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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명호, 이번엔 박정희는 '개자식'...

시가운다 |2006.07.04 00:02
조회 988 |추천 0

 

음란시 '박가 년 XX는 손에 달렸다지'를 발표해 물의를 빚었던 '송명호'가 이번엔 박정희 전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난하며 자신이 쓴 시를 정당화 하고 나섰다.

 

7월 2일 '우시하'라는 오마이뉴스 블로그를 통해 시 박가 년...을 쓰게 된 경위와 그에 대한 해석.부연설명에 영화 '감각의 제국''하이눈'을 동원하고, '삼포 가는 길'의 한 대목까지 인용해가며 시 '박가 년'을 스스로 옹호했다.

 

송명호씨는 글을 통해 "나는 그를(박정희) 개자식으로 본다"고 밝힌 후 "박정희 두상이 나오면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X자석 지 자랑하는 거 더럽게 좋아하네. 이불 속에서 하는 자위행위는 비난할 게 못 되지. 저 자식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 성기를 꺼내 놓고 용두질을 하는구나. 그가 한라산보다도 큰 거대한 조+ㅈ 대가리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역시 거대한 성기였다. 청와대에 술집을 만들어 두고 연예인들을 끼고 놀았다. 그는 베트남의 호지명과 너무 달랐다."

 

계속해서 그는 "TV에 자신의 얼굴이 늘 비치게 하는 것이 그가 조+ㅈ 대가리를 꺼내어 조+ㅈ 물을 국민들의 얼굴에 뿌리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밤에는 실제로 여성의 자궁에 조+ㅈ 물을 뿌려 대고 있었으니 같은 일이었다."고 표현한 후, 김재규 의사가 거사를 성공시켰고, 당연히 그(박정희)의 죽음은 '더럽게' '역겹게' 써야한다고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박정희를 시해한 '김재규'를 변호한 강신옥 변호사의 오마이뉴스 인터뷰를 거론하며 박정희의 여자문제를 가로막았던 탓에 김재규를 인간미 넘치게 표현했다고 했으며,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의 상처가 큰가 인혁당 사건의 피해자 상처가 큰가라며 반문하기도 했다.

 

송명호씨의 이 글은 박대표 피습사건의 배후를 조사하자는 단체들에게 적지않은 충격을 줄 것으로 예상된다. 벌써, 송명호씨의 블로그를 방문해 바로가기 링크를 거는 등 각종 게시판에 게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는 글의 마지막 부분에서 중앙선관위의 조사에 대한 결연한 의지를 나타내며 "무명이지만 시인이다.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대응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고도 밝혔다.


 


§송명호씨 오마이뉴스 블로그 캡쳐.(다요기)

한편, 일각에서는 송명호씨가 이와 같은 글을 쓰면서 철저히 오마이뉴스 기사를 인용한 것을 들어, 인터넷에서 '좌파매체' '노빠매체'로 분류되고 있는 오마이뉴스와 맥을 같이 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 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송명호씨가 스스로 쓴 글에서 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인 '노사모'의 명계남 전 대표의 "탈레반 지지자가 되자"라는 표현을 그대로 빌어 '탈레반식 새해인사 드립니다'란 제목으로 올린 것과, 그 글에서 '정치보복'을 노골적으로 주문하는 둥, 자신이 좌파라고 했기 때문이다.

 

시 '박가 년' 사건 이후 자신의 딸과의 대화까지 올렸으나 동정은 커녕 더욱 비난의 눈총을 받은 후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고는 하지만, 한발 더 나아가 이제는 김재규를 '의사'로까지 칭해 비난받을 소지가 더욱 다분해졌다.

 

현재, 송명호씨의 블로그에는 그를 두둔하는 네티즌과 비난하는 네티즌이 간헐적으로 댓글을 주고 받고 있는 상태다. 송명호씨를 비난하는 글은 상대적으로 육두문자가 자주 보이는 등 글에 대한 반감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무명시인에서 일약 시 '박가 년'으로 유명세를 탄 송명호의 향후 행보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다요기 특종취재단.(www.dayogi.org)

 

아래는 송명호씨의 글 전문.

<박가 년 @지는 손에 달렸다지> 이렇게 썼다

분류없음 2006/07/02 13:44 해우린

 

<박가 년 @지는 손에 달렸다지> 이렇게 썼다 


1970년대는 극장 상영용 포르노가 산업으로 자리 잡았던 시대였다. 나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를 기억한다.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도 70년대를 풍미한 포르노 영화이다. 그러나 이 영화가 우리나라에서 상영되기에는 20여 년을 훌쩍 넘겨야 했다. 새 천년을 맞이하면서 일본 문화 수입 찬반 논쟁이 있었다. 정확하지 않은 내 기억에 의하면 이 형화는 수입 배급사의 창고에 20여 년 동안이나 잠을 자야 했다. 하여간 어렵사리 상영이 허용(국내 개봉일  2000.04.01) 되었으나 관객들은 일본의 포르노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았다. 포르노 영화의 관객 동원력은 알몸의 노출 정도로 결정되던 시절이 있었다. 이 영화는 남녀의 성기가 숨김없이 그대로 노출되는 영화로 유명하였다. 새 천년의 영화팬들에게 70년대식 노출쯤이야 이미 식상해진 것일까. 영화사에 한 획을 그은 <감각의 제국>은 흥행에 실패를 하였고 거꾸로 한국의 <겨울연가>가 일본 영화팬들을 사로잡았다.

<감각의 제국> 포스터가 서울의 거리에 흔하게 붙어 있을 때 나는 차를 몰고 가면서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였다. 이상한 포스터였다. 일본군복을 입은 사람들을 배경으로 여배우가 에로티시즘을 흘리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불균형이었다. 제복을 입은 남성들과 알몸의 여배우로는 성적 상상력을 깨트릴 텐데, 거참 이상하다. 나는 끝내 영화를 보러 가지 않았다.

이 글을 쓰기 위하여 인터넷 검색을 한 이후에야 그 까닭을 알 것 같다. 이 영화의 줄거리는 1936년에 일어나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네이버에서 검색한 내용을 옮겨 보자.

