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느낌에 정신이 들어 눈을 떳다.
비행기는 어느새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모양이다.
내 앞 좌석 머리맡엔 내가 자는 동안
기내식을 서비스하지 못했음을 알리는 스티커가 두어장 붙어있다.
'아야...'
고도가 급격히 떨어져서 그런지
비행기에 타자마자 들이 부은 어마어마한 양의 맥주 탓인지
머리속에선 비행기 엔진음같은 굉음이 울리고 있다.
내 주위를 바쁘게 왔다갔다하는 그녀들에게
냉수를 한잔 부탁해 주욱 들이켰다.
...
'난 지금 여기서 뭐하고 있나...?'
문득 그간 내 주위를 스쳐갔던 많은 사람들과 그들의 이야기들
그리고 그 안에 있던 나...
여러가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제길...'
주위 모든 사람들이 서서히 착륙준비를 하는게 보인다.
맥주를 하나 더 부탁할까 하다가 이내 포기하고
나도 벗고 있던 신발을 다시 신고 안전벨트를 동여맸다.
많은 시간이 흐른것 같았는데
겨우 여덟개 정도의 캔맥주와 그 사이 몇차례 승무원의 제지
그리고 기억나지도 않는 유치한 기내영화 두어편을 뒤로하고
난 이제 땅에 발을 딛기 직전인것이다.
'이봐...난 아직 마음의 준비가 안 됐다구...'
누군가에게 시비조로 읆조려봤자
어차피 들어주는 이는 하나도 없다.
'끼익~~~'
이내 활주로와 비행기의 익숙한 마찰음과 함께
사람들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그들의 삶만큼이나 고단한
짐을 안고 시합하듯이 비행기를 박차고 나간다.
난 느릿느릿 좌석위의 수납함을 열고
조그맣고 볼품없는 내 짐을 꺼낸후 자리에 않아
사람들이 나가기를 기다린다.
밖에 태양은 없을테지만...
난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꺼내고
창밖의 세상을 조금더 짙은 색으로 바라보기 시작했다.
'손님, 도착했습니다.'
이윽고 난 천천히 통로를 걸어나와 게이트를 통과하여
긴 공항의 복도를 따라 걷기 시작하였다.
아직도 머리는 지끈지끈 울려오지만
난...
웃었다.
그 수많던 옹이 자국마냥 엉성한 매듭을 또다시 이렇게 짓고있지만
이제 난 웃을수 있게 되었다.
바깥에서 크게 숨을 들이 쉬었다.
멀지 않은곳에서 풍겨오는 소금기 가득한 바람이
허파를 가득 채운다.
공항을 빠져나온뒤론 꿀꿀한 날씨에도 아랑곳하지않고
선글라스를 낀채 미친놈처럼 마냥 히죽히죽 웃고 있다.
조금은 알것 같았다.
아무리 독을 품고 달려들어도...
체념하고 먼 곳으로 숨어버려도...
내 삶은 아마도 이런식으로 날 인도하리란걸...
난 조금은 알것 같았다.
웃음이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또다른 귀향을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