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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다(PRADA)

김진만 |2006.08.25 03:49
조회 278 |추천 0

미우치아 프라다(47)는 대학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그는 말로 디자인을 한다. 디자인팀을 모아 자기가 생각하는 스 타일을 전달하고 거기에 맞는 소재와 재단법을 함께 찾는다. 그는 그렇게 해서 장식을 배제하고 극도로 단순한 미니멀리즘 의상으로 90년대 유행을 이끌어왔다. 하지만 정작 [유행]에는 관심이 없다. 한순간 유행으로 그치고말 옷보다는 사람들이 두고두고 편하게 입 을 옷 만드는 게 목표다. {내가 입고 싶은 옷을 만든다.}. 전문 디자이너 수업을 쌓지않은 만큼 그는내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에 충실하려 애쓴다. 그렇게 해서 철저하게 입는 사람 위주로 옷을 만든 다. 그는 스스로를 디자이너, 크리에이터같은 예술가라기보다 [옷만드는 사람]이라고 딱 잘라 말해버린다. 프라다가 패션에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은 전적으로 가업을 잇기 위해 서였다. 할아버지 마리오는 1913년 밀라노에 고급 가죽가게를 차려 독 창적인 여행가방을 만들었다. 20~30년대 전성기를 구가했던 [프라다]가게는 마리오가 58년 세상 을 떠나자 쇠퇴기를 맞는다. 가업에 관심이 없었던 프라다의 아버지는 그나마 아내에게 가게를 맡겼다. 그의 할아버지는 {여자는 집에 있어야 한다}며 며느리와 손녀가 가 게에 얼씬도 못하게 했었다. 그는 할아버지가 트렁크를 감싸 보호하는 데 썼던 포코노나일론으 로 가방을 만드는 기발함을 발휘했다. 낮과 밤, 정장과 캐주얼 어떤 상황에도 잘 어울리는 이 실용적 가 방은 프라다의 성가를 높이는 결정적 역할을 했다. 좋은 사업 파트너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투스카니에서 가방 제조업을 하던 4살 연상 페트리지오 베르텔리는 사업 전반에 적확한 조언을 했다. 그의 힘을 얻어 프라다는 할아버지 시대의 낡은 스타일에서 벗어나 새로운 가방들을 만들었고, 80년대 초에는 세계 유명 백화점에 가방들을 납품하기 시작했다. 85년에는 신발 라인을 확충하고 자체 부티크를 만들어 나갔다. 베 르텔리는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집어내 취사 선택해내는 프라다 의 능력을 간파하고, 옷을 만들어 보라고 권했다. 두사람은 87년 결혼해 형제를 뒀다. 88년 드디어 밀라노 여성복 컬렉션 진출. 하지만 첫 쇼는 {디자이너 개성이 실리지않은 채 과장되고 상업적} 이라는 혹평을 들었다. 스태프들 의견에 마음이 흔들렸던 탓이다. 이때 프라다는 {앞으론 내 본능이 가리키는 대로 디자인하겠다}고 굳게 마음먹 는다. 프라다의 옷은 그의 개성, 그리고 생활과 바로 맞물려있다. {아이를 기르며 직장 다니는 여자라면 거울을 들여다 보고 있을 시 간이 없을 것이다.} 그런 여자가 복잡한 옷을 만들거나 살 리 없다.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은 섹시해야지]하고 생각하는 여자도 거 의 없다.} 숱한 디자이너들이 여성의 섹시함을 강조하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고 그는 말한다. 그의 옷에는 남성적, 여성적 요인이 자연스럽게 녹아있다. {아직도 정치에 미련이 남아있다}는 그는 {여자들이여, 자신을 알 라}고 외친다. 자신을 알면 어떻게 자신을 표현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해 매출은 7억6천만달러. 10대 후반~20대 후반 여성을 겨냥 한 [미우미우](93), 남성복 [프라다 우오모](95), 언더웨어 [프라다 인 티모](97), 스키웨어(") 에 이어 화장품, 향수, 홈컬렉션으로 영역을 확 대해갈 기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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