군국 시대를 배경으로 실존했던 기생의 일화를 영화로 만든 <감각의 제국1976>은 탐미적이고 자학적인 에로티시즘의 동굴로 침잠해 들어간 영화이다.

기생 아베 사다는 도쿄의 한 요정 주인 이시다 기치조를 보는 순간 첫 눈에 반한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기치조 아내의 눈을 피해 밤낮없이 성교에 몰두한다. 시도 때도 없이 되풀이해서 성교를 즐기던 두 사람은 급기야 서로의 몸을 탐하는 단계를 넘어 새디즘과 매저키즘의 관계에서 열락을 즐긴다. 서로 때리고 목을 조르며 죽기 직전까지 고문을 가하면서 희열을 느끼던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침내 파국을 맞는다. 기치조가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절명한 것이다. 아베는 칼을 들어 자기가 사랑했던 남자의 중요한 부분을 잘라 손에 쥐고 피투성이가 된 기치조의 곁에 행복하게 눕는다.

70년대는 극장판 포르노가 막 산업으로 자리잡았던 시대였다. 또한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의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나 오시마 나기사의 <감각의 제국>처럼 때로는 주류 영화와 포르노 영화의 경계도 모호해졌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비어있는 아파트에서 중년 남자와 젊은 부르주아 여자가 신분도 계급도 나이도 무시한 채 오로지 에로티시즘으로 계급에 구애받지 않는 사랑의 몽상을 꿈꾼 영화라면 <감각의 제국>은 에로티시즘의 퇴행성과 파괴성을 극한까지 밀어붙였다.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가 혁명에 실패한 유럽의 68년 세대의 패배주의를 바탕에 깐 몽상이었듯이 <감각의 제국>에도 그런 것이 깔려 있다. '일본의 고다르'라 불릴 만큼 60년대의 오시마 영화에는 우익으로 기우는 일본사회의 흐름을 공격하고 학생운동과 적군파로 대변되는 60년대 일본사회의 변혁 움직임을 반영하는 기운이 있었다. 그러나 70년대의 오시마가 오랜만에 발표한 <감각의 제국>에는 더 이상 그런 패기가 남아 있지 않다. 군국 시대를 배경으로 실존했던 기생의 일화를 영화로 만든 <감각의 제국>은 탐미적이고 자학적인 에로티시즘의 동굴로 침잠해 들어간 영화이다. <감각의 제국>에는 배경 화면에 스쳐 지나가듯이 일본 제국 군대가 행진하는 장면이 한 번 나오지만 그렇다고 이 영화가 정치적인 영화라는 것은 아니다.

주인공 아베 사다와 기치조가 폐쇄적인 좁은 다다미방에서 벌이는 정사는 점점 대담해져서 때로는 가부키를 공연하는 가수를 불러다 놓고 집단 성교를 벌이고 다른 기생을 불러 노래를 시켜 놓고 그 앞에서 성교하는 일을 되풀이한다. 에로티시즘에의 강박은 더욱 높아가고 두 남녀는 새디즘과 매저키즘을 오가는 유희에 빠져든다. 급기야 남자의 몸 위에서 목을 조르며 즐기던 여자는 불현듯 남자의 몸이 싸늘하게 식어있는 것을 깨닫는다. 오시마는 영화의 내용과 형식을 완벽한 포르노 문법으로 끌어가지만 거기에 절묘하게 일본의 유미주의를 결합했다. 아베와 기치조가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극단적인 성교에 열중할 때 전통적인 일본 가옥의 정중한 아름다움이 돋보이는 실내에서 붉은 옷과 선혈은 서로 어우러지며 시신경을 어지럽히는 것이다.

<감각의 제국>은 현대적으로 세련된 포르노 영화이며 퇴행과 죽음에로 이르는 파멸적인 과정을 다룬다. 이 영화에서 비애가 은근히 느껴지는 것은 세상에 안착할 자리가 없는 인간들이 에로티시즘을 통해 파국을 향해 가는 바로 그 몸부림 때문이다. 이 영화에서 정치는 화면 밖에서 벌어진다. 군국주의가 다스리는 세상에서 남녀는 오로지 서로의 몸만 탐하는 자기들만의 자폐와 유희의 궁궐에 은거하는 것이다. <감각의 제국>은 도착적인 에로티시즘과 죽음을 향한 탐미주의를 결합해 시대를 바꿀 수 없는 정치를 외면하며 자기 파괴적인 충동에 깊이 빨려 들어간, 오시마 세대의 레퀴엠이었다. 출처 ---오시마 세대의 레퀴엠 [필름 2.0 2000-03-30 14:52] 

인용문을 쓴 필자는 <감각의 제국>에서 정치성이 없다고 말한다. 글쎄다. 내 보기에 이 영화는 정치적 메시지를 강하게 풍긴다. <감각의 제국>이 드러내고자 하는 알레고리(Allegory)를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다른 영화 이야기를 통해 감독이 이야기하고 싶었던 알레고리를 유추해 보자. 나는 서부 영화 <하이 눈, High Noon, 1952>을 기억한다.

무법자 밀러를 태운 기차는 12시에 도착한다. 그는 서부의 작은 마을을 지키던 보안관 월(게리 쿠퍼)에게 복수하러 온다. 그의 부하들도 밀러를 기다리고 있다. 월은 보안관직에 은퇴하고 아름다운 여인 에이미(그레이스 켈리)와 결혼식을 올리고 마을을 떠나려던 참이다. 그가 떠나면 마을은 쑥대밭이 될 것이다. 월은 밀러의 일당들과 싸우기로 결심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같이 싸우자고 부탁해 보지만 그들은 고개를 돌린다. 에이미도 떠나자고 한다. 기차는 도착되고 다시 보안관 뱃지를 단 월은 밀러 일당과 싸운다. 총소리가 나자 아내도 기차에서 내려 돌아온다. 월은 아내의 도움을 받으면서 밀러 일당을 모두 처치하자 마을 사람들이 드디어 나타난다. 월은 보안관 뱃지를 내놓고 아내와 함께 떠난다.

