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서울 경복고 홍순건 군이 노트 필기를 하며 공부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서울 경복고 3학년 홍순건(19)군은 1학년부터 내내 전교 1등을 차지했다. 내신 성적이 달린 시험에선 간혹 1등을 놓친 적이 있으나 이는 손에 꼽을 정도고, 특히 모의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선 만점에 가까운 점수로 단 한 번도 1등을 놓친 적이 없다.
공부 비결을 알 수 있을까 싶어 홍군의 공책을 들춰봤지만 다른 학생에 비해 필기가 그렇게 꼼꼼하지도 않고 양도 많지 않아 실망이었다. 전교 1등의 노트라고 하기엔 허술해보였다. 비법이 다른 곳에 있는지 홍군에게 직접 물어봤다.
◆ 꼼꼼히 필기해야 한다? NO! 시간만 낭비한다
홍군의 공책은 가볍다. 다른 학생처럼 빽빽하게 필기하지 않는다. 다 알고 있어서 적어놓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세한 개념까지 신경 쓰다 보면 정작 중요한 개념을 놓치고 지나갈 수 있기 때문이란다.
홍군은 “시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그 시에 쓰인 시어의 뜻을 암기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며 “다른 사람에게 ‘시는 이런 것이다’라고 설명할 수 있도록 큰 개념을 반드시 알아둬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선거와 관련된 단원을 배울 때 민주주의에서 선거의 의미가 무엇인지 집중적으로 공부하고 그에 대한 필기를 충실히 한다는 것이다. 선거는 어떤 절차로 진행되고, 피선거권은 어떻게 제한되는지 등의 지엽적인 부분은 암기보다는 이해하면서 넘어간다.
“지엽적인 부분은 사실 문제의 보기에서 다 나오기 때문에 굳이 암기할 필요가 없죠. 선거가 왜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중요한 도구로 쓰이는지, 의미는 무엇인지 핵심 개념만 정확히 알면 다른 부분들은 시간 들여 암기할 필요가 없어요."
다른 과목도 마찬가지다. 국어도 중요한 개념 위주로 필기하며, 수학과 영어에선 아예 필기라고 할 것도 거의 없다. 실제로 홍군의 국어 공책을 보니 교과서에서 배운 소설의 내용에 대한 설명은 거의 없고, 소설의 개념과 소설을 이끌어가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인물과 청자의 개념 정도만 적혀 있었다.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는 과감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 수학은 문제만 많이 풀면 된다? NO! 개념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홍군이 가장 자신있는 과목은 수학이다. 다른 과목과 달리 수학만은 오답노트를 만들어 활용한다. 물론 모의고사 때 틀리는 문제가 거의 없어 오답노트가 두껍지는 않다.
홍군의 오답노트 활용법은 틀린 문제를 복사해 붙여놓은 뒤 다시 한번 풀어보는 식이다. 여느 학생과 같은 방법이다.
홍군은 “단순히 틀린 문제만 풀어보는 식으로는 공부 효과가 떨어진다"고 강조했다. 그 문제를 왜 틀렸는지, 어떤 개념을 모르고 있는지 틀린 문제를 통해 점검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수학 문제가 묻는 개념 자체는 다양하지 않아요. 로그라고 하면 로그의 성질과 상용로그를 묻는 식으로 문제가 출제되잖아요. 이렇게 개념으로 정리하면 문제 유형은 몇 개 되지 않아요. 단 그 개념을 응용하는 문제가 다양하기 때문에 어렵다고 생각하는 것이죠."
◆ 법대 지망은 부모님의 뜻? NO! 약자를 위해 일한다는 나의 목표
홍군은 서울대 법대 수시 2학기 모집 지원균형선발전형에 지원한 상태다. 수능에서 2개 영역이 2등급 이내에 들어야 하는 최저학력기준을 충족해야 최종 합격할 수 있다. 홍군은 그동안 치른 모의고사의 전 영역이 1등급이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홍군이 법대 진학을 꿈꾸는 데는 부모의 영향이 컸다. 보통의 다른 부모처럼 성공을 위해 법대를 권유한 것은 아니란다.
2003년 홍군의 부모는 세상을 뒤흔든 굿모닝시티 사기 분양 사건으로 큰 피해를 보았다.
당시 홍군은 부모의 소중한 돈이 단순히 사기로 떼인 것이 아니라 정치자금으로 이용됐다는 사실에 놀랐다. 홍군은 검사나 판사, 변호사 등 법조인이 돼 다시는 자기 부모와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도록 하고 싶다고 다짐한다.
이렇게 뚜렷한 장래 목표가 있는 점도 홍군이 성적 최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 중 하나다.
홍군은 “사회에 정의로운 상거래가 정착할 수 있도록 법조인으로 일하고 싶다"며 “장기적으로는 아직 인권의식이 부족한 한국의 현실을 고치고자 앰네스티인터내셔널(국제사면위원회)에서 약자를 위해 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풍연 기자 jay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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