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찬들 보세요
교회찬양사역 그 전문성의 한계
모여야 한다. 찬양사역 하는 사람들은 모여야 한다.
그런데 찬양사역자들이 교회에서 잘 모이는가? 나는 회의적이다.
자세히는 몰라도 거의 모든 교회들이 성가대가 아닌 전문 찬양단 모임이
잘이뤄지지 않고 있다.
생각해 보라. 연합하여 하는 사역은 찬양사역이 유일하다 시피하다.
설교는 목회자 혼자서 하기때문에 연합이나 영적 협동이 필요없다.
물론 선교나 전도를 나가는 것도 연합사역이라고 할수도 있다.
봉사를 가는 것도 연합사역이라고 할수도 있다.
그러나 찬양사역만큼 조직적으로 유기적으로 잘 짜여서 훈련해야만
연합사역이 되는 사역도 없는 것 같다.
봉사 사역은 그저 개개인이 잘하면 , 열심히 하면 봉사가 된다.
무리로 간다고 연합사역은 아니다.
봉사는 무리로 가는 단체사역이라고 해야지 연합사역이라고 하기에는
팀사역이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선교도 마찮가지이다. 선교나 전도를 나가면 보통 두명이 한팀으로 전도한다.
그러나 그것도 함께 가는 것뿐이지 결국 전도는 대표적으로 한명이 하고
다른 한명은 돕는 차원이다.
그러나 찬양사역은 전적으로 똑같이 연합하여 호흡을 맞추지 않으면 안되는
고도의 연합기술이 필요하다. 그러기에 찬양팀처럼 서로가 상대를 마음을
잘 알고 헤아릴줄 알며 서로 사랑으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팀은 별로 없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팀사역 연합사역을 기뻐하신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근본적으로 개인으로 부르시기 보다는 연합체인 교회로
개개인을 부르시기때문이다.
마지막날 재림하시는 주님이 찾는 신부도 교회라는 회중이지 개인이 아니다
그만큼 하나님은 교회라는 회중을 기쁘게 여기신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혼자있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신다. 독처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으신다. 그래서 하나님은 사람도 만드셨고 남자에게는
여자를 만들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은 지구촌에 산 바다 동물 식물등등 다채롭게 조화를 이루는 것을
기뻐하신다.
찬양단은 그리고 연합사역이기도 하지만 또한 직접 회중을 대면하여 교회사역을
직접적으로 돕는 유일한 팀이다.
그러한 사역은 교역자가 한다. 교역자는 회중과 직접적으로 마주치면서 사역하는
영적인 최전방에 있는 대표이다. 찬양단은 그와같이 교역자가 아니면서도
직접적으로 회중의 영적 성장에 영향을 끼치는 유일한 사역팀인 것이다.
그러면서도 목회자 처럼 단독사역이 아닌 연합사역을 해야하다는 면에서
전문성이 필요하고 더욱 어렵다면 어려울수 있는 사역인 것이다.
찬양사역은 그래서 영적으로 최전방에 서있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찬양사역이 무너지면 교회의 전체적인 사역이 힘을 잃는 경우가 많고
찬양사역이 살아야 모든 사역이 힘을 얻는다.
봉사팀은 팀은 직접적으로 회중을 만나는 것은 아니다 교회봉사팀도
회중의 영적인 면을 돕는 것보다 외적인 것을 돕는다.
일반 대외적인 봉사팀은 교회를 떠나서 사역하게된다.
선교팀도 마찮가지 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정황을 볼때 찬양사역팀이 얼마나 전문성을 요구하는지
알수 있다 . 그럼에도 오늘날 찬양사역은 봉사차원을 넘지 못하는 것이
문제이다.
교역자의 사역은 전문성이 없으면 문제시 하면서도 왜 우리는 찬양사역은
봉사차원에서 사례비 없이 무보수로 수고할 것을 원하는가?
소가 먹지도 못하고 일을 해서야 하겠는가?