서부 영화 <하이눈>에서 보안관 월은 집단적인 공포가 만연된 시대에 개인적인 용기를 의인화한 존재이다. 1940년대 후반과 50년대 초반에 자유를 위협했던 매카시즘의 망령이 미국과 세계를 위협했다. <하이눈>은 매카시즘을 둘러 싼 이슈에 대해 대중의 정서적 반응을 환기하려는 의도를 품은 작품이었다.

일본 사회는 60, 70년대에 일본 사회는 우익으로 기운다. 이들을 공격하던 일본의 학생운동은 격렬하였고 세계적 흐름이기도 하였다. 1967년 젊은이들의 우상 체 게바라는 불리비아에서 죽는다. 1968년 프라하의 봄은 소련제 탱크로 짓밟히고 만다. 1968년 프랑크푸르트에서 방화 사건이 있었다. 이를 계기로 1970년 적군파가 탄생된다. 1972년 적군파들은 미군 헌병대를 공격한다. 1968년 일본에서는 전공투라는 학생조직이  동경대학의 야스다(安全) 강당을 점거한다. 1969년 1월 18일 8500명의 경찰 기동대가 야스다 강당을 불태우면서 막을 내린다.

<감각의 제국>에서 남녀가 몸부림친 밀실은 일본 군국주의의 막료들이 전쟁 확대를 결정하던 회의실이 아닐까. 여자가 자른 성기는 전쟁에 몰두하여 가미가제를 강요하며, 자신의 젊은이에게 자살을 강요하던 전쟁광들의 자해 행위가 아닐까. 영화의 제목을 생각해 보라. 감각의 ‘제국(帝國)’ 아닌가. 교미가 끝나면 수컷을 씹어 먹는다는 ‘버마재비의 사랑’이라고 이름 지어도 좋지 않을까. 그러나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포르노 영화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목을 택했다. 하필이면 ‘제국(帝國)’인가. 그가 이런 제목을 선택할 때의 고뇌는 무엇이었을까. <감각의 제국>은 우익으로 경도되는 일본 사회와 학생 운동의 좌절을 바라보면서 제 2의 태평양 전쟁의 전율을 경고한 작품이 아닐까.


필자는 오늘 졸시 <박가년 @지는 손에 달렸다지>에 대한 소회를 쓰고자 한다. 자 여기까지가 서론이다. 쓰고 보니 《장자》 〈내편〉의 소요유(逍遙遊) 꼴이 났다. 소요유는 내편 전체의 서론 격이다. 그런데 너무 길어서 《장자》에서 깊은 뜻을 탐색하는 이들을 미궁에 빠뜨린다. 이 글의 독자는 이 글이 길더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 좋겠다.


먼저 졸시를 필자는 풍자시라는 장르로 문학의 즐거움에 발표하였다. 과연 그토록 적나라하게 까발긴 글을 시라고 할 수 있으며 풍자라고 할 수 있는가. 발표 직후 약 1주일간은 하루에 수백여 명의 협박 전화가 왔었다. 이들 중 상당수가 그것도 시냐는 반응을 보이면서 육두문자로 욕설을 해 댔다.

나의 졸시에서 위에 예로 든 <하이 눈>이나 <감각의 제국> 같이 수준 높은 알레고리 형식을 갖추었다고 주장하자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하는 듯하다. 무엇보다 시란 고상한 말, 정서를 순화시키는 말을 써야 하지 않느냐. 그런데 원색적 육두문자를 사용할 수 있는가. 졸시에는 ‘@지, @알’ 이런 낱말이 직설적으로 들어 있다. 김수영 시인도 이런 낱말을 사용한다. 그래서 김수영의 시를 논할 때 비시적(非詩的) 일상어를 사용한 시인이라고 말한다. 김수영은 ‘거대한 뿌리’라는 시의 넷째 연을 “비숍 여사와 연애를 하고 있는 동안에는 진보주의자와/ 사회주의자는 네 에미 씹이다 통일도 중립도 개성기이다”라는 낱말들은 천연덕스럽게 사용한다. 또한 80년대와 90년대에는 장정일, 김영승, 유하, 함민복 등의 시인들이 비시적(非詩的) 일상어로 시를 썼다. 이들의 시를 민중시, 포스트 모더니즘의 시 또는 키취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무엇이라고 부르건 1930년대의 시문학파의 시와 같은 아름다운 언어의 조탁만이 주된 시어였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

생각해 보라. 김소월의 시는 아름답다. 그렇더라도 이별의 순간에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라고 부르는 연인이 21세기를 맞이한 지금에도 있을까. 시는 현실을 반영한다. 사실주의란 작품 속과 작품 밖의 현실이 동치관계를 이룬다. 현실 속에서 욕설은 주고받는 일은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심지어 젊은 가수들의 음반에서마저 쌍욕이 등장한다. 현실에서의 언어를 사용해서 시를 쓸 수 있다. 다운시킨 나의 홈 페이지에는 내 시보다 더한 욕설이 도배질되어 있다. 이게 현실의 언어라는 점을 보여 주기 위해 고스란히 저장해 둘 작정이다. 

다시 감각의 제국으로 돌아가 보자.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말이 기억난다. 인체의 모든 부분과 인간의 모든 행위를 찍을 수 있는데 인간의 성기와 성행위만은 왜 촬영할 수 없는가. 동양의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는 아직도 다중이 모인 공연 장소에서 성기와 성행위를 적나라하게 묘사하거나 보여 주는 것을 금기로 여긴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은 이런 관습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래서 프랑스와 합작이라는 형식으로 촬영을 하고는 수입품이라는 형식으로 상연할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는 무삭제로 상연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가위질을 당한 후 상연할 수 있었다.

