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신경군관학교 2기 예과를 수석졸업하는 다카키 마사오. 졸업생을 대표해 대열앞에서 경례를 하고 있다. 이 날 다카키 마사오는 졸업생 답사를 낭독했는데, 그 내용중에는 "대동아 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성전에서 나는 목숨을 바쳐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라는 구절이 포함되어있다.(滿洲日報 1942.3.24)
군관학교를 거쳐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편입되 57기로 졸업했다. 앞 줄 오른쪽 끝(붉은 원 안)이 다카키 마사오생도.
만주군 8단 시절의 다카키 마사오 중위
1940년 2월 7일. 만주로 떠나기 직전 와다나베 경부 송별식기념 촬영사진. 붉은 원 안이 당시 다카키 마사오다.
다카키 마사오는 문경보통학교에서 재직하던 중, "충성을 다바쳐 일본에 보답하고, 나를 죽여 국가를 받들겠다"며 일왕에게 바치는 혈서를 써서 만주군관학교로 보냈고, 이 사실이 당시 만주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실리면서(증언 유증선) 꿈에 그리던 일본군장교가 된다.
1909년 10월 26일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하고 체포되어 신문을 받는 안중근의사.
영국 『The Graphic』에 게재된 공판기사
루쉰감옥에 수감되어있던 안중근의사는 동생들과의 마지막면회에서 이런 유언을 남겼다.
"나는 천국에 가서도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쓸 것이다. 너희들은 돌아가서 동포들에게 마음과 힘을 합해 독립을 이뤄 달라고 일러다오. 천국에 대한 독립의 소리가 들려오면 나는 춤추며 만세를 부를 것이다."
1910년 3월 26일, 안중근의사는 32세의 나이로 일제에 의해 사형을 당했다.
1909년 동지 11명과 죽음으로써 구국투쟁을 벌일 것을 맹세하며 손가락을 끊어 '대한독립'이라는 혈서를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