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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 Jetee

나소미 |2006.07.13 02:25
조회 19 |추천 0

일요일 오를리. 그의 부모는 이륙하는 비행기를 구경시켜주기 위해 그를 그곳으로 데려가곤 했다.

이 운명적인 일요일, 우리가 주목하는 이 아이는 얼어붙는 태양, 승강장 저편의 풍경, 그리고 한 여자의 얼굴을 머릿속에 각인한다.

우리의 기억력은 평범한 순간들을 잘 기억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순간들의 상처가 드러날 때 그 순간들은 우리에게 망각에서 끄집어낼 줄 것을 요구한다. 그가 본 그 얼굴은 평화 시의 마지막 이미지고 그는 전쟁에서 생존한다. 정말 그것을 본 것일까? 아니면 그 혼란스런 상황 속에서 그의 머리가 임의적으로 만들어낸 것일까?

갑작스런 고함, 그 여자의 제스처, 찌부러지는 몸뚱이, 공포에 짓눌린 승강장에서의 군중들의 울부짖음.

나중에 그는 죽어가는 한 남자를 봤다고 상기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리가 파괴된다.

많은 이들이 죽는다. 일부는 자신들이 승리자라고 믿는다. 다른 이들은 감옥에 갇힌다. 생존자들은 Chaillot 아래, 그물망처럼 뻗은 지하공간에 정착한다.

땅 위의 파리는 세상의 여느 곳처럼 방사능으로 가득 차 거주가 불가능하다.

승리자들은 지하 왕국 곳곳을 감시한다.

포로들은 중대한 실험에 투입된다.

실험의 결과는 절망적이어서 일부는 죽고 나머지는 미쳐간다.

어느 날 감시자들은 포로들 중에서 새로운 실험 재료를 지목하게 된다.

지명된 사람은 다름 아닌 우리의 주인공이다.

그는 공포에 질린다. 두부(頭部) 실험에 대해 들은 바 있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켄슈타인 박사, 일명 ‘미친 과학자’(Mad Scientist)를 만나기로 되어 있다. 하지만 정작 만나게 되는 사람은 이성적인 사람으로 인류가 멸종에 처했음을 차분히 설명해준다. 대기는 오염되어 있고, 생존의 유일한 희망은 ‘시간’에 있다. ‘시간’의 틈새. 잘하면 음식과 약품, 에너지 원천을 얻을 수 있다.

이것이 실험의 목적이었다. 밀사를 ‘시간’으로 보내 과거와 미래를 종합해 현재를 돕는 것.

하지만 인간의 마음이 그 아이디어에 방해가 됐다. 다른 시간대에서 깨어난다는 것은 어른인 상태로 다시 한 번 태어난다는 뜻이다. 그 쇼크가 너무 크다.

생기 없고 의식 없는 몸뚱이를 다른 시간대에 보내오던 이 아이디어 창안자는 이제 아주 강렬한 정신적 이미지를 가진 남자들에 주목하고 있었다. 새로운 피실험자들이 다른 ‘시간’을 상상하거나 꿈꿀 수 있다면 아마도 그곳에서 살아낼 수 있을지도 몰랐다.

지하 경찰이 꿈속까지 염탐한 것이다.

주인공은 과거의 이미지에 강렬하게 사로잡히고 있다는 이유로 수천 명 중에서 선택된 것이다.

첫 실험에서는 고통 이외에는 아무것도 얻어낼 수 없었다.

실험은 계속 되었다.

남자는 죽지 않았고 미치지도 않았다. 다만 고통스러울 뿐이었다.

10일째 되는 날, 이미지들이 참회처럼 서서히 새어나오기 시작했다.

평화 시의 어느 아침. 평화 시의 침실, 진짜 침실. 진짜 어린이. 진짜 새들. 진짜 고양이들. 진짜 무덤들.

16일째, 그는 오를리 공항의 승강장에 있다. 하지만 텅 비어 있다.

이따금 그는 일상의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행복?

그의 행복한 얼굴. 행복?

파멸.

그가 그 여자를 찾은 것 같다. 승강장에서 그녀를 지나친다. 그녀는 자동차에 탄 채 그에게 미소를 보낸다. 어느 박물관에서 다른 이미지들이 나타나서 합쳐진다. 그의 기억 속에 있던 것들일까?