20세기의 영화뿐만 아니라 판소리 변강쇠 타령은 기물 타령이라는 것으로 시작된다. 기물 타령이란 여성을 두 다리를 벌려 놓고 바라보면서 여성 성기의 모양을 큰 소리로 노래하면서 묘사한다. 그 묘사는 사실적이고 노골적이다. 대개의 예술 작품에서 러브스토리는 먼저 고상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면서 여성의 헌신과 정조를 강조한 이후에 합방을 치른다. 그러나 변강쇠 타령은 이런 상식을 거부한다. 대뜸 기물 타령이다. 이는 사회의 타부를 깸으로써 맛보는 카타르시스와 관련이 있다. 더구나 유교가 지배하던 조선의 저자거리에서, 심지어 사또의 동헌이 바라보이는 곳에 자리 잡아 큰 소리로 창을 부른다. 점잖은 양반들이 듣게 하려고 육두문자로 버럭버럭 악을 질렀음은 불문가지다. 얼마나 통쾌하겠는가. TV도 없던 시절이니 사또와 양반, 성내(城內)의 모든 주민들이 들었을 것이다.

나도 노골적으로 까 발겼다. 교양과는 무관한 정서가 넘치게 썼다. 육영수 여사의 죽음을 애도하여 장지까지 따라간 사람들이 들으면 멱살을 잡을 말을 도발적으로 하였다. 그 도발이 서두에서 끝까지 이어지게 썼다.

우하하

얼마나 기분이 좋던지

육영수라는 박정희 마누라가 뒤질 때

지 남편의 꼬붕들이 쏜 총에 맞아 꼬꾸라질 때

얼마나 기분이 째지던지

나는 만세를 불렀다

못 마시는 소주를 사서 나발을 불었다 --- 졸시의 시작 부분

때로는 무교양에서 쾌감을 맛본다. 《삼포 가는 길》에서 창부 백화의 연설을 생각해 보라.

백화가 한 팔은 보퉁이를 끼고, 다른 쪽은 허리에 척 얹고 서서 영달이를 내려다보았다.

“이거 왜 이래? 나 백화는 이래봬도 인천 노랑집에다, 대구 자갈마당, 포항 중앙대학, 진해 칠구, 모두 겪은 년이라구. 조용히 시골 읍에서 수양하던 참인데...... 야야, 내 배 위로 남자들 사단 병력이 지나갔어.국으로 가만있다가 조용한 데 가서 한 코 달라면 몰라두 치사하게 뚱보 돈 먹자구 나한테 공갈 때리면 너 죽구 나 죽는 거야.” 

영달이는 입을 벌린 채 일어설 줄을 모르고 백화의 일장 연설을 듣고 있었다. 정씨는 웃음을 참느라고 자꾸만 송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영달이가 멋 적게 궁둥이를 털면서 일어났다. --- 황석영 《삼포 가는 길》에서


이번에는 박정희를 난도질하였다. 박정희에 대한 상반된 평가를 나도 알고 있다. 독재자라고도 하고 경제 발전의 공로자라고도 한다. 나는 그의 경제 발전이 박정희만의 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과 논쟁을 벌이고 싶지 않다. 한반도의 국민이 100년 가깝게 노력한 결과 아닌가. 서구의 문물을 일본을 통해 접한 조선 사람들은 18세기 말부터 근대화를 외우고 다녔다. 신미양요, 강화도 조약, 갑오경장, 을미사변, 일한 강제 합방, 일제강점기, 분단, 미군정, 한국전쟁 등의 격변 속에서도 근대화만은 빼놓지 않고 외쳤다. 이를 운좋게 봉합한 자가 박정희라고 치자. 그 놈이 경제발전에 공이 있었다 치더라도 인혁당 사건처럼 멀쩡한 사람을 죽여서는 안 된 다. 살인과 경제발전은 다른 차원이다. 하여간 나는 그를 개자식으로 본다. 베트남의 호지명처럼 평생을 독신으로 살면서 삼베옷 한 벌로만 살았다면 과정의 잘못을 이해하려고 애쓰겠다. 권력을 잡기 위해 남로당에 들었다가 박정희는 체포된다.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남로당원들 체포에 협조하여 무려 4만 8000명이나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한 점 역시 경제 발전과 무관하다. 친구를 배신하는 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용서받기 힘든다. 남로당 프락치였던 박정희가 친구를 배신하고 그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 일은 무엇으로 질타해야 할 것인가.

그의 낮은 자못 위대하였다. TV와 신문에 끝없이 그의 동정이 실렸다. 중공업 공장의 중공식의 테이프는 박정희가 끊었었다. 한강의 다리를 놓아도 박정희가 끊었다. 외국으로 순방을 갈 때는 선명회 합창단을 동원하여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게 하였다. 돌아올 때는 주민과 학생들을 동원하여 손을 흔들게 하였다. 라디오를 통하여 카랑카랑한 박통의 음성을 시도 때도 없이 들어야 했다. 청춘 영화를 보려고 극장에 들어가면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대한 뉴스가 상연되었다. 박통은 어김없이 나와서 건설현장에서 땀을 흘리고 있었다. 잠시라도 국민들에게 자신을 모습을 비쳐주면서 나는 이토록 열심히 일하고 있다를 강요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강박증 환자였다. 사람들은 그에게 세뇌되었다. 일하는 대통령이라는 이미지를 유포시키려는 그의 목적은 성공하였다.

참으로 역겨웠다. 나의 자랑은 남이 해 주어야 말이 된다. 매스컴을 장악한 독재자가 자기 칭송을 하게 하는 짓은 뻔뻔스러운 자기 자랑이 아니고 무언가. 문화영황에서 박정희의 두상이 나오면 나는 중얼거리곤 하였다. X자석 지 자랑하는 거 더럽게 좋아하네. 이불 속에서 하는 자위행위는 비난할 게 못 되지. 저 자식은 대중이 보는 앞에서 성기를 꺼내 놓고 용두질을 하는구나. 그가 한라산보다도 큰 거대한 조+ㅈ 대가리로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역시 거대한 성기였다. 청와대에 술집을 만들어 두고 연예인들은 끼고 놀았다. 그는 베트남의 호지명과 너무 달랐다. 그는 낮과 밤에 다른 성격의 일을 하였을까. 아니다. TV에 자신의 얼굴이 늘 비치게 하는 것이 그가 조+ㅈ 대가리를 꺼내어 조+ㅈ 물을 국민들의 얼굴에 뿌리는 일이 아니고 무엇인가. 밤에는 실제로 여성의 자궁에 조+ㅈ 물을 뿌려 대고 있었으니 같은 일이었다. 표리부동하여 낮밤이 다른 것이 아니라 같았음을 사람들이 몰랐을 뿐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주로 경상도 사람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를 거룩한 성웅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암담한 시기에 김재규 의사가 거사를 성공시켰다.