찬양사역은 기타 여러사역보다 더욱 힘과 시간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교회에서 지원을 하지 않기때문에 회중에게 큰 영향을 끼칠수
있는 찬양사역임에도 수준을 끌어올리지 못하고 세상 문화 세상 노래에도
뒤쳐지는 것이다.
오늘날 보라. 기독교 음악이 세상 음악에 얼마나 뒤쳐져있는가를.
그나마 조금 나아졌다고 하지만 그것은 나아졌다기 보다는 그만큼 전체적으로
음악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일 뿐이다.
오늘날 음악 영화 연극 어느분야에서 기독교가 세상을 선도하고 있는가?
교회안에서 그만큼 이러한 문화예술 사역을 말씀 사역에 비하여 못하게
생각하기에 발전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보니 찬양에 은사가 있는 전문사역자들이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물질문제때문에 어쩔수 없이 사역을 포기하거나 전문적으로 음악 사역만을
공부하지못하고 목회사역을 병행하는 것이다.
목회분야과 찬양사역 분야는 그 깊이가 크고 넓은 것이기에 한쪽에 매진
해야만 되는데 찬양사역을 하는 사역자는 덤으로 반드시 목회를 해야만이
생계를 꾸려갈수 있는 오늘날의 교회구조가 이세상의 사회구조의 문제처럼
깊은 문제를 안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전문적은 사역자들은 교회내에서는 사역을 전문적으로 할수없기때문에
자신이 출석하는 교회에서는 오히려 봉사찬양사역자들이 찬양을 인도하고
찬양사역 앨범을 어떻게 해서든 발매하려 하고 아니면 찬양 선교단을 만들어서
전국 교회를 속된 말로 떠돌아 다녀야 하는 악순환이 이어진다.
왜 교회마다 준전문 찬양단이 있다면 찬양선교단이 전국을 다니면서 집회를 해야
하는가? 교회마다 봉사차원으로 찬양팀을 둘지언정 수준있는 준전문 찬양사역팀은
사례비책정때문인지 몰라도 두기 싫어하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이다.
찬양선교단은 안정적으로 고정적인 한 교회에서 준사역팀으로 사역할때 전문성이
늘어나고 발전적으로 교회사역에 도움을 줄수 있는 것이다. 회중과 교감도
일어나고 찬양팀도 고정적인 교회사역을 할때 안정적이고 멤버간의 화합과
사랑도 잘이뤄질수있는 것이고 준전문이어야만 시간의 구애나 경제적인 어려움등의
문제를 극복할수 잇는 것이다. 봉사찬양팀에서 이뤄지는 헌신의 정도는 아무리
충성된다 해도 한계가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를 극복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과연 교회가 전문 찬양사역을
인정해 주길 바라고만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그러한 문제점을 느끼는 우리가 나아가야 한다. 찬양의 은사가 있는
사람들이 좀 힘들겠지만 헌신하여 먼저 모임을 갖고 교회에 전문사역의
힘을 보여주어야 한다.
비록 처음에는 사례도 없고 시간도 없어서 힘들지만 헌신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만이 교회도 전문찬양단의 필요성을 느끼고 지원도 해줄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누군가는 먼저 희생을 해야 한다. 먼저 사역을 위하여 시간을 희생할 것인지
아니면 교회가 처음부터 먼저 인정해 주길 바랄것인지 생각해 보라.
나로써는 먼저 희생하는 것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교회에서 이러한 사역의 자리를 만들어 줄것을 희망걸지 말고
우리가 이러한 사역을 해야 한다.
교회가 아니라도 함께 선교단을 일반 선교단처럼 만들지 말고
교회 준전문 사역팀처럼 창립하여 운영해야 하는것이다.
바라기만 하면 안들어 줄때 비판뿐이 안생긴다.비판만 해봐야 목만
아프다. 그저 우리가 함께 만들어 가면 그것이 대안이다.
그러므로 여러분을 모십니다. 찬양사역에 동참하여 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