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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괴물에 대한 평을 보고난 나의 생각

최유나 |2006.08.01 15:58
조회 116 |추천 1

약자들의 연대 보여준 ‘괴물’

 

괴물(怪物)의 사전적 의미.

1. 괴상하게 생긴 물체.

2. 괴상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괴상(怪常)의 의미는 또 이렇다. 보통과 달리 괴이하고 이상함.

보통 정도의 수준이라면 저런 어이없는 작태를 보일 리도 없

다. 한마디로 수준이하다. 수준 이하의 것들을 이제부턴 ‘괴

물’이라 부르자.

 


 

현실사회가 낳은 ‘괴물’


개봉 직후 승승장구, 파죽지세인 봉준호 감독의 영화 에

서 이런 미국을 떠올리기란 어렵지 않다. 반미감정 어쩌구저쩌

구 하는데 일정부분 맞다. 한강변에 나타나는 괴물의 탄생비화

(?)를 다룬 첫 장면. 주한미군으로 추정되는 인물은 한국인에

게 포름알데히드의 무단방류를 지시한다. 그렇다. ‘맥팔렌드 사

건’이 자연스럽게 대입된다. 독극물을 먹고 자란 괴물은 한강

을, 서울을, 한국을 공포로 잠식한다. 미국이 한국사회에 미치

는 영향력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현실사회에 대한 노골적인 메

타포(은유)다.


이와 함께 미국(정확하게는 부시정부)의 괴상스러움은 다른 형

태로도 풍자된다. 괴물의 탄생에 일조한 독극물의 방류에 이어

대중에 공포심을 주입하는 ‘(괴물)바이러스’. 기득권이 자신의

세력과 힘을 유지하기 위한 방편은 알려져 있다시피 간단하다.

공포와 위험을 조장하는 것. 기득권의 개인기다.

 


영화 속에서도 이 같은 기제는 고스란히 작동한다. 있지도 않

은 괴물 바이러스는 미국과 당국에 의해 존재하는 것처럼 규정

된다. ‘에이젼트 옐로우’. 웃기지도 않은 바이러스 퇴치단의 존

재에서 국제 정세의 한 단면이 연상되지 않는가. 그렇다. 이라

크전. 전쟁광 카우보이들의 전쟁 명분은 있지도 않은 대량살상

무기(WMD)와 생화학무기였다. 이미 일을 개차반으로 벌려 놓

고선 ‘잘못된 정보(miss information)’에 의한 것이라고 당당히

말한 카우보이 괴물.

 

기득권(지배자)이 만들어놓은 바이러스 포비아 의 악영향은 세

상을 우울하게 만든다. 사람들 사이에 만드는 간극. 극 중 마스크를 쓴 사람들의 행렬이 이를 대변한다. 기침하는 사람에 대한 따가운 눈총. 이를 통해 문득 AIDS바이러스에 대한 우리의 편견을 떠올린다. 전염에 대한 과도한 공포심을 조장하고 동성애에 대해 폭력을 가하도록 만든 어떤 편견.

이 편견 또한 우리 안의 괴물.

그렇다. 괴물이 미국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에서 ‘괴

물’은 다층적이다. 시작부터 ‘독극물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은 우리가 발 딛고 있는 현실사회를 그렇게 투영한다. 무

고한 시민들에게 공포감을 안겨다주고 생명을 빼앗는 괴물의

존재는 도처에 깔려 있다. 동맹을 무기로 때론 한국민의 삶을

억압하는 미국, 없는 자를 더욱 핍박받도록 시스템을 강권하는

신자유주의, 어이없는 명분으로 전쟁을 도발하는 패권주의, 한

국이라는 땅에서의 비극 혹은 재난 등등.

 

 

 


괴물은 단순히 자연 발생한 돌연변이 개체가 아니다. 비열하고

때론 평범하기 그지없는 악들이 쌓이고 쌓인 퇴적물이다. 그저

‘깊고 넓은’ 한강에 방류하면 독극물이 희석될 것이란 단순치명

적인 발상이 불러온 가공할만한 결과. 그 결과물 앞에 사람살

이는 그저 괴물에게 무기력하게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정부

는, 언론은, 경찰은, 의사는.. 그리고 우리의 이웃들은 과연 무

엇을 해 줄 것인가.