30일째, 만남이 이루어진다. 그는 그녀가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사실, 그 확신은 이 연대를 알 수 없는 세상의 한가운데서 확신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었다. 이 세상에 오자마자 그는 그 풍요로움에 어안이 벙벙했었다. 사방에는 믿기지 않는 물질들뿐이었다. 유리, 플라스틱, 테리 직물들. 겨우 정신을 차렸을 때 그녀는 가고 없었다.

실험자들이 통제를 강화한다. 추적자를 붙여 그를 돌려보낸다. 시간은 거꾸로 돌고 그 순간이 돌아온다.

이번에는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을 건다. 그녀는 놀라지 않고 그를 반긴다. 그들에겐 기억도 없고 계획도 없다. 시간만이 무심하게 그들 주위에 켜켜이 쌓인다. 그들의 존재를 증명하는 것(Their landmarks)은 살아가고 있는 순간순간의 정취와 벽의 낙서뿐이다.

이제 그들은 어느 정원에 있다. 그는 이 정원을 어디선가 봤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그의 목걸이에 대해 묻는다. 세계3차대전 시작 시에 건 그 군대 인식표 목걸이가 아직도 그의 목에 걸려 있는 것이다. 그는 이야기를 지어낸다.

걷는 두 사람. 그러다 역사상의 연대가 적혀 있는 아메리카삼나무의 둥치를 보게 된다. 그녀가 어느 영어 이름을 입 밖으로 내지만 그는 이해할 수 없다. 꿈결처럼 그는 나무 반대편의 한 지점을 가리키며 중얼거린다. “나는 여기에서 왔는데...” 그 순간 그는 뒤로 넘어져서 탈진한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시간 파장이 그의 몸을 훑고 지나간다. 또 한 번의 주사 탓일까?

이제 그녀는 양지에 잠들어 있다. 그는 그녀가 죽었다고 생각한다. 이 세상으로 잠깐 되돌아온 것은 그녀를 다시 보기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녀가 깨어난다. 그는 말을 건다. 남들이 믿기엔 너무 몽상적인 진실의 핵심을 그는 잊지 않고 있다: 가닿을 수 없는 나라, 가야할 길이 까마득한. 그녀는 듣고 있다. 웃지 않는다.

같은 날일까? 그는 모른다. 두 사람은 계속 이렇게 갈 것이다. 무한한 걸음과 함께. 그들 사이에서 자랄 말없는 믿음, 순수한 믿음 속에서. 기억도 없이, 계획도 없이. 그가 (그들 앞의) 장벽을 느낄 때까지.

이것이 첫 실험의 끝이었다.

전체 실험의 시발점이 된 것이다. 그 실험 속에서 그는 그녀를 여러 시간대에 걸쳐 만날 것이었다. 가끔은 그들이 해둔 벽 낙서 앞에서 그녀를 발견했다. 그녀는 그를 담담하게 반겼다. 그리고 그를 ‘나의 유령’이라 불렀다.

하루는 그녀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고, 하루는 그에게 몸을 기대왔다. 그로서는 결코 알 수 없었다.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지, 그녀에게 빠지게 될지, 그게 가능할지, 자신이 지금 그냥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지.

50일째쯤, 두 사람은 시간을 초월한 동물들로 가득 찬 박물관에서 만난다. 이제 목적이 완벽하게 수정되었다. 적절한 순간으로 떨어진 그는 거기서 머물 수 있었고, 별 노력 없이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다.

그녀도 많이 바뀌었다. 얌전해져 있었다. 이 방문자가 오고 가고 존재하고 말하고 함께 웃고 말을 멈추고 귀를 기울이고 그리고 사라지는 패턴을 그녀는 자연스런 현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다시 실험실로 돌아온 그는 뭔가가 달라져 있음을 깨닫는다. 실험 지휘자가 와 있었다. 실험자들과의 대화를 통해 그는 과거에서의 실험 결과가 훌륭해서 이제는 미래로 보내질 것임을 직감했다. 흥분한 그는 박물관에서의 마지막 만남의 순간을 잊는다.

미래는 과거보다 안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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