그의 죽음을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더럽게 역겹게 써야 한다. 왜 역겹게 써야 하는가. 일하는 대통령의 이미지, 막걸리를 마시는 서민적 대통령의 이미지, 연꽃처럼 자애로운 육영수의 이미지, 목련처럼 우아한 박대표의 이미지를 구역질나는 이미지로 바꾸어야 한다. 나의 시를 읽다가 먹은 음식을 게울 만큼 써야 한다. 그러나 나의 재주는 그만 못하여 다음과 같이 써서 박정희라면 끔뻑 죽는 자들의 염장을 질렀다. .

박정희가 뒤지는 날 얼마나 통쾌하던지

우하하 우하하하

술을 마시고 만세를 불렀다

아 속이 시원하도다 잘 뒈졌지

개보다 못한 자식 잘 뒈졌도다

궁궐 안에 술집 만들어 두고

@알 내놓기 좋아하다 기집년 품에서 죽었지

그래도 김재규가 인간미가 있어서

밖으로 나온 채로 죽은 박정희 거시기를

바지 속으로 넣어주었다지 - 졸시 중간 부분

협박 전화가 많이 시기에 대구의 아무개가 이 부분을 나에게 읽어주면서 나에게 대단히 분개하였다. 해도 너무 하지 않느냐고.

그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실이지 않는가. 그가 지방 시찰을 가던 헬리콥터에서 죽었는가. KAL기를 타고 가다가 폭발 사고로 죽었는가. 청와대 집무실에서 심장마비로 급사하였는가. 그렇다면 순직이다. 애꿎게도 죽은 장소는 술집이었다. 인과응보 아니가. 김재규가 인정미가 있었다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강신옥 변호사의 말을 빌려 보자.


  '박정희 시대'가 사람들의 입에 다시 오르내리는 상황에서 26년 전 그의 치세에 종지부를 찍은 한 남자에 대한 기억을 아직도 뚜렷이 간직한 사람이 있다. 박정희를 살해한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의 변론을 맡았던 강신옥 변호사(69)가 그 주인공이다.

80년 신군부의 서슬에 눌려 김재규의 목숨을 구할 수는 없었지만, 사후에라도 그의 명예를 회복시켜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그의 뇌리를 떠나지 않고 있다. 강 변호사는 김재규를 '의인(義人)'으로 추켜세우는데 아직도 주저함이 없다.

<오마이뉴스>는 그를 인터뷰하기 위해 1월 31일 오후 서울 서초동 그의 변호사 사무실을 찾았다. 박지만(박정희 전 대통령의 외아들)씨가 영화 <그때 그사람들>을 상대로 낸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한 법원의 결정이 임박한 터라 그것부터 얘기를 꺼냈다. 당시에는 법원 결정이 나오지 않은 상황이었다.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어떤 게 논란이 되는지는 들었어. 아마 가처분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거야. 영화가 꼭 사실만 정확하게 다룰 수는 없는 법이지. 허위사실로 한 사람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면 모르지만, 실재했던 사건의 일부를 영화화한 건데…."

- 영화를 본 기자들 중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여자관계를 다룬 부분은 일부 지나치다는 평이 있다.

"그게 전부 사실인 걸 어떡해? 요새 젊은 사람들이야 그걸 잘 모르지. 우리가 자제해서 박의 여자문제를 재판에서 정면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어. 하지만 박정희의 여자문제는 변명의 여지가 없어."

"법정에서 박정희의 여자문제 말하려 하면 김재규가 가로막았다"

- 영화에서 박 대통령의 사생활 부분을 다룬 것은 문제가 안된다는 얘기인가?

"실제로 있었던 일에 비하면 영화에서 다룬 건 1/10, 1/100도 안돼. 당시 소문이 거의 공공연한 사실이었어. 그런 행동을 한 것만으로도 박정희는 대통령으로서 당당한 사람이 아니었어. 일정한 선을 넘었던 거야. 혼자 살면서 예전의 로맨틱한 관계 때문에 여자를 만났거나 결혼을 목적으로 여자를 만난 게 아니라 박정희는 연예인들을 아주 밝혔어. 결국 권력을 업고 인간들을 성적으로 정복한 거야. 일국의 대통령으로서... 이건 말도 안되지."

- 김재규 등의 변호인단 접견기록에 박정희를 접대한 연예인들의 이름이 남아있나.

"그건 기록으로 남기지 않고 우리끼리 은밀하게 얘기로 나눴다. 하지만 좀 심하게 얘기해서 당시 현역 연예인들 거의 대다수가 걸려들었지. 안 한 사람이 거의 없는데, 묘하게도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여자연예인들이 자기만 박정희를 만난 것으로 알고 있더라."

- 박정희의 여자관계를 부각시키는 게 당시 변론전략 아니었나.

"처음에는 그렇게 작정했었는데, 주변에서 '뭐 그런 것까지 다루냐'고 말렸다. 박선호 중앙정보부 의전과장이 법정에서 그 얘기를 하려고 하면 김재규가 가로막기도 했고, 대통령을 상대한 여자들이 연예계의 일류스타들을 망라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런 게 다 밝혀지면 그들의 일생에 심대한 영향을 줄 수 있었지."

-http://play.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235304&ar_seq=

 

김재규는 박정희의 여자 문제를 덮어 주려고 애썼다. 그래서 졸시에서 <그래도 김재규가 인간미가 있어서 / 밖으로 나온 채로 죽은 박정희 거시기를 / 바지 속으로 넣어주었다지>라고 썼다.


