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대원들의 눈으로 이 mission을 보려고 했는데 일기를 쓴 사람이 너무 제한적이라서 이번에도 내 눈으로 대부분을 봤습니다. 그러나 기억이 나거든 그리고 뭔가 더 부연하고 싶으면, 고치고 싶은 것도 그 날을 찾아 들어가서 편안하게 써 넣으면 됩니다.)
일년이 이 스무 한날 때문에 있다고 생각하는 극성분자들까지 있다.
긴장과 흥분, 스릴과 평안, 낮은 곳과 높은 곳, 냄세와 향기, 거지와 왕자, 저지와 고지...를 우린 경험하고 직접 간다. 우리는 이 특별한 시간을 mission이라고 부른다.
7월 4일
볼리비아와 카나다에서 일년을 준비한 그 날이 왔다. 그들은 어제(3일)부터 출발해서 마이아미를 거쳐 비행기로 오고 있고 우린 잠을 설치며 새벽을 기다렸다. 공항 도착 스케쥴 시간은 아침 8시 그러나 그들을 실은 비행기는 라 빠스를 그대로 통과 산타 크루스 공항에 아침 6시에 내려 놓았다. 시작부터 차질이 생기는 것을 보면 이번 mission도 예사롭지가 않을 듯....
나와 루이스는 예상치 못한 공항 스케쥴 때문에 공항에 늦게 도착하였을뿐아니라 서두르다가 준비한 서류마저 집에 두고 왔다며 민망해 하는루이스 앙헬이라는 원주민목사의 얼굴이 말이 아니다. 할수없이 공항에 있는 인맥을 통하고 수단을 다 동원해 짐과 대원들을 빼내는데 성공하였다. 일단 작전 성공...
정신을 차리고 대원들을 보니 에게게...주로 애들이네!용 이 애들과 뭘하지?...걱정이 태산같았다. 하는 수 없지 그 분께 싹삭 빌어야지 별 수 있나?...
mission centre에 도착하여 호박죽으로 허기를 메꾸고 점심은 든든하게 남미식 구운 고기로 채웠다. 오후엔 내일부터 있을 아마죤지역을 위한 mission 준비로 보내고, 저녁 식사는 출정을 앞 둔 대원들의 사기를 위해 호텔 Los Tajibos에서 폼 한번 크게 잡으며 먹었다. 여기에 이삭목사님 부부까지 초대하였고 대장이 호주머니를 몽땅 털어내 멋지게 한반 쏘았다. 뒷 얘기지만 이 때부터 주머니가 빈 대장은 mission이 끝나는 순간까지 괜히 힘이 없어 보이고 그저 비실거리드리고?...
7월 5일
아침부터 시애온을 동원해 미비한 준비물(알콜 솜 음료수...) 사 오게 해서 10시에 대절한 고물 버스로 3월 16일(diez y seis de mayo)로 출발 보고 싶지 않은 것까지 봐 가며 12시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본색을 드러내는 4자매의 현란한 율동으로 아이들을 사로잡는데 장난이 아니었다. 그러나 점잖은 나머지 대원들은 닭고기로 점심을 떼우고 나서야 천천히 움직여 일을 시작햇다. 오후 2시 능숙한 손 놀림으로 준비를 마치고 치과 이미용 풍선 바람개미 메뉴큐어 복음을 요약한 팔찌등으로 주민을 현혹하여 정신을 다 빼놓는데 성공.
저녁을 든든히 먹고 저녁 예배가 시작되었다. 인형극 간증 설교 그리고 영화 상영이 밤 늦게 까지 이어지면서 마을을 완전히 장악 접수하기에 이르렀다. "예배는 사람들에게 소망을 심어 주는 것 같았다. 순수한 아멘으로 화답하는 소리가 좋았다"고 서울 깍쟁이 현이가 말했다.
텐트를 3개 쳐서 교회 안에 두 개는 여성 대원들이 차지하고, 밖에 친 큰 텐트는 남자 대원들이 들어가 자는데 코코는 소리가 탱크 움직이는 소리같아서 여러번 깨다 자다를 반복했다. 나중에 들으니 그런 나도 공범이었다나 뭐라나...
7월 6일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를 둘러 보았다. 강아지 닭 병아리 개 돼지등등...동물들이 어슬렁거린다. 원주민 목사님도 일찍 일어나셔서 장작을 패신다. 어디가나 목사님들의 표정은 저런걸까? 천국의 웃음"(권현)
우유탄 커피와 빵을 아침으로 먹고 과자랑 작은 선물들을 가지고 Ipolito를 찾아가 찬송하고 기도해 주고 선물을 주었다. 더 커버린 머리(거두증), 더 어두워진 소망...이 친구는 결국 앉거나 서지 못한채 이대로 세상을 마치게 될까? 잠시지만 세상이 너무 어두워 보였다.
10시에 Beni의 Trinidad를 향해 짐 다시 싸서 출발 .중간 지점인 Guarayo에서 산돼지(Jozy)와 닭(Pollo)그리고 소고기(Lomo)를 유가(Yuca)와 곁들어 점심을 먹었다. 오후 5시가 조금 넘어서 아마존 상류에 있는 Trinidad에 도착했다. "이 동네는 길 중간에 매표소를 만들어 놓고 주 경계가 달라질 때마다 돈을 받는다. 참 돈을 쉽게 번다는 생각이 들었다"(권현)
베니의 수도 뜨리니다드에 도착하기 전에 샬롬교회를 먼저 들려 사모님께 인사를 하고 저녁 예배에 올 것을 약속했다. 곧 시내로 들어와 호텔을 찾는데 4번째 만에 예전에 호텔 모호(Mojo)라는 상호로 영업하던 곳을 찾아 들어갔다. 방 5개를 구해서 적절히 나눠 들어갔다. "먼지에 찌든 몸을 씻어내니 피로도 풀리고 너무 개운했다. 호텔 아래층에서 한식으로 오랜만에? 엉성한 밥을 해 먹을 수 있다니 우리나라 사람들은 너무나 대단해...식사 후에 Salom교회에 갔다.저녁 예배를 드리고 있었는데 교회의 첫 느낌은 단아함. 설교 후 정목사님과 우릴 소개하였고 우리가 나가서 모두 찬양을 하는데 어찌나 떨리든지...그러나 아이들과 돌면서 찬양하는데 맘이 편해졌다"(권현).
