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984년 스탠리컵 우승직후 우승컵을 들어올린 웨인 그레츠키. 이는 팀 창단 이후 첫 우승이다. 역대 최고의 스포츠 영웅을 꼽으라면 누가 먼저 생각이 날까? 과거 MLB의 틀을 바꾼 베이브 루스, NBA의 ‘농구황제’ 마이클 조던, 축구스타 펠레와 마라도나, 육상의 칼 루이스 등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이들 외에 또 다른 위대한 영웅이 있었다면 믿을수 있을까.
그가 바로 80-90년대 북미아이스하키리그(NHL)를 호령했던 캐나다 출신의 ‘살아있는 신화’ 웨인 그레츠키다. (Wayne Gretzky)
한국민들은 대부분 그레츠키가 그저 아이스하키 스타로 알고 있지만 NHL에서 뛰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이가 많다. 그만큼 북미에서는 가장 인기있는 스포츠 중 하나인 NHL은 불행히도 우리나라에서는 비인기종목이다. NHL의 주제 ‘The Coolest Game on Earth’ (세계에서 가장 멋진 경기)가 말해주듯 그레츠키는 가장 멋진 스포츠를 최고로 소화해낸 신화적인 영웅이다.
몇년전 미국의 명 스포츠케이블 방송사인 ESPN에서 재미있는 설문조사를 발표했는데 이 설문내용은 조던과 그레츠키 중 누가 각각의 종목에서 더 큰 영향을 미쳤는가를 묻는 질문이었다. 하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조던을 선택했겠지만, 농구의 본구장의 미국민들조차 그레츠키를 선택했다. CNN의 경우에서도 그레츠키가 76%의 지지를 얻어 24%에 그친 조던을 압도적으로 제압하며 ESPN과 비슷한 결과를 보여줬다. 이러한 설문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북미 4대 스포츠를 통틀어서 한 분야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보인 영웅 중 한명이 그레츠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든다. 그 예로 조던이 5번, '야구의 신' 배리 본즈가 7번을 수상한 정규리그 MVP를 그레츠키는 무려 9번을 수상했을 정도로 NHL에서 그의 영향력은 엄청났으며 게임의 대한 지배력 또한 대단했다.
그레츠키는 하키뿐만 아니라 북미 4대 스포츠에서 가장 위대한 업적을 남긴 선수 중에 하나다. 야구팬들이 루스나 사이영의 기록을 보면서 야구의 역사를 논하고, 농구팬들이 조던과 매직존슨을 보면서 열광했듯이, 하키팬들에게 있어서 그레츠키는 이러한 존재다.
그레츠키는 하키를 넘어 캐나다에서 상징적인 존재다. 80년대 후반 그의 결혼식은 전국으로 생중계가 되었으며, 99년 그가 은퇴를 선언했을 때는 총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은퇴를 만류했을 정도로 캐나다에서 그의 존재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 그 이상이다. 또 지난해 캐나다공영방송국인 CBC설문조사에 따르면 '위대한 캐나다인 10명'에 그레츠키가 선발됐다. 이처럼 캐나다에서의 그레츠키는 하키스타 이상의 존재이며, 그들의 자랑거리이자 영웅이다.
"천재, 태어나다."
1961년 1월 26일 캐나다 온타리오주에서 태어난 그레츠키는 하키선수 출신이었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렸을 때부터 하키와 매우 친숙했다. 하키재능이 남달랐던 그레츠키는 6살 때부터 자신보다 4살이나 많은 아이들과 하키를 즐겼으며, 10살 때는 처음으로 유소년 리그에 참가해 '85경기에서 378골'을 성공시키며 TV까지 소개가 된 바 있다. 또 14살때부터는 20살이 넘는 선수들과 경기를 펼치는 등 어렸을 때부터 천재다운 모습을 보였다. 고등학생이 된 그레츠키는 1년 간 주니어 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온타리오 하키리그 소속팀인 'Sault Ste. Marie Greyhounds'팀에 합류, 이때부터 그레츠키는 그 유명한 등번호 ‘99번’을 달기 시작했다. 1978년에는 'WHA'에 속해있던 '인디애나폴리스 레이서스'와 계약을 맺는데, 시즌 도중 이 팀이 당시 NHL 에드몬턴 오일러스의 구단주에게 매각되면서, 에드먼튼과 첫 인연을 맺었다.
