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20일, 내 생일날 이었다. 생일이라서가 아니라 평생 이 날을 잊을 수 없는 날이다. 나뿐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는 잊을래야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 날은 나이아가라 폭포 (Niagara Fall) 에서 떨어질 뻔 했으니까. 하지만, 기적적으로 떨어지지 않고 이렇게 캐나다 땅에서 잘 살고 있으니......
어느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캐나다에서 살려면 신분이 확보가 되어야 한다. 캐나다 시민권 (투표권이 있는 국민) 이나, 영주권 (외국인에게 국민처럼 살수있게 권리를 부여), 그리고 취업비자 (Work Permit) 와 학생비자 (Study Permit), 이런종류의 신분을 가지고 생활을 한다. 물론 불법체류를 하며 살아가는 사람들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신분을 유지하며 합법적으로 생활을 해야 여러가지 복지혜택을 받을 수 있고, 불이익에서 보호가 되어 질 수가 있다.
2005년, 7월 11일에는 아이들과 아내가 먼저 캐나다에 입국을 해 준비를 하고, 뒤이어 18일 내가 한국의 일을 마무리 하고 입국을 했다. 캐나다 영주권은 신청이 되어 있었지만 언제 나올지 기다려야 할 상황이었다. 2007년 안에는 나오리라고 예상하고, 무모하지만 영주권 없이 캐나다로 입국한 것이었다. 그 당시, 우리가족의 신분은 이러했다. 나는 학생비자 (PSW)를 가지고 합법적으로 들어왔고, 나머지는 관광 (Visitor)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입국후 6개월 이내에 출국을 해야 했다. 아내와 아이들은 8월 28일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가지고 들어왔었다. 이 방법 밖에는 빠른시간안에 이민을 올 수가 없었기 때문에 무모하지만 의지를 가지고 입국을 했었다.
도착 즉시, 집을 계약을 했고, 은행에서 몰기지를 해서, 집을 샀고, 한국에서 짐이 빨리 도착을 했고, 8월 9일 현재의 집으로 이사를 할수 있었다. 다행히, 사기꾼은 만나지 않고, 여러사람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었다. 여기까지, 쉽지는 않았지만 순풍에 돗을 단 듯 빨리빨리 진행이 되었다. 아이들은 summer camp (한달코스)에 나니고 있었고, 나도 PSW공부를 시작할수 있었고,......하지만 아이들이 정식으로 학교에 입학을 해야하는데 예상치 못한 벽에 부딪혔다. 9월 초에 입학을 해야하는데 .......
캐나다의 공교육기관은 세가지가 있다. 공립학교(Public School), 사립학교(Private School), 그리고 캐톨릭학교(Catholic School)가 있다. 시민권자, 영주권자 그리고 취업비자가 있는 사람의 자녀는 공립학교와 캐톨릭학교는 무상교육이고, 그외의 자녀는 1인당 1년 학비 10000불 (850만원) 정도를 내야만 다닐수 있다. 이런 학생을 Visa Student라고 하고 학생비자를 매년 갱신한다. 물론 사립학교는 모두가 학비를 내야하고, 15000불~10만불 이상의 학교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족은 영주권을 신청을 하고 File Number를 받고 왔었다. 이런 상태인 사람들의 자녀도 무상으로 학교에 다닐수 있도록 2005년 5월에 교육법이 바뀌었다고 했다. 그런데, 그 당시까지도 그 법이 실행이 되질 않아, 교육청 당사자들과 여러번 만났지만 거절을 당했다. 학비를 내야만 다닐수 있다는 것이었다. 시간은 계속 가고, 아이들의 입학날은 다가오고, 해결은 안되고,.....진퇴양난이었다. 어느날, 캐톨릭 학교는 File Number만 가지고도 무상교육을 받도록 그 법이 실행되고 있다고 하여, 기쁜 마음에 캐톨릭 교육청에 방문도 했었다. 하지만, 당장 영세증명이 없어서 불가능 하다고......더이상, 방법이 떠오르 질 않았다. 학비 20000불을 내야만 했다. 계속 시간은 지나 갔지만 해결책이 없는 듯 했다.
8월 19일, 토론토 이주공사를 하시는 심사장님(지금은 친한 분이 되었지만)이 우리의 고민을 아시고 해결책으로 한가지 방법을 주었다. 그 분의 친구가 경영하는 곳에서 아내를 고용 (실제는 일을 않하고) 하겠다는 고용계약서를 한장 주시면서, 빨리 가서 아내의 취업비자, 아이들의 학생비자를 받으라고.....그러면, 아이들이 무상으로 학교에 입학할수 있다고 했다.