인형극과 사랑 마임 그리고 찬양을 마치고 내가 잠깐 인사와 함께 설교를 다시 하고 예배를 마쳤다. Rolando목사님 사모님이 다시 닭고기 요리를 내 줘서 실컨 먹었다. 나와 아내는 호텔로 그리고 대원들은 다시 솟는 힘을 주체할 수 없어 중안 공원으로 나갔다.
7월 7일
기다리고 싸워서 아침을 겨우 뺏어 먹고(볼리비아에선 당연한 것도 힘들게 싸워야 할 때가 많다) 교회로 갔다. 아이들은 그런데로 왔는데 치과 환자가 아주 적었다. 스케어링을 원하는 환자는 많은데...4년을 그것도 시 외곽에 왔으니 사람이 줄 수 밖에...내년엔 장소를 더 외곽으로 바꾸어야 할 모양이다.
수지가 아프다. 호텔에 데려다 쉬게 해 주고 난 목사님을 만나 커피를 한 잔 시켰다. 신학교를 시작한 이야기와 교회 발전에 대한 이야기가 날 흥분하게 했다. 1시간 이상 얘기한 후에 수지를 데리고 교회로 가서 대원들을 철수시켰다.
"촛불에 샤워를 시작했는데 물마져 끊겼다. 정말 황당. 생전처음.... 난감했다. 승현언니가 사모님 방에 물이 나온다 해서...허겁지겁 옷도 안챙기고 사모님 방으로 날라갔다. 물이 나왔다. 비누칠 샴푸까지...헉 물이 다시 끊겼다. 주여 감사! 몇 분이나 문질렸을까 불이 들어왔다. 물도 나왔다. 정말 최선을 다해 빨리 씻었다. 그 악몽에서 벗어나고 싶었다.나 때문에 지체들이 저녁식사에 늦어졌다. 미안하면서도 기다려줘서 고마왔다"(권현).
Pollo집에 목사님 가족 5명을 모두 초청하니 전체 24명이 되었다. 뽈료집을 접수하여 먹고 마시고 나서 목사님 가족을 보내고, 우린 다시 대영이가 쏘는 아이스크림 집으로 갔다. 아이스크림과 커피 차를 시켜 먹고 중앙공원으로 갔다.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쇼가 시작되었다. 은진이가 노래하고 수아와 영욱이가 춤을 추었다. 대장과 심선교사가 노래에 동참하고 우리의 호프 대호가 모자를 벗어 돌렸다. 돈이 들어왔다. 술꾼이 시비를 하려는 것을 노련한 대장이 잘 요리했다. 우리와 공원에 모인 모두가 즐거운 밤이었다. 별이 빛나는 밤 우리는 불커진 호텔로 엉금엉금 기다시피 들어가 촛불에 의지하려는데 조금 후에 불이 들어으나 잠드는 일만 남았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있을까요?"(권현). 점점 불안해지는 나날이 되고 가고 있는 모양이다...
7월 8일
"오늘 아침은 뭐냐 그 빵 그 안에 메추라기 알이 들어간...빵과 음료수 커피 고아이 든든하더만(살떼냐:Saltena를 두고 하는 말인듯)"(권현)
"오늘은 아미죤 강 구경을 간다. 기대 많이 됨. 20분쯤 가니 아마죤 상류에 도착. 선크림에 긴팔 모자 썬그라스까지 중 무장을 했다"(권현). 1시간 30분 동안 거친 아마죤 상류를 가다 돌아와 피라냐(Pirana)와 오리 고기로 점심을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이빨이 살벌한 피라냐가 맛은 제법이네?....우리 막내 수지가 많이 체해서 토하고 먹지도 못하고 누워만 있었다. 불쌍한 저산병 아가씨 수지...
13시에 아마죤을 출발하여 다시 불결한 버스로 이동하는데..."버스 안에서 청비와 나의 Change 워십과 곰 세마리가 힛트를 치고(문제는 나중에 쇼냐가 더 잘 햇다는 것)...."(권현). 그렇게 힛트까지는 아니드래도 갈 때 보다는 조금 진화한 것은 사실인듯...
7시 30분에 상 라몽(San ramon)에 도착하여 메노니따와 함께 저녁을 먹고 다시 열심히 달려 23시 30분에 선교센타에 도착하니 모두 거의 맛이 간 것 같아....
7월 9일
"거룩한 주일이다. 일어나자마자 우리에겐 큰 숙제가 있었다.내일 긴 안데스 여행을 가야 하기 때문에 빨래하여 널고 말려야 한다"(권현).
찬양이 중심이 된 예배 - 멋쟁이 사무엘 목사의 찬양과 하나님의 능력인란 제목의 멋진 설교. 오늘은 왠지 초라해 보이는 우리 대원들의 미숙한 찬양 율동...이 크고 멋진 분위기에 눌려버렸나?...나마저 예전같지 않아 애를 좀 먹었던 시간들...
김이삭목사가 준비한 훌륭한 점심. 프랑스와 한국의 축구 경기(한국이 패배). 여자 대원들의 낮잠....
"센타에 돌아와서 함십하여 짜장밥을 만들어 먹었다.역시 먹는데에 주력하는 우리들"(권현). 식사 후엔 안데스 가는 짐 정리로 분주하게 움직이며 마음도 단단히 잡아 메고 있는데...김미경이 생일잔치가 시작되었다. 미경이를 시기질투하는 못된 대원들...부러우면 자기들도 이 때를 택해서 태어나지. 그러나 난 마음이 든든 며칠 지나면 내 생일이니...설마 잊지는 않겠지?...
