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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msara

최희윤 |2006.07.14 20:12
조회 40 |추천 0
윤회나 카르마를 처음으로 안 사람이 일반적으로 갖게 되는 하나의 의문은 ‘그것이 유전과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하는 것이다. 육체적인 유전의 흐름은 일종의 자력(磁力)의 법칙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에 영혼은 자기의 요구에 가장 잘 호응해 주는 가족의 무리나, 이것이라면 갈 수 있겠다 싶은 육체에게로 반드시 끌려가게 마련인 것이다. 따라서 유전과 그 밖의 육체적 근인(近因)은 실은 카르마의 자력적 강제력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다.


카르마에 대해 보통 제기되는 또 하나의 의문은 윤리적인 문제이다. 앞 장에서 살펴본 장님인 바이올린 연주자의 경우, 그가 장님으로 태어난 원인은 전생에서 야만인이었을 때 벌겋게 달군 화젓가락으로 적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게 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이 나올 것이다. 즉, ‘그 시대의 관습에 따라 한 행위에 대해 어찌하여 도덕적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는 의문이다. 사회적 의무를 다했을 뿐인데, 왜 형벌을 받아야 하는가?’


그것은 지당한 의문이다. 이런 의문에 대해 부분적으로는 이미 앞 장에서 밝혔다. 즉 카르마를 결정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동기이며, 말이나 글이 아니라 정신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에 더하여 사회적인 죄라는 것도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왜냐하면, 만약 사회의 관습이 최종적인 의미에서 잘못된 것이라면, 그 사회를 이루고 있는 구성원들은 모두 어느 정도 그 죄를 나누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만약 궁극적 의미에서 남을 노예로 삼거나 죽이거나 상처를 입히는 것이 잘못이라면 - 리딩에 의하면 남의 자유의지를 침해하는 것은 절대적인 악이라고 한다 - 그런 사회에 속하는 모든 사람에게 죄가 있는 셈이다. 설령 적극적으로는 죄가 없다 해도 소극적으로는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죄는 만약 그 사회 구성원들이 그런 관습이 갖는 도덕적 의의를 자각하고도 악을 제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한다면 더더욱 커질 것이다. 또한 그들이 그런 조건하에서 적극적으로 악을 행한다면 그들의 죄는 그 만큼 더 커질 것이다.


종족간의 싸움에서 어쩌다 포로가 된 적의 눈을 화젓가락으로 찌르는 따위는 분명히 잔인한 행위이다. 만약 그런 일을 맡은 사람이 그런 잔인한 행위를 스스로 하기는 싫지만 종족에 대한 의무 때문에 부득불 했다면, 아마도 그가 카르마의 징벌을 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런 행위를 할 때 내심으로 그에 상통하는 잔인성을 지니고 있었다면, 카르마를 짓게 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바가바드기타]에서 훌륭하게 다루어지고 있다. 행위 그것에 개인적인 관심과 욕심을 갖지 않고 초연하게 행동하는 데에 미래의 카르마를 지어내지 않는 비결이 있다. 사랑이라 해도 비개인적인 사랑, 중립적인 사랑, 집착이 없는 사랑, 사랑을 갖고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랑이 아니면 안 된다. 그렇지 않으면 미래의 새로운 굴레를 만들어 놓는 것이 된다.


만약 앞의 예에서 장님인 바이올린 연주자가 적의 눈을 찌르는 의무를 현자(賢者)가 모든 일을 할 때와 같이 희생정신으로 했다면, 그리고 스스로의 잔인한 지배욕을 만족시키는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했다면, 카르마는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원문내용(작성자:최희윤)-----------------------------------

우리는 대개 자기가 저지른 죄보다도 남이 자기에게 저지른 죄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남에게 욕한 것보다 더 많은 욕을 먹었다고 느낀다. 모두 자기는 죄가 없고 선량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부분적으로는 조물주에 의하여 창조된 자가 원래 지니고 있는 자만심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대개는 우리가 ‘망각의 강’에 잠겨있기 때문이기도 하며, 사악한 과거를 자비로운 자연의 섭리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가려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언제나 남들에게 친절을 베풀어 왔는데, 그런 나는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인간이란 정말 잊기 잘하는 동물이야!” 하고 투덜대는 여성이 있다. 옳은 말이다. 당신은 현생에서는 친절하다. 왜냐하면 당신은 곱지가 못하니 남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친절을 베푸는 것이라고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은 당신이 현생에서 가꾸어 낸 미덕에 불과하다. 아름답고 냉정한 여자, 육욕을 마음대로 부린 여자로서의 전생을 보라. 당신은 그 때 뿌린 씨를 지금 거두고 있는 것이다. 당신에 대한 사람들의 대접이 인간은 배은망덕한 존재라는 사실에 대한 증명이 되지는 않는다. 그것은 단지 당신 자신이 전에 남들을 대하던 방식대로의 것이 지금 되돌아오고 있을 뿐이다. 이제부터도 몇 번씩 환생해 나가는 사이에 지금 씨 뿌린 것은 나중에 무화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그 때까지는 엉겅퀴를 당신이 거두어야 할 수확으로 알고 받으면서 꾸준히 무화과를 심어 나가야 한다.


