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눈물나는 2004년 수능때 있었던 일...
이동관
|2006.06.30 12:44
조회 1,845 |추천 11
당시 난 재수중이었으므로 학원생이었구 '다행히' 기숙사 학원에 다니고 있었다...(왜 '다행히'인지는 차차 알게 될것이다.)
언제나 여느때와 다름없이 꼬박꼬박 수업도 열심히 듣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있었고 한창 성적상승의 기쁨을 맛보는 시기였다. 성적은 잘 유지됐고 수능 때도 결국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 난 그 스토리를 듣고난 후 경악을 금치못했고 눈물을 훔칠 수 밖에 없었다......
사연인 즉 이렇다.
난 여느때와 다름없는 기숙사 학원생이었고 2주마다 한번씩 집으로 귀환(?)하는 처지였다. 2주동안 학원에 묶여있고 하루 휴가를 명받아 집에 갔다오면 되는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집이 내게 너무 무관심해졌다. 언제나 집에오면 부모님은 안 계셨고 어머니는 전화를 하셔서는 '엄마가 오늘 일이 있어서 좀 늦을 것 같네. 밥은 어떡할래?' 이런 식의 무관심이 행해졌다. 나는 어머니 회사다니느라 고생하는 것도 다 알고 나땜에 힘드시구나 생각해서는 언제나 '알아서 챙겨먹을게요^^' 이렇게 넘기기 일쑤였다. 그래도 그렇지 나는 수능이 코 앞에 닥친 수능생인데 집에서 무관심해도 너무 무관심하다고 생각했고 혼자 쓸쓸하게 몇 안되는 밑반찬을 챙겨먹곤 했다. 어머니는 밤 늦게 집에 들어오셨고 어머니와 나 사이엔 형식적인대화(요즘 컨디션은 어떠냐? 공부는 잘되냐?)들이 오갔으며 어머니는 여느때와 다름없이 일요일아침에도 회사에 나가시는 것이었다...... 어머니 말에 아버지는 출장을 갔댔다. 그래서 난 수능을 문전에 둔 수험생으로서 학원기숙사로 날라야하는 많은 짐들(옷가지, 이불, 책 등등)을 지하철을 이용해서 옮겨야했구 나름대로 수능생으로서의 스트레스도 쌓였다.(원래는 부모님이 자가용으로 날라주셨다.)
하지만 수능을 치고나서 들은 그 비하인드 스토리에서 나는 역시 부모님의 깊은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다시 시간을 돌려서 그 당시로 돌아가보자.
난 학원에 있었고, 당시 집에선 아버지가 친구분들과 함께 등산을 가시고 있었다.(일요일) 아버지는 당뇨가 있으셔서 운동을 많이 해야하고 가급적 채식을 하셔야 하는 분이었다. 그래도 아버지는 등산을 좋아하시고 즐기시기 때문에 당뇨와 상관없이 운동을 즐기시는 분이셨다. 하지만 그 날따라 아버지는 이상하셨다. 갑자기 가슴을 파내는 통증을 느끼는가하면 지속적으로 그 통증을 느끼셨다. 그래서 생전 안해본... 등산중 하산.....등산을 하다가 산 중턱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같이가던 친구분들은 걱정되서 무슨 병 있는거 아니냐. 빨리 병원에 가봐라. 이렇게들 말씀하셨지만 울아버지는 '괜찮다. 집에가서 한숨 자고나면 낫겠지' 이러고는 집으로 향하셨다고 한다. 그러고는 집으로 갔다. 가서 잠을 자려고 누웠는데 통 잠이 오질 않았다.(이대로 잠드셨으면 돌아가셨을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 잠을 청했고 막 잠이 들려고 하는순간 이상함을 느끼셨고 자가용을 몰아 근처에 있는 약간 큰 병원인 성심병원으로 향하셨다고 한다. 가서 들은 충격적인 병명: 심근경색증. 아버지는 당뇨가 있으셨고 심근경색증을 동시에 걸리게되어 합병증 증세가 나타나서 이제 곧 죽게된댔다.
아버지는 얼굴이 사색이 되셨고 어머니께 연락을 했다. 소식을 들은 울어머니 눈물이 뒤범벅이 되어 성심병원에 나타나셨고 성심병원(해운대에서 제일 큰 병원)에선 어서빨리 큰 병원으로 옮기라고 했고 부산대병원으로 긴급후송 되었다.((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아버지가 병에 걸려 쓰러진 일욜, 바로 하루전인 토욜... 우리집 바로 옆에 있는 고등학교인 해운대고등학교에서 같은 병명으로 학생이 즉사했었다고 한다.)) 부산대병원에서 아버지가 후송된곳은 시체실 옆 응급실. 그렇게 말짱한데 죽음이 바로 곁에 있다고 생각하니 얼마나 두려웠겠는가... 아무리 그래도 인간인데...... 응급실에선 5분에 한명 꼴로 환자가 죽어서 실려나갔고 울아버지는 그 광경을 생생히 목격하고 있었다. 잠시후 의사가 나타나선 '살아날 수 있는 확률이 희박합니다. 묘자리를 봐두시고 유서를 써두십시오.' 이 말을 직격탄으로 날렸다. 환자인 울아버지에게......(정말 윤리의식이 없는 의사다......!!) 그러고는 수술성공 확률이 10%도 안된다고 했다.
절망...... 수술비는 2천만원......
수술비가 없으면 무조건 죽는것이었다. 시도도 못해보고. 울 어머니아버지, 그때 현대사회의, 물질중심사회의 비정성을 느끼셨다고 한다.
그렇게 낮은 확률의 수술에 2천만원을 투자해야한다...... 심각한 고민이었다......