"오늘은 미경이 언니의 생일. 렌트해 온? 커다란 케익. 토론토에서 보내 온 영상 편지.목사님의 멋진 덕담(살림을 잘하는 여자. 예쁜 여자보다 하나님을 잘 경외하는 여자가 귀하다)까지. 미경언닌 행벅한 사람이예요. 생일 축하해요! 우리를 자지러지게 하는 두식이...주성 오빠가 해 준 마시지는 고맙기 그지없다. 다 들 잘자요!"(권현)".
7월 10일
시애와 주성이는 공항에 우리 팀 닥터 예원장님 모시러 나가고 나와 대장(창범)은 차 새바퀴끼우고 백밀러 고쳐서 달고 집으로 와서 대충 아침 떼우고 11시에 안데스를 향해 출발. 차 고치는 과정에서 급한 성질이 드러내는 우리 대장..."아이고 속이 터져...거것 좀 봐요. 한 손으로 해요. 또 공구가지러 들어 갔어요...!"
"좁은 골목 길을 돌아 돌아서 도착한 로스 네그로교회(Los Negros) 파노라마가 생소한데 느낌이 좋다"권현). 오후 3시에 도착 4시에 점심 아이고 배 고파라. 보기민망한 사진으로 사면의 벽을 칠한 우리 가까 성도의 집인 식당에서 맛없는 점심을 먹고 봉사활동 시작...
작년에는 텅빈 빈 공간에 겨우 흙벽만 있었는데 이젠 지붕도 있고, 바닥과 벽을 시멘트로 입혔고 더욱이 화장실과 부속 건물까지 있는 어였한 교회로 성장 - 단기 선교팀의 기도와 예원장의 역활로 교회가 완성된 것. 아름다운 하늘과 거친 땅을 연결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 낮에는 밭 일을 밤에는 새벽 1시까지 일을 했다는 원주민목사님의 말씀.
"교회 내부 강댓상 뒷 벽에 파란 하늘과 호수가 그려져 있는 벽화가 있는데 저녁 예배 때 찬양을 할 때는 내가 마치 그 호숫가에 있는 느낌이었다"(권현)
낮에는 봉사 밤에는 예배가 계속되는 우리의 일정을 마치고 교회 안에 텐트를 치고 비비고 들어가서 코고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꿈나라로...
7월 11일
"몸이 좀 이상타. 일어나자마자 든 생각이 한국에 가고 싶다 였다. 내가 한국을 떠나온지 두 달 반이 넘었다"(권현). 천천히 7시에 기상하여 산책을 하려는데 현이가 저 앞에 혼자있었다. 가까이 가서 말을 걸어 본다. 천천히 말을 재미있게 하는 현, 조용히 얘기를 귀 기울려 잘 듣는 현이 좀 힘드는지 얼굴이 조금 부었다. 이젠 1700미터...
정성어린 아침을 먹고 다시 짐을 올리고 산 이시드로(San Isidro)교회로 향했다. 선교는 짐을 싸고 내리는 것이다? 가장 힘든 일이 추운 아침에 짐을 세 개의 차 위에 안에 올리고 처 박는 일일 것이다. 오전 일찍 도착하여 봉사를 시작하였으나 사람도 조금 밖에 오지않고...두 분의 목사님이 한 분은 내게 와서 또 한 분은 아내에게 가서 서로 잘났다고 야단이다. 싸우는 것은 싫다. 싸우는 소리를 듣는 것도 흥겨운 일이 아니고... 점심을 먹고 주성이와 대장을 불러 철수를 의논하고... 다시 내린 짐을 올렸다 떠나기 위해...
누구에게 선교를 배운 것은 아니지만 우린 싸움이 아니고 일하고 싶다. 산 이시드로에서 오메레께(Omereque). 이제부터는 힘든 흙길을 가야한다. 흙 먼지를 바르고 먹으며 산을 돌고 돌아 끝없이 좁고 가파른 길을 간다. 택시에 탄 친구들은 마스크를 해야 했다. 들어오는 흙 먼지를 피해 보겠다고...먼지는 트럭도 장난이 아닌데...
반 트럭이 먼저 말썽을 피웠다. 물이 가열되서 오바이트를 하고, 호스가 타서 끊어졌다. 호스의 탄 부분을 태이프로 감고 강물을 길어와 체우고 조금 갔는데 다시 말썽을 피웠다. 다시 세우고 터진데를 잘라내고 겨우 힘으로 우격다짐하여 끼우고, 있는 고무줄 다 모아 묶었다. 그리고 기다시피하여 겨우 산길을 넘어 오메레께에 도착하니 이미 해는 기울고 밤 7시가 되었다.
"겨우겨우 힘들게 도착하니 저녁이 되었다. 정말 "깡촌"이다 싶을 정도로 허름한 집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고 벌레들도 정말 많았다. 아무 식당이나 들어가 식사를 하려고 지친 몸을 이끌고 가는데 우리를 알아 본 아이들이 와서 막 안기고 손을 잡았다. 정말 꼬질꼬질한 동네..."(수아).
식당을 찾았으나 우리 모두가 먹을 양의 음식이 없어서 우린 두 팀으로 나누어 두 개의 식당에 분산되었다. 처음으로 나눠져서 음식을 먹어야 했다. 우린 나누는 일은 안 하는데..."파스타처럼 생긴 음식에 우린 행복해 했다"(권현). 식사를 마치고 교회에 가니 사모님이 다시 식사를 준비했으나 먹지 못하고 교회 안에 텐트를 치고 다시 벼룩과의 일전에 들어갔다. 일방적인 싸움이다. 우린 보지도 만지지도 못 한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당하는 것이 이 전쟁의 속성이다.