인간의 성격을 깊이 날카롭게 느낄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의 드러나지 않은 천박하고 음산한 부분이 있는것을 알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에게서는 약탈적인 지배욕이, 또는 얼음 같은 냉담함이 엿보이기도 한다. 젊음이나 미모나 부나 지식이나 관능의 만족 따위와 형식적인 상냥함으로 만족하고 있는 개성은 자기 내부에 이런 악덕이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나 개성을 지탱해 주는 외적 안정성이 흔들리어 무너져 내리면 인격은 자기 내부에 깊이 박혀 있는 사악한 것이 드러남을 보고, 그것을 보상하기를 강요하는 운명에 다소곳이 따르게 된다.


쓰디쓴 경험이 생기면 개성은 “나는 이런 꼴을 당할 아무것도 안했는데···.”하고 불평하기 일쑤이다. 그러나 자기는 죄가 없다는 생각은 착각에 불과하다. 그런 사람은 양친을 죽이고 재판을 받을 때 죄를 고백하면서 “저는 고아입니다. 살려 주십시오.”하고 애원하는 어떤 사람의 논리처럼 우습기만 하다. 개성(에고)은 자기 죄를 고백하지 않는다. 그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고아라고 살려달라고 애원한다. 그는 틀림없이 이것저것 잘못을 저질렀다. 아니면 불행이 그에게로 닥칠 턱이 없다. 자기 내부에 악이 잠재해 있어, 그것이 피동적으로 불행을 끌어오지 않으면 불행은 절대로 찾아들지 않는다.


성격의 변화는 삶의 변화와 유전의 - 그것이 전생이든 질병이든 홍수와 같은 외적 재난이든, 또는 미묘한 내적 갈등이나 투쟁이든 - 계몽적인 목적이다. 심리학이 진화의 나선형 계단 위에 서서, 이 모든 인생의 부침(浮沈) 속에 있는 목적을 인정하고 이해한다면 위대한 영적진보를 이룩하리라.




원문내용(작성자:최희윤)-----------------------------------

성격의 둘째 모순은 분명히 불완전한 교정에서 생기는 것 같다. 이 사람은 먼 과거생에서 이집트의 임금 자리에 있었던 적이 있다. 으스대고 오만한 태도, 의젓하고 자신만만한 행동거지 따위는 그 경험에 유래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다음 생에서 팔레스타인에 태어나 예수님에게서 큰 감화를 받았다. 그 위대한 스승의 인격은 그에게 엄청난 감명을 주었고, 그는 예수님과의 교류를 통하여 사회봉사에 대한 강한 충동과 인간은 모두 형제라는 이성적인 믿음을 얻은 것이다.


그의 경우 현생에서 우세한 것은 이 후자 쪽의 충동이다. 그는 평생의 사업으로 종교나 사회봉사 분야에서 지도자로 일하는 길을 택했다. 복음전도의 새로운 방식을 세워 그는 지금도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 또 고민하는 사람들의 상담자로서도 아주 알뜰하고 진지하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그런데도 그는 이따금 저 이집트 시대의 사나운 오만에 사로잡히곤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성질이 팔레스타인이나 그 밖의 전생에서 반밖에는 고쳐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잠재해 있는 모순된 성질을 깨닫고, 그는 지금 그것을 극복하려고 열심히 노력하고 있다. 그렇게 노력을 계속하노라면 그는 차츰 조화를 잘 이루는 사람이 되고, 아직 청산되지 않은 성질도 차츰 자기완성과 봉사라는 새로운 목표에 따라 향상되어 갈 것이다.


