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논술 칼럼 01 ]
아주 조그만 관심
박 기 복
처음 논술 수업에 들어갔을 때 경현이는 한 쪽 팔은 길게 늘어뜨리고, 머리를 기댄 체 멍한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인사를 나눌 때 잠깐 머리를 드는 듯했지만 곧바로 늘어뜨려진 팔위로 무너져 내렸다. 수업 도중에 몇 번이나 고개를 들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좀처럼 고개를 반듯하게 하지 않았다.
자세가 엉망이다 보니 수업 도중에 전혀 발표를 하지 않았다. 발표를 시켜도 겨우 한두 마디 내 뱉는 수준이었다. 책을 잘 읽었는지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를 점검해 본 후 난 더욱 답답했다. 완성한 문장은 찾아볼 수 없고, 대부분 한두 단어로 모든 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그나마 완성한 문장도 괴발개발 글씨여서 알아보기 힘들었다.
그 다음 수업부터 경현이를 내 옆에 앉혔다. 일단 제대로 써오지 못한 부분은 다른 아이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참고하여 수정하게 했다. 자세가 흐트러질 때마다 야단치는 대신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으며 가볍게 일으켜 주었고, 가끔씩 껴안기도 했다. 숙제를 잘 해오지 않아도, 답을 잘못 이야기해도 어깨를 두드리며 감싸주었다. 그러자 다른 학생들의 불만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 우리는 책 안 읽어오거나 워크북 안 해오면 나가게 하면서 경현이는 왜 그래요?”
“왜냐구? 내가 경현이를 좋아하잖아.”
“에게...”
“아니야, 경현이가 얼마나 멋있는데.”
그렇게 몇 주가 지난 어느 수업 때였다. 토론을 하는데 경현이가 손을 들었다. 시켜도 발표를 할까 말까한 아이였기에 손을 든 것은 놀라운 변화였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건 발표 내용이었다. 토론에서 다루는 핵심적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고 거기에 맞게 자신의 의견을 분명하고 또렷한 목소리로 밝힌 것이다. 놀라웠다. 이런 능력을 가진 아이가 그 동안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책상에 엎드려 있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 다음 시간에 경현이는 책 내용을 확인하는 문제를 풀 때 적극적으로 손을 들어 발표를 했다. 내용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글도 문장으로 분명하게 적어왔다. 그 다음 시간에는 책 내용이 어렵다며 힘들어하기도 했다. 책에는 도무지 관심을 두지 않던 아이가 어렵고 쉬운 책을 구분하며 책을 읽었다는 증거였다.
경현이는 아직도 가끔은 책상에 엎드린다. 책 내용을 정확히 이해하는 정도도 다른 아이들에 비해 떨어지는 면이 있으며, 수업에 임하는 태도도 아주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 이전과 달리 책을 읽고 생각하며, 다른 아이들과 생각을 나눌 준비가 되었다는 사실이다.
경현이는 수업 시간에 보여준 나의 작은 관심에 변한 아이다. 경현이처럼 많은 아이들이 그저 아주 조그만 관심에 눈부시게 변화한다. 논술 강사다 보니 아이들에게 무언가 가르쳐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늘 있다. 하지만 무언가 가르치려고 노력했을 때보다 아주 작은 정성이 아이들을 변화시키는데 훨씬 효과적임을 종종 경험한다. 그럴 때마다 논술은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 스스로 학습하고, 터득해나가는 주체적 공부임을 확인한다.
논술을 지도하는 사람은 아이들이 자기 속에 있는 생각을 표현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보살피는 역할을 해야 한다. 부모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의 논술 실력을 키우고 싶다면 아이를 격려하고, 아이의 생각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것이 출발이다.
“한 사람을 있는 그대로 귀한 존재로, 닦으면 자랑스럽게 빛날 보석으로 봐줄 수 있는 사람. 그런 사람이 스승이다.”(「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