7월 12일
"상쾌한 아침, 어제 밤 아이들의 좋은 반응에 큰 기대를 하고 우린 힘차게 일어나 세수하고 준비했다. 풍선으로 내 온 몸을 치장하고 아이들을 맞을 준비를 했다.아! 참, ocho에 시작한다고 했는데 그 보다 더 일찍 아이들이 와 있는 것이 아닌가....으ㅇㅇ 여하튼 나갔는데 반응은 ...한 마디로 너무 엉망진창이었다. 질서란게 없고 서로 밀치면서 이기적으로 자기만 먼저 받겠다고 난리들이었다. 영혼 사랑하러 왔는데...시험을 크게 받는구나...불평이 생겼다"(수아)
오후에 생방송이 준비되어 있었다. "갑작스런 제안인데 주성 오빠의 스무스한 기획력이 돋 보였고, 다들 편안하게 최선을 다 해 간증하고 찬양하고 우리를 소개했다"(권현). "나는 오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보았다. 볼리비아 산 강 하늘보다도 아름다운...작은 체구 그을린 피부 조금은 촌스러운 외모의 볼리비아인 목사님의 눈물, 라디오 방송 중 찬양을 하다가 흘리신 눈물...정말 아름답지 않는가?...방송이 끝나고 볼리비아 아이들과 5:5 축구. 그늘 아래서 맨발로 뛰는 그 모습 행복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축구경기가 아니였을까"(두호).
영욱이랑 나는 오전부터 두 대의 차를 차수리 센타로 끌고 가서 고치는데 그야말로 차의 모든 부분이 엉망이었다. 고치고 나면 또 다른 것 또또....결국 시골에서 미화로 100불이 넘는 비용이 나왔으니...그러나 여기서도 감사. 어제 산 길을 오다 작은 고장이 아니었으면 오늘도 그냥 보내고 내일은 정말 큰 문제가 있었을텐데...하나님의 섬세한 손길이 느껴진다. 차 고치는 것은 저녁 때 얘기를 듣고 미경이가 슬쩍 건네 주었다. 무슨 돈이 있다고...고맙긴 하지만서도...
현이가 아주 안 좋았다. 예배도 참석 못하고...그래도 우린 은혜로운 예배를 드렸다. 찬양하고 마임하고...무언극을 영욱이와 수아가 했다. "힘을 잃고 있는데 주성 오빠 왈 "하나님은 우리가 기대한 만큼 주셔..." 그래 다시 한번 기대해 보는 거야라는 생각으로 무대에 올라섰다. 주님이 날 통해 이 부모없어(부모들이 모두 스페인으로 돈 벌러 가고 아이들만 남아...)사랑 결핍된 아이들을 위해 어떻게 쓰실지 기대가 됬다. 정말 놀랍게 대단하게 끝났다. 놀라와...이 소중한 멧세지는 영원히 못 잊을 거야..."(수아).
7월 13일
새벽 6시 앵콜 방송 준비를 위해 우린 5시부터 일어나 준비했다. 찬양과 간증 그리고 말씀 어제와 비슷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되었다 현이가 빠진채....어제부터 예원장님께 라디오를 같다 드리고 우리가 출연한 방송을 듣게 했더니 아주 좋았다고 하셔서...아침엔 예원장님의 시간을 드렸다. 아주 훌륭하게 교육적이고 유익한 말씀을 해 주셨다.
아침을 잘 먹고 미스께(Mizque)로 향했다."다들 조금씩 힘들어 한다. 그래도 하나님이 우릴 지키고 계시니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 미스께 교회는 아직 벽만 있고 지붕이 없는 교회였다.난 처음일 때 뭔가가 부족할 때가 순수하고 간절해서 좋더라"(권현).
교회 대신 목사님이 빌린 지붕있는 건물 아래서 준비해 주신 점심을 먼저 먹고 봉사에 들어갔다. 우린 주로 먹는다 가는데 마다 잘 먹는다. 선교는 먹는 것이다. 그것도 잘 먹는 것이다. 먹기 위해 사는 것처럼...
호텔이 있다고 해서 모두 태우고 가 봤는데 우리 텐트보다 못해서 오늘도 텐트를 치기로 결정하고 돌아왔다. 대장을 중심으로 머리에 요란하게 장식을 하고 동네에 알리기 위해 한바퀴 요란하게 돌았다. 아주 듬직하다 자랑스럽다 고맙다...치과 미용 그리고 바람개비 팔찌 타투 메뉴큐어...다시 힘 차게 봉사가 시작되었다.
저녁을 먹고는 우선 인형극으로 분위기를 띄우고 예배에 들어갔다. "역시 뜨거운 예배 예배만 드리면 눈물이 난다. 촌스럽지만 그래도 참 감사하다"(권현). 예배 중에 우리 대원들이 현지인들의 손을 잡고 기도해 주는 시간도 가졌다. 나와 다니엘목사는 앞에서 기도를 인도하고...
예배드리던 곳을 정리하고 텐트를 치니 우리의 조립식 호텔이 되었다. 피곤하고 힘든데도 남여 모두 텐트 치는데 힘을 모았다. 대장의 지휘하에....대장의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지는 것 느낀다.
7월 14일
"쌀쌀한 공기가 싫지 않다. 오늘은 몸의 느낌이 좋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대원들의 기도 덕분이다"(권현). 오전에 사역을 마치려했으나 요청이 커서 12시까지 더 연장하기로 했다. 주성이와 대장이 내 말에 동의를 해 주어서...두 사람 모두 정말 고맙게 생각한다.
사역을 연장하여 열심히 일하고 있는데 마을 TV방송사에서 기자와 사진 기사가 와서 나와 예원장님 그리고 우리 팀원들의 사역을 취재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편지없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했는데 오늘 취재는 편집없이 나가겠지?...
아쉬운 작별 뜨거운 포옹을 하고 내년을 약속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험한 길을 나설 준비를 했다. 아르다운 산산산 안데스 계곡 계곡들...험한 돌맹이 박은 길에 우리는 내려 촬영도 하며 날이 어두워지는 가운데 코차밤바(Cochabamba)에 도착하였다. 고광문선교사님이 우릴 중국집에서 융숭하게 저녁을 대접해 주셨고, 다시 우릴 이사도 안한 아파트에서 자게 해 주셨다.
시애가 비비안과 같이 코차밤바에 왔고 저녁 늦게 나를 위한 생일 파티가 있었다. 역시 가난한 우리는 케익을 잠시 빌려왔고 영욱이가 주인공인 공연이 시작되었다. 부러워하는 고선교사부부 행복해 하는 나와 아내..."목사님 생신 파티 너무 행복해 하시는 목사님 내외분 주 안에서 지금처럼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권현).
