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단순하면서 오묘한……
광고는 논리의 산물입니다.
광고기획 회의에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모든 것이 다 논리입니다.
이론과 전략과 통계와 분석과 사례와……
논리와 합리와 이성과 귀납과 연역의 회색빛으로
머리가 기계처럼 돌아가는 느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저 치열한 논리 위에 어떤 광고가 만들어질까
걱정이 될 정도입니다.
회의를 마치고 크리에이터가 논리의 머리로
자신의 데스크로 돌아오면 정말 위험합니다.
스스로 논리의 경계선을 마음속에 긋고
꼼짝도 못하게 될 테니까요.
그래서 일방적으로 외치고 입증하고
비교하고 위협하고 잔소리하고 열등감 느끼게 하고
그러다 결국은 잘생긴 연예인에 모든 걸 거는
광고가 많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아이디어 짱짱하기로 유명한 한 카피라이터가
왜 있지도 않는 경계선을 스스로 긋느냐고
크리에이터들에게 따지듯이 물었던 것도 다 그 때문이겠지요.
크리에이터는 광고?마케팅의 이론과 전략과 통계와 분석과 사례를
이해하고 숙지할 필요는 있지만
그렇다고 그 안에 갇혀 있어서는 곤란합니다.
논리의 경계를 벗어나 드넓은 크리에이티브의 벌판으로
나와야합니다.
논리란 나침반 정도가 되겠지요.
크리에이터가 벌판에서 찾아야 할 첫 번째 대상은
고슴도치입니다.
고슴도치는 참 단순하고 오묘한 녀석입니다.
생존하기 위해서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리지도 않고
발톱을 세우지도 않고 헷갈리게 춤을 추지도 않고
보호색으로 숨지도 않고 도망가지도 않습니다.
그냥 몸을 웅크립니다.
몸을 웅크리면 밤송이처럼 됩니다.
그렇게 한번 웅크리면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사자도 호랑이도 늑대도 여우도 함부로 공격했다가는
가시에 찔려 자칫 목숨까지 위협을 받을 수 있으니
마주치면 일단 피하는 게 상책이죠.
크리에이터가 광고를 창작할 때-특히 인쇄광고를 만들 때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고슴도치입니다.
고슴도치란 결국 단순화입니다.
이론과 전략과 통계와 분석과 사례도,
어떤 논리도 극단적으로 단순하게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광고는 단순한 게 좋습니다.
광고가 소음의 차원을 넘어 성가신 비즈니스가 되는
이 시대에는
복잡하게 말하고 보여주는 것보다
한눈에 딱 들어오게 단순하게 만드는 것이 더 효과적입니다.
그러면 단순하기만 하면 될까요?
또 다시 고슴도치가 그 답을 말합니다.
고슴도치는 단순하되 오묘하니까 말이죠.
고슴도치를 다시 보지요.
웅크리고 있으면 가시가 곤두선 밤송이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뭔가 아래에서 꼼지락거리는 것이 있습니다.
발가락입니다.
발도 있고 머리도 있고 꼬리도 있습니다.
몸을 펴면 멀쩡하게 네 발 달린 동물이 됩니다.
곤두세웠던 가시도 얌전히 수그러듭니다.
단순한가 생각했더니 오묘합니다.
징그러울 정도로 오묘합니다.
어느 동물이 고슴도치만큼 오묘할 수 있을까요?
광고는 단순하되 의외이든가
비범하든가 절묘하든가 신기하든가……
하여튼 오묘해야 합니다.
4월 어느 날,
일방적으로 외치고 입증하고 비교하고 위협하고 잔소리하고
열등감 느끼게 하고 잘 생긴 연예인만 보이던 신문광고에서,
너무나 단순해서 시원한 광고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누구나, 인쇄광고 보는 행태가 그렇듯이
잠깐 보고 넘기려했는데 한 번 더 보게 되더군요.
그것은 ‘짜릿한 즐거움’이라는 카피의 자전거 광고였고,
거의 광고를 하지 않던 삼천리자전거 광고였습니다.
대부분이 삼천리 자전거를 갖고 있는 것처럼 저도
삼천리 자전거를 갖고 있는 평범한 사람이라 그런지 기분이 시원해지는 것이 좋았습니다. 주말에 짬을 내서 자전거를 타고 강변을 달려야지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삼천리자전거는 회사이름도 되고
제품이름도 되는 참 정겨운 브랜드입니다.
노년부터 중장년, 젊은이, 유소년까지
삼천리는 아주 친근한 브랜드입니다.
한국사람 대부분 어릴 때부터 늙을 때까지 함께 하는
몇 안 되는 인생동반 브랜드입니다.
이른바 브랜드 로열티가 대단히 높은 회사이자 제품이라
최초 상기도도 높고 자발적 인지도도 매우 높습니다.
굳이 광고를 하지 않아도 알아서 팔리고
오히려 광고를 많이 하지 않아서 신뢰가 가는 브랜드입니다.
그런 삼천리자전거가 참으로 오래간만에 광고를 했습니다.
자전거의 다양한 니즈를 의식하고 새로운 경쟁 환경에 대비해서
광고를 시작한 것이겠지요.
처음 본 삼천리자전거는 단순한 크리에이티브이면서
한 번 더 보게 하는 오묘한 힘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바로 고슴도치였기 때문이지요.
카피는 고슴도치답게 ‘짜릿한 즐거움’딱 한 줄입니다.
구구절절 할 말도 많을 텐데 딱 한 마디만 했습니다.
카피와 함께 하늘을 달리는 자전거 바퀴와 안장만 보입니다.
단순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고슴도치의 발가락이 보이는 것처럼
스카이다이빙을 하는 사람들이 보입니다.
스카이다이버들이 모여서 자전거의 두 바퀴 모양을 만들었군요.
단순하되 오묘한 크리에이티브입니다.
곧 시리즈 광고로 이어지겠구나 생각했는데
맞더군요.
2탄은 ‘바람 타는 즐거움’이라는
역시 딱 한 줄의 카피에 보이는
그림이라고는 두 바퀴와 안장이 전부 다입니다.
단순합니다.
동시에 바퀴가 바람을 타고 날리기 시작한
민들레 꽃씨라는 것을 알게 되지요.
민들레 꽃씨로 바퀴를 표현하다니……
참 오묘한 크리에이티브의 발상이군요.
3탄은 어느 정도 눈에 보입니다.
사과나 레몬이나 수박이 아닐까 하고 예상했는데,
기다렸던 신문광고를 보니 레몬이었습니다. ‘
상쾌한 즐거움’이라는 딱 한 줄의 카피에
두 바퀴를 반 가른 레몬으로 표현했습니다.
단순하면서 오묘함이 시원하게 마음속을 달리면서
삼천리라는 브랜드에 충성을 다하고 싶어집니다.
이렇게 한다면
고슴도치 캠페인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은근히 더 지속되길 기대했습니다.
아쉽게도 세 번에서 멈춰버렸군요.
- 프리랜스 카피라이터 탁정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