꿈의 무대, NHL 에서의 "위대한 시작"
그레츠키는 1979년 10월 10일, ‘꿈의 무대’ NHL에서 시카고 블랙호크스를 상대로 화려한 데뷔를 했다. 첫 시즌이었던 1979-1980’ 18살의 신인 그레츠키는 무려 51골 86도움, 137포인트를 터뜨리는 괴력을 과시했다. 하지만 뛰어난 활약에도 불구하고 전년도에 WHA에서 뛰었다는 이유로 신인왕 후보에서 제외됐다. 이듬해 그는 생애 첫 하트메모리얼 트로피(시즌MVP)와 가장 스포츠맨쉽을 발휘한 스타에게 돌아가는 래이디빙 트로프을 수상했다. 1983년 그레츠키는 동료 마크 메시에, 글랜 앤더슨, 여리 커리, 폴 커피 등 명선수들과 함께 에드몬턴을 이끌며, 당시 최강이었던 아일랜더스와 스탠리컵에서 격돌했지만 아쉽게 패했다. 하지만 이듬해, 1년만에 스탠리컵 결승전 패배를 바로 설욕, 80년대 초반 막강 아일랜더스를 무너트리고 팀 창단 첫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하며 그들의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레츠키가 이끈 에드몬턴은 총 4차례 스탠리컵 우승을 차지했다(84,85,87,88). 데뷔 첫해 137포인트를 터뜨린 이후 그는 81년에 164, 82년 212, 83년 196 등 믿기지 못할 기록들을 작성했고 86년, 80경기에 출전해 작성한 자신의 최다 215포인트는 현재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아무도 깨지 못할 신화적인 기록으로 남아있다. 그의 별명 ‘위대한 자’(The Great One)은 바로 이 이유로 지어진 것이다.
"하키불모지에 하키를 심다."
81년부터 87년까지 MVP를 독식했던 그레츠키는 88년 8월, NHL 시 즌개막을 몇 달 앞두고 북미 스포츠 역대사상 가장 큰 트레이드에 가담돼 이적했다. 에드먼튼은 공격수 그레츠키와마이크 크런쉬린스키, 터프가이 마티 맥솔리를 LA 킹스에 내주는 대신에 공격수 지미 카슨, 마틴 젤라나 와 89,91,93년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권과 1500만달러 현금을 받는 조건으로 트레이드에 합의했다.(에드몬턴은 이 트레이드의 성 공으로 90년 우승을 탈환했다) 당시 이 소식이 언론을 통해서 알려 지면서, 에드먼튼 팬들은 물론, 캐나다 국민들까지 분개하며, 에드 먼튼 구단주를 원망했다. 또 캐나다의 한 국회의원은 이 트레이드를 막기 위해서 정부에 진정서까지 제출했지만 결국 그레츠키는 LA로 이적됐다. 한편 그레츠키의 이적은 하키인기가 떨어지는 미 캘리포니아지역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동안 다저스나 레이커스에 비해서 인기가 크게 떨어졌던 킹스는 그레츠키의 영입 이후 관중이 크게 늘었다. 그레츠 키가 출전하는 경기는 항상 매진됐고, 하키와 거리가 멀었던 캘리포 니아 지역에는 하키열풍이 불어닥쳤다. 당시 그레츠키의 LA이적은 향후 이 지역에 하키 팀이 연달아 창단(산호세, 애너하임) 되는데 촉매제 역할을 크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현재 NHL에는 총 6 캐나다 팀들과 24 미국팀들이 있다.
"그레츠키, 아이스를 떠나다."
