해야하는 데, 또 그들이 실제로 택일을 해낸 그림이 오늘날의 이 그림인데, 그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처럼 신빙성이 있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다. 

 

독자들의 신뢰를 따고 들어가는 이 포스트에 대해 '진실이 아니다, 진실은 이거다!' 라는 반전에 우선 성공을 하고 아울러 그 드라이브에 난잡한 오/위경을 태우는 절묘함의 극치인 것이다.  그러나 이상에서 밝혔듯이 1493년 초기 원화 시절부터 오늘날까지 전세계가 레오나르도의 벽화를 두 눈 시퍼렇게 뜨고 지켜봐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렇듯 원화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찾을 길이 없건만 한낱 위경이나 비밀문서 따위일까 보냐! 

 

 

 

-복원 전 예수님의 다문 입술, 전체적으로 풍체가 넓다. 

 접시에 음식이 있다.

-복원 후 예수님 입이 열려있다. 전체적으로 풍체가 날씬하 다.  접시의 음식이 없어졌다.

 

-복원전 요한은 남자

-복원 후 性이 바뀌어 여자가 돼버린 요한-얼굴만 변한 게 아니라, 가슴도 부풀어 오름

 

- 이하 생략

추천수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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