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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들이대는 정치인, 고이즈미

안철 |2006.08.17 00:19
조회 44 |추천 0

마침내 태평양전쟁 종전일에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한 고이즈미 총리의 뱃심에 박수를 보낸다.
아시아, 특히 동북아 군사 강국과의 정치적 대립을 야기하기에 충분한 사안임에도 임기말에 이르러서 기필고 해내는 모습이 선거권을 가지고 있는 자국민에게 어떻게 비췄을 것인지는 굳이 표현하지 않겠다. 이 나라의 정권을 담당-그것이 정당했든지 부당했든지를 가리지 않고 말이다.-했던 숱한 이들이 임기말까지 처음 공약 그대로 실천한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특히나 촛불까지 줏어들고 전국 곳곳에서 탄핵을 막아냈던 이 피노키오 정권조차도 임기말의 배신이 난무하는 상황에 고이즈미 총리의 만행은 일본 인민들에게는 꽤나 믿음직스럽게 보였을 게다.

 

고이즈미 총리, 나카소네 이후 최고 장기 집권

5년 이상 장기집권한 일본의 내각총리대신은 그리 많지 않다. 1982년부터 1987년까지 집권한 나카소네 총리 이후 11명의 총리대신 중에서 고이즈미 총리는 최장수이다. 전후 5년 이상 집권한 내각총리대신은 요시다, 이케다, 나카소네, 고이즈미 이 넷뿐이다.
지난 2005년 중의원 선거 결과를 통해 확인했듯이, 참의원을 무력화시켰을 뿐만 아니라 우정개혁에 반대한 자민당 내 반대파에 자객(刺客)을 대거 투입해 25명중 20명을 당선시킨 바 있다. 그만큼 일본 인민의 고이즈미 정권에 대한 신뢰가 높다는 것이다.
늦은 결혼과 이혼으로 독신 생활중인 총리로도 유명한 고이즈미 총리는 자민당내 파벌의 지분에 의한 집권이 아닌 무당파적 인물로 파격적인 데뷔를 이루어냈는데, 기존의 자민당 정치에 염증을 느껴왔던 일본 인민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가 이 고이즈미란 인물로 대변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이런 고이즈미 총리가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신사 참배를 공언했고, 또 그와 같은 공언을 행동으로 실행한 것이다. BBC의 보도에 따르면, 절반 이상의 일본인이 신사 참배를 반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지만, 그 반절은 찬성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지지를 받고 있다고 생각해도 지나치지는 않을 것이다.

 

신사 참배, 할 수밖에 없는 일본 정권

  우선 신사 참배에 대한 성격에 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일본의 신사 참배는 덮어놓고 무조건 군국주의 제국 시절로의 회귀를 갈망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만은 없다. 특히나 국립묘지가 따로 시설되어 있지 않은 일본은 전몰자 등 250만 명을 야스쿠니 신사에서 추모하고 있기 때문에, 알링턴 국립묘지나 국립현충원마냥 호국영령 앞에 앞날의 건승을 기원하기 위해서는 그곳을 찾아가 참배하지 않을 수 없다. 더욱이 패전일이기에 메이지 유신부터 일본의 흥성(興盛)을 위해 노력한 이들이 봉헌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아 앞날의 부흥을 기원하고자 하는 욕심이 생기지 않을 수 없을 터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태평양전쟁 종전일에 A급 전범 14명이 합사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찾는 것은 그리 좋은 태도로 보이지는 않는다. 여전히 유태인 홀로코스트를 반성하고 사죄하는 독일의 쾰러 대통령과 비교가 되기 때문에, 사죄에 인색한 일본의 수장에게 고운 시선을 보낼 수만도 없는 노릇이다. 새로이 국립추모시설을 만드는 것도 힘들겠지만, 14명의 전범을 분사하는 것도 매우 힘든 상황에서 정치적 결단을 내리기 힘들다는 것은 이해한다. 그러나 태평양전쟁 종전일만큼은 일왕이고 총리고 할 것 없이 히로시마의 평화공원을 찾아 반성할 것은 반성하고 징징거릴 것은 징징거려보는 것이 훨씬 모양새가 낫지 않겠느냐는 생각을 해보는 터라, 미련스레 야스쿠니 신사를 고집하는 태도가 꽤나 못마땅할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의 신사 참배 반대, 갈수록 줄어들 것

  일본 역대 정권에서 숱하게 신사 참배를 공식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왔으나 아시아 각국의 반대, 특히 한국과 중국의 반대로 번번히 무산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과거 한미 동맹의 영향력과 중국의 국제적 역량이 맞물려 일본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했기 때문이었으나, 근래에 들어 한미동맹은 약화되고 중국의 영향력이 작아지기보다는 일본의 영향력이 증가한 터이기에 예전과 같은 압박이 작용할 수 없게 되었다. 동북아 유사 사태에 대비한 미군의 파트너가 한국에서 일본으로 완전히 바뀌면서, 한국을 자극하지 말라고 타이르던 미국의 지지까지 이끌어낼 수 있는 상황에 처한 일본으로써는 더 이상 두려울 것이 없는지도 모르겠다.
  최근 집권 자민당 내에서 개헌을 준비하고 있다. 개헌안의 핵심 쟁점 사안으로 정교(政敎)분리 원칙의 예외 규정과 군대 보유 문제, 전수방위의 폐기 등이 논의되고 있다. 이는 단지 일본의 욕심이 반영된 것만이 아닌, 국제사회의 요구가 함께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동북아에 극심한 긴장을 불러일으키고 있기도 하다. 전수방위를 목적으로 하는 자위대는 해외로 파병할 수 없다는 원칙이 무너진지도 오래지만, 미국의 태평양 함대에 버금가는 해상자위대의 군세나 동북아의 제공권을 장악하고 있는 항공자위대의 전투력이 ‘군대’가 아니라는 주장은 사실상 폐기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기 때문에 국제사회의 분쟁에서 일본이 좀 더 큰 역할을 해주길 바라는 유럽국가들과 미국의 바람이 일본의 헌법 개정을 최촉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과 한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헌법 개정의 방향은 그리로 갈 수밖에 없어 보인다.
 이렇듯 지역안보관계의 변화와 국제사회의 인식 변화가 맞물리면서, 일본은 과거와 다르게 국제사회에서 보다 당당한 태도를 보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 전후보상에 대한 재논의를 요구하고 있는 동북아의 양강국의 태도는 90년대 계속된 불황으로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어진 일본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는 데다가, 영토 분쟁을 해결해나아가야 하는 상황에서 당사국인 중국과 한국에 매번 가해자로서의 비굴함만 보일 수는 없다는 속내도 아예 없진 않을 터, 중국과 한국의 불만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자국민 결집을 위해서 그리고 국제사회에서의 역량 확장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도 신사 참배를 강행해 나아갈 것이고 또 그 반대 목소리를 무마해 나아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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