1993년 스탠리컵 결승진출을 끝으로 내리막길을 걸은 킹스는 그레 츠키의 분전 속에서도 장기 침체에 빠졌다. 같은 시기에 피츠버그 펭귄스의 ‘빙판의 황제’ 마리오 르뮤가 당시 그 이름을 떨쳤고, 인내 심의 한계를 느낀 그레츠키는 킹스에 트레이드를 요구, 1996년 2월, 세인트루이스로 이적했다. 하지만 팀플레이가 맘에 들지 않았던 그레츠키는 이해 여름 오프시 즌에서 자유계약선수 자격으로 뉴욕 레인저스와 계약했다. 1996년 레인저스를 이적한 그는 3년 간 뉴욕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아이로 니게도 등번호 ‘99번’ 그레츠키는 ‘1999’시즌을 마지막으로 빙판을 영원히 떠났다. 1999년 4월 16일과 18일, 캐나다와 미국에서 두 차 례나 은퇴경기를 가진 그레츠키는 그를 따랐던 수많은 하키 팬들을 뒤로하고 영원히 유니폼을 벗었다. 그는 선수생활 20년 동안 하키의 기록을 다시 썼으며, 하키라는 경기의 정의를 새로이 내렸다. 그가 남긴 총 61개의 '불멸의 대기록’들은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고 NHL역사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그레츠키가 남긴 불멸의 대기록들을 살펴보면 정규시즌 40개, 플레이오프 15개, 올스타전 6개의 기록들이 있다. 이 기록들 모두 2006년인 현재까지 아무도 깨지 못했다. 우선 단일 시즌에 세운 기록들을 살펴보면 82년 작성한 최다골(92)을 포함해 도움(163), 포인트(215), 50경기 50골 최단경기(39경기)만에 성공 등이 있다.
그레츠키의 정규시즌 통산기록을 보면 통산 1487경기에 출전, 894골 1963도움, 2857포인트라는 어마어마한 기록을 보유 중인데 이 모두 NHL 역대 최다 골, 도움, 포인트다.
하트메모리얼(MVP) 트로프 상 부문 역시 최다로 총 9회며 이중 8번은 1980년부터 87년까지 연속 수상했다. (북미 4대 스포츠 최다수상: MLB:배리본즈-7회, NBA:압둘자바-6회) 이외에도 포인트왕 10회(이중 7회 1981년부터 87년까지 연속) 모범선수상 5회, NHLPA선정 올해의 선수상 5회,한 시즌 50골을 올린 최연소선수 데뷔첫 해, 1경기 8포인트(어시스트7개)기록, NHL역사상 유일하게 한 시즌에 200포인트 돌파(무려 4차례) 등이 있다. 플레이오프도 예외가 아니다. 플레이오프 통산기록 최다골(122), 어시스트(260), 포인트(382)를 비롯, 해트트릭 10번, 결승골 24개, 플레이오프 MVP 2회, 올스타 MVP 3회(최다 수상타이)등이 있다.
1999년 11월 22일, NHL 역사상 최초로 그레츠키는 3년 간의 유예기간을 거치지 않고 특별대우로 NHL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또 달고 뛰었던 등번호 99번은 NHL의 모든 팀에서 영구결번이 됐다. 이 또한 그레츠키가 처음이다. 그리고 1999년에는 ESPN이 선정하는 '20세기 최고의 스포츠맨'에 조던, 루스, 알리 등과 함께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빙판 위에서나 밖에서나 모범적인 생활을 보여온 그레츠키 덕분에 NHL은 스포츠계에서 주요한 세력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현재 피닉스 코요테의 팀 단장이자 감독으로 지내고 있는 그는 지난 2002년 미국 솔트레이크 동계올림픽에서 캐나다 국가대표팀의 단장으로 역임한 바 있다. 그레츠키 단장이 이끌었던 캐나다는 남자부 아이스하키 결승경기에서 라이벌 미국을 꺾고 50년만에 금메달을 탈환하는 감격을 누렸다. 또한 여자 아이스하키 역시 금메달을 따내는 쾌거를 이룩했다.
전성기 시절 한 스포츠 기자가 그에게 물었다. “훌륭한 선수가 된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퍽이 있는 곳으로 달려갑니다. 하지만 저는 바로 다음 순간 퍽이 튈 곳으로 갑니다.”
미리 예측해 곧 퍽이 위치할 곳으로 가는 이런 간발의 차이가 그를 최고의 하키 선수로 만들었던 것이다.
김형일 NHL 객원기자 (스포츠서울; 스포홀릭 취재부 종합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