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우리가 3월 중순 정도에 봤으니까 한 4개월이 다 되어가는군. 미안하고 또 미안하단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 지난날 내가 아무런 대책없이 아무 상의 없이 사촌에게 돈을 빌려주고 그로인해 우리의 가정과 집안이 모두 풍지박산 나서 힘들게 정말 어렵게 살아왔지. 부모님은 부모님 대로, 우리는 우리 대로, 동생들 모두의 삶이 바뀌었지. 그래도 삼촌의 보살핌으로 삼촌에게 와서 나름대로 2년 정도 열심히 일하며 지내왔어. 당신과 우리의 딸이 있었기에 더 이를 악물고... 그러다 삼촌이 하시던 일을 더 이상 하지 않겠다고 해서 나름대로 일을 하고자 월세방 한칸 얻어 혼자 밥해 먹어가며 살아왔어. 일한 월급 받아 은행으로 가던 도중 강도를 당하고 몸도 다쳐 꿈적도 못하던 때도 있었어. 난 두려웠어 가족들이 내가 하는 말들을 안 믿어주니까 내가 저질렀던 과거의 죄가 나를 그런 사람으로 만들었으니까 객지 생활을 마감하고 가족들 곁으로 갔을때 얼마나 좋았는지 잠이다 안오더라구. 그 행복도 단 몇일... 직장을 구하긴 하는데 예전에 다쳤던 병력이 취직에 장애가 될 줄이야 누가 알았겠어 그래서 개인사업체나 식당같은 곳에서 일해야만 했어. 시간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찾으면 좀더 나은 곳에서 일을 할수 있지만 내가 부모님과 동생에게 갚아야 하는 빚은 실로 천문학적인 숫자잖아. 앞으로 평생 벌어도 못갚을 엄천난 금액과 큰 은혜...그러는 와중에 우리의 딸이 나에게 " 아빠 회사 언제가? 가면 언제와? 아빠는 같이 살고 싶은데... 왜 맨날 오면 가야 되! 아빠 가는거 싫은데..." 하면서 묻더군. 그 말을 듣는데 머리가 멍해지고 다리가 후들거렸어 이제 여덟살 된 아이가 아빠가 많이 그리웠다는걸 그리고 내가 잘못 살았다는 것을...그래서 난 " 이제 안가고 OO이랑 같이 살거야 "라고 짧은 답만을 했어. 어떻게든 가족과 함께 지내며 일을 하겠다고 맘을 먹고 중국집에 일자리 하나를 구했지. 출퇴근 해가면서 조금씩 빚과 은혜를 갚아가며 살수 있다는 기대가 앞섰었어. 그러나 난 집에서 나갈수 밖에 없었어 그것이 가족들에게 도움이 된다니까! 그렇게 해야 된다고 하니까! 짐가방 하나는 메고 다른 하난 들고 가족 모두가 함께 지내는 어머니의 아파트를 나올때 눈물이 나더군 가슴도 아프고 차마 OO의 눈을 볼수가 없었어 버스정류장에 서있는데 다리가 아니 마음이 가지마라고 소릴쳤어. 허나 난 갈수밖에 없었지. 터미널 앞에서 갈아타야 할 좌석버스를 기다릴는데 눈물이 많이 나더라구 난 좌석버스를 탔고 점점 집에서 멀어져 갔어 가면서 많은 기억들이 지나 가더라구 그때 갑자기 어차피 같이 못사는데 뭐하러 차라리 돈 더버는 막일을 하자라는 생각이 스쳐서 차에서 내려 버렸어. 그리고는 다른 곳으로 발길을 돌렸는데 그 길이 잘 못된 길이란걸 이제서야 깨달았어. 하지만 항상 실망과 불신만 심어줬던 내가 가족들 곁으로 가기가 너무 두렵고 또 죄송하고 무엇보다도 당신과 OO이를 볼 낯이 없어 미안하고 또 미안해 당신 나하나 믿고 가진것도 없고 별볼일 없는 나에게 와줬는데 계속 힘들게만 하고 남편 구실 가장역할을 못해서 부디 건강하고 아픈데 없이 잘지내 그리고 당신 너무 사랑하고 우리 OO이도 많이 사랑해 가족 모두 너무 죄송하고 그리고 사랑하고 존경해. 객지서 있다보니 안쓴다 해도 식비에 숙박비등으로 많이 나가네 곧 자리잡고 열심히 일해서 많지는 않겠지만 조금이라도 보답하며 살아갈께. 얼마전에 집근처에 갔었어 가족들이 너무 그리워서...당신 모습만 창밖으로 보이더군. 참 OO이 담임 선생님하고도 한번 통화했어 초등학교 1학년인데 학교생활은 잘하는지 어둡고 그늘져 있진 않은지 궁금해서. 선생님이 잘 지내고 긍적적으로 교우관계도 좋다고 하시더군. 여보OO엄마야 사랑해 그리고 정말 미안하고 죄송해 내가 떳떳하게 당신과 가족 앞에 설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바라며...난 아픈데 없고 잘 지내고 있으니 못난 내 걱정은 맘속에서 접어둬... 건강하길 빌며... 못난 남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