7월 15일
어제 산타 크루스로 보낼 짐을 비비안 집에 두어서 비교적 적은 짐이 남아 있었다. 아파트 옆 유료 주차장에 맡긴 바고네따와 반 트럭에 짐을 분산해서 실었다. 반 트럭엔 짐 칸에 사람도 타야하기 때문에 트럭 뒷문을 열고 그 위에 짐을 둘둘 말아 올리고 바고네따 위에 큰 짐은 올렸다. 18명이 이젠 택시을 보내고, 차 두 대에 모두 타야한다. 택시가 기동성이 약하고 돈도 많이 들어서 선택한 것이다. 바고네따에 8명 반 트럭에 6명 그리고 짐칸에 4명....
새벽부터 서둘러 짐을 다시 쌓는데...창범이가 직접 차 위에 올라서 지휘한다. 이젠 프로가 다 되었구나...
고광문선교사님 선교센타에 가 밖에 서서 경건회를 드렸다. 이번에는 내가 아침 저녁으로 경건회를 인도했다. 경건회 후에 잘 준비한 아침(계란 후라이.빵.콘프레이크.커피 우유)과 따뜻한 난로...이제 부터는 26-700미터다. 춥다 건조하고...
팀닥터 예원장님의 인도로 체조를 하고 고선교사님 부부와 헤어져 길을 나섰다. 베니와 오메레께를 제외하곤 한 곳에서 이틀 밤을 보내지 않았다. "이제 진짜 안데스로 가는구나 상상은 안되지만 긴장과 기대가 된다"(권현).
"4000미터 높이에서 본 끝이 없는 산들(안데스) 셀수 없는 산 봉우리들...주님의 솜씨.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고 셀수도 없다. 4500미터(사실은 4496미터)에서 드렸던 기도회는 내 생애 최고의 기도회가 아니였을까? 정상근목사님께 받은 축복기도, 우리 다 함께 정상근목사님을 축복한 기도 그리고 토론토와 벧엘교회를 위한 기도...잊지 못할 것 같다. 언제 그 곳에서 기도할 수있는 기회가 또 다시 올까? 하나님과 더 가까운 그 곳에서..."(두호).
난 정성을 다해 대원 모두의 이름을 부르며 축복기도를 해 주었다. 처음에는 나이 순서대로 하다가 나중에 서 있는 순서대로 기도해 주었다." 정상근에게 축복권을 부여 하노라"했던 목사 안수식에서의 그 음성이 새롭게 들리는 순간이었다.
오후 4시 30분 우린 라 빠스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당연하듯 Hotel Camino Real로 갔다. 이미 모골룡(Mogollon)목사님께 예약을 부탁해 둔터라 간단한 절차만 거치고 들어가 오랜만에 샤워다운 샤워를 하고 일부는 사우나에 가기도 하고...
저녁은 김치와 된장찌개 그리고 맛있는 반찬으로 든든히 먹었다. "오흥 맛있다"(권현).
욥기 1장으로 경건회를 마치고 불꽃놀이를 들으며 일부는 꿈 나라로, 일부는 전쟁이 일어나는 줄 알고 걱정하면서도 너무 피곤해 깊은 잠의 세계로 빠져 들어갔다.
7월 16일
아주 천천히 일어나 8시에 부티나는 호텔식 아침을 먹고 나서 쉬는데 모골룡목사님이 오셔서 우릴 교회로 인도해 갔다.아파트식 이층에 한 쪽은 목사님 사택으로 다른 한 쪽은 교회로 쓰고 있는 조그마한 교회....
아람이가 눈물과 간증이 반반 섞인 은혜로운 간증을 했다. 그것을 심선교사가 듣고 은혜가 되어 적었다.
눈물어린 목소리 가다듬으며
흐르는 눈물 손으로 훔치며
하늘 쳐다보며 진정하려 애쓰며
간신히 한 마디씩 토해내던 아람이
스물 한살의 나이에 1년간 준비한
선교여행의 느낌은 우리 모두의 눈시울을 적시어냈다.
세상 살며 처음 겪는 힘든 일들이었다고 한다.
끝없는 벼랑이 무서워 눈을 감아야 했고
끝내는 잠이 들었다는 간증은 우리의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했다.
벼룩과 이가 있는 아이들 가까이 다가 서기
힘들었으나 주님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장하여
다가 갔고 안아 주었다는 얘기
그녀는 결국 벼룩에 물려 아직까지도 긁어야만 하는
몸이지만 그래도 마음은 행복하다고 했다.
라 빠스 교회 성도들의 마임과 찬양 그리고 설교 우리가 준비한 찬양과 간증으로 은혜로운 예배를 드리고 목사님이 준비한 점심을 성도들과 함께 나누었다.
오후엔 사가르나가(Sagarnaga)에서 즐거운 쇼핑...예원장님은 날 따라오셔서 같이 커피하며 재미있는 얘기를 나누었고...후에 한 명 두 명씩 네게 다가와서 커피 사 주고....
모골룡목사님과 그 아들이 호텔에 와서 닫치지 않는 반 트럭 창문을 고쳐주었다. 저녁을 다시 한식으로 하고 저녁 후엔 전망 좋은 라디슨 호텔 스카이 라운지를 접수하여 라 빠스의 야경을 보며 커피 그리고 아이스크림...좋다. 더도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7월 17일
선교는 나그네 길 가는 연습...9시에 다시 차 꺼내서 짐 실고 우르미리(Urmiri) 온천으로 향했다. 흙길 오르막 내리막 길 드디어 5000미터까지 오르다가 내려 가는데...심장이 강한 나도 엄청 긴장이 되는 곳을 돌고 돌아 우르미리 온천을 향한다.