그렇더라도 이를 사실이라고 볼 수는 없는 거 아니냐고. 문학이란 상상의 산물이고 실제로 있었던 역사적 사건에 구체적 상황을 설정하여 묘사하면 사실성을 강화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졸시를 읽은 독자들이 역겨움을 느꼈다면 나의 의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이런 생각을 어떻게 하였느냐고. 거듭 밝히지만 나는 상상력이 부족한 시인이다. 젊은 시절 읽었던 소설이 떠올랐다.

소설가 유주현은 《임경업전(?)》을 신문에 연재하였다. 청나라 장수 용골대가 인조를 심문할 때를 묘사한 내용을 지금도 나는 잊지 못한다. 용골대는 인조나 조선 대신들과 환담을 나눌  때에 갑옷 아래에 조선 여자를 넣어 두고 자신의 성기를 빨게 하였다. 이는 인조와 대신들을 모욕하는 야만적 행위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용골대는 예의 바른 장수였을 것이다. 그러나 유주현은 그런 상황을 설정하여 독자들에게 청에 대한 적개심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려고 한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만주족을 멸시한다. 박정희는 만주군관학교에서 1등을 하였다고 한다. 만주 군관학교 졸업생들은 일본의 지휘 아래 우리나라 독립군을 소탕하는 것이 중요 임무 중의 하나였다. 그러므로 그를 용골대보다 더 더럽고 무도한 인간으로 묘사한 것이다.


좋다. 그렇더라도 박대표의 피습 사건을 묘사한 당신의 시는 너무 잔인한 것 아니냐. 당신이 인간이냐. 연약한 여인의 뺨이 찢어졌는데 어떻게 이런 식으로 묘사하는가.

우하하 우하하하 우하하하

통콰이 하도다

@지가 손에 달렸다는 박가 딸년이 칼에 찢어졌단다

이럴 때는 내 어릴 때 쓰던 경상도 말로 해야지

오방시디다 꼬방시디다

아무리 그렇다기로소니

@지를 아무데나 내미나 이년아

그거 내놓는 재미에만 몰두하는 박가 년이라

여기서도 벌려서 조여 주고

저기서도 벌려주고 조여 댄다지

이년에게는 남녀노소가 없다네

단지 무식하고 지조 없는 년놈들만 맛을 안다네

쓰다듬고 조여 주는 맛을 안다지


민생 민생 민생

무식하고 지조 없는 년놈들은

박가 년이 만져주고 조여주면 살아난다지

민생 법안이 널려 있어도

국회에 앉아 있으면 하품만 하는 년이지

아니지 국회 출석율 꼴찌이지


우하하

우하하하

우하하하하

통콰이 하도다

박가년 거시기가 찢어졌단다 - 졸시 끝 부분


맞는 말이네요. 여인에게 얼굴은 제 2의 생명인데 카트 칼이지만 피습을 당했으니 저도 무척 마음 아프게 생각합니다. 더구나 그녀의 생각이 옳든 그르든 부모님의 원수를 갚겠다고 연약한 여성의 몸으로 고군분투하는 거 송 아무개 시인도 잘 압니다. 졸견으로는 박대표가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애처로운 생각이 들 때도 있어요.

가증스러운 놈 애처롭다면서 그런 시를 써. 이 개자식아.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용원·도예종·서도원·송상진·여정남·우홍선·이수병·하재완 등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고, 재판이 종료된지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해 '사법 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습니다. 31년 전의 일이지요. 그 분들은 죽었어요. 박대표는 카트칼로 상처를 조금 입었어요. 더구나 당신들은 선거에 잘도 이용해 먹더군요. 자 그분 들 중 한 분인 우홍선 의사의 부인은 박정희가 죽을 때까지 박정희기사가 신문에 나오면 살인마 박정희라면서 씹어서 삼켰다더군요. 카트 칼에 상처가 난 박대표의 아픔이 큰가요, 인혁당 사건으로 억울하게 처형당한 의사(義士)들과 가족들의 한이 더 깊은가요. 아래 오마이 뉴스를 봅시다.

http://www.ohmynews.com/articleview/article_view.asp?at_code=317883

"박정희가 죽기 전까지 5년 동안 박정희에 대한 신문기사는 모두 씹어서 뱉었다. 살인마 박정희를…."

31년 전 인민혁명당 재건위원회(인혁당 재건위) 사건으로 사형에 처해졌던 고 우홍선씨 부인 강순희(74)씨는 끝내 말을 잇지 못했다.

20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3부(재판장 문용선 부장판사)의 심리로 열린 인혁당 재건위 사건 재심 첫 공판이 끝난 뒤 강씨는 떨리는 가슴을 움켜쥐고 간신히 재판장을 빠져 나왔다.

"오늘 한 얘기는 30년 전에도 다 한 것"

이날 재판에는 강씨를 비롯해 재심 청구인 5명이 이미 숨진 피고인들을 대신해 출석했다. 문 판사는 이들에게 "할 말이 있으면 하라"며 여러 차례 발언을 권했다. 하지만 이들은 "특별히 하고싶은 말은 없다"며 가슴에 멍울져있는 31년간의 한을 쏟아내지 못했다.

재판이 끝나고, 숨죽여 있던 이들의 말문도 트이기 시작했다. 재심 첫 공판에 대한 소감을 묻는 질문에 강씨는 "떨리고, 숨차고, 예전 생각이 나서 고통스럽다"고 말했다.

"오늘 변호사들이 했던 얘기들은 그 당시에도 (법정에서) 다 했던 말이에요. '간첩'이라는 말도 재판 과정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다 조작해서 나온 것이고…."

강씨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진실을 다 밝히지도 못하고 죽었다면 억울하기는 하겠지만 악법도 법이라고 생각하겠지. 그런데 그 때 이미 다 밝혔잖아요. 다 밝혔는데도 죽였으니 더 억울하지. 이게 사람사는 세상이냐구요." 

1975년 4월 8일 대법원은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용원·도예종·서도원·송상진·여정남·우홍선·이수병·하재완 등 관련자 8명에 대해 사형을 확정했고, 재판이 종료된지 18시간 만에 사형을 집행해 '사법 살인'이라는 비난을 받았다.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되던 순간 강씨는 "대법원장님!"을 외치며 뒤로 쓰러졌고, 판사들은 도망치듯 재판정을 빠져 나갔다고 한다. 강씨는 "인혁당 사건은 조작이고, 박정희는 살인마"라고 외치며 법원에서 명동성당까지 "미친 여자처럼" 걸었다고 한다. 그는 그렇게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증오를 씹으며 지독한 유신시절을 버텨냈다.

