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직도 1997년 12월 30일을 기억한다. 그해가 가던 그 무렵, 거리는 어둡고 한산했다. 무심히 거리를 지나가다가 돌아보면 이상하게 불빛들도 어둡고 소음도 낮았다. 온 나라가 무던 속처럼 적막하다고 느껴지던 무렵이었다. 그날 밤 나는 마포에 있는 한 출판사 사람들과 망년회를 겸해 간단한 술자리를 마치고 택시를 탔다. 평소 같았다면 자리가 더 길어졌을지도 모르겠는데 마친 IMF 시대로 접어들고 있었고 누구도 그리 즐겁게 연말을 보낼 심산을 아니어서 그날의 술자리는 일찍 끝났다. 그렇다고 해도 그해에 나는 나 자신이 꽤 행복한 사람이라고 믿고 있었다. 5년 만에 책도 냈고, 반응도 좋았으며, 해외 여행다운 여행도 처음으로 했었다. 나라 걱정이 안 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도 잘 자라고 저축도 있었다. 택시가 막 강북 강변도로로 진입하려고 하는데 택시 운전사가 틀어놓았던 라디오에서 아나운서의 무감동한 목소리가 들렸다. 그날 아침 열시, 전국 구치소에서 몇 십 년 만의 최대 규모인 23명이 처형되었다는 소식이었다. 그때 나는 나도 모르게 내 입을 틀어막았다. 가슴 깊은 곳에서 무엇인가가 울컥, 하고 올라왔다. 나는 아직도 그 울컥, 의 내용을 다 언어로 표현할 수는 없다. 그냥 내가 행복이라고 믿었던 행복이 정말 행복일까, 하는 의문이 들었고 분노와 회한이 버무려지면서 끔찍한 기분이었다. 창밖을 보니까 강물이 검은 머리를 길게 길게 풀어내리고 있는 거 같았다. 모든 것이 결국은 기적이 아닐까,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사는 나라는 인간은 지금에야 그날의 기억을 예사롭지 않게 돌아본다. 아직도 그 순간은 내게서 생생하다. 그리고 그 심정은 이 소설을 쓰는 내내 같았다.
지난 가을 취재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구치소 여자 미사를 갔다. 마침 명절을 앞두고 있어서 몇 십 년째 구치소를 드나들며 봉사하는 자매들이 추석 음식을 챙겨가지고 왔고 그래서인가 다른 때보다 사람이 많았다. 신부님께서 구치소를 처음으로 방문하는 내게, 여기 봉쇄수도원이에요, 하셨다. 웃으며 들어간 곳, 미사가 시작되기 전 신부님께서 읽어본 사람 손들어보세요, 하니까 의외로 꽤 많은 숫자가 손을 들었다. 그 작가 어때요? 하니까, 싫어요, 하는 사람도 있었다.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데 좀 웃음이 나왔다. 난데없이 신부님께서 여기 그 작가가 있는데 한번 보실래요, 하고 나를 청하셨다. 제일 싫어하는 일이 남 앞에 나가 이야기하는 건데, 거절할 수도 없고, 딱히 할 말도 별로 없어서, 거기 가는 동안 생각했던 말을 꺼냈다. 신의 눈으로 보면 제가 더 죄인일지도 모르는데 여러분들은 여기 있고 저는 밖에 있군요...... 하는데 여기저기서 울음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단. 그리고 그 울음은 미사 내내 이어졌다. 나로서도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서둘러 말을 마치고 자리에 와 앉았는데, 그들 하나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내가 삶의 중간쯤 한 나이니까 당연히 그랬겠지만 내 또래에서 아래위로 열 살 차이의 사람들이 제일 많았다. 저 여자들도 모두 어미이고 딸이고 자매일 텐데, 두고 온 아이들은 어떻게 할까, 부모들은? 하는 생각이 구체적으로 들자, 저들은 무슨 죄를 지었을까, 그러지 말지, 왜 그래서 여기 갇혀 있어요? 하는 바보같은 질문이 웅웅거렸다. 그러면서 또 그런 생각이 들었다. 너는 왜 안 그랬니? 하는 질문이었다. 나는...... 하고 대답하려다가 나도 그들을 따라 미사 내내 울었다. 미사가 다 끝나고 일어서려는데 어떤 여자 하나가 다가와 내 손을 덥석 잡았다. 저기...... 내가 아까 공지영씨 싫어한다고 말했어요, 미안해요, 진짜로는 한번 보고도 싶었는데...... 하는 것이었다. 눈물이 범벅이 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면서 나느 아니에요, 그럼 어때요, 하고 말하고 싶었다. 처음 본 사람이었는데 나는 그녀와 손을 마주 잡고 잠시 서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아주 오래 전부터 그녀와 알고 지낸 듯한 느낌이 들었다.