마침 아버지 친구분에게 연락이 왔고 아버지 친구분의 부인의 동생이 인제대학교 백병원에서 심장과 부장으로 있다고 했다. 아무래도 그쪽이 훨씬 대우가 좋지 않겠는가? 그곳으로의 후송을 선택했지만 부산대병원에서 순순히 보내줄리가 없다. 온갖 협박을 다해가면서 못 옮기게 막았다. 부산대병원 측에선 "왜 옮기려고 하는가? 이유를 대라. 우리가 백병원보다 못한게 뭐냐? 이런 식이었다. 결국 자초지종을 설명하니깐 의사 한분이 "올바른 선택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 않을것이다. 죽으면 죽는것이다. 혹 수술이 성공한다고 해도 오래 살진 못할것이다. 우리는 최대한의 수술기구를 사용하지 않는다. 동생이 심장과 부장으로 있다니 어서 빨리 후송해라." 그러고는 후송을 허락해주었다. 인제대학교 부산백병원으로 가니 대우가 달랐다. 아버지친구분이 미리 협박(?)을 넣으신 덕분에 최고급 스위트룸(?)에 공짜로 들어앉아있게 되었고 어마어마한 시설에서 간호사 두명이 정성스레 수발을 들었다.(부산대병원에선 간호사가 들어올랑 말랑이었고 상태가 이상하다고 부르면 간호사가 욕지꺼리를 하기 일쑤였다.)
(역시 세상은 돈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야...;)
울어머니는 회사도 잠시 그만두고 일주일 내내 곁에 붙어선 움직이지도 못하는 아버지의 똥오줌을 다 받아주고 세수도 시켜주고 그렇게 지내셨고 내가 나오는 주말엔 어렵게 시간을 내어 잠시 아버지를 놔두곤 아무일없는 것처럼 행동하셨던 것이다. 나의 컨디션을 생각해서 차마 나에게 알릴 순 없었을것이다.( 출장가셨다고 말은 했지만 그 말이 아버지가 살아생전 언급한 아버지에 관한 말중 마지막 말이 될지도 모르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내가 학원에 되돌아가고나면 다시금 병원에 돌아가선 아버지 수발을 드는것이었다. 아버지의 수명은 단축되어가고 있었다......
수술 성공확률 10%...... 수술비 2천만원...... 아버지는 단순한 월급쟁이셨고 어머니도 부유한 집안의 따님이 아니었기에 우리에게 그렇게 큰 돈이 있을리가 없었다. 하지만 어떻게어떻게 천만원을 마련해냈고 천만원의 대출을 받아 어마어마한 마이너스 통장이 생기고 말았다. 그러고는 10%의 확률에 모든걸 걸었다......
*여기서 잠깐 심근경색증에 대해 설명해주자면
심장에 혈관이 막힌것이다. 덕분에 수시로 큰 기침이 나오고 심장은 살을 파는듯이 아프다. 결국 혈관을 잘라내고 인공혈관을 연결하는 수술을 해야한다. 심장의 일부분이 썩어있다.
*그리고 수술비에 대한 언급을 잠깐 하자면 우리나라 보험제도가 잘못 되어있어서 혈관이 4개가 막혀있는데 한개를 뚫으면 10만원이다. 2개는 100만원이다. 하지만 3개부터는 보험이 안되고 3개 뚫으면 1000만원, 4개 뚫으면 2000만원이다. 돈 없는 서민은 죽으라는 의료보험제도라고 볼 수 밖에 없다.
다시 돌아와서......
아버지는 자식들이 보고싶다고 되뇌이셨지만 어머니는 차마 부를 수가 없었다. 그들이 받을 충격들을 생각해서...;; 아버지는 형만이라도 불러달라고 했고 어머니는 형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머니: "동헌아~ 뭐하니?"
형: "그냥 집에 있어요. 어머니는 뭐하세요?"
어머니: "너희 아버지랑 소풍 와있단다~^^"
형: " 아 그러세요? 그럼 잼있게 놀다오세요^ㅁ^"(찰칵)
어머지께서는 형을 부를 심산으로 전화를 걸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불효자가 될 뻔 했지만 형은 자신의 실수로 아버지의 임종을 지켜보지 못하는 불효자가 될 뻔 한것이다.
그 상황에서 아버지는 쓸쓸히 어머니의 곁에서 돌아가시면 되는것이었다. 당시의 상황으론......
수술은 시작됐다. 멋모르고 신나게 공부하는 작은 아들과, 멋모르고 신나게 노는 큰 아들과, 옆에서 간졸이며 지켜보는 어머니를 두고......
수술은 성공이었다. 아버지는 극적으로 살아나셨고 나는 지금도 생생한 아버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모처럼 부모님의 은혜를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그 당시 아버지의 마음떄문이다.....
얼마나 자식들이 보고싶었을까...... 임종을 눈 앞에 둔 상황에서......
자식들을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시게 된다는 그 서글픈 마음......
그 상황에서 아버지는 나의 미래를 선택하셨다. '동관이는 이번엔 반드시 합격해야한다. 반드시 서울공대에 가야한다.' 는 간절한 바람과 함께......
난 버젓이 지금 서울공대에 와 있다. 과연 그 상황에서 그 누가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있었겠는가...... 언제나 난 울 아버지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 언제나 자식에게 최선의 아버지가 되려는 그 사람이고, 알코올 중독자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타고난 천성으로 마음이 오염되지 않은 그 사람...... 그 사람이 울 아버지다.
아버지.어머니. 어버이날인데 찾아뵙지 못해 죄송해요. 하지만 저희 집 형편상 부산에 자주 내려가면 오히려 불효를 하게 되는걸요. 제가 꼭 성공해서 어머니.아버지 호강시켜드릴게요!
아버지. 어머니.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