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mily Capital로서의 교육
1960년대 이래 경제가 급속도로 발전함에 따라 많은 전문 인력들이 필요해지기 시작했다.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전문 인력으로 자신의 사회․경제적 지위를 향상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대다수 가난했던 우리 국민들은 ‘교육’만이 거의 유일한 신분상승의 매개체가 되었고, 부모들은 못 먹고, 못 입어도 자식만은 대학교육까지 시켜야 한다는 강박 관념과 자식농사가 최고라는 인식이 뿌리 깊게 박히게 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 속에서 교육은 ‘가족의 재산’이라는 인식이 자리 잡게 되었다. 형의 대학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학업을 포기하고 묵묵히 아버지를 도와 농사를 지어야 했던 남동생과 열악한 봉제공장에 가서 쉴 새 없이 일해야 했던 여동생을 포함한 모든 가족들에게, 그 집의 장남 혹은 자녀들의 대학교육이라는 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영광의 재산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가족 누군가의 교육을 위해 자신을 포기했던, 포기해야만 했던 사람들이 이제는 부모가 되어 자식교육을 시키고 있다. 자신의 과거처럼 자식교육을 위해 기러기아빠를 자처하기도 하고, 남의 집안일을 도와주거나 건물 청소를 하면서까지 하루하루를 고단하게 보내고 있다.
장래희망은 잘 먹고 잘 살기 위한 것들뿐.
10여 년 전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만 하더라도 과학자, 판검사, 군인, 대통령 등이 장래희망의 1순위의 것들이었다. 요즘 아이들에게는 한의사, 치과의사, 운동선수, 연예인등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사회의 변화에 따라 선호하는 직업군이 바뀐 이유도 있겠지만, 앞에서 열거한 직업들을 선호하는 이유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이다. 개인적인 시각에서 바라볼 때 한의사가 되어 돈 많이 벌어서 부모님께 맛있는 것도 사드리고, 효도하고 싶다는 아이를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지만, 대다수 학생들이 이런 인식을 가지고 있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Family Capital로서 교육을 인식하고 있는 사회는 비인간적 무한경쟁 논리만이 교육을 지배하고, 자본을 가지지 못한 자는 배움의 열의와 그 능력과 무관하게 도태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얼마 전 뉴스에서 월 수강료 600만원의 학원이 적발되었다고 한다. 우리 사회에는 월 600만원의 수강료를 지불하고서라도 ‘가족 교육 자산’을 늘리기 위한 투자여력이 있는 가정이 있는 반면, 그의 몇 십 배가 되는 가정들은 2만원의 특기적성비도 부담스러워 ‘가족 교육 자산’을 불리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연구한 바에 따르면 책이 많은 집 아이들의 학업성취도가 높게 나왔다고 한다. 얼핏 보면 독서의 중요성이 느껴지는 연구결과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부모의 사회경제적 여건이 자녀들의 학업성취도에 큰 영향을 준다는 연구결과이다. 부모의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아 공공도서관에서 꾸준히 책을 읽은 학생의 학업성취도가 높지 않게 나왔으니 말이다. 결국 집에 많은 책을 보유하고 있는 가정의 부모는 이미 자식들을 교육시키기 위한 많은 준비―높은 교육수준, 넉넉한 경제적 여건, 입시에서의 정보 등―가 되어 있다는 말이다. 이러한 Family Capital로서의 교육이 존재하는 한 사회적 양극화와 함께 교육의 양극화도 그 정도가 심화되어 사회 갈등 양상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가지지 못한 자들은 교육을 포기해버려, 그 집단 속에서 공부하려는 사람들이 따돌림을 당하거나 배제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미국의 경우 흑인들 사이에서 모범생(?)들은 백인흉내를 낸다며 집단따돌림이나 심지어 린치를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교육은 Social Capital이 되어야 한다.
Family Capital로서의 교육을 Social Capital로서의 교육으로 인식 전환을 하기 위한 방법은 교육을 하는데 있어서 각 가정의 자본 투입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에 대한 해답은 공교육 정상화에 있을 것이다. 근본적으로 학교교육의 질적․ 양적 수준을 향상시키고, 사교육을 통해 얻는 인센티브를 줄여나가는 입시제도가 되어야 할 것이다. 물론 정부에서는 본고사 폐지, 수능시험의 변별력 약화 및 내신반영비율의 강화를 통해 사교육을 통한 인센티브를 줄이기 위한 노력들을 보여줬지만, 사교육 시장은 바뀐 입시환경에 따라, 혹은 고수입 교육수요자들의 새로운 구매력을 개발하는 방식으로―가령 유학을 위해 SAT반 운영 등―엄청난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수요(학부모 및 학생)와 공급(사교육)이 존재하는 한 어떠한 입시제도의 변화를 통해서도 사교육을 억제하지 못할 것이다.
오히려 사교육의 최종 종착지인 명문대학졸업(최근에는 취직까지 확대되고 있지만)을 통해 얻는 인센티브를 줄이는 것이 입시제도의 변화보다는 효과적일 것이다. 학벌 없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정부의 노력이 있지만―국가공무원 시험 학력 기재 폐지, 고위공무원 지방인재 채용 쿼터 등-사회적 파급 효과와 민간 부분에 노력이 부족하다. 인터넷 검색창에 ‘대기업 대학별 점수’만 쳐봐도 내가 다니는 대학의 점수 및 서열을 알 수 있으니 말이다. 이렇게 대학졸업 후 철저하게 등급과 서열이 매겨지는 상황을 제거해야만 사교육을 통한 인센티브가 줄어둘 것이다.
또한 학생들에게 시민 또는 국민으로서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이러한 일환으로 시행되고 있는 ‘봉사제도’가 입시를 위한 하나의 옵션으로 전락해 버렸다. 방학 중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봉사활동이 공공기관의 지인을 통해 ‘봉사 없는 봉사활동’이 되는 경우가 다반사기 때문이다.
정책과 교육을 통해 Family Capital로서의 교육에 대한 인식을 Social Capital로 전환해야만 교육이 그 본연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면 교육은 단지 계급의 재생산의 통로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아이들의 학원비가 부담스러워 차라리 ‘아무도 못 다니게 했으면 좋겠다’고 푸념하는 엄마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기울여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