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 혼자 써놓았던 글을.. 게시판에 한번 올려 봅니다..
특정히 남.. 녀를 비하하고자 하는 글이 아님을 조심스럽게 이야기 드리며..
단순한 제 생각임을 알려 드리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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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rt ii
-당당함-
멎진 여성의 당당함과 평등을 주장하는 요즘 시대에.. 그들이 정령당당함을 주장하기 위해선 개인적으로 여성의 性의 이용이지 않을까 한다. 동등한 입장에서 동등한 시각.. 사회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고 지금 많은 변화와 운동을 하고 있지만 그들이 주장에 반론을 펼치며 잘못되어 있다고 말하고 있진 않는다. 나 역시 먼저 글에서 말했듯이 여성과의 동등과 인정을 원하는 사람 중에 한 명이다. 그럼 왜 갑자기 여성 성에 대해 이야기를 언급하는가?
내가 지금 말하는 건 내가 살아오면서 만나고.. 가까이에서 또는 멀리서 보며 느끼며 무언가 이런 점은 잘못 된 것이 아닌가 하는 보편적인 내 생각과 나름대로 내 견해를 적어 보는 것이다. 적어도 이 글에서 이런 발상들을 하게 만든 연령대는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가 아닐까 한다. 많은 수의 사람이 아니라 내가 오류속에서 세상을 바라 보며 이야기 하고 있지는 모르겠지만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니..
다시 글의 논지로 들어와서..
처음에 언급한 여성의 성의 이용.. 우리는 역사적으로 여성들이 사용해온 여러 방법중의 하나가 성(性)을 이용하였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클레오파트라..부터 시작하여 굳이 몸뿐만이 아니다 내가 이야기 하는건.. 다른 성별이기 때문에..
미국의 엘리너 루즈벨트 의 ‘나의 하루’라는 신문 칼럼에서 여성의 목소리에 대한 견해를 피력하였다고 한다. 약30여년간 매일 칼럼을 통해 사회, 정치, 역사적 사건들의 의견과 개인적 삶의 이야기들을 기록하였다. 1939년 한 남성 잡지에 실린 여성성에 관한 글을 읽고 여성의 ‘유혹의 기술’이라는 이슈를 다루었다.
그 이슈를 다루게 된 발단은 S.N스티븐 박사의 글은
일반적으로 여성은 경험적이라기 보단 직관적인 동물이다. 어떤 상황을 해석하는데 있어 사실 관계를 따지기 보다 직감을 더 믿는다. 그리고 나서 지금까지 어려운 상황에 닥쳤을 때 자신들이 여자임을 이용하지 않는 여성은 단 한번도 본적이 없다.
이 글에 대해 루즈벨트 부인은 여성이 여성 성을 이용해 남자들을 일종에 ‘먹이’로 삼는 여성도 있다는 점을 인정하였다. 그러나 그런 여성은 거기에 계속 의존하는 습관속에 그 이상의 발전을 이루지 못한다고 설명하였다. 여성들도 사실을 밝혀내고 상황의 원인을 분석하는 훈련을 쌓는다면, 특유의 직관적 능력과 남성보다 훨씬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멎진 말을 했다. 남자인 내가 봐도… 멎진 말이다.
‘유혹의 기술’은 악용이 아니라 주어진 ‘일’을 하며 그 ‘일’은 보통 남자를 조정하면서 그들이 당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일이다.
그런데.. 이건 과연 공평한 것일까? 악용이라 함은 잘못 된 거겠지만.. 적어도 한국여성에게 있어서 속칭 유혹의 기술이 과연 얼마나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일까?
문자 그대로 유혹의 기술이 아니라.. 그들의 나이와 여성만이 가질 수 있는 여성성을 무기를 삼는 것.. 그 사용의 남발.. 정당한 사용일까?
"남자가 되서 그런 것도 못해?
남자가 소심하게.. 왜그래? 이런 것도 못한다고 하네.."
"아.. 짜증나.. 왜 이런걸 시키고 그렇지?
누가 해줬으면 좋겠다.."
등등의 주변에 다 들리는 혼자 말… 이건 물론 가히 노리고 하진 않는다.. 하지만 무의식 중에 자신은 알고 있다.. 그리고 해결사가 등장하면 이렇게 말한다.
‘앗.. 이거 그런 뜻으로 이야기 한거 아니에요..’
그러며 일단 한번의 사양과 함께 다음 이야기를 은근히 기대하게 된다.
‘괞찮은데.. 고마워요..’
물론 거절할 수 없을 경우가 많을 것이다. 하지만 처음 시작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무의식의 학습에 대한 관점에서 보게 된다면 ‘아.. 누군가 해줬으면 좋겠다..그냥 다 해결 되었으면 좋겠다…’ 이렇게 말하면 가끔씩 해결이 되긴 하더라..라고. .인간의 무의식에 따른 학습의 결과는 아주 놀랍다. 내 경험상 그렇고 심리학적인 측면의 책과 이론들을 봐도 그렇다.
이후 더 훌륭한 건 그 문제가 해결이 된 다음에는 그렇게 해결할 수 있었던 모든 부분까지 자신의 능력처럼 이야기 한다는데 있다. 쉽게 루즈벨트 부인의 말을 조금 응용해보면, 일종의 ‘먹이’를 찾아 그게 먹이인지 모르게 하는 ‘일’을 하였다는 것이다.
이 관계가 남녀 관계에서 일어나지만 또 여성의 관계에서 일어나기도 한다. 이 부분은 꼭 여성만 그런다는 것은 아니다 남성도 그러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보편적으로 여성의 모습이 그러하다.