비자(VISA)라는 것은 입국허가서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국경에는 비자를 발급해주는 이민국 (Immigration Office)이 있다. 우리가족는 비자를 받으러 다시 한국을 다녀 올 수는 없기 때문에, 토론토에서 제일 가까운 국경(130km)인 나이아가라 폭포로 갔다. 아무 의심도, 걱정도 없이 편안한 마음으로.....세계제일의 웅장한 폭포, 굉음같은 물소리, 일년내내 내뿜는 물보라, 그 물보라 사이로 했빛이 비치며 무지개가 만들어 졌다. 그래서 그곳에 있는 다리가 Rainbow Bridge 이다. 그 다리위에 이민국이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으로 가기위해서는 먼저, 캐나다를 나가 미국쪽으로 입국을 해야한다. 911 테러 이후 까다로워진 미국입국 심사 (사람이 많아 두시간 가까이 기다렸다)를 마치고 미국땅을 밟느 듯 마느 듯, 곧 바로 캐나다로 재입국을 했다. 이민국에 들어갔다. 8월 20일 이면, 35도 이상의 고온, 그날은 무척 더웠다. 사무실 안에는 경찰복과 똑 같은 옷을 입은 이민국 직원 5명 정도외에는 사람들이 없어서 인지, 에어컨을 세게 틀어서인지 소름이 끼칠정도로 추웠다. 우리가족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직원들 모두가 우리를 처다보는 것 같았다. 잠시, 묘한 분위기에 휩쌓였었다. 준비한 서류를 들고, 이야기를 시작을 했다. 아내의 취업비자와 아이들의 학생비자를 받으러 왔다 라고 설명을 했다. 그때까지도 우리는 아무런 의심도 걱정도 하지 않았다. 직원들이 잠시 서류를 들쳐보더니, 컴퓨터에서 무언가를 출력해서 나에게 보여주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캐나다에 입국할때 공항의 이민국 직원과 인터뷰한 내용들이었다.
"캐나다에 왜 왔나?" "여행이요"
"언제 한국으로 돌아가나?" "8월28일이요"
한번도 아니고, 세번을 똑같은 질문을 하고 똑깥이 대답을 했다고 써 있었다. 그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머리는 텅 비는 것 같았고, 아무생각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잠시후, 직원이 냉정한 목소리로 8월 28일에 약속한 대로 한국으로 가라. 왜, 거짓말을 했으며, 왜 취업을 하려하고, 아이들은 학교에 입학하려 하느냐, 캐나다 정부는 당신들에게 어떠한 비자도 줄수 없다, 라고 단호히 짤라 말했다. 그때, 아내와 아이들은 상담창구에서 5m 정도 떨어진 곳에 앉아있었다. 어떤 상황인지, 무슨 이야기가 오고가는지는 자세히는 모르지만, 결과가 좋지 않구나 라고 짐작은 하고 있는 듯한 눈치였다. 더군다나, 에어콘 아래쪽에 앉아 있어서 인지, 얼굴들이 창백해 보이고, 입술까지 파랗게 질려 있었다. 우리 처지가 불쌍해 보였다.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여기서 추방 을 당할수도있고, 그렇게 되면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 갈 순간이었다. 다시금, 냉정을 되찾고, 차분히 이민관에게 우리가족의 모든 상황들을 설명을 했다. 한국에서 이민온 것 부터, 내가 PSW로 공부 하고 있으며, 아내와 아이들은 아빠를 보러 방학때 잠깐 왔다가 가려고 했는데(비행기 티켓에 7월11일 입국, 8월 28일 출국으로 되어있음) , 가족이 떨어져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불행한 것인가 (요부분은 거짖말 이지만, 매우 진지하게 설명), 그래서 아이들이 아빠와 같이 캐나다에 살기로 결정했고, 학교에 입학을 해야 했고, 우리가족이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한데, 나는 학생이라 돈을 벌수가 없는 상태이니, 아내가 돈을 벌어야 하니 취업비자가 필요하고,....등등 30분에 걸쳐서 많은 설명을 했다. 다행히, 이민관들이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었고, 잠시후, 이민법 책을 들추어 보더니 3명이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후,30~40분 정도의 시간이 아무 이야기 없이 흘러갔다. 긴장된 순간인지라 다리에도 힘이 없었고, 말을 많이 해서 그런지 배도 고프고......잠깐 앉아 있었다. 그들이 회의를 마치고, 나올 때 까지가 30~40분 이었지만,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회의실 문이 열리고, 이민관들이 나왔다. 긴장된 상태에서 그들의 얼굴만 처다 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도 굳은 표정을 했던 이민관의 얼굴에 미소가 보였다. 그러더니, 앞으로 오라고 손짖을 했다. 모두에게 비자를 주겠다고. 그 순간 무어라 표현할수 없을 만큼 놀라기도 하고, 환희를 느꼈다. .........................................................................................................................
그날 받은 아내의 Work Permit, 지금은 renewal을 했다.
비자를 받아 가지고, 토론토에 돌아오니 많은 사람들이 놀라하며, 몇 년전에 일어났던 몇 가족들의 불행했던 이야기들을 해주었다. 우리가 비자를 받은 것은 기적이고 행운 이었다고. 어떤 가족은 토론토에 집도 있었고, 아이들은 학교도 다니고 있었는데 비자 받으러 나이아가라 폭포에 갔다가 거절을 당해서 미국으로 추방당하고, 영영 캐나다에는 입국할수가 없는 처지가 된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2005년, 8월 20일, 내 생일 이었고, 나이아가라 폭포에서 떨어지지 않고 극적으로 비자를 받은 날, 벌써 일 년이 지났지만, 우리 가족은 이 날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이 기적을 보여 주셨고, 많은 사람들이 체험을 할 수 있게 보여 주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