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빨래터. 1954년. 캔버스에 유채. 15×31Cm 실례인 줄 알면서도 이 편지를 보내오니 용서하시고 끝까지 읽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나는 양구군 양구면 정림리 부농가집 장남으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는 고운 옷에 갓신만 신고 자랐습니다. 그런데 내가 일곱 살 되던 해 아버지의 광산사업이 실패하고 물에 전답이 떠내려가서 우리집은 그만 가난하게 되었습니다. 5세때 서당에 다녔고 7세때 보통학교에 입학해서 나는 보통학교밖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게다가 어머니께서 유방암으로 오래 병원에 계시다 돌아가셔서 동생들과 아버지를 어머니 대신 돌보아야 했기에 고학이라도 해서 미술학교를 다니려던 꿈은 그만 깨어져 버렸습니다. 나는 춘천과 서울로 다니면서 그림 공부를 독학했습니다. 지금까지 네 번 선전에 입선했습니다. 선전에 처음 입선한 것은 내가 18세 때였습니다. 지금까지 춘천에서 그림 공부를 하다 부모님이 계신 집에 오니 부모님께서 윗집 처녀에게 장가들라고 권하셨습니다. 나는 여러번 거절했습니다. 내가 더 성공해서 결혼할 생각이었으나 부모님께서 하도 권하셔서 나는 당신에 대해 내 동생 원근이와 동네 사람들에게 알아보았습니다. 일전에 당신이 우리 어머니와 빨래하러 같이 가셨을 때 어머니 점심을 가져간다는 핑계로 빨래터에 가서 당신을 자세히 보고 아내로 맞아들이기로 마음으로 결정했습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사람입니다. 재산이라곤 붓과 파레트밖에 없습니다. 당신이 만일 승낙하셔서 나와 결혼해 주신다면 물질적으로는 고생이 되겠으나 정신적으로는 당신을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해 드릴 자신이 있습니다. 나는 훌륭한 화가가 되고 당신은 훌륭한 화가의 아내가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귀여운 당신을 내 아내로 맞이한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은 없겠습니다. 내가 이제까지 꿈꾸어 오던 내 아내에 대한 여성상은 당신과 같이 소박하고 순진하고 고전미를 지닌 여성이었는데 당신을 꼭 나의 베필로 하느님께서 정해주신 것으로 믿고 싶습니다. 나는 나 혼자 당신을 모델로 그림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나의 이 숨김없는 고백을 들으시고 당신도 당신의 심정을 솔직히 적어 보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답장을 기다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