아스팔트를 1시간 반을 달리고 다시 흙길에 들어서서 1시간을 넘게 가야 도착하는 곳이 우르미리 온천이다. "프로텍트 하나 없는 길 우리가 가야할 길이 저 밑의 길들 누가 우릴 인도할 것인가? 바로 저 멀리 높은 산엔 흰 눈이 가득차 있고 그 위에 떠 있는 흰 구름들...간산히 커브 길 돌며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우리들 끝없이 험한 길 내려오며 아찔한 순간들...못내 가슴 조이며 머리는 더 아파오는데 창밖을 내다보며 감탄사를 연발하는 사람들도 있다니...5년 전 마지막으로 왔을 때 이제 마지막이라고 했는데 또 오게 된 이 길이 우르미리 온천 길이다"(심선교사).
우르미리 온천 길은 이 주변에서도 험하고 가파르고 좁은 길로 통하는 악명 높은 길이다. 마주 오는 차가 넓은 곳을 찾아 기다려 주는 그 뱀처럼 꼬불꼬불한 길은, 더 더욱 좁고 약한 다리를 건너면 곡갱이를 이용 손으로 판 듯한 좁고 엉성한 흙 속의 굴이 마지막 으시시한 관문이다. 그 흙 굴을 나오면 앞에 펼쳐지는 온천 호텔이 마치 무릉도원이 펼쳐지듯 앞에 멋지게 서 있게 된다. 그래서 위험해도 이 곳을 자주 찾게 된다. 온천폭포에 온천을 이용한 사우나...수려한 경관 다시 찾을 수 있어서 그리고 내 사랑하는 대원들을 데리고 와서 너무 기뻤다.
12시 조금 전에 도착해서 호텔 수속을 하고 부엌을 빌려 라면을 끊이는데 김사묵장로님 가족과 일행 6명을 만났다. 사양하시는 것을 억지로 모시고 와서 같이 라면을 드시도록 하고 우리도 먹었다. 천국의 음식이 있다해도 이 라면 맛은 못 따르리라. 먹고 또 먹어 배가 뽈롱하게 먹어 두었다.
벌떼처럼 많이도 몰려 온 라 빠스 시민들 휴일이라 모여 들었나 보다. 온천 폭포 밑이 가장 깨끗해서 대원 몇을 데리고 가서 온천을 즐기는데...주성이는 현이랑 영희를 데리고 사진을 찍겠다고 사라지고 없었다. 주성이는 현이를 좋아해?...한 명씩 정신 차리고 들어와서 우리가 현지인 보다 더 많아졌다. 따뜻하다 평안하다...이 골짜기에 이런 온천을 하나님은 와 숨겨 두셨을까?....
호텔에서 준비해 준 저녁을 먹고 우린 호텔 이층 우리들의 숙소 옆에 자리를 마련하고 예배를 드리는데 불이 나가고 말았다. 9시면 불이 나가는 곳이다. 모터의 용량이 적어서 예전에도 그랬는데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촛불을 찾아 방을 밝히고 우린 슬림핑 백에 기어 들었다. 자야할 시간엔 자야 한다.
7월 18일
매일 해도 지겨운 일은 짐을 싸는 일이다. 다시 차 위에 짐 올리고 대원들 빽빽하게 실고 다시 또 떠난다. 떠나기 위해 선교를 왔다?...우리는 늘 그렇게 훌훌털고 떠나고 또 떠났다. 사람이 없어 깨끗해진 온천의 유혹이 쉽진 않았지만 남자는 길을 가기 위해 유혹쯤은 이겨야 한다.
차 두대에 모두 장치된 포바이포(꽈뜨로 포르 꽈뜨로)를 내가 다 점검하였다. 포바이포를 걸어 시동을 거는 이유는 우리 차 두 대 모두 디젤 차이기 때문이다. 내려오는 것 보다 더 험한 오르는 길을 위해 반드시 걸어야 한다. 오르다 멈추면 끝이다. 장난이 아니다 이건...
기도를 빡시게 하고 주먹을 불근쥐고 출발하여 흙 굴를 빠져나와 다리를 건너 언덕을 오르는데 아뿔싸 태양이 언덕에 떨어져 길에 검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길이 안 보였다. 길 이 쪽과 길 저 쪽을 임의로 연결하여 가는데 등에서 뿐아니라 발 목 다리에서부터 위로 찬 기운이 가득 올라온다. 나는 가고 그 다음은 그분의 책임이다. 설 수 없었던 것은 길이 너무 가파라서 섰다 다시 출발하려면 차가 다시 움직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고 그런 경험은 얼마든지 있었기 때문이다. 주님이 도우셔서 임의로 연결한 길이 그 길이었다. 그런데가 두 번이나 더 있었으나 우린 해 냈다. 실패가 없으신 하나님이 우리의 길 되시므로....
예정한 시간에 오르로(Oruro)에 왔다. 나와 대장은 표를 구입하고 시애와 또 한명을 보내 식당을 찾으라 했다. 표는 정말 감사하게 예상했던 것을 구입했다. 관광객을 위한 표의 반 값이나 질은 전혀 떨어지지 않는 객석이다. 시애가 인도한 식당은 나도 처음 가는 훌륭한 식당이었다. 식당만 훌륭한 것이 아니고 식사도 아주 훌륭했다.
예전된 기차 시간 전에 역장을 만나 차를 안전한 곳에 맡기고 우린 3시 15분에 기차에 올랐다. 자리가 두 칸으로 분산되어 있어서 좀 합쳐 볼려고 했으나 결국 실패하고 따로 떨어져 가야했다. 날이 어두워지고 배거 고파서 식당 칸으로 옮겨 날 찾아오는 대원들 식사를 사 주었다. 비노도 대장과 한컵 마시고...
밤은 언제나 두려움 공포의 대상이다. 혹시 방이 없으면 하면서도 돌아가는 기차표를 구입해야 하기에 아내와 대장은 호텔로 보내고 일부는 기다리게 하고 나는 매표소로 갔다. 표를 달라고 하자 한 두 장은 있으나 17개는 없다며 매표소 문을 닫아 버린다. 아! 참! 어이가 없지만 너무 춥다. 호텔로 가 봐야 한다. 대원들을 모아 데리고 호텔을 찾았더니 방이 두 개나 모자랐다. 우리가 대충 자겠다고 주인을 설득해 짐을 방에 들여 놓았다.