"법대로 철저히 했다고? 박근혜, 그 사람 TV 토론회에서 그러던데, 뭐가 법대로 한 겁니까. 그 얼굴 좀 TV에서 안 보게 해 줄 수 없어요?"

고 도예종씨의 부인 신동숙(76)씨도 재판장에서 나오자마자 큰 한숨부터 내뱉었다. 신씨는 "워낙 우리가 당해왔던 것들이라…, 그래도 이렇게 바르게 가는 것에 대해 감사하다"며 한 일 없는 기자에게 연신 고개를 숙인다.

"앞으로 잘 되리라고 믿어요. 돌아가신 양반이 올바른 길을 걸었으니 바르게 가지 않겠어요. (그 분은) 조국과 민족, 통일을 위해서 일한 것 밖에 없는데 그렇게 몰살을 시켰으니…, (당시 재판부는) 권력의 시녀였잖아요, 시키는 대로 했던…. 자기들도 지금은 후회하고 있지 않겠어요?"

그 새끼들은 빨갱이라서 죽은 거야.

그래서 내가 니들은 개상도의 개떼라고 하는 거요. 개는 주인이 도둑질을 해도 강도질을 해도 졸랑졸랑 따라다니면서 충성을 다하지.

개상도, 개떼, 박대표가 집권하면 넌 죽었어 각오해 임마. 너 전라도 놈이지.

개자석아, 뭐 전라도?! 너 이 아무개라는 소설가 닮았구나. 잘난 거 하나도 없는 개상도 놈들이 지들 못난 거 보상 받으려고 애꿎은 전라도 사람 들먹이는 거 나도 잘 알지, 나는 경북 경산군 출신이야. 300여 년간 조상들이 터를 잡고 살았어. 개상도 자석들이 전라도 욕하는 거 임마, 《감각의 제국》에서 지들끼리 쳐 박혀 그 짓만 하다 죽는 거랑 똑 같지. 그 여배우처럼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서 성기를 잘라 들고 다니라. 개상도의 성기를 잘라 들고 다니면서 성기를 잘라서 들고 다니지 않는 사람들은 빨갱이라고 소리지면서 다니라. 니들끼리 빨갱이 없는 나라 개상도 천국을 만들라. 천황폐하 섬기던 박정희 교주 앞에서 오체투지를 하거라. 그러다가 맘에 안 들면 빨갱이라며 성기를 잘라 들고 다니라.

이건 경고야. 하여간 박대표는 악수만 하였어, 조여준다는 표현은 여성 모독이잖아 임마.

이 봐요. 남자 성기 @알도 나오잖아요. 여성의 성기 호칭으로 여성을 비하하는 점은 고려하여 남자의 성기도 지칭했어요. 그래서 박정희 거시기가 나온 거야. 더 리얼한 상황 묘사를 한 거야. 박대표의 악수 조용히 생각해 봐요. 히틀러는 대중 앞에서 연설을 할 때 오르가즘에 젖는 황홀한 표정을 짓는다고 해요. 대중 정치인들은 누구나 다 그렇다죠. 다중들과 악수하기를 좋아하고 다중들의 연호에 황홀한 표정을 짓기 때문에 @지가 손에 달렸다고 풍자한 거요. 실제로 박 대표는 야당의원 다수가 반대하는 데에도 장외 투쟁하다가 지지율이 떨어진 적이 있잖아요. 정치를 하자는 것이 아니라 대중들과 악수하는 기회 만들기 위해서 꾀를 쓰는 것 같잖아요. 더구나 악수를 할 때 손을 벌리고 손을 오므리잖아요. 그래서 <여기서도 벌려서 조여 주고 저기서도 벌려주고 조여 댄다지>는 표현을 한 거요. 이미 말했지만 독자들을 역겹게 하는 것이 졸시의 목적이라고 했잖아요.

개자식아 <무식하고 지조 없는 년놈들은 / 박가 년이 만져주고 조여주면 살아난다지> 이런 표현은 유권자를 모독하는 거야. 조여 주고 살아난다지라는 표현은 포르노야. 개자석아.

이봐요. 박대표가 제일 좋아하는 단어가 민생과 경제에요. 민생(民生)이란 바로 백성이 살아난다는 뜻이죠. 대중들이 좋아서 몰려들어 죽었다 살아난 듯이 희희낙락하잖아요. 그래서 <박가 년이 만져주고 조여주면 살아난다지>라고 한 거에요. 악수한 사람들이 내 시를 읽으면 역겹게 느껴지도록 시를 쓴 거요. 하여간 <무식하고 지조 없는 년놈들은>이란 표현으로 대중들을 얕잡아 본 점은 미안해요.

야 이 조+ㅈ 새끼야, 박대표는 위대한 지도자야. 선거를 할 때마다 이기잖아.

여보세요. 노인들만 하는 보궐선거에서 이긴 거는 나도 알아요. 하지만 위대, 도대체 박대표가 그동안 무엇을 했어요. 민생이나 경제를 들먹일 만한 경제학자인가요, 대기업을 운영하여 수천억 불어치의 물건을 수출한 회장인가요. 요가하다가 갑자기 정치를 한다면서 악수하는 거밖에 더 있나요. 단지 박정희의 딸이라서 주로 무식한 대중들이 몰려들잖아요. 공주라고 하죠. 이 나라는 왕조 시대가 아니에요. 100년 전에 끝났잖아요.

야 이 씨+ㅂ 새끼야, 남자 정치인들은 부패했지만 박대표는 깨끗해, 임마. 더구나 처녀잖아.