물론 이런 내 관점은 사회적 기대양식과 깊게 벤 교육에서 출발 하였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부정적인 시각으로 문제를 보고 있어서 감정적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정확한 건 지금 내가 이야기 하는 게 100%틀린 건 아니라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세상에서 살아 가고 있으며 내 눈앞에 직접적 또는 간접적으로 보여 지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당당한 것 인가?
여기서 왜 당당한 것인가 언급을 하는 건 다소 논지와 벗어난 주제라 생각이 들겠지만 지금 세상에서 당당함을 추구하는 그러기를 따라 가고 있는 내가 이런 생각들을 하게 만든 많은 20대의 여성들이 이러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을 비난하고픈 생각은 없으며 실제로 그러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남성과 세상에 의존적이지 않는다며 당당하게 이야기 하면서 ‘유혹의 기술’이라 칭하는 방법들이 더욱 폼 나며 먹이를 멋 들어 지게 다루는 것이 그들의 동경의 대상이다.
남자들을 꼼작 못하게 하며, 자신의 의지를 쉽게 관철시키며, 실패와 좌절은 내 삶 속에 없으며 나의 외적에 강한 투자와 삶에 여유를 줄 수 있는 금전적인 독립까지.. 전통적인 여성의 교육의 틀을 깨며 신 여성으로 거듭나기 위한 내 눈에 보이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을 하는 것이다.
무지 폼 나며 멎진 생각이다. 내가 알고 있는 당당함과는 조금 다른 부분이 있었다. 실제로 이런 삶을 사는 여성을 만나 본적이 있다.
남자들을 꼼작 못하게 하는 것에는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임이 아니라 논리와 상황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 제시였으며, 자신의 의지를 쉽게 관철 시키는 것은 애교나 우는 소리가 아닌
강한 신념과 더 강한 책임감으로 만들어 내었던 신뢰였으며, 실패와 좌절은 스스로 극복을 하였기 때문에 스스로를 핸들링 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화려하게 꾸미지 않고 정말 심플하면서 멋스러움을 자연스럽게 유지하였다. 이런 모습은 일 적인 부분에서까지 능력을 인정을 받게 하는 원동력과 더욱 멋스럽게 만드는 가치 있는 포장지 역할까지 하였기 때문에 성공과 함께 금전적인 독립이 아닌 자유를 이뤄 나갔다. 이런 모습이 내가 알고 생각하는 진정한 당당함이다. 허나 이 여성의 이런 모습은 여성이라서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공통적으로 남녀 모두가 해당되는 사항이다. 나 역시 배운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단지 다른 것이 있다면 여성 이였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해야 한다는 동기가 생겼다는 것이며, 여성 성을 버리며 노력을 하였기 때문에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 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선입견과 편견을 없애야 한다며 주장하여 선입견이 없는 눈으로 바라 보고 있지만 선입견을 만들어 내는 이는 바로 여성이다. 자신의 무리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배려 받아야 하며, 더욱 당당해야 한다는 생각에 매사에 감정적이며,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며, 문제보다는 상황에 초점을 맞추며 해결에 대해서는 해결사를 기대 하며 불평만 해댄다.
그러고 나서 실패 하면 자신이 여성이기 때문에라고 생각하며 평등과 권리를 주장한다. 왜냐면 자신은 세상에 당당한 여성 이여야 하기 때문에. 당당하기 때문에 더욱 자신을 들어 내야 한다고 한다.
어떤 책은 여성들에게 자신의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여러 가지를 하라고 추천한다. 그 책에서 이야기 한 모든 관점은 주변 환경을 조금 높은 고층으로 조절을 하며 외적인 모습에 투자를 하여 자신을 포장하란 이야기였다. 그러면서 그러는 것이 당당한 삶을 사는 여성의 진정한 자세이며 성공할 수 있다고 하였다.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대학생활을 하면서 친구 역시 가려서 사귀어야 하며, 사랑 따위에 연연하지 말아야 하며, 어떠한 모임 역시 다소 수준이 높은 모임에만 들기 위해 노력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이쁘지 않더라도 행동이 이쁘며 고급스런 기품이 깃들게 하며..등등등.. 하지만 정말 웃긴 것은 그 책의 마지막에 쓰여진 것은 배우자를 찾는 데 있었다. 웬만해서는 그러지 않지만 책을 살짝 훌 터 보며 읽어 보다 비웃어 버렸다. 그런데 정말 이상한 건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 그런 방향으로 모두가 향하고 있는 것 같았다. 알게 모르게 주변에서 그런 이야기들이 많이 들린다. 내게 이야기를 하는 사람부터 그냥 혼자 앉아서 있으면 들려오는 주변인들의 이야기 속에서도 들려온다. 또 사회 현상들을 보면 명품에 자신을 치장하는 여성들과(꼭 나쁘다는 건 아니다. 상황에 맞춰서지..), 공동체 보다는 자신이 먼저인 생각을 때와 장소에 관여하지 않는 경우, 어디든지 꼭 끼어야 하는 그리고 관심이 집중되기를 원하는 사람.. 또 은근히 자신이 뽐내져 지길 바라는 사람. 빛이 나는 사람은 자신이 빛이 난다 이야기 하지 않아도 빛이 나는걸 모른다. 확인하며 또 확인해주길 바라며 말해주길 바라는.. 그것이 당당하다고 생각하며 믿고 행동한다. 그런데 과연 그게 당당한 것이라면..
그들이 가지고 있는 당당함은 떳떳한 걸까?
그 당당함은 어디에 당당함인가?
세상과 자기의 도덕적 논리에 에 떳떳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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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 놓고 보니 무지하게 글이 길군요...
2년전쯤에 혼자 썼던 글인데.. 그냥 게시판에 한번 올려 보고 싶었어요..
다 읽으셨다면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