난 다시 내일 여행 스케쥴 준비로 여행사에 가서 세 대의 랜드 크루스를 예약하고 왔다. 바쁘다 바뻐...
그리고 다시 예배를 그 분께 드렸다. 우리의 구원이시고 길 되시는 그 분께...영광과 찬양을 다 드립니다.
7월 19일
멋지게 기상해서 라면까지는 좋았는데...뚜렸한 이유없이 여행사 주인이 꾸물거리다 11시가 되서야 소금 호수(Salar de Uyuni)로 향했다. 소금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꼴차니(Colchani)에서 잠시 내려 소금을 정제하는 과정과 쇼핑을 하였다. 그리고 다시 호수로 들어가서 소금이 모아져 있는 곳과 소금의 눈(Sal de ojo)에서 사진을 찍었다.
시간에 쫒긴 3명의 운전수 서로 속닥거리더니 늘 다니는 방향이 아닌 곳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난 새로운 곳(전에 보지 못한 섬을 하나 더 가기로 전날 밤에 약속함)으로 가는 줄 알았다. 그러나 시간은 계속되고 배는 고프고 드디어 아주 늦은 시간(점심 때를 기준으로...)에 꼬께사(Coqueza)에 도착하였다.
큰 산 위에 만년설이 가득한 아름다운 산이다. 그 산에 오르다 보면 3천년도 더 된 미이라가 여러 구 있다. 또 가까이가 뭍이라서 가장자리에 소금물이 상당하게 고여 있었다. 거기 홍학(Flemengo)이 여러 마리 먹이를 찾고 있었고 야마(Llama)가 또 여러 마리 있었다. 소금과 호수(소금 물) 야마와 홍학 그리고 만년설의 큰 산이 배경이 되어 주고 우린 멋진 영화의 주인공이 당장에 되고 말았다. 주성이의 사진 촬영 솜씨가 작난이 아니었고, 미경이도 사진을 꽤 잘 찍었다. 그러나 누구나 샤터만 누르면 멋진 작품이 나올 수 있는 멋진 곳이다.
그제서야 운전수들이 어느 가정 집(나중에 보니 여관이었다)을 빌려서 점심을 준비하고 있었다. 가스불에 고기를 튀기고...허기진 배를 겨우 채우고 우린 다시 차를 타고 전에 보지 못한 섬(이름을 잊어 버렸다) 앞에 가서 주성이의 연출에 맞춰서 여러 포즈로 개인 단체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아름다움 섬 고기섬(Isla de pescado)에 도착했다. 여기저기서 함성이 나왔다. 멋있는 섬 중에 섬...선인장과 각종 바위들이 소금 안에 갇혀 있는 것 같은 섬이다. 우리서 여기서 시간이 없어 쫓겨나다시피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돌려 섬을 나와야 했디 여행사 이 놈들....
돌아 오는 길에 소금 호텔에 잠시 들려 맛만 보고 어두워지고 버스 시간에 쫓겨 뛰다시피 빠져나왔다. 그리고 준비된 식사 뛰어 버스 정류장에 도착하여 버스를 타고 오르로로 향했다. 바쁘다 바뻐...
7월 20일
전날 밤 8시가 조금 더 지난 시간 터미날에 도착해 보니 예약한대로 버스 뒷 부분에 우리를 위한 자리가 있였다. 처음엔 멋도 모르고 즐겁게 앉았는데 의자가 세월에 못 이겨 얼마나 딱딱해졌는지 요즘 살도 많이 없는 나로써는 보통문제가 아니었다. 먼지도 보통 수준이 훨씬 넘었고...더욱이 운전수가 길도 아닌데를 멋대로 가질 않나 강을 건널 때도 주의를 안 기울이는 것 같아 걱정이 많이 되서 잠은 커녕 앉아 있을 수도 없었다. 하늘엔 별이 총총 가까이 빤짝이는데...주의는 조용하고 우리 차 혼자 험한 세상을 비틀거리며 덜컹거리며 멋대로 가고 있는 것이었다.
밤 하늘에 별이 그렇게 아름답고 많음에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볼리비아 3주를 달리는 장장 2600km 고도 4000m의 고원지대는
평지보다 더 많은 별을 관람시켰다.
더 가까이 있는 별은 크게 반짝거리고 밀가루를 뿌려 놓은 듯한 그 별 무리에
우리는 모두 우리의 창조주를 두려워한다.아니, 우리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그의 크심을 한번 더 외친다. 하나님! 당신은 위대합니다.
여기 또 위대한 무리가 버스 안에 있다. 가슴 속까지 저리는 차 안의 진동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는 전혀없는 나의 심장의 관상동맥까지 버스 진동에 따라
더 크게 흔들리는 이 곳에서, 코고는 소리로 나를 위로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있다.
버스 운전수 세뇰(senor)께서는 자기의 길을 가끔씩 새로이 탐색, 아니 자주 그러한다.
이정표도 길 표시도 길의 구분도 없는 길을 따라 속도가 아닌 속도(10-20km)로 내렸다 올랐다
좌로 기울었다 우로 기울었다 자체의 율동을 지어가며 그치지 않고 질주(?)한다.
내 속에 있는 깊은 진동은 웃음의 진동을 일으키더니 마침내 눈물샘을 건드리고
나는 흐르는 눈물을 즐긴다. 치솟아 오르는 내 속의 뭔가를 허용하지 않으면,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그 진동속에 내가 사그러질 것 같다. 눈물 콧물을 어느정도 허용한 후에 조금은 가벼웠다.
연속되는 진동에도 조금은 덜 힘들었다.
모두들 나름대로 쉼을 위해 애쓰며 자다 졸다 하늘을 봤다 하는데 이리뒤척 저리뒤척 하는 와중에
졸지도 아니하시는 분은 창조주 하나님만은 아니었다. 운전수가 한쪽 길 도랑으로 치받치며
기우뚱거릴 때 차가 수차례 강물에 빠질 때마다 머리를 더 꼿꼿이 세우신 그 분은 우리 무리를 위해
불침번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이었다. 마음으로나마 감사를 보내고 눈이라도 붙이시라고
말을 건네고 싶었으나...