 


현실사회의 메타포


봉준호 감독은 미군으로부터 잉태된 괴물의 활약상(?)을 현실

사회의 여러 모습과 결합시킨다. 괴물로 인한 재난은 그동안

우리네 사람살이를 끔찍하게 만든 인재와 무관하지 않다. 그래

서 영화상의 설정이 낯설지 않다. 제대로 된 근대화를 거치지

못한 채, 비호감을 급호감으로 바꾸고자 노력했던 세월. 정권

과 기득권의 호령에 억지춘향식 끌려 다닌 부작용은 ‘한강의 기

적’이라는 허우대 좋은 조어를 만들어놨지만, 음습한 곳에서 키

운 한강의 괴물은 결국 우리네 사람살이를 위협하는 꼬라지.

 


봉 감독은 이를 위해 한강변에서 매점을 운영하는 한 가족을

등장시킨다. 현서만 완전소중 챙기는 빈둥빈둥 소시민 강두(송

강호)를 비롯, 운동권 출신 대졸실업자 남일(박해일), 늘 타이

밍을 놓쳐 늦되는 남주(배두나), 강두의 현명한 딸 현서(고아

성), 그리고 과거세대의 초상을 대변하는 할아버지 희봉(변희

봉). 잘난 것도, 별달리 대수로울 것도 없고 가끔 사고 치면서

근근이 하루하루 버티는 루저 가족.

 


이들은 우리네 사람살이의 비극을 보여준다. 외부 혹은 내부의

적들에 둘러싸인 눈물나는 분투 혹은 애환. 현서를 찾기 위한

박씨 일가 앞에 우리 내부의 괴물이 떡하니 나타난다. 죽은 줄

알았던 현서에게서 전화가 왔는데, 박씨 일가의 말을 씹는 건

미군도 아니고, 바로 내부에 있었다. 있지도 않은 바이러스에

노출된 위험인물로 낙인을 찍는 것은 물론, 말을 씹는 것도, 우

리를 지켜주는 존재로 알았던 ‘공권력’.

 


 

그들은 위로를 건네지 않는다. 아이를 잃은 슬픔 따윈 안중에

없다. 또 다른 병균의 숙주로 치부해버리곤 감금과 치료의 대

상으로 전락시킨다. 딸을 찾고자 애원하는 강두를 가볍게 정신

병자로 몰아세우는 의사의 정신병적 매몰참은 또 어떻고. 뇌물

요구하는 공무원, 그림에만 몰두하는 언론의 참을 수 없는 가

벼움 등등 우리 안의 괴물은 똬리를 튼 채 언제든 우리네 삶을

그로기로 몰고 갈 태세다. 강두 가족은 그저 누구의 도움도 없

이 고군분투할 도리밖에.

 


뭐 글타고 이런 알레고리를 심오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익숙한 기제들 아닌가. 그저 웃으면서도 서글픈 심정이 밀려듦

을 막을 순 없지만.


혹자는 바이러스에만 골몰하고, 괴물을 잡는데 띄엄띄엄한 정

부나 당국의 처사가 이상하다고도 했지만, 나는 그것 역시 이

땅의 현실을 넌지시 알려주는 상징이 아니었나하는 싶다. 어디

선가 누군가에 무슨 일이 생기면 나타나 구해주기보단 뒷북만

열라 쳐대는. 늑장대응, 수수방관.. 어디서 많이 듣던 말 아닌

가. 봉 감독이 그걸 감안했다면 빙고~, 아님 말구.^^; 혼자만의

해석일 뿐이니 다른 생각이라면 나에게 돌을 던져도 좋다만ㅋ

 


어쨌든 영화의 이미지들은 우리가 겪은 일련의 사건들이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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