이렇게 모순을 자각하는 것, 어떤 성격적 경향이 가장 바람직한가를 분별하는 것, 그리고 대립되는 성질을 극복하려고 노력하는 것 등이 뿌리 깊은 갈등을 해결하는 올바른 방법일 것이다. 이런 경우들을 면밀히 살펴 나갈수록 누구든 뚜렷이 “먼저 당신이 사는 목적을 정하시오”하고 리딩이 거듭해서 권고하는 까닭을 알게 된다. 이것은 과연 극히 건전한 말이지만, 동시에 너무 평범하고 유치한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신중하게 끝까지 음미해 본다면, 이 평범한 말의 뜻이 인격의 통일과 조화를 향해 가는 도상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문제에 있어서도 가장 근본적이고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일단 이상 내지 목표가 정해지면 항해에 필요한 나침반은 가진 것과 같다. 즉, 그것은 무의식의 마음속에 있는 어떠한 모순되는 생각의 소용돌이라도 다스리고 조화시키고 초월하는 도구인 것이다. 그 투쟁은 어쩌면 빛과 어둠의 투쟁, 영과 육 또는 선과 악의 싸움이라고 여겨질지도 모른다. 그러나 보다 현대적인 표현으로 말해 본다면 그것은 무의식의 심층에 들어 있는 과거의 생각과 행위가 갖는, 아직 청산되지 않은 힘과 계몽된 의식과의 싸움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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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몇 세기에 걸쳐 무죄(無罪)와 원죄(原罪)라는 문제로 고민해 왔다. 많은 철학자들이 인간의 본성이 원래 선인가 악인가를 따지는 일에 정면으로 맞붙어 왔다. 플라톤은 갓난아이의 마음은 전생에서 살던 상태의 기억으로 가득 차있다고 생각했다. 로크는 갓난아기의 마음은 백지이고, 그 위에 사상(思想)으로 개념화될 온갖 인상들을 감각이 써넣는다고 보았다. 신학자들은 모든 유아는 아담과 이브의 원죄로 더럽혀져 있으며, 원죄는 오직 올바른 영성체(領聖體)로써만 씻길 수 있다고 한다. 윤회론의 견해는 모든 인간이 진정 죄의 유산을 지니고 태어나지만, 그것은 자기 자신이 지어 놓은 죄이지 아담과 이브의 죄라는 따위의 비유적인 성격의 것은 아니며, 죄는 과거의 자신의 행위에서 생기기 때문에 세례나 교회의 어떤 의식 -물론 그런 의식에는 그 나름의 상징적 가치나 목적은 있다. - 으로 씻길 수는 없다고 본다.


원문내용(작성자:최희윤)-----------------------------------

인생은 재미있는 소설의 줄거리처럼 그 모순과 투쟁 때문에 흥미가 깊은 것이다. 원시인에게는 투쟁이 주로 자연의 여러 가지 힘에 대한, 그리고 다른 인간에 대한 싸움이었다. 그러나 인간이 진화함에 따라 그 투쟁은 차츰 내적 요인에서 생겨나게 되었다. 이 내적 투쟁은 각 시대에 따라 선과 악, 영과 물질, 이성과 감성, 양심과 충동, 의식적인 마음과 무의식적인 마음의 대립으로 묘사되어 왔다.


그런 묘사에는 모두 어느 만큼의 진리가 담겨 있지만, 윤회론이 말하는 의미에서의 투쟁의 설명은 되어 있지 않다. 윤회론에서 보면 투쟁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스스로를 물질적 차원의 존재라고 착각하기 때문에 저지르게 되는 잘못에 있는 것이다. 하긴 인간은 스스로를 진화시키기 위해 그 물질을 통해 자기를 표현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런 그릇된 인식이 이기적이고 차별적인 행동을 낳고, 나아가서는 그것이 보복의 카르마를 작동시키게 되는 것이다. 카르마의 작용은 인간의 그릇된 행위를 객관화 시킨다. 인간은 그 속에 갇혀 자유를 잃고 만다. 이 자유의 상실이 인간의 정신적 고뇌의 근본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스스로에게 지운 그 보이지 않는 감옥인 속박과의 투쟁이 내적 갈등의 기본형이다.


케이시 리딩은 이 밖에 또 하나의 투쟁원인이 있다고 밝혀준다. 잊어서는 안 되는 것은 카르마에서 보복과 연속이라는 두 면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연속성 때문에 많은 부조화와 충동이 계속 이월되면서 인간의 내면세계에 새로운 갈등의 원인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리딩에 따르면, 충동이란 뭔가 과거생의 경험에서 나오는 강한 욕망이나 욕구를 말한다. 모순되는 욕구로 생긴 투쟁보다도 더 어려운 것은 충동이 완전히 진정되지 않은 때이다. 많은 경우에 인간은 자기 자신의 모순을 깨닫지 못한다. 충동과 그 교정의 불완전이라는 이 개념들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예는 다음의 경우일 것이다.


이 사람의 성격에는 두 가지의 기본적인 모순이 있다. 첫째는 이 사람이 어떤 때는 은둔적이고 내향적이며, 침묵·냉담·비사교적·학구적·초세간적인가 하면, 또 어떤 때는 아주 상냥하고 외향적이며, 명랑하고 솔직하며 관능적이라는 것이다. 리딩은 이 기묘한 분열이 두 가지의 분명한 경험의 흐름 때문이라고 한다. 그의 비사교적 경향은 영국의 수도원에서 수도승으로 살았을 때에 형성되었으며, 그의 명랑하고 솔직한 성질은 중세의 십자군 전사였던 전생에서 생겨난 것이라고 했다. 성격상의 이런 이상한 이중성은 대개 사람들이 싫어하기 마련이다. 오늘은 솔직하고 내일은 냉담하고 무뚝뚝할지도 모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가까이 하기를 주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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