정수장학회 회장으로 뭉그적거리면서 한 달에 천만 원의 월급을 받은 적 있죠. 더구나 박정희가 빼앗은 거였죠. 밤낮없이 조여 대길 좋아하는 그 깨끗한 목련의 이미지에 어울리는데요. 박정희는 장관을 뽑으면 장관에게 당시에 3억씩이나 주었다면서요. 임자 깨끗이 하라면서, 그 돈 누구 돈이에요. 당시 3억이면 최고급 아파트 열 채도 더 샀어요. 지금 돈 500억이 넘어요. 차떼기의 원조는 박정희가 아닌가요. 비명에 가지 않고 물러났다면 전두환 노태우보다 더 많은 부정 축재가 폭로되었겠죠. 더구나 박대표는 아버지의 유산을 청산하지 않고 있죠.

청산할 거 뭐 있냐. 임마. 박정희는 깨끗했어. 임마. 거룩한 성군이 조국을 사랑하다 비명에 갔는데. 너 이새끼, 박대표가 대통령이 되면 죽었어, 이 씨+ㅂ 새끼야.

글쎄요. 내가 죽을 수도 있겠네요. 나도 그런 생각이 간간히 들어요. 박대표의 나이가 젊으니 언젠가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죠. 가능성이 높아요. 그 때에는 박대표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죠. 김대중 대통령이 피해자였으므로 정치보복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요. 박대표가 인혁당 사건의 유족들을 찾아가서 무릎을 꿇고 진심으로 사과하는 거요. 역사 발전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거죠. 그들이 소금을 뿌리고 찬 물을 끼얹어도 잘못을 비는 거요. 경상도의 유서 깊은 집안에는 지금도 삼일부복(三日俯伏)을 하죠.

개자석이 문자 쓰네, 삼일부복 그게 뭐냐.

용서받지 못할 일을 저지른 자가 아버지 앞에 3일 동안 꿇어 앉아 있는 거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꼼짝도 않는 거요. 아버지가 용서하지 않으면 밤이 깊어도 혼자서 마당에 무릎 꿇고 있는 거요.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아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 주지만 효자는 받아먹지 않아요. 허나 박정희가 삼일부복을 알겠어요. 경상도 구미의 한미한 촌로의 아들이라고 우겨대니. 그 아버지에게 배운 것이 마누라 때리기죠. 말하다 성질나면 재떨이 날리기였지. 그런 박정희는 높이고, 참고 참으면서 스스로를 낮추는 노무현은 대통령답지 못하다. 그렇게 맨 날 씹어 대지. 개떼가 아니고 쥐떼들인가.

개자석 문자 쓰지 마. 박대표에게는 이미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데 왜 무릎을 꿇냐. 개자석아. 빨갱이를 찾아가라꼬.

아버지가 죽었으니 아버지가 잘못을 빌 수는 없죠. 그러나 그 딸은 아버지를 대신하여 잘못을 빌 수 있죠. 진정한 효녀라면 아버지의 죄업을 씻어 내려야죠. 그래서 인혁당 사건의 유족들을 찾아가라는 거요. 내 말대로 하면 팔의사(八義士)의 집에 가서 한나절씩 엎드려 있어 보았자 4일이면 끝나요. 3일씩 엎드리면 12일이면 족하죠. 이런 무릎 꿇기가 수백만 명과 악수하는 것보다 효과가 클 거요. 그러나 박대표가 지금까지 한 말처럼 말이요, 간첩이 장군을 심판한다는 식의 말을 되풀이 한다면 백년하청이죠. 박대표가 과거를 청산하지도 않았는데 대통령이 된다면 우리나라 꼴이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처럼 후진국이 되는 거죠. 후진국은 아직도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되곤 하죠. 북한 보세요. 김정일이 누구 아들이에요.

너 이 새끼 빨갱이지.

여보세요, 요즘 신문들은 걸핏하면 선동이더군요. 노대통령이 코드 인사를 하느니 편 가르기를 한다고요. 요새는 조중동이 만들어 낸 빨갱이, 좌파, 친북인사가 넘쳐 나지요. 자기들이 편 가르기를 하면서 대통령보고 편 가르기 한다고 말하죠. 조중동을 읽은 탓이겠지요. 귀하를 욕하고 싶지는 않네요. 나는 노사모도 열린 우리당 당원도 아니에요. 단지 졸시를 읽는 순간에 역겨워서 닭살이 돋도록 썼을 뿐이에요.

빨갱이 새끼야 닭살 돋는 것도 시냐.

여보세요, 시는 인간의 정서를 언어로 표현하는 거잖아요. 인간은 기쁨 슬픔, 노여움, 공포 역겨움 등의 감정을 느끼죠. 수많은 감정 중에서 역겨움을 표현할 수도 있잖아요. 그래서 학자들은 미의 범주를 나눌 때 우아미, 비장미, 숭고미, 저속미 등으로 나누죠. 나는 저속미로 시를 썼어요.

저속미? 변명하지마, 넌 임마. 이해인 수녀님처럼 고상한 시를 못 써 임마. 정신이 더러워서 그래, 개 자석아.

맞는 말이지, 나는 이해인 수녀처럼 고상하고 예쁜 시는 못 쓰지. 쓰고 싶지도 않지. 자네는 똑똑하니까 이런 거는 알겠지. 창녀는 교태를 부리고 아부를 하는 인간이라는 거. 이해인 수녀처럼 낯간지러운 말로 말이야.


어줍잖은 시 한 편으로 세상에 누를 끼치게 되었다. 알려지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으나 내 생각과 무관하게 함부로 쓴 시는 아니다.


몇 줄 글로서 나의 소회를 밝히었다. 또한 중선위로부터 고발을 당하여 재판의 피고가 될 가능성도 있다. 수년 전 민사 재판의 피고가 되어 변호사 없이 고군분투한 적이 있다. 만 2년간의 재판이었다. 무죄로 승소하였다. 이번에는 형사재판의 피고가 될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마음의 준비를 하고 대비를 하여 둔다는 뜻에서 글을 쓴다. 무명이지만 나는 시인이다. 역사와 사회를 바라보는 나의 시각과 대응 자세를 가다듬을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중선위의 고발건과 관련하여 덧붙일 수 있다.--------


           2006.7.2 송명호 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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