마지막에 가만히보니 그 이유는 그 돌덩이 같은 의자가 그를 계속 긴장시키고
허리까지 고통으로 감싸서 마침내 그를 의자에서 일어나게 하고 마지막 시간까지
자의반 타의반...또 그렇게 불침번이 되었나 보다.(팀닥터)
새벽 3시 오루로 버스 터미널에 지친 몸으로 간신히 차 난간을 잡고 차에서 내렸다. 이제 기차역에 세워둔 차를 가져와야 한다. 영욱이와 같이 택시를 타고 가서 자는 경찰 깨워 차 시동을 걸려는데 반 트럭이 꼼짝을 안한다. 겨우 힘들게 시동을 걸어 터미널로 돌아와 다시 짐을 싣고 오브라헤스(Obrajes) 온천에 오는 새벽 6시였다. 시간이 안 되었다고 기다리라고 해서 7시까지 기다렸다가 온천에 들어가니 온 몸이 녹아내렸다 추위와 피곤이 눈녹듯이 사르르....와아 이것이다. 추위와 온천을 함께 거친 사막과 온천을 함께 만드신 그 이유가...설명이 오히려 변명이 되는 순간이었다. 온천이 몸만 녹인 것이 아니라 배까지 녹였는지 허기가 목까지 올라와 식당을 찾아 주문한 식사를 기다려 기도하고 먹었다. 우리는 먹기 위해 사는 거야 누가 뭐래도....
9시에 온천을 출발 코차밤바를 향하여 순조롭게 가고 있었다. 이제 코차밤바가 눈에 보일듯 하는데 대원들이 급하다고 야단이었다. 야산에 차를 세우고 볼 일을 대충보고 가려는데 반 트럭이 꼼짝을 안했다. 알지도 못하면서 차 뚜껑을 열어 보지만 알도리가 없엇다. 지나가는 트럭을 4번째 세웠고 그 운전수가 차를 뒤에서 밀라고 해서 밀었더니 시동이 됬다.
멋있는 식사를 위해 택시를 잡아 가이드를 시켜 그 식당을 찾았다. 쁘에르또 마데로(Puerto madero)에서 부폐로 점심을 잘 먹고 다시 시동을 하려는데 반 트럭이 또 말썽을 부렸다. 이젠 완전히 고장이었다.
부속을 중고차 부품 파는델 찾아가 찾아봤으나 대충맞는 것 밖에 없어서 그걸 가지고 용접하는데 가서 다시 깎고 갈아서 가지고 와 끼우니 오후가 다 지나고 초 여름밤 7시가 되었다. 내가 제일 힘들 때는 골짜기도 흙길도 아무 것도 아니다...차 고장이다. 내가 힘들 때 주성이가 빛난다. 그는 대원들 데리고 멀리 가서 사진을 찍어주며 놀아 준다. 오늘은 담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가 한없이 고맙다.
새벽 1시에 빌랴 뚜나리(Villa tunari)에 도착했다. 너무 피곤했으나... 오는 길에 우릴 기다리는 모파르(mopar:마약 단속하는 검문소 )가 너무 우릴 괴롭혔으나...헤드라이트가 나가서 앞 차 비상등에 의지해 그 험한 길을 왔으나...이미 목적지에 도착하면 모두 과거가 된다. 이젠 피로를 푸는 일만 남았다. 파란 자연이 풍성한 산소가 후덥지근한 일기가 우리의 몸의 작은 시스템까지 순식간에 바꾸어 줄 것이다. 조금 후면 그 불편한 고산지대의 모든 것은 추억이 될 것이다. 코코낫을 한 개 들고 끝까지 마셨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싶어서...
7월 21일
마르따(Marta)가 정성을 다 해서 아침을 준비했다. 꼬꼬(coco:코코낫) 빵 커피 우유 초코렛 열매까지 온갖 멋을 다 부려서 준비한 아침을 먹고 뛰며 걸으며 사진 찍고 차 물청소하다가 11시에 호텔을 출발 산타 크루스를 향했다.
야빠까니(Yapacani)에 늦게 도착하여 산돼지 고기(Taitetu)와 생선(Pacu) 중에서 택일하여 점심을 먹고 쉬고 용변보다 다시 산타 크루스를 향했다.
오후 4시에 선교센타에 도착하였고 대원들은 이젠 돌아갈 준비를 해야했다. 도데체 쉴 시간은 없구먼....
7월 22일
오랜만에 늦잠을 자라고 했으나 모두 일찍들 일어나서 어슬렁어슬렁(동물원 호랭이처럼)...간단히 아침을 먹고 다시 차에 올라타서 이번에는 시애가 짚차를 한 대 빌려와서 모두 오랜만에 차 안에 다 타고...
라 닝꼬나다(La rinconada)로 이동해서 김신성선교사가 대접한 점심 삐께마쵸(Piqemacho)을 먹었다.
오후엔 다운타운에서 쉬며 마지막 쇼핑을 그리고 저녁은 까사 깜바(Casa camba)에서 원주민 목사님들과 멋진 식사를 하였다. 좀 늦게 오신 분들이 있어서 양해를 구하고 우리가 먼저 식당을 빠져 나왔다. 우리의 마지막 미션이 남아있기에...
11시에 시작된 평가회. 한 사람이 5분을 넘지 말라고 그렇게 말했는데도 평균 20분이 넘는 이 훈련이 덜된 친구들...울며 말을 못하는 친구들....아! 이번 mission에는 편집이 필요없겠구나...이렇게 살아주렴 토론토에서도...서울에서도...
7월 23일
새벽에 또 일어나서 차에 가지고 갈 짐 올리고 넣고...그렇게 밀물이 밀려가듯 그렇게 그렇게 말이다 밀려가고 말았어 그렇게 말이다 내 사랑들이 내 분신들이...내 긴 얘기를 여기까지 들어줘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