이후 거의 매일같이 살인에 관계된 사람들을 만났다. 검사와 교도관 사형수와 신부님, 변호사와 수녀님 의사와 법학자......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폭력과 살인으로 점철된 기록들을 읽었다. 처음에는 해만 지면 도저히 두려워서 그 문서들을 집어들 수가 없었다. 악몽에 시달렸고 잠을 자다가 자꾸만 깨어났다. 밤이면 문서들을 읽고 낮이면 취재하는데 삶이 벼랑길 같고 세상의 사람들이 에 나오는 디멘터들처럼 가혹한 냉기를 내게 뿜어내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그냥 고만고만한 사람들 틈에서 자라났고, 어른이 되어서도 고만고만한 소위 교양 있는 사람들과 교류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세상은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냉혹했다. 삶과 죽음과 죄와 벌...... 냉기 때문에 겨울 내내 팔다리가 저렸다.
나는 매일 미사를 가려고 노력했고 매일 달리기를 하려고 했다. 하나는 내 정신을 위한 것이고 하나는 내 몸을 위한 것이었다. 쓰기 위해서 최상의 컨디션이 필요했다. 다른 일도 아니고 글을 쓰기 위해 내 몸과 마음을 이토록 귀하게 여겨본 적이 또 있을까 싶었다. 처음으로 소설이라는 것을 쓰는 풋내기처럼 모든 것이 조심스럽게 느껴졌다. 세상에 그렇지 않은 일이라는 게 있을까마는 이 주제가 그만큼 힘에 겨워 몇 번이나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던 것도 고백한다. 작가라는 직업이 이토록 뼈저린 고독을 수반하는 것이라는 것도 새삼 느꼈다. 내가 선택하고 내가 쓰고 내가 책임져야 했다. 왜 하필 이런 소재를 가지고 글을 시작했을까, 후회도 막심했다. 그런데 그만 포기하고 싶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을 내가 그 몇 달 함께 빵을 나누던 그 사형수들의, 이제는 깊고 선한 눈매들이었다.
그들은 만났는데, 그들이 무섭고 혐오스러워야 하는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들은 왜 그렇게 맑은 얼굴을 하고 있을까, 가끔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어두움이 그들의 얼굴을 파도치듯 흔들어놓기는 했지만 그들은 내가 사회에서 만난 어떤 인간들의 집단보다 더 아름다운 수도자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는 수 없이 나는 내가 그들보다 착하고 아니 내가 그들보다 죄가 적을까, 자꾸만 생각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는 신기하게 사형수들과 만나고 오는 날이면 잠이 잘 왔다. 이 세상의 모든 죄 없는 사람들과 만났을 때는 겨울바람보다 더 시리고 추웠는데 그들을 만나고 오면 마음이 따뜻했다. 한때는 더 이상 숭악할 수 없었던 죄인들 서넛과의 만남이 왜 이렇게 평화롭고 따뜻한지, 그들이 하는 말든은 어떤 잠언록에 실려도 좋을 만큼 고통스러웠고 또 진리에 근접해 있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정녕 회개한 인간이 뿜어내는 그 기운은 이 세상의 모든 잘난 사람들의 냉정함을 덥히고도 남는 것인지, 우리나라 교도행정이 편 교화의 승리인지, 아니면 정말로 신의 은총인지...... 그도 아니면 인간이 정말로 실은 사랑받고 사랑해야하는 본질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인지, 그러다가 어느 날, 나는 감히, 말해버리고 말았다.
"이상해 거기 다녀오고 나면...... 혹시 천국이 그런 곳이 아닐까 싶어."
친구들이 나를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작가의 말 中
공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